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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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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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계천 수로변(水路邊) "책 읽는 광장" / 소니a7M4 카메라-소니24-105mm f4 줌렌즈(2025년 5월24일)

 

예수님이 사랑하신 나사로

 

선지자(先知者) 이사야가 예비하는 이의 소리를 전령(傳令)’하며.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는 하심이라 / 나를 보내사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여호와의 해와 /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나는 유대 역사에 등장하는 선지자 가운데 이사야를 으뜸으로 여겼다.

그의 예언이 너무나 명징(明徵)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과 관련된 예언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해 공포심을 자극할 정도였다.

그것도 현시(現時)가 아닌, 무려 2백년전의 예언이어서 더욱 그랬다.

하나님의 전령사로 불린 이사야는 메시아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받으시고 흘리신 피를 통해 부활하셨다고 알렸다.

, 조갑재를 비롯한 유대 전통신앙의 피를 이어받은 제자들은 당초 예수님의 부활을 몽상(夢想)으로 치부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나에게 모습을 보이시며 평안을 말씀하셨다고 했을 때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특히 제자 가운데 도마는 펄쩍 뛰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드러낸 그는 내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모른다고 발뺌한 반석(盤石)베드로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가 민가 한 것이었다.

제자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이는 요한과 바돌로매였다.

제자들은 이처럼 당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로 십자가 사건을 통해 부활을 목격하고 피부로 느낀 제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간증(干證)하고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전도사역을 펼치기 시작했다.

의심 많고, 겁이 많고, 실수가 잦고,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부활 앞에서 완전히 거듭났다.

이들도 정신적 부활을 한 셈이었다.

12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실존적(實存的)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확인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주검에서 되살아 난 초월적 현상을 뛰어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나는 구약(이사야)을 통해 성령(聖靈:예수님)의 존재를 확인했고, 육신(肉身)되신 성령 곁에서 지금 이 시각 노방전도(路傍傳道)에 동참하는 무한한 영광을 체감하고 있다.

막달라 성읍에서 마리아를 구원(救援)하신 예수님을 뜻하지 않게 만난 나는 제자들 앞에서 13번째 제자로 간택되는 기쁨을 누리며 저녁 만찬을 즐겼다.

마리아 역시 스스로 간청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예수님 일행은 다음 날 아침까지 마리아의 가족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해가 중천에 설 무렵 막달라 성읍을 빠져 나왔다.

예수님을 비롯한 일행 15명은 말과 나귀를 이끌고 가버나움 항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제자들 무리속에 섞여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의 차림새는 너무나 허름해 보였다.

허리에 혁대도 없는 헐렁한 통 자루 단벌에 먼지가 내려앉은 샌들이 전부였다.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을 힘을 지니셨음에도 지금의 모습은 갈릴리의 촌부(村夫)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몸에 걸친 모든 것은 전형적인 갈릴리의 촌부(村夫)의 것이었으나 얼굴은 호수처럼 평온했고 보폭(步幅)은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다.

일행들에게 둘러 쌓여 걸으시면서 때로는 애제자(愛弟子)인 요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래동안 이런저런 말을 섞으셨다.

세례 요한을 스승으로 따랐던 요한은 안드레와 함께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한 인물이다.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지간이었으며 아버지는 어부인 세베대였다.

물론 요한 역시 갈릴리의 최대 항()인 가버나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출신이었다.

요한은 당초 자신의 이름 석자도 쓰지 못하는 무식쟁이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섬기면서 성령을 받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의 보탬을 하면서 때때로 세례 요한을 따라다닌 그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다변가(多辯家)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지적 변신은 순전히 예수님의 기름부음결과였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나와 다양한 대화를 나누어도 막힘이 없었다.

요한은 성격이 다혈질(多血質)이었다.

매우 급했고 참을성이 없었다.

어느 때는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요한의 이 같은 품성(品性)에 대해 예수님은 그에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이셨다.

 

한편 막달라 성읍을 벗어 난지 대략 1시간여가 흘렀을 즈음이었다.

