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넬라의 종*
이월란(09/10/28)
망울진 불행이 고통을 지고 달려오는 소리
(내게 명령하는 자는 보이지도 않는 나의 神 하나로 족한 것을)
배수진은 언제나 질긴 목숨이다
기습 침공은 예의가 아니라고 농지거리처럼 달려오는 하얀 전쟁
항복의 백기를 꽂아도 종소리처럼 달려와 목을
조이고서야 가슴 위에 흩어진다
어미의 샅을 찢고나올 때부터 핏방울 뿌리던 그 종소리
내 손에 쥐어준 궁색한 어미의 딸랑이 장난감 속에서
태중의 아이처럼 자라고 뛰어다니던 소리
사랑이 이루어진다던 냉정과 열정 사이
가슴치던 피렌체의 종소리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
적과의 동침은 언제나 환멸 속에 숨겨진 G-스팟의 희열
때론 타고난 손톱 밑의 가시처럼
때론 길 가다 주운 동전 한 닢처럼
때론 익스프레스 메일로 배달되어진 소포 꾸러미처럼
그렇게 천의 얼굴로 알현하는 화려한 이목구비
먹이를 찾아 질주하는 외길 위에 결박당한 짐승이 되고자 했음은
피론의 돼지*가 되어 폭풍을 바라보았음은
유년의 골목을 돌아나오는 두부장수의 종소리같아
헐레벌떡 달려가 ‘두부 한 모 주세요’
가난한 노을을 걷어와 저녁상을 차리고 있을 어미에게로
달려가며 받아든 엉긴 간수같은 고통의 살점은
여전히 나의 따뜻한 피가 도는
가식의 미소같은 젖은 무명천 한 풀 벗겨낸
낭창낭창 김이 오르던 나의 분신이 아니었나
* 마르티넬라의 종 : 기습을 승리로 생각하지 않은 플로렌스 인들이
군대출동을 적군에게 알리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울렸다는 종
* 피론의 돼지 : 그리이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이 바다여행 중 만난
폭풍 앞에서 유일하게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던 승객인 돼지를 가리킴
(죽음을 모르는 돼지만이 죽음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