루브르 박물관엔 전생의 내가 있다

                                                              정국희

 

 

 

제 운명이 그렇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절벽에서 날개 달린 남자를 기다리던 셋째 딸은 제피로스가 데려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정해진 혼사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펜트하우스엔 생전 처음 보는 황금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빨간 장미가 흥건한 대리석 바닥엔 크리스털 불빛이 반짝거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침실에 불을 켜주고 갔으나 몹쓸 침묵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날 밤,

 

아주 독한 죄질로

심장을 겨냥한 화살이 샹데리아 불빛 속으로 들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늙은 괴물이 아닌 완전 멋진 큐피드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내 심장은 마비되었습니다

라고 속삭였다

 

천국과 지옥 사이로 두 입술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들고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랑이라는 심각한 병을 옮겨주었다. 그런 남자가

사람들의 시샘으로 말미암아 거짓말처럼 떠나버리고

저승으로 흐르는 검은 폭포에 몸을 담근 후 깊은 잠에 빠진 셋째 딸,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에로스 키스에 깨어나는 푸쉬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었을 때, 우리는 마침

그가 한 손으론 나의 머리를 받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의 가슴을 안고

나는 양팔로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애틋한 키스를 막 끝낸 후였다

 

2021년도 <시작> 여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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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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