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29 02:47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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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태어나자마자 빛이 번지는 새벽하늘을 차고 올랐다.



"탄생!"



빛을 보는 순간 그는 그렇게 외쳤다. 어떻게 자신이 탄생이란 단어를 생각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 말을 어떻게 발음 할 수가 있었던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제 눈이 밝은 것을 알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엷은 오렌지 빛 아침 하늘은 조금씩 환해지며 푸른빛을 머금었고, 햇살 아래엔 크고 작은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들꽃 잎사귀에 맺힌 투명한 이슬이 햇빛을 안고 찬란히 빛을 냈다. 환희와 기쁨으로 그 위를 맴돌던 그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위대한 존재일 거라 믿었다.



한낮이 되었을 때 그는 풀숲 구석진 곳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를 맡았다. 뭔가가 부패하는 고약한 냄새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빛나던 햇살과 이슬을 머금었던 풀꽃의 향기로움을 생각하며 가만히 고개를 도리질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구나! 이렇게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다니…….”



그는 어서 그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 곳을 지나쳐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날개를 파닥이던 그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그곳으로 날아가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악취가 번지는 허공에 떼를 지어 맴돌고 있는 작은 벌레무리를 보았다.



“저것이 무엇이지? 참 볼품없게 생긴 벌레 떼도 다 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벌레무리 속으로 날아들었다. 방향을 바꾸어 돌아가려 했지만 그를 빨아 당기는 정체 모를 힘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어느 결에 그 벌레 떼에 속해 버리고 말았다. 허공을 맴돌던 벌레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혼자서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우리는 혼자서는 잘 다닐 수 없다는 걸 모르니? 도처에 위험이 널려있는 곳이 세상이야.”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이 생긴 벌레들 중에서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느새 그들을 따라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우리라니? 내가 너희와 같단 말이야?”



그는 누구에게 랄 것도 없이 소리쳤다.



“그럼 너는 네가 누구인지도 모른단 말이니?”



말소리의 주인을 찾으려고 다시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윙윙대며 허공을 맴도는 그들 전체의 말이었다.



“내가 누구라니? 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일거야.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그 위를 날아다니며 만끽할 줄 하는 위대한 존재야!”



그들이 한꺼번에 웃어 제쳤다.



“하하하! 뭐라고? 위대한 존재? 빛나는 존재? 그런데 너는 왜 우리와 함께 이렇게 허공을 맴돌고 있는 거지? 저녁이면 죽어버릴 하루살이 주제에…….”



“뭐라고? 하루살이?”



“그래! 우리는 아침에 태어났다가 저녁이면 죽는 하루살이란 말이다. 너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알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몰랐구나. 혼자 돌아다니면 자신에 대해 모르게 되지. 이렇게 무리 속에 속해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통해 내 모습을 알게 되어있어. 네가 혼자 떨어져 있게 된 건 크나큰 실수였어. 우리의 생명은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어.”



“생명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건 말도 안 돼! 나는 이제야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단 말야. 나는 절대로 하루만 살다죽는 그런 존재가 아닐 거야. 내 안에 이 벅차오르는 감성이 있는데……. 나는 너희와 다르다구!”



그는 절규처럼 외치며 그 무리를 빠져나오려 몸부림 쳤지만, 그들의 날개 짓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가운데로 점점 휩쓸려 들어갔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의 외침은 힘이 없어지고, 그는 무리를 따라 자꾸만 허공을 맴돌았다.



“저 밑을 봐! 저기 작은 들새 한 마리가 죽어있어. 아마 늑대에게 날개를 물리고 도망쳐 왔을 거야. 하지만 저 풀숲에서 죽고 말았어. 새의 죽은 몸을 들쥐들이 갉아 먹었지. 쥐들이 돌아간 다음엔 작은 벌레들이 새의 몸을 파먹었어. 냄새가 심해지자 파리 떼가 모여들었지. 지금은 그들도 돌아갔어.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남겨놓은 악취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어. 혹시 죽은 새의 몸에 남은 것이 있다면 좀 배를 채워볼까 하고 말야. 세상은 이런 곳이야. 제일 큰 존재에서부터 제일 작은 존재까지 차례로 잡혀 먹히는……. 그중에 우리는 이렇게 단 하루만 살다 떠나는 가장 미미한 것들이지. 네가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불행한 일이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빛나는 존재야! 나는 위대한 존재라고! 나는 결코 너희들과 같이 죽지는 않을 거야. 나는 보았어. 아름다운 것들을……. 죽은 새의 찢겨진 몸만 내려다보는 너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늘과 꽃과 바람을……. 내가 어떻게 너희와 같단 말이니?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거야.”



그의 울음 섞인 외침이 윙윙대는 그들의 날개 짓 사이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해가 지기도 전에 무리의 절반은 날파리에게 잡혀먹었다. 파리의 입 속에서 몸이 동강나는 동료들을 보며 그는 경악과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다. 다른 하루살이들은 아무도 그처럼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은 아직 생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하지도 않았다. 무리는 그저 숫자가 줄어든 대로 허공을 맴돌며 산다는 것의 타성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한 슬픔 속에 자신의 존재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루살이에겐 하루살이의 본능만이 어울리는 것을……. 나는 왜 그 이상의 감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아! 고통스럽다. 어서 죽어버렸으면…….”



그러나 그는 남은 생명을 위해 힘차게 허공을 맴도는 자신을 느꼈다. 그의 감성과 삶의 본능 사이에는 아무런 통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외로웠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무척이나 고독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슬픔도 몸부림도 없이 동료들이 죽어가는 동안, 어두워진 하늘의 서쪽 귀퉁이엔 한 조각의 검붉은 노을이 걸렸다. 겨우 허공에 떠있던 그의 날개에도 점점 힘이 빠졌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걸 느꼈다. 그는 애써 눈을 치뜨고 검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잿빛 하늘 한 귀퉁이에 불덩이처럼 타고 있는 마지막 노을은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나는 정말 위대한 존재였어. 이토록 미물의 몸으로 이 광대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니 나는 특별한 존재였던 거야. 내가 태어나던 아침에 빛나던 오렌지 빛 하늘, 그 꽃과 이슬과 바람……. 그리고 가슴을 채우던 그 행복감……. 나는 다 느껴보았어. 이제 저 한 조각 남은 붉은 노을의 아름다움까지도…….”



그는 스르르 눈을 감고 먼지처럼 풀섶으로 떨어져 내렸다. 굳어져 가는 그의 작은 몸 속에서 가느다란 푸른 빛 한 줄기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2001년 미주문협 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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