먼 발치에서 낙타 한 마리가 흙먼지를 날리며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다.

낙타 등에 앉은 누군가는 손에 쥔 회초리를 마구 휘졌으며 연거푸 소리를 내질렀다.

순간, 예수님이 팔을 들어 걸음을 멈추라는 신호를 주었다.

일행은 그 자리에 서서 달려오는 낙타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달려 온 낙타는 예수님과 맞닿은 곳에서 멈춘 뒤 무릎을 끓고 등에 앉힌 사내를 내려 놓았다.

사내는 초로(初老)의 늙은이였다.

숨을 가파르게 내쉬고 있는 그는 다짜고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가나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갔습니다 만, 누군가가 막달라 성읍에 계시다는 전갈을 받고 화급히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누구이며, 나를 찾는 이유는?”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예수님! 나사로 어르신이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베드로가 놀란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뭐라고, 나사로가 죽어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구먼!”

사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나사로 님 댁을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그런 제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이처럼 먼 거리를 달려와 거짓을 고합니까?”

사내의 진진한 어투를 귀담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이 맞다.하지만,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다. 잠시 잠들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시자 관리 집사는 무슨 말씀을 하시냐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집사의 속마음을 읽으신 예수님이 덧붙였다.

갑재와 마리아,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나와 함께 베다니로 가자. 나머지는 가버나움으로 가 산상수훈 채비를 갖추거라.”

방금 집사라는 이가 말한 나사로라는 이름은 요셉의원에게 들은 바 있어 낯설지 않았다.

헌데, 그가 죽었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예수님은 서둘러 그의 거주지로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즉시 두 말 가운데 혈기왕성한 말을 예수님에게 드리고 다른 말에는 마리아를 앉혔다.

예수님은 출발 직전 마리아에게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갑재가 탈 말을 서둘러 준비해 뒤따라 오라.”고 지시했다.

베다니에서 막달라 성읍까지 단숨에 달려온 집사는 예수님을 향해 자신이 길눈이 밝음으로 뒤따라 오시라고 청한 뒤 앞에서 나갔다.

집사는 낙타 머리를 되돌려 막달라 성읍에서 티베랴를 걸쳐 다볼산 인근 나인 성읍과 살렘과 에논 그리고 수가와 에브라임 여리고 성읍을 관통한 뒤 나사로의 자택이 있는 베다니에 도착했다.

길을 안내한 집사가 베다니 성에 다다르자 초입(初入)까지 마중을 나온 나사로의 오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초조한 기색으로 일행을 맞았다.

이들 자매는 예수님이 말에서 내리자 각기 양쪽의 옷소매를 붙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주님,저의 오라버니가 죽었어요.점심 식사자리에서도 멀쩡했는데, 간식으로 페르시아 곳 감을 드시고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그러고는 의식을 잃고 숨을 거두셨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서로 번갈아 가며 두서없이 나사로의 주검을 말하자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알겠다. 지금 나사로는 어디 있느냐?”

마르다가 말했다.

집 앞에 있는 오라버니 무덤에 안치했어요.”

그래, 잘했구나. 당장 나사로에게 가자.깨어야겠다.”

순간, 마르다와 마리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동시에 말했다.

주님, 오라버니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었어요.”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예스님과 동행한 일행은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말그대로 단 숨이었다.

석회암 돌산을 뚫어 조성한 나사로의 석굴(돌무덤)은 어른 키를 훌쩍 넘을 만큼 크고 깊었다.

무덤 입구는 둥근 수레바퀴 형태의 돌문이 닫혀 있었다.

돌문 역시 어른키를 능가하는 크기였다.

무덤 주변에는 팔레스타인 황무지에서 자생하는 관목(灌木)인 로뎀 나무와 무화과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일행이 나사로의 무덤에 다다르자 어느새 알아차렸는지 수많은 동네 주민들을 비롯한 바리새인 서기관, 예루살렘 성전 헤롯 경비대원 등이 뒤섞여 북세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베다니의 갑부(甲富)출신인 나사로의 무덤을 찾은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 때문이었다.

