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017.1월곽상희서신-가장 낮은 시간
소물이 끓어오른 후 급기야 갈아 앉아야 하듯, 고통과 혼돈의 계절이 가고 광풍에 치오른 치맛자락을 눌러 내려야하는 자연법칙에 따라 그 바람을 다스리고 눌러야하듯, 기적이듯 2017년 새해를 선물 받은 우리, 그 중의 한 사람인 나 곽상희 스스로 나의 이름을 불러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사랑하는 그대의 눈길을 살핍니다. 춥군요. 어제는 끝없이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더니 오늘은 햇살이 아름다운 백설의 나라 그 속을 저는 나들이를 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길을 기쁨으로 다녀왔지요. 지금 바람이 차요. 어둠은 짙게 갈앉아 내리고 별빛 하나도 돋아나지 않는 밤이지만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있군요. 새해의 새로운 다짐은 하지 않고 지금까지 하던 일 더욱 세밀하게 하며 나 자신을 보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하여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평안과 아름다운 존재의 뜰로 더 가까이 들어가는 그 연습을 고요히 할 수 있다면 하고 희망해 봅니다. 이 차가운 계절을 주심에 감사하며, 사도바울처럼 나는 없고 거룩하신 그 분만이 더욱 크게 크게 위대하게 나의 안을 사로잡고 그것이 나를 더욱 자유 되게 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하며........
‘1월의 기도, 라는 작자 미상의 아름다운 기도가 있습니다.
<시작은 모름지기 완성에 이르는/첫 번째 작업임을 알게 하시고/그 결연하던 첫마음이 변함없게 해주시고/모든 결과는 좋은 계획에서/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또 목필균시인의 “1월‘ 이란 시가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다/1월이 열렸다//아직 창밖에는 겨울인데/가슴에 봄빛이 들어선다//나이 먹는다는 것이/연륜이 그어진다는 것이/주름살 늘어난다는 것이/모두 바람이다//그래도/1월은 희망이라는 것/허물 벗고 새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 살아있는 달//그렇게 살 수 있는 1월은/축복이다>. 잠 안 오는 그 밤 제겐 다음과 같은 시가 제 문을 두드렸습니다.
가장 낮은 시간
가장 낮은 시간에
잠이 꼬리를 감추어버린 밤
나는 나의 동굴을 찾아 들어가 눕는다
언젠가 내 존재가 살아왔던
메밀 꽃 같은 계절을 더듬으며
별들도 무심치가 않아
빛이 형형 돋아나는
푸른 계절이
지금도 겨울 긴 들판을 걸으며
내게 손짓해 온다
별이 무심코 흘린 지혜 하나가
추억이 순한 비밀의 도성을 찾아가는
어진 땅의 발자취들,
아름다움은 여기서만 끝나지 않는다
새소리의 비밀스런 이야기의
성숙한 예법의 가을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잎이 없는 나뭇가지에도
성숙한 열매는 아직도 익고 있다
노란 빛이 황금으로 익어가는
간절한 기도
햇무리 지는 바로 곁에서
하롱하롱 물방울이 튄다
바람이 불어온다
대리석 잔물방울들이 가볍게 춤을 춘다. (<가장 낮은 시간> 곽상희)
지난달에는 나는 시인의 침묵을 말했어요. 그러나 고통과 혼돈의 해일이 지난 후 쓰러지고 지친 마당귀 한모서리에 피어난 파릇한 풀잎 하나, 시는 그렇게 오죠. 골고루 엎드려 내 안을 들여다보며 시의 좁쌀 같은 먼지 같은, 아니, 안개의 분말 같은 구슬을 찾아 꿰여 보았어요. 무언가 빛 속에 아른 아른 보이던 것을 한 곳에 모우고 나니 작은 조각품 하나 만들어진 것 같은 포근함, 넘치지 않는 것 같은 것. 마지막 행은 결코 제가 시로서 억지를 부린 것이 아니에요. ‘바람’이 불어오고 그 후 우리 ‘광장‘에도 아름답고 희망찬 것, 탄탄한 우리의 역사의 페이지가 빛나기를 염원하는 우리의 간절함.......
그래요, 지금은 성내지도 절망도 말아야할 계절, 누가 말한 포기하지 않는 절망, 아니 절망하지 않는 절망을 연습해야할 때임을, 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슬픈 계절’이 가져다 준 보따리 보따리들을 고요히 펼쳐놓고 가만 무릎 꿇고 허리를 펴 가장 선한 시간을 위해 시름할 때, 제겐 지난 번 12월에 쓴 <그 과장의 노래> 가 있지만 지금 모두 목소리가 높으니 시인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목소리로 존재해야 함을 인식하며, 2월 서신은 보다 힘이 있고 행복한 목소리로 아리아를 부르고 싶다고, 아듀!
(1월 창작클리닠 모임은 마지막 토, 28일 2시-4시, 34-37 146 ST. Flushing. NY,1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