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통역한다
이월란(09/05/09)
납세고지서를 보내는 대신 나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내 비극의 에너지를 산출한다
항간의 낡은 코드에게 반항한다
마법에 걸려 있는 나의 언어를 방생한다
우발적으로 솟는 내일의 해는 삭제당하지 않고 오직 뜨거운
등반으로 타고 올라야 할 정상이다
일상을 비끄러매는 최면술로, 나의 진부함으로 영합해오는 환각일 뿐이다
나는 세월의 주름을 접고 있는 재단사처럼 중성의 시간을 봉합하고 있다
나는 끝끝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배려로 남아있고 싶어
나를 틀 속에 꾹꾹 눌러 찍어대는 이 질서정연함에게 묻는다
항상 하나의 예외로 남아있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꼭 화장을 했다는 이세벨처럼
입술연지의 수은을 원죄의 향기처럼 혈액으로 천천히 흘려보내고 있다
자발적이고도 모범적인 항간의 질서는
나의 아득한 높이를 측량하고 있다
나의 출렁이는 깊이를 재어보고 있다
스핑크스의 미소로 죄의 이온수를 마시고
수면을 간질이는 물속의 비명을 올리면
목숨은 시시각각 경건한 백지 위에서 얼룩처럼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