주민들과 바리새인 및 산헤드린 소속 서기관 그리고 성전 경비대원들이 호기심을 부추기며 몰려든 이유는,야훼 하나님만이 해낼 수 있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직접 목격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중병을 앓고 있던 백부장의 하인을 직접 관찰하지 않으시고도 고치시는 등 여러 이적(異跡)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귀동냥을 통해 인지(認知)하고 있는 터였다.

따라서 나사로의 무덤을 찾으신 예수님이 과연 죽은 지 무려 사흘이 된 나사로를 어떻게 다룰지 초미의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돌문으로 굳게 닫힌 무덤 입구에서 예수님이 집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데리고 온 인부들을 시켜 돌문을 옮기거라.”

말씀을 받은 집사는 품삯을 지불하고 동원한 인부 6명을 턱으로 가리키며 돌문을 옮기라고 지시했다.

무덤 관리를 전문업으로 하는 인부들은 일사불란하게 돌문을 굴려 뒤로 물리고 무덤 입구를 드리웠던 세마 포(細麻布)휘장을 걷어냈다.

인부들이 세마 포를 걷어내자 무덤 안에서 역한 냄새가 공기에 실려 밖으로 빠져 나왔다.

시체가 부패하는 그런 냄새였다.

무덤 주변을 둘러싼 이들은 저마다 손으로 코를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나사로의 몸에서 발산하는 냄새를 들이 마시며 생각했다.

지금 후각(嗅覺)을 통해 전달되는 냄새는 시체가 썩는 것이 아니라, 시체의 몸에 바른  몰약과 향유가 증발하며 나는 것이라 진단했다.

즉 몰약은 시체의 세균을 막기위해 쓰이는 함수제(含漱劑)이며, 향유(香油)는 시신의 부패를 희석 시키기 위해 바르는 민간요법이었다.

예수님의 무언의 지시에 따라 무덤 안으로 들어선 나는 흰색 염포(殮袍)로 전신을 두른 나사로를 관찰했다.

예수님은 나의 이 같은 움직임을 곁눈질만 하고 계실 뿐이었다.

내가 예수님에게 말했다.

주님. 제가 나사로의 사인을 잠시 살펴보아도 될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의사이니 관심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 사인을 규명해 보라.”

나는 밖에서 서성이는 집사를 불러 시신을 다루는 염사(殮師:장의사)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나의 말을 귀담은 집사는 곧바로 밖에서 대기중인 염사를 소리쳐 불러 들인 뒤 몸에 두른 세마포를 벗길 것을 주문했다.

턱밑까지 수염을 기른 염사는 얼굴이 대추처럼 붉었다.

그는 버릇처럼 입맛을 다셨는데 기관지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가죽 가방에 다양한 장비를 지닌 염사는 능숙한 손놀림을 과시하며 넓은 석판(石板)에 누워 있는 나사로의 세마 포를 재빠르게 벗겨냈다.

드러난 나신(裸身)은 다행이 부패 일보직전 이었다.

허벅지에 매우 작은 푸른 반점이 대여섯개 드러나 보인 것이 전부였다.

사망 시간이 사흘 째임에도 부패가 더딘 것은 석굴 안의 내부온도가 한몫을 했다.

습한 데다, 찌는 듯한 밖의 기온과는 달리 내부는 오히려 선선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시신의 피부가 거의 멀쩡했던 것이다.

나는 나사로의 죽은 몸을 살피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떠 올렸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매우 사랑하셨기 때문에 앞서 이적을 행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 것이다.

예수님께선 늘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불치병에 걸린 이들을 단지 만지시거나 또는 축사 한마디로 완쾌 시키셨으므로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느꼈다.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자 예수님께서 언제나 들어도 뭉클한 저음으로 말씀하셨다.

생각이 너무 많구나. 어여 서둘러라.”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되잡고 주검속에 놓인 나사로를 관찰했다.

