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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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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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 전지도(全地圖) / 구글 사진 캡처

 

갈릴리의 벽촌(僻村) 나사렛.

 

이스라엘 북부지역에 위치한 작은 소읍(小邑).

주민수는 약 200여 명.

예루살렘에서 120여 킬로미터 지점에 자리한 나사렛은 해발 488미터 구릉(丘陵)지대에 펼쳐진 분지(盆地).

따라서 여름철은 고온다습(高溫多濕)한 기후(氣候)로 일상생활에 커다란 불편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마리의 말과 함께 옹벽으로 둘러싼 나사렛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벌집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은 촌가(村家))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흙벽돌로 쌓아 올린 벽은 흰색 돌가루(석회)를 반죽해 칠을 했는데, 가옥(家屋)하나하나가 모두 조악(粗惡)스러웠다.

대부분 비슷한 크기로 지어진 집은 안락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보기보다는 거칠게 내리쬐는 햇빛과 분지를 휘돌아 치는 먼지와 강풍을 피하기 위한 거처에 불과했다.

벳새다 어촌마을 출신 빌립이 친구인 나다니엘(바돌로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다라고 말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되받아 친 나다니엘의 선입견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비아냥처럼 나사렛의 첫 인상은 척박(瘠薄)하고 옹색(壅塞)해 보였다.

울타리도 없는 주거지 앞마당에는 양과 염소를 풀어 방목(放牧)했고 얼기설기 가꾼 텃밭에는 소량의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 나무, 그리고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

나는 마을의 추레한 모습을 머리속에 각인(刻印)시키며 자문(自問)했다.

예수님은 하필이면 왜, 나사렛을 통해 세상에 오셨을까…?화려한 항구도시 가이사랴도 있고, 이스라엘의 수도(首都)예루살렘도 있지 않은가,더 나아가선 세상의 중심이라 일컫는 희랍의 아테네와 로마도 있는데.

하지만 하늘의 뜻을 감히 일개 범부(凡夫)가 어찌 알겠는가!

이처럼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주막집을 향해 걸었다.

그다지 오래지 않아 도착한 주막집은 일반 주택과 달리 2층이었다.

규모도 제법 컸다.

숙박(宿泊)을 겸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막의 건물벽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흰색 석회칠로 마감했고 출입구 좌우에는 커다란 창()을 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말과 함께 주막으로 다가서자 튜닉 시믈라(면화로 만든 통 자루 옷)를 걸친 여럿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얼굴에 잔뜩 호기심을 드러낸 아이들은 나를 에워싼 채 손을 더듬고 이름을 묻는가 하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집요하게 다그쳤다.

이들의 거센 호기심은 평생에 한번도 볼 수 없을 이방인을 목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란스러운 것은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었다.

주막에서 무료하게 앉아 차를 마시던 동네 어른들도

덩달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이 같은 상황을 수없이 되풀이했던 터라 그저 무덤덤할 따름이었다.

어른들은 내가 아람어로 말하자 즉각 반응했다.

이들도 아이들처럼 나의 출신지를 알고 싶어했고 예수를 만나러 가버나움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독수리의 부리처럼 콧잔등이 툭 불거진 매부리 코 늙은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빈정거렸다.

이봐, 미남 젊은이. 예수가 메시아라는 소리는 누가 그러던가?”

내가 말했다.

예루살렘에서 이 곳 까지 오는 도중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늙은이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빌어먹을 유대인 놈들! 그 자들이 씨 부린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은 유언비어일 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침묵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늙은 사내가 끼어들었다.

방금이라도 꿈틀거릴 것만 같은 숱이 풍성한 송충이 눈썹에 머리칼 하나 없는 대머리인 그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다.

송충이 눈썹이 못마땅해 하는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어이, 동방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 내 말 좀 들어봐.지금 자네가 메시아라고 한 예수는 내 옆집의 옆집인 목수쟁이 요셉의 아들이야.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부르지.나는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과 알고 지냈다고. 그런데, 청년이 된 예수가 느닷없이 구세주….? 혹시 자네도 정신병자 아냐?”

동네주민들로 여겨지는 이들의 논쟁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심하던 차에 잘 걸렸다는 심사 같았다.

나는 이들과의 대화가 자칫 입씨름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정중히 양해를 구한 뒤 급히 주막으로 들어섰다.

