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작법

2005.06.07 08:46

장태숙 조회 수:485 추천:21


             나의 시 쓰기
                                          장태숙

'체험시론'을 쓰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나는 어떤 시론보다는 내가 어떻게 시를 생각하고 쓰고 있는 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체험적 시 쓰기가 내가 생각하는 어떤 시론보다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 작업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도자기를 완성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화가가 캠버스에 열정과 혼을 담아내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 도공이 도자기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 듯 나는 시를 쓴다.
한 작품을 오래 끌어안고 있어 다작을 못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한 밤에도 여러 편의 시를 일필휘지로 쓰는 시인들을 나는 부러워하기도 한다.
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어 '이런 시가 좋은 시다' 라고 감히 정의할 수 없듯이 나름대로 각각의 개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시적인 완성도나 이미지 면에서 얼마만큼 성공했느냐가 좋은 시에 대한 판단의 관건일 것이다.
나의 경우, 어떤 사물이나 일, 혹은 상황에서 시적 착상이나 영감이 떠오르면 짤막한 메모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밑그림을 그린다. 삭히고 걸러내는 것이다. 익혀지지 않는 것은 시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를 자문한 다음, 답이 얻어지면 캠버스 앞에 앉듯 흰 종이, 또는 컴퓨터의 푸른 화면을 응시한다.
대상을 눈앞에 앉히고 먼저 큰 그림을 스케치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나만의 언어 찾기에 골몰한다. 진부한 표현을 경계하며, 대상 속으로 들어 가 그 속의 내가 되고자 한다. 내가 곧 그 대상과 합일이 되어야 그 대상의 언어와 미세한 몸짓까지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관념적인 언어를 피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며, 세심한 곳까지 관찰하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가능한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로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말들이나 널리 사용되어진 표현들은 이미지 적으로 이미 죽은 것들이며, 그 어떤 감동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은 수없이 많은, 비슷한 언어 중에서도 '단 하나다' 라는 말을 믿으며, 그곳에 맞는 단 하나의 언어와 새로운 이미지 찾기, 그리고 물 흐르듯이 읽혀지는 전체의 균형을 생각한다.
내 의식세계를 투영하여 써내려 간 시를 수없이 읽고 또 읽는다.
시적 리듬감이 제대로 되었는지, 쓰고자하는 상상과 연상 등이 제 이미지로 잘 표현되었는지를 가늠한다.
어느 정도 시 한 편이 완성되었을 때 한동안 그대로 방치한다.
며칠이 지나고 내가 쓴 시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 다시 독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많음을 발견한다.
논리로 설명이 안 되는 시에도 논리는 있다. 시 한 편 안에 앞뒤 논리가 맞지 않으면 그건 좋은 시가 아니다.
다시 다듬고 고치는 과정을 나는 여러 번 되풀이한다. 매끄럽게 읽혀지고 거부감이 들지 않는 운율과 리듬감을 지닌 완성된 시 한 편을 창작하기 위해 이렇게 여러 날이 걸린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화가가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는 작업이나 도자기 하나가 완성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이 많으며, 때론 고치는 일보다 도공이 도자기를 깨 버리듯, 화가가 캠버스를 찢어버리듯,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은 경우가 허다하다.
고통 없는 창작이 없지만 매번 거대한 시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를 본다. 한없이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이 길을 마다 않고 걷는 것은 내 삶의 보람이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비록 작지만 소중한 보람... 내가 세상을 다녀 간 흔적만큼 남아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