시체에선 여전히 코를 찌르는 향유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무덤 밖의 진을 치고 있는 무리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끊임없이 웅성거림을 이어갔다.

나는 예수님의 눈치를 살피며 시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핀 뒤 최종적으로 입안의 기도(氣道)를 손으로 주물렀다.

이유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동시에 오라버니께서 페르시아 산 곳 감을 드신 뒤 숨을 쉬지 못했다고 진술한 말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두 오누이의 말을 종합해 보면 나사로의 사인(死因)은 질식에 의한 심정지였다.

멈춘 상태의 심장도 천천히 굳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시체의 눈꺼풀을 올려 눈을 살폈다.

동공(瞳孔)은 부패 침식(侵蝕)의 전조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초기단계였다.

나는 시신의 곳곳을 진단한 뒤 허리를 펴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주님.나사로의 몸이 아직 부패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질식에 의한 사망이 확실합니다.”

확연한 아름다움과 자애 스러움, 위엄이 섞인 근엄(謹嚴)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본 예수님은 알듯 모를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지으신 뒤 이내 무덤 밖으로 나가셨다.

나 역시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예수님이 밖으로 몸을 드러내자 수많은 인파들이 동시에 시선을 주며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렸다.

너무나 많은 인파가 운집한 까닭에 무덤 입구는 예루살렘 성전 인근에 위치한 이방인의 뜰 장터를 방불케 했다.

집사는 인파들을 향해 연신 두 팔을 휘져오며 정숙해 달라고 고함을 내쳤다.

특히 인파 속 앞자리에 버티고 선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관심을 중폭 시키며 예수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집사의 간절한 요구로 인파의 술렁임이 가라앉자 비로소 예수님이 무덤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팔을 무덤을 향해 뻗으시고 우렁찬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사로야. 그만 일어나라.내가 왔다.”

마치 오랜만에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사로를 부르자 놀랍고도 경이로운 상황이 전개됐다.

방금 전 내가 진단한 질식사의 결과를 무색케 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죽은 나사로가 석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힘겹게 돌문을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인파들, 특히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성전 경비대원,예루살렘 총독부 소속 로마 첩보군인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이 태어나 한번도 보지 못한 기이한 현상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은 지 사흘이 된 시체가 살아서 두발로 무덤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가!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 몸에서 몰약과 향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발걸음을 옮기자 너무나 놀란 인파들 상당수는 두려움에 떨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끓고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진정 메시아이십니다.”하며 존경을 드러냈다.

나사로의 부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성전 경비대원들 그리고 로마군인 첩보원들도 모두가 넋을 잃고 예수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사로가 몸을 휘청거리자 두 오누이는 황급히 통 자루 튜닉을 입히고 물을 입에 가져다 주었다.

물을 들이키고 정신을 차린 나사로가 그제서야 예수님을 발견하고 오열하며 품에 안겼다.

글로서는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순식간에 예루살렘 전역을 뒤덮고 아주 오랫동안 화두(話頭)의 관심사로 유대사회를 달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드는 이방인의 뜰 장터에서도 단연코 화제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되살렸다는 것이었다.

단지 소문으로만 부활사건을 접한 시정인(市井人)들은 처음에는 카더라로 치부하려 했으나, 목격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따르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급기야 헤롯 왕궁이 위치한 가이사랴 항구에까지 전해져 총독인 폰티우스 필라투스 귀에도 타전(打傳)됐다.

당시 총독관저에 머물던 총독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는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군첩보기관의 보고를 곁에서 듣고 놀라움과 함께 기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내가 첩보에 흥분하자 과묵한 총독이 의아해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나사렛 예수라는 젊은이가 죽은 이를 살렸다는 것을 나도 기이하게 여기고 있소. 그의 최근의 행적과 가르침을 눈 여겨 보니 예사 평범한 마술쟁이는 아닌 것 같소. 모르긴 해도 예수라는 라바이 역시 유대인들이 높임 하는 선지자쯤 될 터이지.”