투박한 나무 식탁이 듬성듬성 놓인 주막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내가 주변을 두리 번 거리자 그제서야 주모(酒母)가 입을 실룩거리며 다가왔다.

주모의 눈가장자리와 콧잔등에는 주근깨가 잔뜩 퍼져 있었다.

내 곁에 다가선 주모는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의 외모를 훑었다

나의 겉모습을 낱낱이 훔쳐본 주모는 한번 더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본 뒤 그제서야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람어로 말했다.

말에게 먹일 건초와 제가 먹을 음식을 주문할까 하는데, 가능합니까?”

나의 정중한 어투에 주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아람어를 어쩜 그리도 잘할까….그런데, 어느 나라에서 왔수?”

나는 그녀의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 기꺼이 받아들이고 대답했다.

야훼께서 천지창조(天地創造)때 지으신 동방의 신라국에서 왔습니다.”

주모는 내가 야훼 운운하자 또다시 과장된 모습을 보이며 신라국이 대체 뭐냐하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또 고국의 이모저모를 설명해야 했다.

나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을 귀담은 주모는 대충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로소 숙식을 제공한다는 답을 내놨다.

주모는 내가 서있던 식탁을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하루 숙박비와 말에게 먹일 건초비용을 계산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숙박비를 데나리온으로 지불했다.

주모가 로마돈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숙박비를 챙긴 주모는 턱으로 곁에선 사내 아이를 가리키며 내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나를 향해 꾸벅 목례를 한 아들이 말을 마구간에 데려가 건초를 먹여도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건초와 함께 당근도 먹이라고 주문했으나 주모가정색을 했다.

이봐요, 젊은 미남 청년! 홍당무는 사람이 먹기에도 귀한 음식이라구요.”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사렛에서는 당근을 구하기도 어렵고 설령 있다해도 말에게는 절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사렛의 빈곤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였다.

하룻밤 숙박비를 지불하자 주모가 계피차를 끓여 내왔다.

주모가 찻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미남 청년.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줄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슈.” 

 

한편, 아이들은 여전히 주막 언저리를 맴돌며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훔쳐보고 있었다.

주방으로 간 주모는 그곳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며 주문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음식은 한창 배가 고플 때 나왔다.

주모가 식탁에 가지런히 늘어 놓은 음식 종류는 말린 양고기를 우유에 풀어 끊인 뒤 향료를 섞은 양고기 수프와 레헴이라 불리는 둥근 보리빵, 그리고 식초와 소금에 절인 올리브 열매, 둥근 질그릇에 가득 채운 염소 우유였다.

눈길을 끈 것은 나무 접시에 담긴 레헴, 즉 빵이 밀가루로 만든 것이 아닌 보리 빵이었다.

밀가루 빵 대신 보리 빵을 준 이유는, 나사렛에서는 밀이 귀해 밀가루 빵을 맛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는 것이었다.

그나마 밀가루 빵을 먹을 수 있는 부류는 극히 나사렛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계급 또는 율법선생 정도였다.

밀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밀가루 생산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므로 밀가루 빵은 부자들의 전유물 이었다.

때문에 식탁에 놓인 빵이 보리로 만든 것이라 해서 이상할 리 없었다.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도 성장기간 내내 보리빵을 잡수셨을 것이다.

둥글고 넙적하게 생긴 보리빵은 나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내가 두번째로 유학했던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은 보리빵을 주식으로 먹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탄과 접경을 이루는 시리아에서도 가난한 이들은 밀가루 빵 대신 보리 빵을 주식으로 했다.

나는 인도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오는 여정에서 보리 빵을 여러차례 식음(食飮)을 했다.

.나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천천히 맛보며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의 식탁을 상상해 보았다.

어린 예수님께선 혹시 편식(偏食)을 하셨을까? 고기음식만 좋아하시고 야채는 싫어하지 않으셨을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어떤 음식을 해 주셨을까? 예수님은 음식을 드시면서 밥투정은 하지 않으셨는지? 등등.

