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樹木葬)
이월란(09/10/24)
뼛가루가 수액으로 흐르는 나무들이 있다 한다
가을이 와도 떨어지지 않는
죽은 자들의 이름표를 잎사귀 대신 달고
비명(碑銘)을 응시하며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한다
사체 위에 꽃을 피우는 잔인한 정원
영구차 같은 계절이 다녀갈 때마다
영혼의 옷을 갈아입는 곳
뿌리로 만지는 유골마다 추억을 빨아올리며
사자(死者)의 재로 숨 쉬는 나무들
내세의 안락으로 헛배 부른 봉분 대신
무성한 숲이 전생의 밤을 불러와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산목숨들은
나무가 되어 숲으로 같이 운다 한다
나는 살아 있고 나무는 죽어 있던 땅
내가 죽어서야 나무들이 걸어 다닌다 한다
맑아진 피가 수액으로 도는
나무들이 넋으로 날아다닌다 한다
잠시 뿌리내린 땅, 사심 한 점 꽃피지 않은
마른가지로도 평안히 그늘 한 뼘
키워내게 되었다 한다
밤새워 별빛의 소나기를 맞고
울긋불긋 피 끓는 대지의 가을이 와도
이제야 식어 내리는 더운 피
땅만 가리키던 열손가락
그제야 하늘 향해 뻗고 싶어
나무가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