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는 아내의 행복

2005.11.23 11:49

정찬열 조회 수:166

연말이 되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여럿이 술을 마시면 '위하여'라든가 '이대로' 혹은 '치어스' '지화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친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그곳 조선족들과 술을 마시는데 '번집시다'는 말을 사용하여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난 9월초 목포출신 K사장이 운영하는 호텔에 우리 부부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초대를 받았다.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경관이 좋은 훌륭한 호텔이었다. 이 호텔을 매입한 것을 축하하는 특별한 자리였는데 술잔을 앞에 놓고 무언가 좀 색다른 건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곁에 앉은 무안출신 K사장이 "내가 '아내'하고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이 '행복' 하면서 술잔을 들자"고 제안을 했다. 이렇게 첫 잔을 시작했지만 재미가 있었던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아내'를 선창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날 저녁 수 없이 많은 '아내' '행복'을 되풀이했다.  
'아내의 행복' 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은 7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사는 이곳 오렌지카운티에 '오렌지글사랑'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서 무안 K사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고향이 무안인지라 금시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잘 지내게 되었다. 이 동생 집에 몇 사람이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내 인생의 목표는 아내의 행복'이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듣는 순간엔 세상에 정할 게 없어 '아내의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는 싱거운 사람이 있다고 웃으며 지나쳤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느껴졌다. 그후 함께 만나는 자리마다 그 얘기를 되풀이해서 듣게 되었고, 어느 순간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 역시 그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자꾸 사용하면 그 말이 좋아지게 되고 어느 순간 그 말을 따라 내가 달라지고 바꾸어지게 된다.
나 역시 이 말을 즐겨 사용하다보니 아내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지게 되고, 예전과는 달리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점점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자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나 모임, 특히 부부가 함께 모이는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그 말을 내 전매특허처럼 쓰게 되었다.  그래서 시인 박철은 그의 시 '말'에서 " 말은 예언이란다/ 말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단다/ 한번 내뱉은 말은/ 이루어지기까지/ 우주를 항상 떠돌지/ 잘 살펴보아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말로/ 자신의 내일을 / 열어간단다/...."고 말했나보다.    
'인생의 목표는 아내의 행복'이란 말을 전수해 준 K사장은 나이가 아래여서 나를 형이라 부르지만 사실 나보다 훨씬 먼저 인생의 의미를 터득한 사람이다. 워낙 근면한 사람이라 이민 초기에 고생을 하며 상당한 돈을 모았으나 LA폭동 때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재해를 딛고 다시 일어나 지금은 이곳 청바지업계에서 알아주는 사업가가 되었다. 글 솜씨도 대단해 지난 10월 "심심한 당신에게"라는 책을 펴내 지금 국내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지난 11월 26일 본국 MBC TV "임성훈과 함께"라는 토크쇼에 출연,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가운데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신 분들이 더러 있으시리라 믿는다.
인생의 목표를 아내의 행복으로 정한 남편, 그 남편의 아내가 설정한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물어보나 마나 '내 인생의 목표는 남편의 행복'일 것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가슴 따뜻한 아이들, 이렇게 웃음이 넘치는 평화로운 가정이야말로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싶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 남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아내' '행복'을 주문하며 술잔을 부딪치고, 부인들이 모인 자리에선 '남편' '행복'을 말하며 기분을 내는, 그런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열매를 맺어 새해엔 행복한 아내와 남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03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