하지만 나의 이 같은 상상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주막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사렛 회당의 랍비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시절 예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랐소. 주식인 보리 빵을 먹고 소금과 식초에 절인 올리브 열매도 반찬으로 즐겨 먹었소. 직업이 목수인 요셉의 집이 가난해서 고기반찬을 즐겨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오. 하지만 어린 예수는 우리처럼 식사를 했어도 매우 건강했소. 단 한번도 감기가 걸리거나 몸이 아파 부모님을 애태운 적이 없지.그리고 예수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지.영명(英明)했고 행동도 어른처럼 의젓했 소 어디 그 뿐인가! 우리도 알지 못하는 토라의 어려운 내용을 막힘 없이 풀어내 그 소문이 이스라엘 전체로 퍼져 나갔소. 목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예수가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은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고. 때문에 예수는 자기 이름도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 왜냐하면 회당의 랍비에게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 아이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사였소. 어른들이 무엇을 질문해도 실타래가 풀리듯 막힘이 없었소. 때문에 주변에선 예수를 신동(神童)이라고 불렀지.”

내가 말했다.

지금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시는 그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우리 집에서 불과 열 둘 채 떨어진 곳에 마리아라는 모친이 살고 있소 그 분의 아들이 지금 마술인가 뭔가로 병든 사람을 고친다고 합디다.하기야 내가 아는 예수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오. ”

무슨 말씀이신 지요?”

늙은 랍비가 나의 시선을 가로채며 말했다.

예수가 어릴 적에 동네 친구의 부러진 발목을 고쳐 주었소.친구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자 어머니 마라아가 선뜻 아들 예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소. 그러고는 예수가 손으로 친구의 부러진 발목을 문지르기만 했는데, 퉁퉁 부어 올랐던 발목이 순식간에 치유가 됐소. 다친 아이도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었지.당시 그곳에는 다친 아이 부모는 물론 이웃집에서도 병문안을 하러 와 있었다 오. 아무튼 예수가 친구의 부러진 발목을 손으로 서너 번 문지르자 고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고 누가 아프다 하면 무조건 예수에게 데려갔 소. 그리고 그 예수가 지금 어른이 돼 똑같은 방법으로 병든 이들을 고치고 있다는 거요. 나는 청년이 된 예수가 병을 고치는 것을 소문으로 듣고는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소. 당신도 놀랍지 않소?”

물론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은 결코 마술이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이신 야훼 한분만이 나타낼 수 있는 초자연적 힘입니다.”

늙은 랍비가 끼어들었다.

방금 초자연적이라 했나?”

그렇습니다.마술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하늘만의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이를테면,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가르고 유대 민족을 구한 것처럼.”

내가 모세를 예시(例示)로 들자 늙은 랍비의 눈이 반짝였다.

모세 역시 야훼가 준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엄청난 일을 구현(具現)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귀담은 랍비는 예수의 초능력이 마술이 아닌, 하늘의 힘일 수도 있다며 내심(內心)긍정하는 눈치였다.

랍비는 내가 예수님을 만나러 갈릴리로 가는 중이라고 밝히자 다시 한번 놀라는 기색을 드러냈다.

예수를 뭐 하러 만나려고 하시는가?”

그 분이 정말 메시아이신지 확인하려고요.”

랍비가 표정을 근엄하게 고치며 말했다.

나도 주변에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을 들었소.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망언이요. 예수가 초능력의 힘을 보이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오. 그렇지만 메시아라니….하기야 어디 예수 뿐이던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다 보니 벼라 별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와 지가 메시아라고 떠벌리는 통에 귀가 아플 지경이지. 아무튼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는 건 너무 나간 거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늙은 랍비와 유익한 대화를 즐긴 나는 토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말끔히 비우고 주모가 원한 데나리온으로 값을 치룬 뒤 일치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뜬 나는 간단히 세면을 하고 떠 날채비를 한 뒤 마구간으로 가 말들을 이끌었다.

때마침 주모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간밤에 불편한 것은 없었느냐고 묻고 내가 환한 웃음을 보이자 만족한 표정으로 나의 다음 행보를 염려해 주었다.  

주모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차린 뒤 주막을 벗어났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두터운 먼지가 섞인 강풍이 사방에서 불어 닥쳤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길을 가야 했다.

인도에서부터 두 말과 함께 4,100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신성국가(神聖國家)인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따라서 먼지가 섞인 강풍 따위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일기(日氣)였다.

아무튼 걸음을 할 때마다 뒤로 밀리는 촌락의 을씨년스런 분위기와 무미건조한 표정인 주민들 그리고 생산성 이라고는 도무지 있을 리 만무한 주변환경이 나사렛의 빈곤한 현주소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분지 안에 형성된 높고 낮은 구릉지에는 자연산 무화과 나무와 양귀비 그리고 엉겅퀴 방초(芳草))들이 드문드문 자생하고 있었다.

