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14 19:17

오빠를 묻다.

조회 수 570 추천 수 2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빠를 묻다

                                                                 박경숙  


         1

산중턱 봄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검은 상복의 뻣뻣한 동정에 닿는 목 언저리가 조금씩 따끔거렸다.
슬픈 표정으로 예를 갖추고 이곳까지 따라온 문상객들의 얼굴이 하나 둘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지관과 그 노인네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것 보라니께. 산소를 비탈에 그렇게 가파르게 세우면 뒤로 물이 빠져나갈 길이 없다니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지관 양반이 그것도 몰러? 이제 어쩔 껴? 이렇게 뒤로 받쳐 산소를 파놓고 말여.”
나는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핏대를 세우는 자그마한 노인을 올려다보다가 관이 내려질 구덩이 옆에 뒷짐을 지고 선 사촌 은규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저 노인네가 누구래? 난 처음 보는 사람인데 웬 간섭이야?”
은규는 피로가 역력한 얼굴에 수염이 듬성 거리는 입가로 소롯이 미소를 띠었다.
“우리 문중 의전담당 노인네야. 시제를 지내거나 벌초를 하거나 모두 저 양반이 관리하지.”
“그래? 내게는 너무 먼 얘기 같구나. 시제나 벌초 같은 그런 단어 말이야.”
“하긴 어디 여자를 이런 일에 관련이나 시켰냐? 넌 더구나 제 나라 버리고 날아가 버린 출가외인인데…….”
은규의 눈에 잠깐 비아냥거림이 어리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구나. 난 여기서 그런 존재로구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입안에서 우물대며 벌겋게 파인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이거 봐. 지관양반! 내 말 안 들려? 산소자리를 좀 앞으로 파놓았어야 했단 말여. 뒤가 받쳐 시신에 물이 고이면 어쩔껴? 이 귀한 집안 발복을 망쳐놓을껴?”
노인네는 묵묵부답인 지관에게 삿대질을 하며 쪼그라진 몸을 언덕에서 일으켰다.
“아참! 그 어르신! 걱정마시래도 그러십니다. 윗대에 모신 분들 아래로 갑작스레 층을 만들다보니 뒤 비탈이 좀 가파르게 깎였습니다. 그건 일단 시신을 모시고 나서 손을 보아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비탈을 좀 완만하게 깎아낼 수 있단 말입니다. 누가 고인이 이리도 급히 가실 줄 알았습니까. 아직 가실 나이도 아닌데…….”
늙기는 문중노인네나 지관이나 비슷해 보였지만 지관은 말투를 공손히 했다.
“아이구! 내 속이야! 언제 뒤를 돌려 다시 손본단 말이여? 처음부터 그렇게 준비해 놓았어야지. 안 그런가? 조카님!”
노인네는 은규를 바라보았다. 은규가 난처한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기야 하지만 지금 너무 시간을 끌었습니다. 일하시는 분들 손이 워낙 느린지라……. 오늘은 이쯤하시죠. 우리 형님 얼른 자리에 눕고 싶어 관 속에서 안달하시겠습니다. 그 급한 성미 아시잖아요.”
은규는 운구차에서 내려져 아까부터 땡볕에 누운 오동나무 관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 오빠가 있단 말이지. 저 안에……. 그렇게도 펄럭펄럭 나 다니기를 좋아하던 오빠가 삼베 끈에 꽁꽁 묶인 채 흙 속에 눕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나는 울컥 울음이 다시 솟구치려 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은규를 바라보았다.
“조카님이라니……. 저 노인네 우리하고 몇 촌이나 되는데?” 은규가 피식 웃었다.
“몰라. 촌수도 헤아리지 못할 남이지 뭐. 같은 성씨라는 것밖에는……. 내년에 선산 둔덕에 문중 사당을 짓는다고 지금 돈 걷으러 온 것 아냐.”
“선산? 문중 사당?”
나는 그 말들이 낯설어 되뇌었다.
“네가 뭘 알겠냐? 출가외인이……. 더구나 뿌리도 없는 곳으로 날아간 주제에…….”
은규는 또 그 소리였다. 조금 기분이 상한 마음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나는, 은규의 키가 이렇게 컸었나 싶었다. 자랄 때는 내가 더 컸던 적도 있는데…….
문중노인이 아무리 악을 써대도 지관은 이미 파놓은 산소자리를 앞으로 당겨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깊게 파인 구덩이 주변에 벌건 흙이 둔덕처럼 쌓일 즈음 하관식이 시작되었다. 봄볕을 피해 산중턱 나무 그늘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문상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지난날 내 아버님의 생전, 은혜를 입었다는 낯선 중늙은이 하나가 성경책을 펴들고 앞으로 나왔다. 모모한 교회의 장로라고 했다. 다시 흐려진 내 눈엔 그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뿌옇게만 보였다.
아직 푸르지도 못한 산중턱에 햇빛은 하얗게 쏟아지고, 검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등이 화덕을 쪼이고 있는 듯 후끈거렸다. 곧 찬송가가 두어 곡이 울려 퍼졌다. 나는 오빠가 평소에 교회에 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어릴 때 기억으로 오빠의 책꽂이엔 검은 성경책이 한 권 늘 꽂혀 있었고, 그는 신이 나면 내 앞에서 창세기를 달달 외워대곤 했다. 슬근슬근 웃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입술을 보노라면, 벅찬 신심에 차오르는 게 아니라 그걸 외우는 재미에 빠져 있음이 느껴졌다.
“에구! 재미없어. 그만해. 그만!”
내가 다른 방으로 뒤꽁무니를 뺄라치면 오빠는 나를 따라다니며 기어이 창세기 외우기를 끝내버리곤 했다. 마치 움직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듯 어디든 날 데리고 다니던 오빠…….

