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이민 1백주년을 맞으며

2005.11.23 11:59

정찬열 조회 수:123 추천:2

  새해 아침이면 이곳 LA 카운티 패사디나에서 로즈퍼레이드가 열린다. 올해로 114번째 맞이하는 이 행사는 지구촌 5억 이상의 인구가 시청하는, 새해 벽두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 이벤트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미주 한인이민 1백주년을 기념하는 한국 꽃차가 등장한다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TV를 지켜보았다.
  40여만 송이의 장미와 라일락, 그리고 무궁화로 치장한 화려한 꽃차가 아름다움을 뽑내며 지나는 길목에 대-한민국을 연호 하는 소리가 들렸다. 꽃차의 선두엔 우리 이민 선조들이 타고 온 게일릭호의 모형이 보였다. 인공 색깔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한국산 김을 붙혀 검정색을 나타냈다고 한다. 백년 전 1902년 섣달 엄동설한에 제물포를 떠나 새로운 삶과 꿈을 저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온 102명의 한국인이 바로 미주 이민 선조들이다.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내려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든 노동이민을 시작한,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졌을 그들의 아픔을 우리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인종의 벽, 언어의 벽, 차별과 질시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건너온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며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한인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민 선배들이 쌓아온 업적과 발전된 조국의 후광이 그 바탕이 되고있다.
이제 미주 한인 인구가 200만을 넘었다. 재외동포재단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650여만 한인이 159개국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민족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가 해외에서 살아가고 있고, 해외 동포의 약 3분의 1이 미국에 거주하는 셈이다.
한인이 많다는 게 크게 내세울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숫자가 바로 힘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난 해 설 무렵 이곳 남가주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고국의 친지에게 송금한 액수가 3억불이 된다는 보도를 보고서였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친지들에게 백불, 이 백불, 작게는 몇 십 불씩 송금한 돈이 3억불이라니! 미국 전역에서 송금한 액수는 얼마나 될까 하고 속으로 궁금해 한 적이 있다.
IMF를 만났을 때, 고국에 홍수나 재해가 났을 때 앞다투어 성금을 보내는 이웃을 보면서 조국이 무엇이며 핏줄이란 게 무엇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이민 백주년 꽃차를 보면서, 사탕수수 밭에서 일해서 받은 품삯 모은 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송금했던 초기 이민 선배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알게 모르게 오늘에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백 년 동안 이민 선조들은 역경을 이기고 이 땅에 한민족의 뿌리를 내렸다. 다음은 도약 할 차례다. 하와이주 문대양 대법원장, 오레곤주 문용근 의원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체육 등 각계 각층에서 눈부시게 활약하는 한인들이 그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교통. 통신의 발달은 국경을 허물고 있다. 국제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해외동포의 역할은 그만큼 커갈 수밖에 없다. 해외동포는 한국상품을 구입하고 선전하는 애국자요 세일즈맨이다. 거주국 국민에게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의 전도자이자 민간외교의 첨병이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해외동포는 그만큼 우리의 국토를 넓혀가는 개척자들이다. 중국화교나 해외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조국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것처럼 우리도 국내외 민족이 힘을 합해야한다.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민족 융성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이민 1백주년을 맞이하는 2003년이 본국의 반미시위와 북핵문제로 공교롭게도 '한미관계 최대 위기의 해'로 등장하고 있다. 불안하고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나는 새 대통령을 멋지게 뽑은 한국인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는다. 숱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온 민족의 저력을 믿는다. 시간은 우리편임을 믿는다.

<2003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