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신윤복 미인도

2011.07.09 03:25

강학희 조회 수:483 추천:2













명작 스캔들 3회 · 신윤복 미인도 /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Op 34-14. 2011-01-22
































신윤복 미인도 /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Op 34-14. 1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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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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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 (申潤福) ‘미인도(美人圖)’ 는 독(毒)으로 그려졌다?

- 조선시대 미인의 전형을 그려낸 작품 ‘미인도’,
이 아름다운 화폭에 독이 들어있다?

click the above image for Zoom!



동그란 얼굴, 아담한 입술, 쌍꺼풀 없이 긴 눈.

신윤복의 ‘미인도’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인상을 보여준다.

보여줄 듯 말듯 은근한 여성의 몸짓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담아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기생을 모델로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인도(美人圖)’의 일부가 독(毒)으로 그려졌다면?
세월이 흘러 전체적으로 색이 바랬지만 아직도 찬란한 붉은색을 뽐내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살짝 보이는 붉은색 속옷고름
이다. 그런데 이 옷고름은 색이 천년을 간다는 독성안료 ‘주사’(朱砂)로 그려졌다는 것!
거부할 수 없었던 치명적인 색의 유혹...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는 '미인도'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섬세한 악상이 넘쳐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빛을 발하는 곡이자 라흐마니노프 최고의 걸작, ‘피아노협주곡 제2번’.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최면요법 덕분이었다는데..
당시 최면요법 권위자였던 니콜라이 달박사를 만나 4개월간 치료를 받았던 라흐마니노프.
최고의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암시를 받고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감사의 뜻을
담아 이 곡을 달 박사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명곡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최면요법 때문이었을까? 그는 왜 최면요법을 받게 된 것일까?

커다란 몸집과 다르게 섬세한 감성을 지녔던 라흐마니노프의 인생과 음악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밝혀낸다.







Vocalise, Op.34, No.14


라흐마니노프 : 보칼리제, Op.34, No.14
Sergei Vasili'evich Rakhmaninov,1873∼1943




Rachmaninov, Vocalise Op.34, No.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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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e Fleming, Sop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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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 Te Kanawa, Soprano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1912년에 작곡된 13개의 가곡 작품 34에 덧붙여진 곡으로,
1915년에 작곡되었다. 이 곡은 소프라노 가수였던 안토니나 네츠다노바에게 헌정되었다.
초연은 1916년 모스코바에서 쿠셰비츠키의 지휘로 이루어졌고, 노래는 안토니나 네츠다노바가 불렀다.



보칼리제라는 말의 의미가 원래 '말이 없는 노래'를 뜻하는 것처럼,
소년들의 허밍
으로 불리워진 이 노래는 매우 아름답고 정갈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Sergei Rachmaninov, 1873∼1943




Vladimir Ashkenazy, Piano / Andre Previn, London Symphony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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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 - 1.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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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 - 2. Adagio sosten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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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 - 3. Allegro scherzando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 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라."
라는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됩니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까지가 그의 작품활동의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파리에 망명한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그리고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합니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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