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버리면서

2004.02.11 07:46

장태숙 조회 수:263 추천:14

노인아파트에 대한 편견
장태숙

지난 연말의 일이다.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던 모 시인이 느닷없이 이사를 한다고 했다.
그 집은 부부가 두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10여 년을 애지중지 살아오던 집이다. 비록 내 집은 아닐망정 풍광이 좋고 정이 들어서 무척 아끼며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라니...
"어디로 이사하시는데요? 좋으시겠어요."
부동산 붐이 일더니 혹시 내집 마련을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여쭈어 보았다.
"좋긴... 아파트야, 노인아파트..."
왠지 목소리가 조금 서글프게 들린다. 내 목소리도 덩달아 수그러든다.
아직 청년처럼 건강하고 의식이나 활동도 젊은이 못지않는 분이다.
그런데 벌써 노인아파트로 옮긴다니 괜히 콧날이 찡하고, 어떤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 지 순간 막막했다.
일반적으로 노인아파트는 사회활동의 일선에서 은퇴하고 뒤로 물러선 분들이 기거하는 곳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그 후, 그 분은 이사를 하고 정리가 끝났다며 우리 부부를 청하였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깔끔한 아파트. 여느 아파트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잘 정돈된 나무들과 눈에 시린 수영장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자 새집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난다. 채 마르지 않은 페인트 냄새와 나무의 향...
집은 아늑하고 포근했으며 생각보다 넓다. 베란다 앞의 나무는 운치가 있었으며 바라보는 정경도 시원스럽다.
그 분은 우리가 좀 더 일찍 와서 테니스나 탁구를 같이 즐기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부인의 환한 얼굴에도 시종 잔잔한 미소가 따스한 빛처럼 머물러 있다.
노인아파트를 양로원쯤으로, 혹은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이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의 아파트쯤으로 생각한 것은 내 무지의 편견이었다.
시인 부부가 새로운 집에서 제2의 신혼처럼 달콤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 미주 중앙일보 2004년 2월11일(수)자 '여성의 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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