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이월란(09/11/08)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여 혼자 사흘 째 먹고 있다
산모처럼
느거 엄마도 너 낳고 미역국 묵었제
내세울 것 없는 농땡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던지던
중학교 국사선생님의 독설이 미역처럼 둥둥 뜬다
울 엄마도 날 낳고 미역국을 드셨겠지
내가 흡혈귀처럼 빨아 마신 당신의 피가
미역 한 줄기로 맑아지고 또 맑아지다 마침내 투명해져
전신이 눈물로만 도셨겠지
시골 조산원 온돌방마다
전투의 상흔처럼 부른 배를 이불 속에 숨기고
패잔병처럼 누워 있던 예비 산모들
전리품 같은 아이를 옆에 뉘고서야 포상처럼 받아 마시던
그 바닷말, 바다의 말
한 번씩 뜨거운 미역국을 한 사발 퍼먹고서
분내나는, 발가벗은 아기를 안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뱃속이 휭하니 비어버린 해산어미 같은 가슴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
신생의 두 눈동자 속에 뜬금없이 새겨져 있을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