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
새로운 사람 하나를 우리 선교단 신부님이 소개를 했다.
볼리비아 태생의 신학생인 안토니오인데
외방 선교 사제를 지원하여 어쩌면
우리 졸리엣 교구로 올지 몰라 이렇게 함께 선교를 하며
영어도 익힐겸 우리들과 합류하게 됐다는 설명을 해줬다.
그는
나와 같은 팀에 소속이 되여 나와 인연이 맺어졌다.
서툰 영어 이긴 했으나
우리는 곧 죽이 척척 맞아 갔다.
내가 항상 느낀 사실은
어렵게 사는 신자가 많은 나라 일수록
그들의 사제들은 훌륭한 분들이였다.
박해 시대의 우리나라 사제 김대건과 최 양업 신부처럼
그들은 자신의 양떼들을 위해
언제나 희생을 각오한 모습을 난 보았다는 이야기다.
요즈음
여기 미국 사제들이 - 성희롱 -으로 곤욕을 치룬다거나
우리나라 사제들이
분별없이 사회적인 잇슈에 뛰여들거나
미국으로 사목을 하러 와서는 더러 쓸때없는 금전 문제로
공연한 오해를 사는 사제들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만난
저 볼리비아 사제들은
자신을 자신의 양떼들에게 보다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언제나 희생할 각오가 돼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신학생에게서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인종적으로 스페인쪽 백인들이여서
출세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기꺼이 힘들고 어려운길을 택해
자신을 불사르며 볼리비아의 장래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