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사진
이월란(10/05/16)
늘 사진기를 가지고 다녔었다 병신, 순간의 절단면으로 과거를 가두어 둘 수 있다고 믿었을까 훗날 보고싶어질 장면들이 펼쳐질 때마다 셔터처럼 눈꺼풀만 신중히 깜빡여 주었다 사진기를 챙겨야지, 했었는데 외출하고 보면 사진기가 집에 있었다 세월의 파일 속에 자연스럽게 저장해 두는 법, 기억에게 편집장의 권한을 넘겨주고 잊어버리는 법, 세월 앞에 무릎 꿇은 비굴함이 아니라 이제서야 세월과 동등해진 동행이 되었을까 나름대로의 영원을 품고 사는 입체 그대로, 보톡스를 맞지 않은 시간의 주름살 사이에 그냥 넣어 두고 싶어진 것일까 인화되지 않고 저장되지 않아도 잊혀진 애인의 얼굴이 가끔씩 떠오르듯, 사진을 앞에 두고도 기억은 내게 붙들려 있을 때만 기억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