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힘

2008.03.28 12:20

경안 조회 수:810 추천:40

몇 년 전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많은 독자를 확보했었는데 저도 그 책을 사서 읽어본 독자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의 내용보다 제목자체가 맘에 들고 그 제목에서 풍겨지는 힘은 굳이 그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었기에 지금도 ‘긍정’과 ‘힘’ 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문인들은 누구나 특히, 시를 쓰는 사람들은 남보다 독특하고 뛰어난 비유사용으로 작품을 쓰기를 원합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긍정의 힘’과 견주어 ‘비유의 힘’의 멋과 힘을 감히 매일 바라고 있습니다. 엊그제 Easter Sunday 가 지나갔는데 ‘비유’로 군중들을 가르친 성경의 말씀은 우리 문학하는 사람들이 빼 놓을 수 없는 도구(text)이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어떤 현상으로 따진다면 골고다의 ‘십자가’는 ‘사랑’이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지요. 성경속의 솔로몬은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예수는 ‘공중의 새’라든가 ‘누룩’ ‘겨자씨’ 같은 비유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비유’는 공감하는 마음을 주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함께 감동하게 합니다. 그것이 ‘비유의 힘’ 인 것을 그 옛날 예수가 먼저 사용하셨으니 어찌생각하면 그 분이라말로 멋진, 훌륭한 시인 아니었을까요? 시를 쓰게 되는 동기도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이지만 다시 순수한 문학소년, 소녀로 돌아가 우리를 감동시켰던 글들을, 작품들을 감상해 보며 다시 힘을 얻고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가서 / 구약성경 아름다워라. 그대 나의 아름다운 배필이여. 너울 뒤의 그대 눈동자는 비둘기 같이 아른거리고 머리채는 길르앗 비탈을 내리닫는 염소떼 그대 이는 털을 깎으려고 목욕한 암양 같아. 그것들은 저마다 모두가 쌍동이를 거느렸구나 입술은 새빨간 실오리, 그 입 예쁘다. 너울 뒤에 비치는 그대의 볼은 쪼개놓은 석류 같고 목은 높고 둥근 다윗의 망대같아 그 위에 용사들의 방패를 천 개나 걸어놓은 듯싶구나. 그대의 젖가슴은 어린사슴 한 쌍 나리 꽃밭에서 풀을 뜯는 쌍동이 노루 같구나. 선들바람이 불기 전에 땅거미가 지기 전에 나는 몰약산으로 가리라. 유향언덕으로 가리라. 나의 귀여운 배필이여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아름답기만 하구나. 나의 배필이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어 보셨나요? 요즈음 저는 열심히 애독하고 있는데 책은 1권 부터 4권 까지 있습니다.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폴게리 뮤지엄의 명화를 좀 더 잘 이해하자 였고 다른 하나는, 이윤기의 문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동기로 1 권을 읽다 보니 여간 흥미로운게 아니었습니다. 상상하는 것을 별로 즐거이 여기지 않는 사람은 별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신화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그럴싸하고도 흥미로운 신들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만들기위해 사용한 비유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16세기경의 명화속에서 제우스가 갖가지 짐승으로 변하여 천궁에 있는 신녀들을 혹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여인들을 꼬시는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모두 비유로서 상징화된 것입니다. 징그러운 애벌래를 발로 밟아 죽이려는 어느 아이에게 또 다른 아이가 “ 죽이지 마, 그것은 곧 나비가 될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을, 언어로 보이게 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현상의 것을 손으로, 눈으로, 몸으로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 / 조셉캠벨 (Joseph Campbell / 1700년대) 성전 안의 흰 촛불인 듯 늙은 얼굴이 아름답구나. 겨울날의 쇠잔한 햇빛처럼 자기 구실을 다한 여인. 자식들은 품에서 떠났지만 황폐한 방앗간 아래 괴어있는 물모양 그녀는 여전히 자식들 생각에 잠겨 있다. 소낙비 / 에밀리 디킨슨 ( Emily Dickinson / 1830년대 ) 비오는 소리 같았는데, 이윽고 휘어져 들려오니 바람인 줄 알았다. 