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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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7.09.01 19:14

애써 가꿔야 열리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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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뒷마당에는 포도. 오렌지. 레몬 같은 과실나무가 다글다글 심겨있었다. 한 주인이 오랫동안 살던 집이라 손볼 곳이 많았지만, 집을 보러온 10월 말까지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려있던 새까만 포도송이에 마음을 빼앗겼다고나 할까.


집을 산 후 몇 해 동안은 뒷마당 과실 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올해도 밤에만 출몰하는 웬 놈들이 익지도 않은 연두색 샴페인 포도를 8월이 오기도 전에 야금야금 다 먹어치웠고 까만 포도는 하나둘 단맛이 배기 시작하자 입질로 알맹이를 뭉그러트리고 가지는 부러트려 포도송이가 바닥에 뒹구는, 포도나무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전지도 해주고 거름도 주고 동물들이 근접 못 하도록 큰 망을 사다가 포도나무를 덮어씌우는 등 정성을 기울여 보았지만, 묶어놓은 망을 뚫고 들어가 온통 나무를 망가트려 놓았다. 두 손 바짝 드는 심정으로 우리 동네 새와 다람쥐는 이빨이 엄청 센가 봐 구시렁댔는데, 옆집 로사 아줌마가 너희 집과 우리 집 사이에 일곱 마리의 너구리가 떼를 지어 다닌다고 한다. 그랬구나! 너구리, 정체를 알고 나니 의아심이 풀렸지만, 떼를 지어 다닌다는 말에 괜히 오싹했다.

올해는 우리가 심어 제법 자란 무화과 열매나 좀 건져볼까 싶어 나무에 망을 씌우고 돌로 야물게 눌러 놓았다. 하지만 망 쪽에 근접한 열매를 톡톡 찍어 맛을 본 흔적, 어김없이 말랑말랑 잘 익은 것들이다. 수확의 즐거움을 되찾아 보려는 안주인과 때를 귀신처럼 알고 나타나는 동물들과의 신경전이 최고조에 이르는 8월.

8월은 집 안도 복잡하다. 동부의 딸도 한국 가족도 여름 방학이나 휴가철을 이용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만나려고 오는 이들, 반갑고 고맙다. 일상은 일단 접어두고 내 집을 찾아온 이들과 함께하는 스케줄이 엮어진다. 중요한 문학 행사와 겹쳐지는 날도 있어 일정 조절하느라 쩔쩔매기도 한다.


아무튼, 둘이 조용히 살던 집이 북적북적 요동을 치기 시작하면서 그리움이 추억의 장으로 넘어간다. 식사 준비에 빨래에 외식도 잦고 여행도 떠나고 특별한 만남이 이뤄지기도 하는, 몸과 마음 모두 분주하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만나 서로 부대끼면서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 같다. 내 집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점점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한국을 자주 나가는 편이었다. 일이 있어서도 나갔지만, 가족이 보고 싶어서가 더 많았다. 2년 전 친정엄마가 실버타운으로 입주한 후 한국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나를 반겨줄 엄마는 계시지만, 친정집이 없다. 서울 언니 집도 상황이 바뀌었다. 외손주 베이비싯 하느라 딸 집으로 출근하는 언니네도 짐 부려놓고 내 집처럼 드나들던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한국 가고 한국 가족들이 미국 오고 했던 날들이 있었기에 끈끈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나무를 심는다고 열매가 입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듯 가족도 친구도 애써 가꿔야 관계의 열매가 맺히는 것 같다.

안팎으로 시끌벅적하지만, 한량없이 풍요로웠던 8월이 가고 있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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