아내가 말했다.

나리.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이 절대 아니 예요. 그 분께서 하시는 일을 보세요. 우리 로마의 위대한 신()도 흉내내지 못하는 초월적인 일을 그분께서는 스스럼 없이 하십니다.아무리 뛰어난 마술사라도 어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답니까! 헬라의 위대한 신들도 하지 못하는 경이로운 일을 그분께서는 하십니다.”

그래서, 부인이 내게 하고자 하는 요체(要締)가 뭐요?”

아내가 말했다.

저는 예수님이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확신해요.그분은 태초에 계셨고요, 빛으로 오셨고요,죽은 이들의 증인(證人)이십니다.”

총독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발끈했다.

도대체 부인은 어디서 그 따위 소리를 들었소? 혹시 당신도 저잣거리에서 횡행하는 예수쟁이가 된 것은 아닐테지?.”

아내가 눈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나리 그 분은 길이시며, 진리이시며, 생명이세요.”

총독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구먼! 아무래도 부인을 단속해야 되겠소. 오늘부터 당장 외출 금지요!”

총독의 말이 겉으로는 과격했으나 그도 내심으론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야심이 넘치는 정치가이자 직업군인이며 한편으로는 문사철(//)에도 조예가 깊은 총독은 예수님의 움직임에 대해 날카롭게 대처하고 있었다.

유대총독 재임기간을 불과 한해도 남기지 않은 필라투스 총독은 유대인들의 소요를 불안한 시선으로 마주했다.

손익 계산이 빠른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만이라도 피를 보는 불상사가 없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물론 점령군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저항은 끊이지 않고 지속됐다.

특히 열심당원들의 무지막지한 유혈 폭력은 늘 골칫거리였다.

총독은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서 벌어지는 폭력 유혈사태에 대해 그 책임을 대제사장과 헤롯 대왕에게 전가(轉嫁)하기 일쑤였다.

국내 치안을 담당한 헤롯 군병과 유대 법제처인 산헤드린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이 같은 불안전한 사회기류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는휘 귀한 인물 예수의 출현은 로마 총독청 뿐만 아니라 헤롯과 대제사장 산헤드린 등 기득권 층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젤롯으로 불리는 열심당에서 예수를 우두머리로 영입하자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자 필라투스 총독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노심초사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의 능력이라면 일당백(一當百)이 아니던가!

때문에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비롯한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수의 행적(行蹟)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특히 팔레스타인 주둔 로마총독청은 나사렛 출신 예수를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고 첩보원을 통해 그의 동선(銅線)을 남김없이 취합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총독이 심어 놓은 현지인 출신 첩보요원이 따라 다녔다.

뒤늦게 파악한 사실이지만 막달라 성읍에서의 사건현장에도 첩보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골칫거리 인물로 부상한 예수님이 이번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 하니 총독도 마냥 흘려 들을 수만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예수님을 성부와 성자와 하나인 성령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총독은 아내의 진정(眞正)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나사렛 예수가 하늘의 소리를 하고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치고, 자신의 부하인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고, 방금 부하 첩보원에게 전달받은 죽은 나사로가 되살아난 이적 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그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조국인 로마에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실제 죽은 자를 살렸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헌데, 변방 중에 변방인 나사렛 출신 예수가 온갖 이적과 기적을 그것도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선한이를 어찌 열심당의 우두머리요, 로마에 대항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가.

폰티우스 필라투스 총독은 머리를 쥐어짜며 우선은 예수를 관망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만에 하나라도 예수가 민중을 선동해 폭력을 도발한다면 그때 체포해도 늦지 않다는 계산을 염두(念頭)에 두었다.

한편,나사로의 두 오누이는 이 날 저녁 자신의 대저택에서 연회(大宴會)를 펼쳤다.

동네 이웃 가운데 손 맛이 뛰어난 아낙네들을 불러내 다양한 일미(一味)의 음식을 조리한 다음 식탁에 올렸다.