찬송가가 끝나고 성경 한 구절이 봉독되었다. 뒤이어 각자 중얼대는 산만한 기도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따갑기만 하던 해가 잠깐 구름에 가려진 듯 머리 위가 서늘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은 밝다 못해 희디희게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에 하늘바탕과 구름자리가 선명치 않았다. 투다닥- 뭔가 둔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에 얼른 눈길을 내렸다. 오빠의 관 뚜껑이 열리고 있었다.
“뭐야? 탈관하는 거야?” 큰 조카 민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작지 않은 소리로 뱉어낸 내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빠의 관 뚜껑이 삐꺼덕 열렸다. 그리고 삼베에 칭칭 감긴 오빠의 몸이 관에서 들려 나왔다.
아아 오빠…… 정말 가는 거야? 정말…….
오빠의 시신이 공중에 들렸다. 운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아까부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구덩이를 파던 인부들인지, 뿌연 내 눈엔 구별되지 않았다.

“은희야! 이리 와봐. 여긴 깊지 않아.”  
오빠는 자꾸만 나를 물 가운데로 불러 들였다.
“싫어-어. 무섭단 말이야.”
“이 바보! 멱 감으러 와서 물에도 안 들어오고 그냥 갈 거야? 물이 깊으면 오빠가 붙잡아 줄 테니까 어서 이리와!”
대학생인 오빠는 키가 컸다. 그때 다섯 살쯤 되었던 내게 오빠는 대단히 큰 사람이었다. 오빠는 배까지 차오른 물 가운데에 서서 내게 손짓했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오빠의 얼굴은 시원한 이마와 우뚝한 콧날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아름다웠다.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부분의 근육이 적당히 발달한 오빠의 상체는 내가 달려가 꼭 안기기에 늘 알맞은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물위를 달려 그 멋진 오빠의 가슴으로 돌진하는 게 어쩐지 무서워 망설이고 있었다. 기승을 부리던 여름해가 슬며시 기울고, 하늘 한 귀퉁이에 분홍빛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라니까. 너 물에 들어와 보지도 않고 그냥 갈 거야? 오빠가 잡아 준다니까. 안 그러면 헤엄치는 건 언제 배워? 어서와!”
이번엔 오빠가 좀 골이 난 듯 말했다. 그래도 내가 꼼짝을 않자 그는 다시 소리쳤다.
“너 이리 안 오면 오빠 이 물속에 들어가 안 나올 거야?”
그는 정말 한순간에 물속으로 고개를 잠그더니 한동안 기척이 없었다. 나는 더럭 겁이 났다. 하늘은 어느새 반쪽이 벌게지고, 수초사이의 방아깨비가 붉어진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마치 세상이 연연한 핏물에 잠긴 것 같았다. 마음이 섬뜩해진 나는 그만 흥흥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빠! 오빠!”
점점 붉어지는 물속을 헤치며 나도 모르게 물 가운데로 나아갔다. 내 배꼽 근처에서 출렁대던 물이 금세 가슴에 닿더니 곧 목까지 차올랐다. 저절로 밀려드는 물살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나도 모르게 허우적거렸다. 허푸 허푸 몇 번인가 물을 머금다가 그만 내 머리가 꼬로록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두 팔을 뻗쳐들고 물을 삼키며 소리를 쳤다.
“오…… 오…… 빠! 오오빠!”
그러나 무엇이 잡아당기는 듯 자꾸만 머리가 처박아지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평평하고 미끈한 무엇에 내 머리가 포근히 안겨졌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내 입술을 스쳐가는 까칠한 한 줄기 촉감……. 그것은 젖꼭지 근처에 몇 가닥 수염이 돋은 오빠의 가슴이었다.
“깜짝 놀랐지?”
너무나 익숙한 오빠의 숨 냄새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 몰라! 왜 그랬어? 오빠 미워…… 흥흥…….”
물 가운데에 나를 안고 선 오빠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치며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변이 모두 붉었다. 하늘에 골고루 퍼진 노을이 냇물과 풀, 돌과 오빠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세상에 있는 것이란 있는 건 다 벌겋게 변해버린 그 여름날의 시냇가에서 나는 물기로 미끄러운 오빠의 가슴에 볼을 댄 채 흐느꼈다.
“에구! 바보! 오빠는 천하무적이야. 내가 널 물에 빠지게 그냥 둘 줄 알았니?”
내 얼굴로 은은히 쏟아지는 오빠의 그 달큰한 숨 냄새……. 나를 안고 물속을 걸어 나오는 오빠의 품에서 나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오빠가 수풀 사이에 벗어둔 내 원피스를 집어 벌거벗은 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나를 안은 채 손을 몇 번인가 바닥으로 내려 오빠의 옷과 내 신발까지 챙기는 걸 알았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오빠가 방둑의 비탈을 오르며 조금은 내가 무거운 듯 헉헉거렸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내 어깨께로 햇빛이 물러간 저녁 공기가 오소소 느껴졌다. 방둑을 오른 오빠가 나를 한 번 추슬러 앉았다. 그는 방둑과 신작로 사이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볼이 찰싹 달라붙은 오빠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오빠는 언제나 그렇게 소리 나는 북을 가슴에 품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부드럽고 연한 오빠의 북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를 좋아했다.

노곤히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북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을 떴다. 오빠는 웃통을 벗은 채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들고, 나는 방구석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열린 방문으로 내다보이는 마당이 새까맸다. 나는 선잠을 깬 짜증에 칭얼거리며 오빠의 가슴으로 올라가 엎어졌다. 내 무게에 눌린 오빠의 몸이 놀란 듯 잠시 움찔거렸지만, 그는 곧 고른 숨을 내쉬었다. 오빠 가슴의 북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나는 다시 소르르 잠으로 가고 있었다.
“에이구! 이제 다 큰 것이 어찌 그리 제 오빠를 원숭이처럼 올라타누? 그 버릇 언제나 고쳐질까.”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제 동생 애기 때부터 그렇게 버릇 들여놓은 은철이 탓이지. 내버려 둬. 저렇게 나누는 오누이 정도 얼마나 가겠어. 계집애 좀 커서 가슴만 도드라져봐라. 제 오빠 근처에 얼씬도 안 할걸.”
아버지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오빠의 북소리 속에 깊게, 깊게 잠이 들어갔다.


