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생각' 이 필요하다

2005.11.23 12:14

정찬열 조회 수:82

  "우리 나라처럼 '우리 나라''우리 나라' 하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어요." 지난 주 일요일 디즈닐랜드가 있는 이곳 아나하임 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안 퍼시픽 카톨릭 신자대회에 한국에서 연사로 참석한 강우일 주교의 강론 중에 언급된 내용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친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보아도 한국사람들 만큼 우리를 내 세우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달리 '우리'를 강조하다 보니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흐르게 될 수 있다는 말도 수긍이 갔다.
  혈연, 학연, 지연을 유난히 강조하고, 같은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 사이에선 소속감과 동지애를 느끼며 상부상조의 정신을 발휘하지만, 테두리 안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경계심을 느끼고 불신과 편견을 갖다못해 적대시하는 모습까지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내 것은 소중히 하면서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보다는 끼리끼리 성을 쌓고 살아가려는 마음, 지역감정이라는 망국 병도 바로 이런 닫힌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안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밖에서 들여다보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 살 때는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미국에 살면서 체득하게 된 것들이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 선입견 없이 누구라도 공정하고 공평한 대접을 받는 사회,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여유 있고 평화롭게 하는지를 이곳 생활을 통해 체험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 달, 고등학교 졸업반인 필자의 딸이 자기학교 연례 축제 행사에서 퀸으로 선정되었다. 전교 3천명이 넘는 학생가운데 남자 한 명을 킹으로, 여자 한 한 명을 퀸으로 선발하는데, 여기에 뽑히기 위해선 학업성적은 물론 과외활동과 친구관계 등 모든 부문에서 뛰어나야 한다. 이를테면 인기투표 같은 성격도 포함되어 있어서 많은 아이들이 뽑히기를 선망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설마 내 딸이 키 크고 잘 생긴 백인 아이들을 재치고 퀸에 선정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은 아시안 학생이 5%도 채 되지 않는 백인 일색인 학교에서 코리언을 퀸으로 뽑아주었다. 인종이나 피부색을 뛰어넘어, 어른들의 상식을 훌쩍 넘어 아이들은 내 딸을 퀸으로 선출해 주었다. 기뻐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백인 중심의 높은 인종의 벽을 불평해 왔던 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지 모른다는 반성도 해보게 되었다. 설사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적 차별이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 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나라, 유난히도 민족과 핏줄을 강조하는 나라, 동족인 조선족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원망을 듣는, 그런 나라에서 피부색이 다른 이민족 학생을 퀸으로 뽑아줄 수 있는 아량이 있었을 가를 생각해 본 것이다.    
  땅이 좁은 우리는 수출만이 살길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간의 관계도 나를 너무 앞세우면 관계가 매끄러울 수 없다. 우리의 문화와 상품이 지구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양팔을 벌려 상대를 품어 안는 넉넉한 마음, '우리 나라' 만이 아니라 '당신들과도 함께'하는 자세, 이렇게 우리국민도 국제화 시대에 걸 맞는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2003년 3월 1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