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에 대한 나의 고찰
2024.10.11 15:28
한강 『채식주의자』에 대한 나의 고찰
정국희
어릴 땐 책을 읽다 말고 삽화를 글보다 더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했다. 말을 타고 있는 왕자그림이라든가 잠을 자고 있는 공주그림 따위는 어린 상상을 끝없이 펼쳐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이 없는 책을 본 지가 어언 40여 년, 난 『채식주의자』를 읽다 말고 그림 대신 책 표지에 있는 작가 한강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들여다보았다. 왜냐하면 글에서 풍기는 섬뜩함이 작가의 생김새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순하디 순하게 생긴 얼굴과 가냘픈 몸매에서 어쩌면 그렇게 몸서리쳐지는 글들이 나오나 싶어서였다.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평범한 소설 속 영혜가 갑자기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 더 침착해지는 것처럼, 젖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앉아 “더워서” 라고 희미하게 웃는 것처럼, 아니 서른 개도 넘는 감자를 깎아놓고 “쪄먹으려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처럼, 그런 돌발적인 영혜의 모습 속에 작가의 순진한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곤 했다.
<작가와 작품세계의 특징>
먼저 한강은 신세대다운 문화적 작가이면서 자기만의 색다른 빛깔과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작가이다. 특히 문체가 김훈 소설처럼 짧고 명료하며 시적이다. 무엇보다 고요한 강렬함이 있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눈다면,
첫째, “비극적 세계와 어둠의 이미지”다. 그녀의 글들은 ‘사람살이‘ 즉 인간이 살면서 겪는 고통과 절망을 다룬다. 그래서 그런지 한강의 소설은 실존주의에서 던져진 존재 이를테면, 비극적 세계 속의 존재론을 많이 보여준다. 주로 인물들이 트라우마에 의한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시달리면서 야위어간다거나 또는 앓고 있는 질병의 근원으로 밀착되어 있다. 그 원인은 가족적 상처와 현재의 고립된 환경으로 주어지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삶은 고해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술가의 상상력과 일상초월 욕망”이다. 고통스런 개인들이 현실을 이겨내는 통로는 예술적 세계의 소중함이다. 더 넓게는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언어들이 서정적인 색채와 함께 연민의 정서로 몰고가는 것이다. 마치 주어진 과제처럼 끝없는 물음은 말할 나위도 없고 답이 없는 물음에 의문점들이 계속 머물러있는 것과 같다.
감각적인 문체 또한 매우 참신하다. 자칫 비난으로 취급될 부분에도 허무주의적 면모에 초첨을 맞추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는 데 부분들이 많다. 등장인물들 또한 대체로 예술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훼손되어 가는 자신의 세계를 아름다움의 가치로 추구함으로써 견뎌낸다. 바로 예술만이 희망이고 살아가는 통로여서 초월적인 상상력은 가치 탐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셋째, “시적인 문체의 힘“이다. 한강의 소설들은 시각적인 묘사와 운율로 문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로 먼저 등단한 작가답게 시적 기질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 쉬게 할 수 없어’ 라고 하는 이런 표현들이다.
이런 형식은 진술형 유형 중의 하나로 말하자면 넋두리 형태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비슷한 문장구조를 특정한 위치에 놓아 음운이 규칙적으로 반복하며 운율을 형성하는 시적 방법이다. 예를 들면,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감정이 탈출한 내면을 감지하는 예술 형식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글을 보면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구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구나’. 와 같은 형식의 심리적 의식 즉, 내면으로 투영시킨 중얼거림과 같은 형태이다.
