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움직인 한 편의 시

2003.05.23 07:04

장태숙 조회 수:577 추천:12

윤동주의 '서시'
장태숙

시를 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감동을 주는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것은 시 쓰기에 긴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많은 시인들의 염원이자 바람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를 대했고 또 많은 시에서 감동과 자극을 받았다.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인 시가 한, 두 편뿐이겠는가? 옛 시에서는 뛰어난 서정과 낭만이 있고 현대시에는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아픔과 사상이 있는 것을…… 좋은 시들을 읽다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쌓이고 쌓였기에 이렇게 매끄럽고 격조 높은 시들을 빼어나게 빚어냈는가 하는……
‘내 마음을 움직인 한 편의 시’라는 명제 앞에서 나는 우선 나에게 시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게 한 시를 생각한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집 대청마루에 걸려 있던 시화 한 편을 자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작품은 몸이 아픈 동생을 지도해 주던 가난한 고학생 가정교사가 학생 시화전에 참여한 것을 나의 아버지가 구입하여 걸어둔 것이다. 제목이 ‘기원(祈願)’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시에는 그 무렵의 내 나이에는 이해하기 힘든 생소한 단어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츄어 시인지망생이 쓴 습작시에 불과하지만 성장하면서 줄곧 바라 본 그 시로 인해‘아, 시란 저런 것이구나.’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 후, ‘시’라고 하는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정작 최초로 내 마음을 움직인 시는 윤동주의 ‘서시’였다.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내 소녀시절 시 세계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가 ‘저항시인’이나 ‘민족시인’이라서 보다 감성적인 그 만의 언어와 슬픔이 깃든 시어들이 한창 예민한 소녀시절을 사로잡았는지 모른다. 그 때 내겐 나만의 낙서 비슷한 시들을 적어 놓은 노트가 있었는데 첫 장에 적어 놓은 것도 윤동주의 ‘서시’였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20일)

누군들 이 시를 좋아하지 않으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외울 수 있는 이 시는 내가 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 중의 하나이며 아직도 내 마음을 지배하는 시적 지주이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짧은 삶을 슬프고 아름답게 살다 간 우리 민족이 사랑한 시인. 29살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청결한 심성과 구도적 자기 확립의 자세가 깃든 이 시는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의 시 세계에 나타난 고고한 품격과 지순한 인간미, 그리고 수려한 지성으로도 그는 사상이 무르익기 전에는 시를 생각하지 않았고 시가 성숙하기 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야 시 한 수 씌어질 수 있을까? 요즘 너무 쉽게 씌어진 시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나 역시 그 무리 축에 끼는 건 아닐는지……
시를 쓰면서 아니, 글을 쓰면서 내적 갈등에 휩쓸릴 때가 많다. 영어권인 먼 이국 땅에 와서 살면서 내 나라 글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내 시에 대한 절망으로 힘겨울 때도 있다. 왜 써야 하는지……왜 쓰지 않으면 안 되는지……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되물었던 질문들……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서시’에서처럼‘나에게 주어진 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시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내야지 하는 어둠 속의 빛이다. 끊임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내 삶의 진실을 찾고 싶다. 그것이 비록 나의 욕심이고 어려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고, 나는 시를 생각하기 전에 윤동주의 ‘서시’를 가만히 읊조려 본다.






⊙ 발표문예지 : 우이시 2001년 8월호 (158호)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