황토색 붉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산 어귀 밭에는 쓸모없는 자갈과 가시 떨기 나무만 무성했다.

(이새<다윗왕의 아버지>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나는 훗날 산상수훈(山上垂訓)’이 펼쳐진 다볼산 인근 티베랴 성읍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나사렛 위편으로 가버나움의 지름길인 가나 성읍이 위치해 있었으나 거친 바람을 동반한 돌풍이 심해 부득이 경로를 막달라 성읍 쪽으로 택했다.

쇳덩이도 녹일 듯 끊임없이 작렬했던 햇살이 점차 기운이 쇠진해 지면서 하늘에는 새의 깃털 같은 구름이 넓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얼마 후 땅과 하늘이 맞닿은 곳으로부터 팔레스티나 특유의 한기(寒氣)가 스멀스멀 찾아 들었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정성스레 직조(織造)해 만든 두터운 메일(남성 겉옷)을 몸에 걸쳤다.

옷에서 라헬의 심향(心香)이 묻어 나왔다.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향기였다.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첫째는,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새 언약(新言約)의 시대를 선포하신 성읍 가나와 게네사렛을 경유(經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훗날 산상수훈(山上垂訓)이 펼쳐진 다볼산 인근 티베랴(티베리우스) 성읍을 통과하는 행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사렛 주막에서 만난 늙은 라바이의 조언을 길라잡이 삼아 두번째 노정(路程)을 택했다.

티베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는 유대 땅의 젖줄인 갈릴리 바다 수로가 예루살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갈릴리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레바논에서 발원(發源)한 강물이 흘러 갈릴리 바다로 유입된 후 강물은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는 요단강과 합류, 종착지인 남쪽의 사해(死海)바다에서 여정을 멈춘다.

나는 가이사랴 빌립보와 멀리는 시리아가 있는 북쪽을 향해 걸었다.

함께 걷고 있는 두 말도 지친 기색이 없이 일정한 걸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사렛의 들쑥날쑥한 구릉과 먼지 투성이인 벌판을 지나자 먼발치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숲지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말도 숲지대를 알아챘는지 머리를 흔들며 요란스레 콧소리를 냈다.

다볼산 끝자락에 붙은 티베랴 성읍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거주하는 성읍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만 했다.

숲에 다다르자 종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자생종(自生種)숲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사방이 조금씩 어둠속으로 침잠(沈潛)해 가는 중이었다.

따라서 이대로 더 걷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적당한 야영지를 물색해 그곳에 잠자리를 폈다.

말에게는 주막에서 구입해 싣고 온 건초를 먹이고 나도 주모가 싸준 보리빵과 향료와 식재료로 버무린 말린 양고기로 허기를 채웠다.

간단하게 요기(療飢)한 뒤 라헬이 정성껏 마련해 준 침낭을 깔고 누웠다.

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별들이 사방으로 흐트러져 다양한 빛을 발했다.

고향에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는 단순히 별들이 많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같은 생각은 중국에서도 인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헌데,이스라엘에 정착한 뒤부터 관념(觀念)이 뒤바뀌었다.

별이 그냥 단순한 빛의 물체가 아니라 그것에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내재(內在)돼 있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게 된 것이다.

인도는 천문학이 매우 발달한 국가였다.

따라서 우주관찰사인 천재 천문학 박사들이 하늘에 숨겨진 다양한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나도 이들 곁에서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 당시만 해도 천문학은 말 그대로 하늘이 펼쳐 놓은 천문수학을 풀어내는 고등학문이자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이 펼쳐 놓은 신비의 세계를 단순히 과학적 입증(立證)으로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

하늘의 신비는 야훼 하나님께서 만든 경이로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침낭에 누워 야훼 하나님이 흩뿌려 놓은 천만개의 빛을 즐기고 있다.

이 경이로움을 창조하신 구세주께서 지금 이 시각 그다지 멀지 않은 가버나움에 계실 것이다.

 

휘영청 흐드러진 쟁반 같은 달이 오늘은 유난히 빛을 더했다.

지금쯤 고향의 하늘에도 저 달이 두둥실 떠 올라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달을 올려다 보며 나를 생각하겠지.

나는 순간,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하지만 지금 울면 아니된다.

내가 가는 길은 내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힘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족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천사가 꿈에 말하지 않던가.

