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학입시

2005.11.23 11:47

정찬열 조회 수:102 추천:9

지난 11월 2일 토요일,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시험이 있었다. 올해 12학년, 고등학교 졸업반인 내 딸 수지도 이번에 응시를 했다. 작년에 시험을 치루었지만 마음에 드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한 번 더 보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수능시험을 평균 2개월에 한 번씩 치른다. 학년에 제한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시험 횟수도 제한이 없으며 자기가 받은 점수 중 제일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을 하게된다.
이렇게 여러 번 수능시험을 치루기 때문인지 한국처럼 시험이 임박해서 부모들이 절이나 교회를 찾아 자식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며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라든가, 시험 당일 후배들이 수험장에 몰려와 애교 있는 격문을 써서 학교 담벼락에 붙혀 놓는 풍경 같은 것은 없다.
시험치는 날 아침, 필통하나 딸랑 들고 시험 보러 간다며 이웃집 놀러 가듯이 혼자서 차를 몰고 나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세상에 대학시험을 저렇게 보러 가는가 싶기도 하고 수험생 딸에게 부모로서 무언가 좀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대학 수험생을 둔 부모의 입장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있겠는가마는. 실제 사설학원 한 번 보내지 않을 정도로 우리 부부가 딸 아이 대학준비를 위해 해 준건 별로 없다. 매사를 녀석이 알아서 준비하고 결정했으며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며 격려해 주었을 따름이다.
10학년 초, 한국식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어느 날  "아빠, 나 잡(Job) 잡아도 돼요?" 하고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교 게시판에 구인광고가 났는데 방과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얘기다. 공부나 부지런히 할 일이지 어린애가 무슨 돈벌이를 하겠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택에는 언제나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얘기를 해 주면서 못 이기는 척 허락해 주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1학년에 들어와서는 과외활동으로 치어리더(Cheer Leader)를 하겠다고 했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아시안으로 유일하게 뽑혔다며 좋아하는데 썩 마음에 내키진 않았지만 그렇게 하도록 했다. 평일에는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와 응원연습으로, 토요일엔 한국학교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고, 일요일엔 성당에 나가 애들을 지도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등, 바쁘고 힘들겠다 싶은 나날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이겨나갔다. 훌쩍 일년이 지나갔다.  
12학년이 된 9월 초, 대학진학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어 딸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랬더니 평소에 학교공부는 충실히 해왔고 아르바이트랑 치어리더 활동이 모두 대학입학 사정에 참고가 되는 일이고, 과외활동하며 용돈도 벌면서 재미있게 진학준비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녀석이 말했던 '재미있게'라는 말이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학교공부도 과외활동도 '신명나게' '즐기면서' '만족스럽게' 해 나간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한국에서 자라온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저처럼 신나게 밝고 맑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딸아이가 참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들을 저렇게 자라게 하는 근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실용주의를 중시하고 자립정신을 강조하는 이 나라의 교육제도와 사회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라마다 독특한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나라의 교육방식이 이처럼 역동적인 국가를 만드는 힘이 아닐까.  
엊그제, 딸아이는 SAT시험점수와 이런저런 과외활동과 봉사활동,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과 에세이를 첨부하여 몇 개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다. 특별한 학과나 학교를 제외하면 면접고사도 없으니 대학시험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테면 합격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밤이 깊어 가는 시간,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구경을 간 딸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있으면 녀석이 환한 웃음을 웃으며 들어올 것이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구김살 없이 자라는 딸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행복하다.
<2002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