         2

“허어 참! 조심하라는 데도…….”
문중노인네가 또 간섭했다.
“귀하디귀한 우리 조카님 마지막 가는 길 잘 모셔야지. 어찌 그리 기우뚱 거리나?”
오빠의 시신이 구덩이에 묻어놓은 석관 속에 내려지고 있었다. 삼베 두건으로 머리를 싸고 미이라처럼 온몸을 감아 열두 매듭 동여맨 오빠…….
“아이고! 민이 아버지! 민이 아버지!”
그 순간 이제껏 너무 태연하다고 생각했던 올케가 통곡을 터트리고, 조카 민이와 석이는 멀뚱멀뚱 제 어미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좀처럼 감정표현이 없던 올케의 돌연한 통곡에 놀란 사람은 여럿이었다. 은규도 생소한 듯 사촌형수를 바라보았다. 인척 몇 사람이 올케의 통곡소리를 따라 막 흐느끼려 할 즈음, 하관예배를 인도하는 그 장로라는 사람이 주변을 정리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고인은 영원한 안식의 자리로 내려졌습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이 순환의 진리 앞에 우리는 슬퍼하기보다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찾아든 고 김은철 성도를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막 여기 편안히 자리한 김은철 성도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날 우리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셨던 고 김성곤 선생의 아드님으로 선친 못지않은 봉사심을 갖고 이바지 하셨던 바, 우리는 고인을 선친과 더불어 봉사의인으로 추대하여 우리 고향에서 기억해야 할 인사라 생각됩니다. 그 나이 아직 이른 겨우 이순을 넘겨 세상을 떠났으나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 우리는 슬퍼하기 전에 성도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해야 하는 것이며…….”
늙은 장로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올케의 통곡소리는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고인의 안식처에 흙을 뿌리는 취토(取土)가 있겠습니다. 상주인 두 아드님부터 시작하시고 그 다음은 미망인……. 이런 순서로 이어지겠습니다. 성도들은 찬송가책을 펼치시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해 주기기 바랍니다.”
계속되는 장로의 목소리에 두 조카가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조금 아까는 축복하라더니 지금은 위로라……. 영 헷갈리네……. 기쁨이 아니라 역시 슬픔이란 말이지?
나는 공연한 심술이 울컥 치올라 입술을 실룩거리며 올케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제 아비를 닮아 키가 훤칠한 민이가 흙을 한줌 집어 붉은 만장이 덮인 석관 위로 뿌렸다. 녀석의 얼굴엔 슬픈 기색도, 그렇다고 좋은 곳으로 간다는 아비를 축복하는 기색은 더더욱 없었다. 아비의 임종 전부터 시작해 삼일장을 치르느라 거의 날밤을 샌 날수만큼의 피로가 젊은 그 애의 몸 구석구석에서 서려 있었다.
둘째 석이가 취토를 하고 물러가자, 튼실한 체구의 올케가 흙을 한줌 집어 오빠의 관 위로 뿌렸다. 손등으로 코끝을 문지르며 물러나는 올케 뒤에서 나도 흙을 집어 들었다. 땅 깊이에서 파 올린 흙은 봄 햇살의 따가움에 아랑곳없이 손바닥을 선뜩하게 했다. 오빠의 관 위로 흙을 뿌렸다. 붉은 흙은 살포시 불어온 바람에 비껴 흩날리며 만장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동네 병원 진료실 의자에 앉아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라며, 하얀 커튼 너머로 들어간 오빠는 한참이 지났는데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 속에 주사바늘을 들고 커튼 사이를 들락거리던 간호사 언니의 하얀 가운을 바라보며, 내가 울지 않고 잘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냇가에서 멱을 감던 그 여름 노을 녘보다 좀 자라있던 때 같았다.
