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나무 쓸리는 잎에
흔들리는 머리카락 / 성백군
바닷가에서
일렬횡대로 선 방풍림 야자나무
잎들이 바람에 쓸릴 때, 그 중
떠오르는 한 여자가 있다
흩어지는 머리카락 추스를 생각도 않고
넋 나간 사람처럼 수평선만 바라보는 저 모습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는 그리움인가
아득하여
더듬어 찾아 나서는데
딱!, 코코넛 열매가 폭탄처럼
내 어깨를 스치며 발밑에 떨어진다
깨우지 말고 그대로 두란다
흐느끼는 사람은 흐느끼는 대로
꿈꾸는 사람은 꿈꾸는 그대로 두고
너는 네 갈 길로 가란다
그렇겠구나
야자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그 여자의 머리카락이 기억에서 깨어나 가지런해지면
바람은 내게로 와
나를 흔들어 내 일상이 무너지고
한평생 일군 내 가정은 깨어지고
그렇겠구나! 착한 내 아내가…….
흔들어라
바람에 쓸리는 야자나무 넓은 잎이여,
추억 속에 남아있는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이여,
흔들리면서 그리움을 지울 수 있다면
그리움이 내게로 찾아와 비밀이 된다면
흔들어라, 가끔 바람 없는 날이면
아무도 모르게 나도 살짝살짝 흔들려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