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건다
이월란(09/0507)
해거름에 걸터앉은 하루의 넋에서는 생소한 노을내가 난다
아직도 간파하지 못한 시의 원근법으로 코앞에 있는 벼랑으로 추락했던 기억은
헤픈 영혼의 구도를 잡아내지 못한다
머그잔처럼 바짝 들려진 세상 속에서 한 잔의 커피향처럼 날아가 버릴 때마다
끝간데 모르는 시의 배후를 가늠해 보아도
기원 없는 방황의 끝을 종말의 기한처럼 예언도 해보고
축배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시들어버릴, 생화로 만든 화환같은 목숨일랑
이젠 정지되어버린 신화로 표구해 버린다
나의 빈 하늘에 뮤즈의 별이 뜨는 날은 온몸이 부셔
육신의 수렁이 푸른 강이 되어 정맥마다 흐른다
오늘, 나를 발원지로 표기해버린 목적지를 명명하고도
그리움 서성이는 곳마다 진실처럼 깨달아지는 당신의 부재 아래
가슴에 닻내린 미지의 배 한 척
시가 말을 건다
낯선 행인이 길을 묻듯 시가 말을 건다
(그럼 나는 네비게이션처럼 정확한 약도를 친절히 그려주리라)
꿈을 찾아 제3국의 불법체류자가 된 이방인처럼 시가 말을 건다
(그럼 나는 길눈 밝은 본토인처럼 능숙한 길안내자가 되어주리라)
오래오래 젖을 물고 있던 포만감 속에서도 어미를 놓지 않고
배시시 흘리기만 하는 젖먹이의 눈웃음처럼 시가 말을 건다
(그럼 나는 아이가 젖을 먹던 시간보다 더 오래오래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