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의 늪 (견공 시리즈 47)
이월란(09/11/04)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올 듯 내 발꿈치를 놓치지 않는 토비의 동선이 딱, 잘리는 곳이 있으니 그 냉정한 지점은 바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똑같은 높이에 똑같은 카펫인데도 혼자선 결코 한 발도 내딛지 못한다. 엎드린 체념이 영원할 듯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안고 내려갈 때조차 오금이 저린 작은 몸둥이가 공포에 질려 있다. 따뜻한 페치카로, 영화 보며 뒹굴던 행복한 추억으로 다진 반년의 세월도 허사다. 아들녀석이 토비를 데리고 내려가 고문이라도 했을까, 토비의 끔찍한 기억을 파헤쳐 보기도 했는데.
토비를 안고 늪 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곤두서는 내 기억의 등뼈를 토닥여 쓰다듬어 준다. 지상에서 땅속으로 묻혀버린, 앙금처럼 가라 앉은 싸늘한 기억들이 어둠을 먹고 자라는 곳, 내게도 있단다. 결코 내려가고 싶지 않은, 오늘도 따구르르 굴려 떨어뜨려 놓은 고통이 알을 까고 있는 곳, 이별의 뒤안길들이 묻혀 사는 지하실, 내게도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