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묘
이 월란
가을은 누구의 무등을 타고 와 소리 없이 내린 것일까
발끝으로 걷는 자국마다 스친 인연 발갛게 달아오르겠고
돌아보는 시선마다 갈꽃이 더불어 손 흔들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질기게도 물고 늘어지는 억새풀
그을린 얼굴되어 저녁산에 갈색으로 겹쳐 눕겠고
밤을 새운 흔적마다 버러지들 뭉쳐 울겠다
새벽을 깨우는 가슴마다 낯익힌 갈바람 소소히 불어대겠고
그리움의 지문 물빛 살갗에 새기고 그지없이 달아난 하늘마저
해일처럼 창마다 푸르게 푸르게 넘쳐 들어오겠다
2007-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