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바꿔서까지 조기유학을

2005.11.23 13:01

정찬열 조회 수:154 추천:2

                    
두어 달 전이었을까. 내 사무실에 들른 K사장이 아들이 생겼다고 자랑을 했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 아들은 무슨 아들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처제 아들을 입양해 왔단다. 요즈음 그 녀석을 집 부근 중학교에 입학시켜 매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있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낯선 생활에 쉽게 적응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하는 모습에 시름이 가득했다.  
그런데 오늘아침 보도를 보니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조기 유학이나 대학진학을 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형제 등 친척들에게 자녀를 입학시키는 편법 입양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입양문의가 늘고 있고 이미 입양된 경우도 전국적으로 수 백 건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위장결혼, 원정출산을 해가며 미국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따야 하고 위장입양을 하면서까지 조기유학을 시켜야하는가 하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K사장의 경우가 바로 편법입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기유학이 왜 이토록 기승인가.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어가 곧 경쟁력이 되는 세상에 영어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차피 해야 할 영어라면 언어습득 효과가 좋은 어릴 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자, 이런 생각으로 부모들이 조기유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국내 교육환경도 조기유학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일부 교사들의 집단투쟁, 전인교육을 무시한 입시위주의 교육, 과중한 부담을 주는 과외공부 등, 열악한 교육환경을 떠나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터이다.
통계를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조기유학생이 1만 6천명이었으며 여기에 지출된 비용이 2억 9천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조기유학은 계속 늘어날 것 같다. 최근 한국정부에서 대통령령인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자비유학을 중학생까지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규정을 초등학생도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기유학을 폄하 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부모가 어린 자녀를 멀리 떠나보내는 결정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최선인지는 신중히 고려하여 결정해야한다. 조기유학 온 아이들을 살펴보면 현지 생활에 잘 견디며 적응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이곳 아시안 아메리칸 패밀리 크리닉의 조용범 박사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조기유학생의 자살충동이 현지 학생에 비해 9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낯선 환경과 문화의 갈등, 부모와 가족 친구들로부터의 떨어진 외로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 혼자서 오는 유학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유학 온 아이들의 생활을 실제로 보면서 느낀 점이다.
설령 조기유학이 필요하더라도 편법 탈법을 해서는 안 된다. 목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부당한 방법이 동원될 때 교육효과는 상실된다. 어린 자녀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과정을 경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할 때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개인의 문제는 결국 사회문제가 된다. 물질 만능주의, 한탕주의, 부정 부패, 어린이와 부녀자 납치사건, 집단적 이기주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한국적인 병폐가 모두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야 어찌되건 괜찮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과정이 결과로서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과정이 당당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정당해야한다. 그래야 결과가 빛이 난다.
입양시킨 어린 조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K사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편법입양이란 수단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조기유학을 시켜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 2003년 6월 25일자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