주님께서 가족을 보살피신다.

나는 상념(想念)을 덜어내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이 빛나는 하늘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시가(詩歌)가 울려 펴지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침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애마 때문이었다.

두 말 가운데 혈기왕성한 말이 혀로 나의 얼굴을 핥았기 때문이었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지난 밤에는 너무나 많은 생각으로 늦게 잠을 청했고 피곤이 겹쳐 다소 늦은 아침에 눈을 뜬 것이다.

그것도 애지중지 하는 말이 깨워서 였다.

햇살은 이미 종료나무 숲을 덮었고 숲 주변의 널브러진 방초(芳草)들도 이슬을 머금은 채 저마다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었다.

나는 잠자리의 침구를 정리하고 난 뒤 우선 말에게 건초와 소금을 먹이고 떠날 채비를 갖췄다.

태양이 조금씩 종료나무 숲 위로 솟구치며 공중부양(公衆浮揚)을 하고 있었다.

오래 지체하면 더위가 엄습해 올 것이다.

나는 두 말의 고삐를 잡고 앞장서 나갔다.

종료나무숲은 당초 생각한 것보다 울창했고 광범위 했다.

온갖 새소리들의 지저귐을 귀담으며 나무 숲을 빠져 나오자 곧 바로 황무지로 연결됐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이 천국과 지옥이었다.

하나님께선 엄청난 선물을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내려 보내신다

황무지는 황토색 먼지를 계절풍(季節風)에 실어 춤을 추 듯 제멋대로 흩뿌리고 있었다.

황무지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막달라 성읍(城邑)

먼지 때문에 눈이 커다란 말도 눈을 연신 끔벅이며 꿋꿋이 나아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황무지 벌판에서 보낸 끝에 드디어  막달라 성읍 앞에 다 달았다.

성읍 입구는 종료나무를 비롯한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 나무, 레바논 종()자작 나무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집 구조도 나사렛처럼 획일적이지 않았다.

성읍 중심부에 도착하자 상가지역으로 구분된 곳에는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하는 둥근 모스크 풍 건물이 눈에 띄었고 항구도시이자 유대의 행정도시인 가이사랴에서 본 크레코로만 형()의 석조 건물도 눈길을 끌었다.

비록 시장 통이기는 했으나 건물은 깨끗했고 길을 오가는 행인들의 옷차림도 가벼워 보였다.

나는 말을 몰아 커다란 문을 낸 올리브 기름 가게 앞을 지나는 중이었다.

내 뒤에는 십여명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말을 이끌고 있는 나는 자칫 이들과 부딪힐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걸음을 늦추었다.

그러고는 무리들이 나와 교차하는 순간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성이 갑자기 사지(四肢)를 비틀며 내 앞에서 고꾸라졌다.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여자의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발작을 일으킨 여자는 육체를 옥죄는 고통으로 어찌할 줄 모르고 마구 괴성(怪聲)을 질렀다.

나는 직감적으로 여자가 뇌전증(腦電症)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자가 거친 신음을 토하며 사지를 비틀자 순식간에 많은 행인들이 그녀 곁을 에워쌓다.

행인들은 여자를 내려다 보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드러냈다.

나는 인도에서 의학을 공부할 때 여자와 같은 환자들을 진찰한 경험이 있었기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통증을 멈출 수는 의술을 펼 수 있었다..

나는 말을 멈춰 세우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동공(瞳孔)을 확인하고 손목의 맥도 집었다.

여자의 발작은 생각대로 뇌의 세포가 갑작스레 변화를 일으켜 뇌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데서 오는 질환이었다.

내가 여자의 진맥을 잡자 여자를 에워싼 행인들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생김새도 자신과는 다르게 이상한데다, 더욱이 유대 사회에서는 금기시하는 남자의 여성 접촉이, 그것도 자신과 다른 생김새의 청년이 여자를 더듬다니모두가 나를 향해 웅성거릴 때였다. 늙은 사내가 느닷없이 나의 멱살을 잡고 뒤로 밀쳤다.

사내는 그러고는 발작하는 여자를 품에 안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가야, 제발 깨어나라!”하는 울부짖음 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차분한 아람어로 나는 의사다. 당신의 딸을 진정시킬 수 있으니 잠시 내게 맡겨달라고 청했다.

