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이월란(09/04/15)
떠나 온 고국은
초현대식으로 각색된, 지나온 시절 시절이 차려진 거대한 선물가게다
행인들은, 아무도 두고 온 80년대의 걸음으로 활보하지 않는다
나를 건너뛴 세월은 붙박여 산 그들에게만 부가가치를 새겨두었고
국경을 넘어버릴 망명자에게 잠시 샵 리프팅을 당한 나는
그들 옆에서 같은 공정을 거친, 같은 가격의 선물로 진열되고 싶어진다
버리고 온 것들은 결코 그 누구로부터도 버려지지 않았다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품었는지 일이십년, 단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않은
이민자들은 마음 속에 아직도 성업 중인 골동품 가게 하나씩은 운영하고 있다
흥정 없는 길손의 상행위는 대체 무슨 영리를 꿈꾸고 있나
나의 지갑을 차곡차곡 채워온 그리움의 업보를 거리마다 지불하며
버리고 왔어도 홀로 장성해 있는 공백의 세월 한 줌 선물로 들고 온다
넘치는 지갑으로 불쑥불쑥 충동구매를 일삼는 두 눈엔 모든 것이 면세품이다
낭만으로 포장해버린 뿌리 없는 영세업은 아직도 건재하다
손님인척 나는 또 갈 것이다, 일방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여린 종소리 하나 없이 열리기만 하는
공항의 자동문 너머 차려진 거대한 선물가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