직사각형 식탁 상좌(上座)에는 예수님이 앉으셨고 좌우 곁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고 요한 곁에 내가 앉았다. 베드로 곁에는 주검에서 다시 삶으로 귀환한 나사로가 자리했다.

막달라 마리아와 나사로의 오누이 마르다 마리아는 부엌에서 성찬(盛饌)을 조리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성찬이 식탁에 차려지기 직전 주방에서 대추와 계피 차(), 그리고 티로쉬라 불린 발효되지 않은 신선한 포도주를 내왔다.

티로쉬 포도주는 가나의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이 집은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서야 내온다고 말한 종류와 비슷했다.

당시 하객들의 주연(酒宴)이 한창일 때 포도주가 모두 동이 나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향해 손님에게 줄 포도주가 없다고 귀띔, 즉석에서 물 여섯 자루를 포도주로 만드신그 포도주를 뜻한다.

유대사회에서의 포도주는 물과 같은 역할을 한 일종의 음료수나 같았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물이 매우 혼탁해 식수로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탁한 물보다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를 선호했다.

예수님께서 마시고 계시는 포도주 역시 인간의 영혼을 혼미케 하는 독주(毒酒)가 아닌, 평범한 음료였다.

그런 가 하면,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사로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태생적으로 유복한 부잣집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있었다.

허나, 전혀 예기치 않은 불상사를 입고 목숨이 끊겼으나 자신을 살린 이는 다름아닌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동방의 청년 조갑재도 의사의 입장에서 자신을 진단했을 뿐 결코 살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는 죽은 것이 아니다. 잠시 잠들었을 뿐, 내가 깨우겠다하시며 자신을 단번에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나사로가 감동에 겨워 예수님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요한 곁에 앉은 나도 예수님을 경의(敬意)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

지금 나사로의 식탁에 앉아 계신 저 분은 전에도 계셨고 이후에도 영원히 계실 창조주이자 빛이시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며 두려워한다.

어둠이 빛을 두려워 하는 까닭이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똑같이 입고 먹고 마시며 묻고 대답하시고 심령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늘 나라를 체험케 하신다.

식탁에 앉은 일행이 포도주로 목을 축이고 있을 즈음 주방에서 조리한 산해진미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식욕을 자극하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었다.

다양한 음식을 맞은 일행은 각자 앞에 놓인 대추나무 접시에 쟁반에 올려진 음식을 가져다 식음(食飮)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의 식습관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음식을 덥석 집어와 손으로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나의 고향 신라국처럼 밥과 국을 뜨는 수저와 나물과 생선 등 반찬을 뜨는 젓가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시각에서 보면 유대인의 식습관은 마치 미개인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손에 미각이 입천장에 전달됨으로써 오히려 풍미(風味)스런 음식 맛을 즐기는 장점도 있었다.

나도 이제는 유대인처럼 느긋하게 손을 써 음식을 즐기고 있다.

식탁에 푸짐하게 놓인 음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을 즈음이었다.

저택 입구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식탁의의 시선을 이끌었다.

웃음소리는 걸음을 따라 계속 객실로 이어지며 식탁에서 멈췄다.

웃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을 향해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웃음소리가 말했다.

주님, 제가 발걸음이 늦은 탓에 일찍 뵙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출신 문둥이 시몬이었다.

베다니 출신인 그도 이 지역에서는 부자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병에 걸려 혹독한 고생을 했으나 다행이 난치병은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음성(陰性)이었다.

바리새인인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며 따르는 것은 실제로 주님을 통해 삼위일체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문둥이 시몬은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머리 또한 영명(英名)했다.

따라서 사리판단이 분명한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터였다.

시몬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예수님은 건너편 자리를 안내하시고 식사를 권하셨다.

예수님은 그러고는 시몬을 향해 나를 가리키며 통성명을 나눠 주셨다.

주변에서 번번히 그러했듯 시몬도 신기하다는 눈치로 나를 살피며 노골적으로 궁금증을 드러냈다.

나는 똑같은 말을 그에게 되풀이 한 뒤 이내 허리를 굽혀 예를 보냈다.

