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온 치맛바람

2005.11.23 12:56

정찬열 조회 수:95

                      
지난 18일자 이곳 뉴욕타임즈에 좀 색다른 기사가 실렸다. " 한국부모들의 지나친 자식사랑은 미국에 이민 와서도 여전하다. 매년 학년말이 다가오면 자녀가 다니는 학교 교사들에게 현금, 상품권, 보석 등을 선물,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후한 선물일수록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더 많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사과 한 개가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을 상징할 정도로 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인 부모들의 '후한' 선물이 미국인 선생님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7년 전으로 기억된다. K부인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건너 왔다. 아는 분의 소개가 있어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방문비자로 미국에 건너 왔지만 당시만 해도 이민법이 느슨한 시절이라서 이곳 어느 공립고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그런데 이곳 학교생활에 아무래도 서투른 아이라 적응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교 카운슬러를 만나서 상담을 했고 결국 그 일은 해결되었다.    
그런데 카운슬러를 만나고 온 날 저녁 K부인이 한 얘기는 나를 놀라게 했다. 학교 카운슬러에게 차고 있던 값비싼 반지를 빼서 감사의 표시로 주었다고 했다. 꽤 값이 나가긴 하지만 그 까짓 하나 또 사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학교 카운슬러는 학생이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조언을 해 주는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이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고가의 물건을 충동적으로 주어버렸다니,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곳 동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돈을 우습게 아는 K부인의 자식 사랑 방법을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릴 적엔 명절이나 소풍 때 계란 1줄이나 담배 한 두 갑을 선생님께 인사로 드리곤 했었다. 물건의 값이 문제가 아니라 정이 담긴 선물이었다. 이곳 미국도 보통 5달러, 많아야 10달러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선물을 주고받는다. 실제로 우리 집의 경우도 10달러가 넘는 선물을 선생님께 주어본 적이 없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 있을 카운슬러가 보석 반지를 선물로 준 한국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요즈음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 살고있는 몇 군데 학교에서 일어나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 사례는 뜻 있는 동포들을 우울하게 한다. 교사에게 분수에 넘는 선물이나 현금을 선물하였다가 경고성 편지와 함께 그것을 되돌려 받았다는 이야기. 봉투를 주었는데 교사가 고급식당에 초대하여 받은 액수 이상의 대접을 하여 무안했다는 이야기 등. 학부모들 사이에서조차 지탄을 받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치맛바람도 이민을 온 것인지, 잘 못된 습관 때문에 한국인이 도매금으로 우습게 취급되는 얘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겁다.
한국어머니들의 자식 사랑 방법은 유별나다. 뉴욕타임스에 기사거리가 될 만큼이니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버린 셈이다. 어머니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되었다는 얘기도 일리가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특별한 때 성의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친 치마 바람은 자식과 교사를 함께 망친다. 존경받아야 할 선생님이 돈 때문에 인격에 흠을 잡히고, 그런 선생님을 아이들이 진정으로 따를 리가 없다.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자 아이가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기대하기도 힘들 것이며, 그 속에서 참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없다.
신문에서 지적했듯이 문화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살아가는 곳의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하다. 그러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고쳐나가는 노력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