흰 무명 커튼 너머엔 진료용 침대가 있고, 오빠는 분명 거기에 누워 있을 것이었다. 나도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파 그 침대에 누워본 적이 있지만, 오빠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날 놀려먹기 좋아하던 의사 선생님은, 잔뜩 긴장한 내 몸 위로 차가운 청진기를 몇 번 대보다가 배를 꾹꾹 누르거나 등을 톡톡 두들기곤 했다. 그가 두 손을 흰 가운 주머니에 찌르고 커튼 밖으로 나가고 나면, 간호사 언니는 주사기를 등 뒤에 감추고 들어와 내 엉덩이를 딱 때리며 순식간에 침을 놓아 기어이 날 울렸다. 그런데 오빠는 뭘 하는 걸까. 혹 주사를 안 맞으려고 빤질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든 날 데리고 다니기 좋아하던 오빠는 그날 아침도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때도 이런 봄날이었는데, 학생이었던 오빠가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내려왔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그 봄날, 오빠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들어서 커튼 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진료실 구석에 놓인 딱딱한 나무 의자에 한참을 앉았던 나는 기다림에 지쳐 크게 하품을 머금었다.
“은희야! 왜 여기 있어?”
돌아보니 ‘푼수동자’란 별명을 가진 오빠 친구였다.
“응? 오빠가 저기에!”
나는 하품 끝에 눈 밑으로 비어져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으며 진료용 침대주변을 에워싼 하얀 커튼을 가리켰다.
“은철이가 저기에?”
푼수동자는 머뭇거림도 없이 금세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또 금세 커튼을 젖히고 나왔다. 그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너희 오빠 말이야.”
그는 양손을 길게 말아 쥐더니 아래위로 그것을 포개어 내게 보여 주었다. 내 눈에 푼수동자 오빠의 손짓은 무슨 굴뚝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킥킥대며 곧 진료실을 나가 버렸다. 갑작스런 궁금증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간호사 언니는 벌써 몇 번째인지 소독거즈가 담긴 스테인리스 기구를 들고 커튼 사이를 들락거렸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막 커튼을 들치고 들어가려는 간호사 언니의 꽁무니에 바싹 붙어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빠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하얀 가운이 오빠의 하체를 막고 있었지만 나는 분명 이상한 것을 보았다. 오빠의 허리 아래, 그러니까 사타구니에 불쑥 올라선 그것을……. 오빠 책상에 있던 20센티 자보다는 조금 짧은 것 같은, 어쩌면 꼭 그만한 길이인 듯한 무엇이 하얀 붕대에 칭칭 감긴 채 불쑥 올라서 있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선 간호사 언니의 엉덩이께에서 커튼은 그만 닫혀 버렸다. 나는 얼른 의자로 돌아와 태연한 척 앉았지만 자꾸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잠시 후 오빠는 걸음을 어기적거리며 커튼을 걷고 나왔다. 병원에 들어설 때처럼 오빠는 내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섰고, 정말 느리고 힘든 걸음으로 집까지 가는 동안 오빠는 단 한 번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조그만 내게 의지하기 위해 오빠는 날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일까. 나는 오빠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쉴 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서 본 것을 비밀에 부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오빠는 그 뒤 한동안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군에 입대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중에서야 오빠가 군 입대를 앞두고 나름대로의 할례식을 그렇게 치러냈다는 걸 알았다.