시몬도 나처럼 했다.   

한편, 저녁 만찬은 오랫동안 지속 됐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초월적 힘을 현장에서 목격한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성전 경비대원 등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자신들의 직분지역으로 돌아가 윗 사람에게사건 경위를 보고했다.

특히 유대사회 최대 의결기관이자 법제처인 산헤드린에선 서기관들의 일치된 목격담을 청취하곤 경악했다.

첩보소식을 진지하게 청취한 여타 서기관과 법관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혹시 자네들이 현장에서 예수라는 자의 마술에 걸린 것은 아닐테지?”

하지만 현장을 목격한 서기관들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나 혼자 목격한 것이 아니다하며 강변했다.

그러고는 글쎄 예수가 무덤 안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자 죽은 시체가 몸을 흐느적거리며 걸어서 나왔다고 부연(敷衍)했다.”나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팔을 꼬집었는데, 생시(生時)였어. 세상에라! 그건 마술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적이야.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신 모세도 하지 못한 일을 예수가 해냈다고!.”

서기관들이 목격담을 침을 튀기며 늘어놓자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대제사장 가야바가 뜨악한 표정으로 일침을 가했다.

이봐, 서기관들. 자네들은 마치 예수가 야훼라도 되는 냥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며 들떠 있구먼. 그자가 설령 나사로를 살렸다고 해서 특별히 여길 것은 아닐세. 우리가 그자의 능력을 높이 살수록 민중들은 오히려 예수를 추종하게 될 거고 우리에게는 골치거리를 하나 더 떠안는 셈이 되지 않겠나. 따라서 앞으로 예수의 동선을 예의 주시하며 법망(法網)에 들어오는 즉시 체포하시게.”

막강한 권위를 행사한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사위이자 야심가로 알려진 가야바는 느닷없이 부상(浮上)한 촌 동네 출신 예수의 드높임이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는 판단이었다.

매우 짧은 기간에 민중의 사랑을 받는 인물은 그리 흔치 않다.

유대인의 조상인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솔로몬 정도가 민중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명성(名聲)만 높았을 뿐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헌데,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나사렛 출신 목수가 어느 날 갑자기 메시아로 추앙되며 유대사회의 기존 체제를 흔들고 있으니 발끈할 수 밖에.

그것도 유대의 왕으로 불린 자가 옷차림은 거지요, 잠자리도 난장 꿀림도 마다하지 않고 금기(禁忌)시 하는 세리와 창녀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대체 무슨 변고(變故)인가.

더욱 소름이 끼치는 것은 야훼 하나님만이 가능한 초월적 힘을 그도 똑같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가야바가 내심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예수는, 자신들이 열심히 조작한 미친놈도 아니고 마술사도 아니었다.

어찌 미친놈이, 일개 마술사가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한 비유와 이적과 기적을 밥 먹듯 행할 수 있겠는가.

가야바는 최근에 갈릴리와 예루살렘 일대에서 예수가 보인 여러 행적에 대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었다.

아리마태 성주이자 산헤드린 소속의원인 요셉의 진언(眞言)대로 예수가 정말 메시아일 경우 자신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었다.

예수를 이대로 방임(放任)하면 민중이 정말 그를 유대 왕으로 추대(推戴)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특히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의 시체를 되살렸다는 첩보를 서기관들을 통해 귀담고 나서는 오금이 저렸다.

예수의 다양한 행적은 결코 예삿일로만 받아들일 성질(性質)이 아니었다.

따라서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예수를 엮기 위해서는 특단에 조치가 필요한데, 누가 적임자인가?

잠시 골몰하던 대제사장 가야바는 무릎을 내리치며 낄낄거렸다.

그래, 골칫덩이인 예수를 해결하는데, 적격자는 다름아닌 헤롯이렸다!”

가야바는 상시 대기중인 공무비서를 채근해 헤롯 왕궁으로 떠날 채비를 지시했다.

(계속)

 

이산해 글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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