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교주
이월란(09/10/22)
바람은 믿었다 굳세게 믿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날 수 있다고
날개 달린 짐승들은 나를 타고 비상했고
신실한 믿음으로 나를 숭배했지만
미련하고도 고집센 땅위의 것들은 결코 나를 믿지 못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발이 부르트도록 기어다녔고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바다를 추앙했다
두 발을, 네 발을 떼지 못하는 우매하고도 고귀한 신앙
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바들바들 떨며 사는 가벼운 꽃들은
내가 날개에 관한 교리를 한 줄만 속삭여주어도
붙박인 태생을 버리고 미련 없이 날아 올랐다
땅이 꺼지도록 땅만 파먹고 사는, 발자국을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땅짐승들은 매일 휘청거리면서도 끝끝내 나를 의심했다
나는 점점 난폭해졌고
어느 날밤 잠든 모든 것들에게 튼튼한 날개를 달아 주었다
나무도 날고, 집도 날고, 빌딩도 날고, 바다도 날았다
땅 위로 솟아오른 모든 것들에게 바람의 날개가 달렸다
목숨을 담보로라도 그들은 날고 싶어했음이 틀림없다
늑골 아래 숨겨둔 날개에 대한 욕망을 나는 진즉 알고 있었다
정녕, 타인의 머리 위로 그들은 날고 싶어했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