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46
어제:
10,483
전체:
5,989,349

이달의 작가
2010.04.05 00:51

늙어가기

조회 수 523 추천 수 4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늙어가기



이월란(10/03/28)



텅 빈 아침과 점심을 빈둥거리는 두 발로 굶긴 하루
지는 해를 업고 들어온 남편에게 저녁상을 바친 후
나도 세상이 고파왔다
길지 않았던 시집살이 동안 시어머닌 밥 한 톨을 버리지 못해
남은 찌개나 국에 국수를 삶아 드시곤 했었다
밥알을 헤아리기엔 해가 너무 기울었나
갑자기 그게 먹고 싶어져 엔젤헤어 국수를 삶아 남은 찌개랑 끓였다
배가 고파야 세상이 맛있다, 후루룩, 쩝쩝, 정신이 없는데
카우치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잘도 먹는구나, 네가 잘 먹음 난 행복해져
울 아부지 흉내를 내고 있다
학 두 마리 그려진 비단금침 아래 누워 계시던 울 아부지도 그랬었다
윗목에 쪼르르 앉아 사과를 먹으며 명화극장을 보고 있던 우리더러 그랬었다
어쩌면 그렇게 잘 씹어도시노, 잘도 먹어 제끼는구나
신이 난 어린 것들은 더 요란하게, 사탕처럼 사과를 깨물어 먹었었다
자식이 먹는 소리와 마누라가 먹는 소리가 화음을 이룬 세월
아기짓을 할 때마다 면박을 주며 내쳤었는데
흰머리가 자꾸만 많아지는 젊은 영감도 가끔은 엄마 품이 그리울까
이젠 나도 쭈글쭈글 휘감기는 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 저녁
우린 착하게도, 나란히 늙어가고 있다는 것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97 누드展 이월란 2010.04.18 583
996 예감 이월란 2010.04.18 592
995 나의 통곡은 이월란 2010.04.18 662
994 바벨피쉬 이월란 2010.04.13 629
993 평론의 횟감 이월란 2010.04.13 545
992 가벼워지기 이월란 2010.04.13 568
991 나와 사랑에 빠지기 이월란 2010.04.13 556
990 비온 뒤 이월란 2010.04.13 639
989 기다림 2 이월란 2010.04.13 492
988 견공 시리즈 지진이 났다(견공시리즈 60) 이월란 2010.04.13 893
987 이젠, 안녕 이월란 2010.06.28 521
986 봄눈 2 이월란 2010.04.05 546
985 이월란 2010.04.05 574
984 물받이 이월란 2010.04.05 648
983 딸기방귀 이월란 2010.04.05 570
982 詩의 벽 이월란 2010.04.05 554
» 늙어가기 이월란 2010.04.05 523
980 봄눈 1 이월란 2010.04.05 571
979 영시집 Rapture 이월란 2010.04.05 1428
978 영시집 The way of the wind 이월란 2010.04.05 1125
Board Pagination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