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물고기

2010.05.03 09:41

홍영순 조회 수:696 추천:69

Fighting fish (싸움 물고기)

이번 새 학기에는 우리 반에다 여러 마리의 금붕어를 기르려고 했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윌리암 엄마가 물고기와 먹이, 그리고 어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겠다고 자청했다.
다음날, 그 엄마는 달랑 검붉고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사왔다.
난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속으론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예쁜 열대어나 금붕어를 안 사오고 못생긴 물고기 한 마리를 사왔을까?
사온다고 말은 했지만 물고기가 비싸서 한 마리만 사왔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어항도 좋고 먹이도 많이 사왔는데…….
아무튼 난 예쁜 금붕어들이 멋지게 헤엄치는 것을 보려든 꿈이 깨어져 서운했다.
수업이 끝나고 옆 교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 다른 선생님들이 웃으며 그 교실의 어항을 보여주었다.
“어? 여기도 똑 같은 물고기 한 마리뿐이네요?”
“예, 이 물고기는 Fighting fish 입니다. 다른 물고기가 있으면 잡아먹기 때문에 한 마리만 길러 야해요.”
“같은 종류의 물고기를 기르면 되잖아요.”
“하하하, 안돼요. 이 싸움 물고기는 같은 물고기도 잡아먹어요.”
“예? 그럼 왜 하필이면 이 물고기 한 마리를 기르나요? 다른 예쁜 물고기도 많은데요.”
“이 물고기는 잘 죽지 않기 때문에 기르는 거야요.”
난 그 말을 들으며 머리는 끄덕였지만 가슴속은 불편하였다.
“아이들에게 정서 교육용으로 물고기를 기르면서 딸랑 한 마리 크지도 예쁘지도 않은, 더군다나 싸워서 잡아먹을 줄 밖에 모르는 물고기를 기르다니…….”
그 다음부터 난 그 물고기가 미웠다.
“나쁜 놈, 친구들을 잡아먹다니……. 너 혼자 사니까 좋으냐?
미련한 놈, 혼자 외롭게 사느니 나 같으면 배가고파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살겠다.”
난 그 물고기만 보면 화가 나고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몰래 먹이를 많이 줘서인지 그 싸움 물고기가 죽고 말았다. 난 죄도 없는 물고기를 욕한 게 정말 미안했다. 물고기는 고사하고 모기 한 마리 못 잡아먹고 나한테 욕만 먹다 죽은 싸움쟁이 물고기가 불쌍했다.
이번엔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하고 예쁜 금붕어 다섯 마리를 사다 어항에 넣었다.
“부디 친구들이랑 즐겁게 살아라.”      
정말 그 금붕어들은 한데 어울려 신나게 헤엄을 치며 아주 행복해 보였다.
이 금붕어들은 물을 먹어도 예쁘고, 먹이를 먹는 모습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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