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원起源
이월란(09/11/11)
정처없이 왔었다
속절없이 눈부셨다
불꽃처럼 데인 자리
자자손손 연기처럼 사라진 열정의 자손
코끝이 타버린 그을음같은 그리움의 역사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신을 숭배하는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신도로 세례 받던 날 이래
기적의 땅 위에서 매일 증축되던
신비의 미소로 지은 성전
사체를 태아처럼 묻어 놓고 부활을 기대했다는
선사시대 미개인들의 우매한 신앙만큼이나 부질없어
아직도 잉크냄새 마르지 않은 사연들이
상아조각에 새겨진 수메르 문자만큼이나 낯설다
고왕국의 신전처럼 성스러워진 기억의 성城
전신을 조아려 노예가 되고 있다
두 눈이 뽑히고서야 삼손의 머리칼처럼 자라는
눈먼 사랑으로
비도 아닌, 눈도 아닌 진눈깨비 스러질 때
심지도 없이 무척추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갸륵한 기다림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