이방인인 내가 능숙한 아람어로 의사 운운하자 주위를 둘러싼 행인들이 저마다 호기심을 드러내며 밑져야 본전 아닌가, 젊은이에게 맡겨보라는 주문을 강요했다.

사내는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이었으나 딸이 발작으로 괴로워하자 그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 놓고 턱으로 나를 불렀다.

여자 곁으로 다가선 나는 그녀의 관자놀이(귀와 눈 사이에 태양혈이 있는 곳)를 양쪽 엄지 손가락으로 힘있게 문지르고 팔과 다리의 혈맥(血脈)을 완화 시키는 데 온 힘을 다했다.

행인들은 숨을 죽인 채 나의 능숙한 손놀림을 예의주시하며 결과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내가 배운 의술을 동원해 여자의 발작을 멈추려 할 때였다.

군중 속에서 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지켜보던 젊은 사내가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사내는 키가 크고 눈이 부실 정도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또렷했다.

그는 전통적인 유대인이었다.

몸에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튜닉 통 자루 옷을 걸쳤 먼지가 덥힌 맨발에는 양 가죽으로 만든 샌들이 신겨졌다.

머리는 귀와 목이 드러난 짧은 형태였다.

키는 큰 편에 속했다.

몸집은 말라보였으나 골격(骨格:)은 단단했다.

혈색이 좋은 피부는 우유 빛 이었다.

칡 흑 같은 눈은 커다랗고 모든 것을 담을 듯이 깊고 단호해 보였다.

그런 가 하면, 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자애(自愛)와 연민(憐憫)으로 넘쳐났다.

코는 유대인 답지 않게 곡선이 날렵했다.

이를테면, 유대인 혈통 특유의 매부리 코가 아니었다.

예루살렘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헬라인 또는 로마인처럼 매끈했다.

귀도 컸다.

귓밥이 윗입술 근처까지 내려와 어떤 말이라도 편견 없이 담아낼 형상이었다.

손가락은 마디 마디가 길었다.

손등은 투박해 보였다.

예수님의 손등이 투박한 것에 대해 제자 가운데 바돌로매(나다니엘)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타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모를걸세. 원래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지.거친 나무를 다루고 연장을 쓰다 보니 자연히 손이 거칠 수 밖에.”

하지만 손톱은 잘 정돈돼 있었으며 때가 끼었거나 영양실조로 부실하지는 않았다.

팔길이도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매우 길었다.

선 자세에서 늘어트린 팔은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계실 때의 표정은 무표정이었으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말로서는 형용할 수 없는 자비(慈悲)의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비가 넘치는 미소는 입가장자리와 눈매에서 그랬다.

말씀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치아의 치열(齒列)은 가지런했고 틈새가 없는 옥수수를 연상케 했다.

목소리는 중저음(重低音)에 가까웠다.

무겁고 낮은 소리였지만 발음(發聲)은 명확했다.

목소리는 청음(淸音)이었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내포돼 있었다.

걸음걸이도 일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步幅)이었다.

30대 나이의 유대인 상당수가 허리가 굽거나 걸음걸이가 일정치 않았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샌들을 신으신 발의 크기는 다소 커 보였다.

발에는 먼지가 덮여 있었는데, 먼 거리를 걸으신 탓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두 마리의 말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흔한 나귀조차 없으셨다.

허리도 꼿꼿했고 걸음도 일정했다.

이는 예수님의 건강이 매우 양호하다는 것을 반증(反證)한 것이다.

지금까지 기술(記述)한 내용은 내가 막달라 성읍에서 처음 목격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물론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 간택(簡擇)된 후 의사(醫師)된 입장에서 간접적으로 살펴 본 견해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자 곁에 다가선 사내는 갑자기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람어였다.

갑재야. 먼 길을 왔구나.나는 네가 찾는 예수다.”

순간 충격을 받은 나는 사시나무 떨 듯 그 앞에 무릎을 끓고 눈물을 터뜨렸다.

실제 예수님을 처음 대면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내가 큰소리로 울자 행인들도 내 앞에 선 청년이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곤 저마다 수군거렸다.

예수라는 이름은 흔했지만 나사렛 예수는 이미 팔레스타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었다.

내가 기쁨의 울음을 멈추지 않자 예수님의 일행인 두 사내가 다가와 나의 팔을 부축하고 일으켜 세웠다.

