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시간
이월란(09/04/18)
할머니들은 시간을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고여있는 시간을 한 줌씩 데려와 다시 만날 뿐이다
골골이 파이고 가닥가닥 이어져, 전신에 새겨진 세월을
한 가닥씩 걷어와 그저 헤아릴 뿐이다
가물가물 등잔불처럼 거슬러 올라가
소녀가 되고 아기가 되었다
봄나들이 온천여행을 떠나신다고
아침일찍부터 노인아파트 주차장에 옹기종기 나와
앉아 계신 할머니들은
누군가 와서 태워주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이국땅의 늦은 봄볕같은 할머니들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
아지랑이처럼 지나온 시간들을 세세히 펼쳐놓고
그렇게 가물가물 만나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