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12
어제:
260
전체:
293,297

이달의 작가
수필
2018.03.18 20:51

전자박람회의 미투

조회 수 61 댓글 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남편 따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전자박람회를 다녀왔다.

긴 행렬을 따라 컨벤션센터 파킹장으로 진입하는데, '쎄뇰리~' 부르는 음성이 들린다. 저쪽 차선에서 한 남자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쭉 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이십수 년 전 남편이 주재원으로 근무한 회사의 멕시칸 엔지니어 루이스, 멀찍이서 바라보는 두 남자의 표정이 어릴 때 헤어진 고향 친구 만난 듯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다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점심 약속을 맺고서야 헤어진다.

부스와 사람으로 꽉 들어찬 전시장, 부스를 빌리고 제품을 설치하고 사람을 파견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투자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오고. 육중한 기계가 탁탁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큰 부스 안쪽 테이블에는 고객과 상담 중인 듯 진지한 분위기가 감돈다.

솔직히 기계치인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그들의 비즈니스 세계가 아니라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미끼들이다. 회사소개가 새겨진 쇼핑백과 볼펜은 지극히 평범한 미끼. 특이한 디자인의 수첩, 차에 부착하는 안경 걸이, 정밀 부품을 측정하는 자, 드라이브, USB, 공, 요즘 유행하는 스피너까지 아이디어 만발이다.


전람회장의 반도 못 돌았는데 점심시간이다. 슬슬 배도 고프고, 루이스와의 약속도 있고 해서 전시장 안에 있는 카페로 갔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원탁이 하나 보여 얼른 다가가 루이스와 함께 온 두 명의 동료까지 생각해 다섯 개의 의자를 확보했다.

콜라를 마셔도 여전히 목이 마르는 뻣뻣한 피자를 함께 먹고 남자들은 다시 전시회장으로 흩어졌다. 문득, 그들의 뒷모습이 전쟁터 나가는 용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둘러보니 비즈니스가 남자들만의 영역은 아닐 텐데 전람회장의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이다.

얼마가 지난 후 돌아온 남편이 그만 가자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이다. 내 옆자리 앉아있던 백인 남자가 "돈 터치 허" 하더니 "여자 허락받고 만져야 해"란다. 근엄한 척 웃음 띤 표정을 보며 '미투'와 연관된 농담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미투 폭풍' 이 끝없이 몰아치고 있다. 백번 공감 가는 글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인권에 대한 생각의 폭이 마구 넓어지는 것 같다. 충격적인 소식에 따르는 무성한 말들, 다른 의견에는 돌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 그래서 사람들은 농담 속에 속마음을 담아내기도 하나 보다. 웃자고 한 말에 딴지 거는 사람은 드물 테니.

그런데 일상 속의 농담이 미투 운동의 본질과는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 꽉 찬 처녀총각이 주위에 많은 탓인지 이런 분위기가 자칫 사귐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봐 은근 염려스럽다. 이건 그것과 혹은 그건 이것과 다른 이야기야, 라고 해도 '분위기'가 경계를 흐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는 세월이라선지, 이전과는 색이 좀 다른 전자박람회를 다녀온 기분이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8년 3월 16일

?
  • 강창오 2018.03.19 07:04
    어쨋든 그 전자박람회에 당장 달려가 보고 싶읍니다
    Mee too 운동이 meet to good to (밑도끝도?) 없는것 같읍니다
    '인권에 대한 생각의 폭이 마구 넓어지는 것 같다' 지만
    제생각은 오리지날 인권의 의미를 벗어난 또하나의 지나친 인권남용인것 같읍니다
    진정한 피해자는 말고라도 말씀하신것처럼 선의적인 의도가 오해로 받아져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연희 2018.03.19 14:39

    강창오 선생님
    의견 감사해요.^^
    '오리지날 인권의 의미를 벗어난..' 그런 것까지도 생각의 폭 속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터질것이 터진것은 확실한데...
    시간이 이 상황을 어디로 끌고 갈까...걱정이 되네요.

  • son,yongsang 2018.03.21 09:02
    이성적 미투와 감성적 그것과는 뭔가 괴리가 있어 보여 솔직히 어떤 건 석연찮게도 느껴지더라구요. 과거 직장인 시절 아래 여직원 일 잘하면 어깨 두드려준 것도 지금 생각하면 다 추행?일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뭐든 넘치면 모자람 보다 못하니까요. 요즘 이 운동을 보며 모두가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오연희 2018.03.21 09:30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듯
    같은 행동도 다르게 해석되는 세월이지요.
    미투라는 큰 흐름이
    결혼 No 애기 No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름 붓는 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랑이 이성만의 작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 강창오 2018.03.21 10:50
    앞으로 데이트는 물론 결혼을 포함한 모든 이성관계에서 몇조 몇항까지의 규칙과 조약을세워 계약서를 주고 받고 시작해야할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몇조 몇항안에서 행동하고 또한 위반했는지 기록으로 남겨 서로 싸인받아 동의하는 그런것 말입니다. 헌데 요즘은 이성간의 미투 말고도 인종, 문화 종교등 각 다방면으로도 같은 현상을 보입니다. 짐작하거나 관습으로나 남에게 선뜻 말못합니다. 가만보면 다들 다 자기몸사리기에 급급합니다.
  • 오연희 2018.03.22 14:13
    호호...강창오 선생님...남자 대변인 같아요. ^^
    사실... 사건마다 경우가 달라서 '위드 유' 의 심정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어어...그게 그런가...고개 갸웃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암튼 실명을 '까고' 말하는 피해자를 보면...
    세상이 달라진 것은 확실해요.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0 수필 한 편의 시가 던져준 용기 1 오연희 2018.08.07 18
389 수필 꿈같은 인연 그리고 만남 6 오연희 2018.06.14 90
388 수필 경계가 없는 세계 2 오연희 2018.05.22 43
387 수필 선생을 찾아서 3 오연희 2018.04.27 47
» 수필 전자박람회의 미투 6 오연희 2018.03.18 61
385 수필 쉽지 않은 시간 후에 오는 5 오연희 2018.02.21 89
384 수필 진짜 제 모습이 가장 예쁘다 2 오연희 2018.01.24 63
383 수필 겨울 바다에서 꿈꾸는 새해 소망 6 오연희 2017.12.29 99
382 수필 '우두커니'를 거부하는 사람들 4 오연희 2017.11.30 80
381 수필 가을, 쇼핑의 계절 2 오연희 2017.11.13 50
380 수필 아름다운 마지막 풍경 6 file 오연희 2017.10.23 88
379 수필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능력 2 오연희 2017.09.25 101
378 황금빛 사막 오연희 2017.09.19 61
377 수필 애써 가꿔야 열리는 '관계' 오연희 2017.09.01 55
376 수필 '조심조심, 미리미리' 오연희 2017.08.02 64
375 수필 흠뻑 빠졌던 책 한 권 - '외로운 여정' 3 오연희 2017.07.05 102
374 사랑한다는 말은 3 오연희 2017.06.20 84
373 수필 머리 가려움증과 한국인의 정 3 오연희 2017.06.14 105
372 사랑 시 쓰기 8 오연희 2017.05.16 128
371 수필 동정과 사랑 사이 6 오연희 2017.05.12 7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