예수님의 제자인 안드레와 요한이었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내가 일어서자 예수님이 허리를 굽혀 여자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고는 그녀의 상체를 일으킨 뒤 손을 머리에 얹으시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사탄아 네가 무슨 권세로 여자에게 있느냐 어서 나오라.”

우렁차고 단호한 명령이었다.

예수님의 꾸짖음이 떨어지자 여자가 다시 발작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파열음을 쏟아냈다.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옹알이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의 발작도 잠시뿐이었다.

예수님의 꾸짖음이 있은 즉시 여자는 잠잠해 졌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던 여자는 정신이 돌아오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앞에는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갈팡질팡하면서 서 있었다

그녀는 단번에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부녀가 그렇게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자 행인들이 다시 예수에게 시선을 주며 속삭였다.

이들의 중론(衆論)예수가 귀신도 쫓아내는 권세를 가졌 다니 믿을 수 없다는 거였다.

딸이 정신을 차리자 부녀가 동시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주님은 진정 메시아이십니다를 되풀이 했다.

아버지는 나를 향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여자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이를 눈치챈 아버지가 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녀는 황급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안정을 되찾자 벌떼처럼 모여들었던 행인들이 예수님과 나를 향해 번갈아 요란한 박수를 보내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특히 행인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당신은 진정 메시아이십니다하며 존경의 예를 표했다.

순간, 행인들 저마다 예수님을 향해 메시아라고 부르자 제자들도 덩달아 우쭐대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돌발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자 그제서야 행인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행인들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 여자의 아버지가 말했다.

예수님을 저의 가게로 모시겠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나를 비롯한 제자들을 이끌고 딸이 안내한 상점 안 내실(內室)로 들어섰다.

레바논 삼나무로 제작한 둥근 원탁(圓卓)으로 안내된 일행은 예수님을 상석(上席)에 모신 뒤 각자 원탁 주위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나는 원탁에서 인사를 통해 알게 된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모두가 원탁에 착석하자 방금 전 발작으로 사경을 헤맸던 여자가 또 다른 여자와 함께 다과를 내왔다.

값비싼 옷감으로 치장한 여성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다름 아닌 여자의 어머니였다.

원탁에 차와 과일을 내려놓은 어머니는 곧바로 예수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주님.당신의 입김이 저의 여식(女息)을 구원하였나이다.원하옵건데, 제 딸과 저와 남편을 형제로 거두어 주옵소서.”

예수님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무어라 하느냐?”

딸의 어머니가 답했다.

주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어머니의 답과 동시에 딸과 아버지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선 메시아이시며 삼위일체이십니다.”

이들의 진실된 고백을 귀담은 제자들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족이 형제됨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축하했다.

분위기에 들뜬 아버지가 딸을 예수님 앞에 불러 세웠다.

그녀의 모습은 방금전과는 딴판이었다.

몸단장을 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라헬 못지않게 빼어난 미녀였다.

어느 한구석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제자들이 한동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마리아예요.”

예수님이 덧붙였다.

무슨 일을 하느냐?”

마리아가 말했다.

저의 아버지께서 올리브 기름을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 밑에서 헬라와 페르시아 시리아 등지에 수출하는 올리브 기름 품목을 기록하고 또 외국 출신 무역상인들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마리아가 자신의 배경을 밝히자 제자들이 곳곳에서 감탄사를 자아냈다.

제자 가운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라 함은 집에서 다소곳이 내조를 하는 것인데, 외국인 무역상들의 통역을 담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구먼!”

제자의 비아냥이 섞인 말을 귀담은 딸의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방금 하신 말씀이 전혀 하자가 없소. 그럼에도 제 여식이 야훼의 은혜를 입어 머리가 남달리 비상하오. 마리아는 헬라어와 라틴어 심지어 페르시아어까지 능숙합니다.때문에 외국어에 밝지 못한 제가 저 아이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딸의 아버지까지 나서서 마리아의 영민함을 드러내자 여자를 깔보는 유대인의 한통속인 제자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제자들의 언행을 예의 주시하며 곁눈질로 면면을 살폈다.

한동안 아무 말씀 없이 원탁의 분위기를 관망하시던 예수님이 나를 불러 일으켜 세우시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들으라.(나를 가리킴)는 동방에서 온 자라 내가 불렀다. 이름은 조갑재며, 의사이고 천문학 박사에 문학과 시학, 그리고 역사와 언어에도 능통한 인재다. 내가 저를 부른 것은, 다가 올 2천년 후 갑재의 후손이 나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렇게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인자(仁者)가 말한다. 저를 나의 13번째 제자로 거둔다. 너희들은 조갑재를 내 몸 아끼듯 그렇게 대하라.”

