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耳詩}는 지방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는 아니지만 아웃사이더임이 분명하므로 다뤄보고자 한다. 우이동에 사는 몇 명 시인이 모여 결성한 우이시낭송회가 내던 동인지를 시단 인구 전체에게 개방하여 내는 월간 {牛耳詩}가 어느새 202호째를 맞이했다. 202호 지령은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책의 외양과 속내가 보여주는 보수적 색채가 지나친 것은 아닌가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꾸준함과 한결같음 앞에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장태숙의 [뱀]을 수작으로 뽑고 싶다.

  나는
  너의 뇌 세포에 똬리 틀고 앉아
  네 사유들을 씹어 먹으며 산다

  내 언어는 붉은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물결치듯 유연한 몸뚱이와 네 심장 뒤흔드는
  선명한 피부무늬
  집요하게 긴 혓바닥으로 휘감는 속삭임과
  번뜩이는 내 노란 눈빛에 진저리치면서도
  매혹의 칼날에 항복해 버린 순간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너는 잘못 살았느냐
                                     ―[뱀] 제 1, 2연

  구약성경에 나오는 뱀의 이미지를 차용해 왔다. 그런데 도입부 제1연은 분명히 역설적 상상이다. 화자는 어찌하여 너의 뇌 세포에 똬리 틀고 앉아, 네 사유들을 씹어 먹으며 산다고 한 것일까. 제2연으로 접어들면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곧 뱀이 된다. 내 언어는 미사여구였지만 사실은 감언이설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을 호도하고 거짓을 옹호했으니, "너는 잘못 살았느냐"는 "나는 잘못 살아왔다"를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내 용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귀를 닫아걸고
  수만 개의 눈을 깨워 팽팽한 심지 곧추세웠어야 했다
  
  아직 혈관 속 독기 품고 은밀히 숨어 있는
  어느 순간 매운 가시처럼 일어서
  날카로운 이빨로 네 심장을 찔러댈
  나를 기억하라
  그 숨막히는 지옥을 시간들

  거부해야 한다
  점점 희미해지는 너의 사유 위로 안개 같은 내 입김
  다가서면
  내 머리 솟아오르기 전에
  위태롭게 치켜 오르기 전에
  방출해야 한다 나를
                                     ―[뱀] 3∼5연

  사람이란 나약한 존재여서 자기를 속이며 사는 경우가 많다. 주관대로 살지 않고 눈치보며 살고, 소신 있게 살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며 사는 경우도 많다. 내가 남을 감언이설로 속이기도 하지만 남도 나를 뱀의 혀로 속이며 산다. 제3연과 4연에서 시인은 이래서는 된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있다. 그 표현이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마지막 연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대여, 당신도 또한 거부해야 한다. 그대 사유 위로 뱀의 입으로 내뿜는 안개 같은 입김을 내가 내뿜는다면 그대는 나를 받아들이지 말고 방출해야 한다.'고. 말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말이 (불운의) 씨가 되기도 한다. 뱀의 혀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나를 스스로 꾸짖고 있으니, 이 시는 일종의 자경록이다.

(계간 '문학나무' 2005년 여름호, 이승하 중앙대 교수의 계간시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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