그 바람은 파도처럼 젖어서 걷다가 모래처럼 말라서 날아간다. 그 바람이 어딘가 아득히 먼 들판으로 밀려간 후 군대들이 쳐들어 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참말로 비다. 그 비는 우물을 채우고 연못을 기쁘게 하고 한길을 재잘거리며 간다. 그 비는 산중턱의 마개를 뽑아서 부근 일대에 물사태를 일게 한다. 그 비는 흙땅을 느슨하게 하고 바다를 부풀게 하고 거리의 한복판을 휘저어놓는다 그리고 구름의 수레를 타고 예언자 엘리아처럼 사라졌다. 깃발 / 청마 유치환 (1908 ~ 1967)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황동규시인의 말을 빌려 보면… “ 좋은 시란 짜임새가 있어야 하고, 시 안에 인간이 있어야 하고, 삶의 섬광 같은 게 있어야 하고, 우리 시과 세계 시의 흐름에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풍장風裝 / 황동규 (1938 ~ )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따스하게 봄이 오는 어느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장님 한 사람이 “저는 날 때 부터 장님입니다. 도와 주십시요.” 하는 구걸판으로 구걸을 하는데 신통치 않더랍니다. 어느날 어느 한 시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거지의 동양글귀 뒤에 다시 뭐라고 쓰고 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았답니다. 해질 무렵 구걸바구니에 동전이 가득 쌓였고 너무도 신기한 이 거지가 한 사람을 붙들고 도대체 뭐라고 써 놓았는지 좀 읽어 달라고 했답니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랍니다. “천지에 봄이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볼 수가 없습니다.” 벼락치듯 독자를 전율시키는 ‘최고의 시구’. 많은 세월이 흘러도 환영처럼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최고의 시구’는 역시 비유가 주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온종일 꽃비 /유안진 (1941 ~ ) 찾아왔던 누가 돌아가는 갑다 발길에 머리 꼭지에 어깨에 술잔에 마실수록 목마른 술잔에 꽃비 꽂비 꽃비 꽃비… … 봄에도 이별은 있어 너무 빠른 이별은 있어 세상도 가슴도 두 눈도 저 혼자 차 올라서 저 혼다 비워지는 붉은 술 잔 입춘 / 김선우 (1970 ~ ) 아이를 갖고 싶어 새로이 숨쉬는 법을 배워가는 바다풀 같은 어린 생명을 위해 숨을 나누어 갖는 둥근 배를 갖고 싶어 내 몸속에 자라는 또 한 생명을 위해 밥과 국물을 나누어먹고 넘치지 않은 만큼 쉬며 말을 나누고 말로 다 못하면 몸으로 나누면서 속살 하얀 자갈들 두런두런 몸 부대끼며 자라는 마을 입구 우물 속 어룽지는 별빛을 모아 치마폭에 감싸아는 태몽의 한낮이면 먼 들판 지천으로 퍼지는 애기똥풀 냄새 봄이 벌써 와 있었네 / 안경라(1964~ ) 조금씩 여자가 되어가는 벚꽃나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와 달이 지나가고 그녀를 위해 내가 한 일은 그다지 없었네 외로움도 갈등도 제 몫이었네 아픔을 통과하는 성장 성큼 커 버린 단아한 몸 위에 하얀미소 가득 번졌네 벌써 거기 와 있었던 봄 아지랑이 새싹 꽃몽오리… 찬찬히 읽지못한, 가버린 이름들 마음이 죄송해지네 가지사이 무수한 햇살 길 따라 어느새 내 키만한 딸 여자가 되어가고 있네 이마에 작은 꽃 조롱조롱 피우는 그 황홀한 시작을 못 보고 말았네 불혹의 세월들이 저기, 쏜 살 등 위에 업혀있네 <비유를 사용한 문학적인 예문> * 지금이 새벽 4시 부근입니다. 이른 저녁부터 마른 습지에 물기가 스며들듯이 감당 못하게 잠에 젖어들더니 새벽에는 작은 바람소리에도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잠이 깨입니다. 그 바쁘던 도시가 아직은 깊은 한잠에 빠져 있고 네온의 불빛들만 남아서 거리의 보초병들처럼 아직은 깊은 어둠을 지키고 있지만 잘 만큼 잤다는 것인지 깨어난 제 의식은 빈 유리잔처럼 맑아옵니다. 투명하게 맑아오는 제 의식의 새벽하늘에 오래 붙박혀 반짝여 온 별처럼 당신 생각이 있습니다. ** 잠에서 떠 올라 보니까 아직 새벽 4시 부근입니다. 지난 저녁, 조금은 쓸쓸했지만 오랜 뱃길에서 돌아온 목선처럼 엄습해온느 피곤에 흔들리며감당못하게 수면으로 잠겨들더니 아직은 여명이 먼 시간에, 작은 바람소리에도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같이 잠이 깨입니다. 맹렬한 청춘처럼 바쁘게 돌아가던 도시가 깊이 잠들어 이 새벽, 꽃잠에서 빠져 나오려면 아직은 멀어 보입니다. 창밖엔 도열해서 밤을 지새운 가로등 불빛들이 어둠에 묻힐듯이 졸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에 잘만큼 잤다는 것인지, 이방인처럼 잠에서 깨어난 제 의식은 깨끗한 거울처럼 맑아옵니다. <03/25/2008, 재미시인협회, 주제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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