작가가 손가락이 아파서 타이핑을 하지 못해 손으로 다 썼다는 『채식주의자』 는 생각보다 많이 예리하고 강렬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글씨가 종이를 확 찢고 튀어나올 정도로 이미지를 폭력적으로 격렬하게 드러낸다. 특히 살아있는 개를 부드러운 살코기로 만들기 위하여 오토바이에 매달고 동네를 여섯 바퀴나 도는 장면은 몸처리가 쳐진다. 질질 쏜살같이 끌려가는 개의 번쩍이는 눈에서, 입에서, 그리고 목에서 떨어지는 피를 묘사하는 장면은 소름이 쫙 끼친다. 더군다나 그렇게 죽은 개고기를 나눠먹는 인간들의 모습이 황당하고 혐오스러워 책을 덮어버릴 정도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런 반면에 개인적 자아의 실존 문제를 중심으로 비극적인 이미지를 자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또한 육식을 거부하는 문명 비판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이 현실을 초월하고 싶은 욕구를 보여주는 변신 모티브라 할 수 있겠다. 『채식주의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아내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끝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연작 편 몽고반점에서는 이혼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몽고반점에서 형부가 처제를 보는 관점에서 쓴 것처럼 채식주의자도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관점에서 ‘나’라는 일인층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작품내용요약>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와 별 탈 없이 순조롭게 결혼 5년 차에 접어든다.(p9) 브래지어를 싫어해서 노브라로 지내는 것 말고는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없는 아내가 어는 날 새벽 네 시쯤 냉장고 앞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걸 발견한다. 화장실에 가려던 남편이 “왜 그래? 뭐야 지금....” 하고 묻자 아내 영혜는 “꿈을 꿨어” 라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처럼 꿈꾸는 장면들과 꿈을 꿨어라는 말이 되풀이되고 이때부터 채식주의자로 철저하게 변해가는, 그래서 정신병자가 되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며 남편은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된다.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어갔다. 무용수처럼 비쩍 마르는가 싶더니 종내에는 환자처럼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p25)
꿈에 누군가의 목을 자를 때, 끝까지 잘리지 않아 덜겅거리는 머리채를 잡고 마저 칼질을 할 때, 미끌미끌한 안구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 그러다 깨어날 때, 생시에 오래 지켜보아왔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 조르고 싶을 때,(p42)
얼핏 든 잠에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칼을 배에 꽂아 힘껏 가른 뒤 길고 구불구불한 내장을 꺼냈다. 생선처럼 뼈만 남기고 물컹한 살과 근육을 모두 발라냈다.’(p62) 이처럼 이 소설의 전체적 주제는 육식과 채식에 관한 동물의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채식을 주장하는 주인공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항하다 나중에는 기이한 행동을 하며 채식주의자의 욕망이 극도로 변해가는 본능을 반영한 글이다.
마지막으로 남편인 내가 낮잠에서 깬 뒤, 창문 밖 구경꾼들 중에 둘러싸인 아내에게 다가간다.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어서 연작편인 『몽고반점』은 형부인 나와 처제를 바라보는 형부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다. ‘그가 처제를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히 아내에게서 몽고반점에 대한 말을 들은 다음이었다’ (p87)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형부인 내가 정신적으로 몹시 위태로운 처제를 예술이라는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이야기다. 다소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묘사가 선정적이긴 하지만 예전의 식상한 섹스 장면이 아닌 성적본능의 진지한 예술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이 소설도 “꿈을 꿔서“라는 단어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은 『아기부처』도 꿈으로부터 스토리가 전개된다. “아기 부처의 꿈을 꾼 것은 이월이었다“ 로 첫 문장이 시작되고 중간에도 ”아기부처의 꿈을 다시 꾸었다“.(p50), 로 연결이 되면서,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도 ”그날 밤 다시 꿈을 꾸었다”(p 70)이렇게 세 번의 꿈으로 마무리가 되는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채식주의자>와 <아기부처> 두 작품 모두 꿈으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를 테면 꿈속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아기부처』는 한마디로 상처받은 사람이 일상을 견뎌가는 불교적 구도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대개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면도 있지만 주인공이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면서 존재의 구도를 완성시켜가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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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흉터“라는 제목으로도 상영되었던 영화 『아기부처』는 『채식주의자』처럼 등장인물이 돌발적이고 병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냉정하고 무섭도록 침착한 여인상, 아니 밝지도 멍하지도 않은 음울한 여인상이 소설 속에 있다. 다시 말하면, 남편과의 갈등과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심적 갈등을 종교적 구도의 맥락으로 모색해 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아기부처의 꿈을 꾼 날 젊은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그분하구 저 내일로 꼭 육 개월이 돼요“ 전화를 끊고 남편의 외도가 확인되자 주인공은 오히려 잘 맞추어지지 않던 퍼즐 조각이 마침내 돌어맞는 순간과 같은 작은 쾌감을 느낀다. 이런 종류의 글쓰기 방식은 아기부처와 채식주의자 두 소설에서 모두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비슷한 형태이다. 예를 들면, 대화를 할 때 단어만 툭툭 던지는 말투라든가, 또는 ”나는 당신을 몰라”(p194<아기부처>)) 여자가 혼잣말하는 것처럼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p64<채식주의자>) 남편이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라든가. 혹은 상대방이 무슨 실수를 했을 때 보이는 무섭도록 침착함이 한강 소설에는 많다.
<결론>“한강은 여성인물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글쓰기 또는 인물들의 감정적 변화에 밀착하는 글쓰기다. 그리고 여성의 고통을 잘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 공동체에 전달하는 한 사람의 자리에 바로 작가 한강이 놓여있다“(손정수 <식물이 자라는 속도로 글쓰기-한강론> 작가세계 2011년 봄호 >) 라고 한 것처럼 실존주의 문학을 바탕에 둔 작가 한강, 그녀만이 구가할 수 있는 밀도 높은 정서와 낭만은 요즘 많은 젊은 독자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숨 쉴 통로였다” 라고 어느 여성잡지에 인터뷰한 것처럼 글쓰기가 그녀의 존재하는 방식이 되길, 그리고 숨 쉴 통로가 되길 빌면서 그녀의 예술적 앞날을 기대해 본다.
자료출처: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아기부처>
2016/6/21 미주문학서재에 작성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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