예수님의 단호한 주문이 떨어지자 제자들이 모두 원탁에서 벌떡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유대식 포옹과 뺨에 입맞춤을 하며 형제애를 표현했다.

이 날 나를 받아준 제자들의 면면은 이랬다.

 

▲베드로(원래 이름은 시몬, 예수님께서 지목한 게바)

직업:벳새다 출신 어부. 예수님 십자가 형 직후 나는예수님을 전혀 모른다며 3번씩이나 부인한 인물.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영접하고 초대 기독교 수장(首長)으로 회심(回心)

▲안드레(베드로의 형제:베드로를 예수님이게 인도한 인물)

▲야고보(세배대와 살로매의 아들)

▲요한(어부 출신:세배대와 살로매의 아들.자신의 이름조차 쓸줄 모르는 무식쟁이었다.그러나 예수님의 은총을 한 몸에 받았다. 훗날 사랑의 사도로 불렸다. 그는 예수님의 성령을 받아 신약 4대 복음서 가운데 독특한 성문(聖文)요한복음과 예시서(豫示書)요한 계시록을 귀양지인 밧모섬에서 완성했다)  

▲빌립(빌립도 베드로와 같은 벳새다 출신.빌립이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오셨다고 말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비아냥 거린 나다니엘(바돌로매)을 예수님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바돌로매(나다니엘:예수님께서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칭찬한 인물)

▲도마(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던 인물. ‘의심하는 도마의 대명사가 된 인물)

 ▲마태(가버나움 출신의 세리(稅吏).예수님께서 좌판을 거두고 나를 따르라 하시자 그 즉시 세리 직업을 버리고 제자가 됐다. 3대 공관복음(共觀福音)마태복음저자)

▲야고보(알패오의 아들이다.작은 야고보로 불렸다.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끝까지 주검을 살핀 열성 기독당원 이었다)

▲다대오.유다(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리옷 유다가 아니다.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에 대해 주님께선 왜, 세상에는 부활하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묻기도 한 인물이다)

▲시몬(복음서 저자 누가가 젤롯으로 표기한 유대 무장독립단 열심당원의 독립투사였다.시몬은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적을 나타내자 내심 열심당원을 이끌어 주길 바랬다.)

▲유다(가리옷 출신:산헤드린과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의 대명사다. 그가 예수님을 은화 3백데나리온에 판 배경에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유대 땅에 지상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망상이 무너지자 실망감을 넘어 홧김에 씻을 수 없는 과오(過誤)를 범한 것이다)

 

당초 가버나움에서 뵙기로 한 예수님을 뜻하지 않게 막달라 성읍에서 마주한 만남으로 원탁의 분위기는 한층 더 화기애애(和氣靄靄)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번에는 마리아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예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저도 따르겠어요.”

순간, 제자들의 표정이 급속이 어두워졌다.

마리아의 당돌한 말 때문이었다.

따르다니, 누구를,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지금 저 여자가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아직도 발작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제자들이 속으로 벼라 별 생각을 끄집어 내자 이들의 속내를 알아 챈 예수님이 중 저음의 그윽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거짓과 가식을 모두 벗어내라.여자가 나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씻으라.본래 내가 너희 남자를 만들고 그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 이렇듯 인간은 본래 한 몸인데 어찌하여 하대(下待) 하느냐.마리아는 오늘부터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명령 한마디에 제자들은 낯빛을 감추고 그녀를 형제로 받아들였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본 마리아의 부모는 감격한 나머지 예수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원탁의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끊임없이 내왔다.

제자들은 마리아라는 동일 이름이 많은 탓에 오늘 형제가 된 마리아를 편의상 그의 고향 이름을 붙여 막달라 마리아로 부르기로 합의 했다.

한편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 찬 원탁의 식사가 지속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갑재야. 너는 의술을 지녔으니 군중이 운집한 장소에서 아픈 자들을 치료해라. 또 한 헬라어와 라틴어도 구사하니 마리아와 함께 외국인과의 통역을 맡아서 하라.”

나는 주님의 첫번째 사명을 받고 감격에 겨워 예수님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고 눈물을 글썽이었다.(계속)

 

이산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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