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라운 시선

2020.09.20 14:58

한성덕 조회 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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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시선

한성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회복지종사자들의 비율이 일반인들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라북도 사회복지사협회가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전북지역 사회복지종사자 624명을 조사 발표한 내용이다.

요양원의 사회복지사로 두 달 가까이 근무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같아 보여도 느낌은 다양하다. 처음에는 차갑고, 싸늘한 시선들이었으나, 지금은 정겹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시선이 압도적이다. 초기에는, ‘비단 여기만 그러랴?’ 하면서도 따가운 시선에 꽤 당황했었다. 이젠 어르신들을 섬기는 보람과 일에 대한 기쁨이 포개지면서, 직원들의 보드라운 시선세례에 하루하루가 신난다. 감사하게도 그새 요양원의 일이 몸에 베었나보다.

전주에서 논산의 ‘양촌 수양관요양원’까지는 승용차로 4,50분이 소요된다. 아침 8시 출근이지만 20분 전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방에서 나와 넓은 홀에 계신다. 홀에 들어서자마자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를 외치며, ‘오늘도 기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란다.’며 인사를 나눈다. 그러고 나면, 하이파이브 스킨십에 들어간다. 소파나 휠체어에 계신 어르신과 와상(臥床)환자까지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한다. 힘없고 나른한 어르신들에게 활력소를 불어넣으려는 행위다. 운동 겸 웃는 연습이지만 힘의 강도로 건강을 체크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여기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기다린 듯 무척 반기신다. 몇몇 환자에겐 안수기도도 겸한다. 뇌가 중요하고 한없이 정밀하지만, 웃음만큼은 잘 분별하지 못해 억지웃음도 95% 이상의 웃음효과가 있다니, 늘 ‘웃고 살라.’는 조물주의 배려가 아닌가? 어르신들의 웃음보가 터지는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다.

우리 요양원의 특색은, 매일 아침 8시와 오후 4시 예배다. 인간은 영과 육의 존재다. 생존은 영혼의 내재를 뜻하는데 영혼이 떠나면 곧 죽음이다. 삶의 균형은 영과 육의 조화에서 나온다. 육은 땅의 양식으로 살며, 생존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지식을 터득한다. 허나 영은 하늘의 양식으로 산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 등, 그 어떤 조건도 요하지 않는다. 지식의 유무나 생존경쟁 따위도 필요 없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명의 양식으로 믿으면 그만이다. 그 사실이 받아들여지면 영과 육이 건강한 자요, 그렇지 않으면 편향(偏向)된 사람이다. 특히, 어르신들은 영과 육이 건강해야한다. 우리 요양원이 예배에 치중하는 이유다.

요양원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나,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든 많든 어르신들을 섬긴다는 게 보통일인가?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퍽 다양하다. 성질이 괴팍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치매나 치매기가 있는 어르신은 정말로 힘들다. 그런데다가 유전적 신체장애자나, 기초수급자나, 의지할 데 없는 어르신들의 모난 성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아무리 부탁하고, 설득하고, 타이르지만 그때뿐이다. 그래도 복지 분야의 종사자들은 늘 웃음을 머금고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이중적인 삶이 피곤함을 가중시킨다. 위로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대로 필요한 자들이다. 때로는, “내 돈으로 월급을 받으니까 나한테 잘 해!” 하듯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환자 때문에 환멸을 느낀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속담은 빈말이 아니다. 정신이 미약한 어르신들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곤욕을 치를 때도 더러 있다.


두 달 가까이 목사의 신분을 내려놓고 집사처럼 일했다. 집사의 옷으로 갈아입으니 참 편안하고 좋다. 내가 먼저 직원들 속에 녹아들기를 바라며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런 자만의 행복이 내 안을 채웠다. 원장이 그걸 보셨나? 나를 원목으로 임명하고, 실내보다 드넓은 정원의 일을 부탁했다. 직원들의 보드라운 시선세례와 함께, 또 다른 행복이 내 안을 감싸고 있다.

(2020. 9. 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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