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불로에서 만난 여우
유봉희
나무와 들풀이 따라오기를 포기한 산등성
송곳니 같은 바위들만 높게 낮게 앉아서
바람을 잘게 부수고 있다
바위 뒤에서 빠른 속도로 한 물체가 지나간다
조금 후 서서히 몸체를 드러낸다
길게 부풀려진 꼬리, 뾰족한 얼굴
저것은 여우다
돌 하나 집어 던지면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거리
그러나 그의 걸음은 너무나 태연하다
잠깐 맞춘 눈도 고인 물처럼 흔들림이 없다
저 조용한 몸짓은 믿음일까 본성일까
인디언들이 성인식을 올리는 밤이면
도깨비불로 타올랐다는 이 산등성이에서
인디언을 지켜보던 불붙는 야성의 눈빛
일정 거리를 지켜 서성거리던 그 걸음
이제는 볼 수 없다
홀연히 끌어 당겨진
그와 나와의 거리
그러나 그의 마음 한자락, 한 치 앞도 읽혀지지 않는다
오늘, 태양이 제 몸의 한 부분을 터트려
붉은 하늘을 연다는 밤
과연 그는 그의 눈에 그 불을 옮겨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짐짓 그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The Fox I Met on Mt. Diablo |
Eu, Bonghee / 英譯 · 고창수 |
On a mountain-ridge where trees and weeds have given up the act of following,
Only rocks resembling canine teeth sit high or low,
Crushing the wind into little pieces.
Something races fast behind the rocks,
A little later gradually revealing its body.
A long bloated tail, and a pointed face -
That′s a fox
At a stone’s throw.
But its stride is so stable and natural;
Its eyes I just looked into are motionless
Like pooled water.
Would that calm gesture be faith or instinct,
I wonder?
On this mountain ridge
Where American Indians are said to have conducted initiation rites causing fairy fires to rise up,
The wild eyebeams watching the American Indians.
I think of the steps
Loitering at a certain distance.
The distance shortened between him and me.
But his mind� skirt I cannot read an inch ahead.
Today, when the sun explodes a part of his body
To open up the purple sky,
Could he transfer the fire in his eyes?
I surreptitiously walk away
Where I can’t se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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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희 (2010-09-22 11:03:19)
미주문학 작품평 / 조정권 시인
유봉희의 <다야불로에서 만난 여우>는 동물시의 한 표본이다
묘사가 완벽한 것은 그의 관찰력의 남다른 재능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물기를 배재한 치밀한 묘사력이다 묘사에 들뜸이 없다
이 냉정한 대상바라보기 . 여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고요 .
인간을 경계하지 않는성자와 같은 여우의 태연한 자태를
바로 앞에서 서로 마주하며 이 긴장력 .
잠깐 맞춘 눈도 고인물처럼 흔들림이 없다
저 조용한 몸짓은 믿음일까 본성일까
외워두고 싶은 구절이다
이제 미주 문인들의 시는 개인적 서정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삶으로 부터 종교적 내면적 문명비판적 사회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확산 되어 있다. 현대적 서정성이란 자연친화적 서정 ,
내면적감성의 상상력 ,사회성 ,도시적 서정성을 폭넓게 획득하고 있다
이 항목들은 한국의 현대시의 오늘을 잘 설명해 주는 항목들이다
-통권 제 3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