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시집
이월란(09/10/27)
이 말하다 저 말하는 아이처럼
악몽을 꾸다 깔깔대는 아이처럼
문법시험에 낙제하고 쫓겨난 아이처럼
시선마다 몸을 입히고
절망의 벽을 분활하고
침대보를 달고 날아다니는 피카소
엄마의 엉덩이를 훔쳐보는 아이처럼
오나니슴에 붉은 초등생처럼
이젤 위에 혁명을 뿌리는
벽 속에 파랑의 르네상스를 건설하고
장미의 체온으로 누워
향기의 비명을 듣고
꽃다발의 함성으로 절규하는
버터로 녹아내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팬 위에서 지글지글 불꽃의 누드를 그리는
랩을 부르는 환쟁이
노을의 관자놀이가 익어갈 즈음
이성의 전조등을 끄고
팔레트 나이프로 으깨어버린 혼색의 풍경마다
천상병의 소풍을 가자
내 입술 위로 김밥 몇 알 들락거리던
그 피크닉이 아닌
언어가 아닌 삶의 깊이로 짚어보는
바닥까지의 거리로 재어보는
아득한 측량작업 아래
고통이 후려치는 소리가 액틀에 담긴
결빙하는 외로움의 상형문자가 되어
환청의 비늘들이 헤엄치고
빛의 화환에 목이 졸린
편도나무들이 우는 발로리스 푸르나 화실에서
밤의 고치 속 혀를 깨물고
접싯불에 가슴을 태우고
접싯물에 빠져 죽은 오늘 같은 날
변심하지 못한 마지막 손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