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이월란(09/10/13)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포도를 후벼파던 잦은 빗소리
넘치듯 넘치지 못하고 흘러만 가던
빗물에 떠내려 보낸 그 눈빛
가슴에 묻은 사연은 홀로 집을 짓고
쑥쑥 자라는 아이의 손을 잡듯
새 날이 손 내밀 때마다
조개무지같은 기억 속으로
젖은 미소로 담을 쌓고
비밀한 마음을 속삭이는 귀는
입은 없고 가슴의 귀만 남은
앙코르와트의 숨쉬지 않는 유적
가장 아름다운 때는 지금
그 때를 기억하는 지금
지금을 연민하던 그 때
시선따라 이름 없는
플라토닉 꽃이 피는 허공
숨 막히는 사람은
하루를 지켜보는 내 안의 관객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도 몰라야 하는, 오늘도
중요하지 않은 하루가
어제와는 다른 옷을 입은 채로
걸어나가고 있다
유적 속에 잡풀로 묻어 놓은
비밀한 속삭임은
크메르의 전설로 벽 속의 고분같은
당신과 나의 유적
* 양가위 감독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