가족들의 취토가 끝나자 조객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왔다. 빠르게 흙을 뿌리고 지나가는 그들 사이에, 이제는 늙수그레해진 푼수동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매에 참으로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늘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말을 잘 뱉어놓아 그만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했다. 그가 손에 묻은 흙을 털며 은규와 내가 잠시 햇빛을 비켜 선 나무그늘로 다가왔다.
“은희! 오랜만이여! 참말 은철이가 아까운 나이에 죽었구먼. 그런데 은희 너 결혼은 했던가?” 내가 뭐라 대답할 말을 잊고 있는데 은규가 킥킥 웃었다.
“아니 형님!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서 결혼 운운하세요? 조금 있으면 아이들 결혼시킬 나이라구요.” “아이구! 그려? 난 은희는 항상 어린애 같아서 말여. 왜 내 막내 동생 고려대 나온 놈, 그놈을 네 신랑감으로 권했더니 도도하던 너희 아버님 대답도 안 하시더라. 그래, 은희는 내 동생보다 잘난 남자한테 시집갔남?”
푼수동자는 마치 어제일이라도 되는 듯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어지간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럼요. 형님! 은희는 좋은 남자 만나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니까요. 아무렴 형님 동생에 비할까?” 은규가 빈정거리자 푼수동자는 뭔가 쓴 것을 삼킨 듯한 표정으로 조객들이 몰려선 곳으로 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규가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은희야! 어떻게 해결은 되었니? 너 갈라선다던 소문이 있던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얗게 눈이 부신 봄 햇살 속에서 검은 무더기의 사람들이 벌겋게 파헤쳐진 흙 주변을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는 것을 아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도 취토가 끝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규의 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3                

“왜 당신은 이렇게 글씨를 못 써? 울 오빠는 얼마나 명필인데…….”
“뭐? 글씨가 밥 먹여 주냐? 뻑 하면 오빠 타령이야? 차라리 오빠하고 결혼하지 그랬니?”
그는 늘 나를 그렇게 타박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오빠를 핑계 삼아 그를 타박 했던 지도 모른다. 결혼을 앞두고 있을 무렵 오빠는 날 앉혀놓고 조금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은희야! 괜찮겠니? 알게 된지도 얼마 안 되는 남자한테 덥석 시집가 버리는 것 말야. 아무리 괜찮은 자리에서 중매가 들어왔다지만 네가 싫으면 거절해도 돼. 아버지 눈치 보지 말아라. 나는 왠지 그 녀석이 맘에 들지 않는구나.”
나는 오빠의 말에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강물에 흘러 내 앞에 당도한 미지의 상자를 물에서 건져 내 품에 안을 수밖에 없다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 상자를 열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운명의 강을 따라 내 앞에 온, 겉모습이 화려하고 튼튼해 보이는 그 상자를 그냥 흘려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재빨리 이 상자를 낚아채 운명의 강이 흐르지 않는,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모든 것이 정지돼 더 이상 흐르지도 바뀌지도 않는 그런 삶 안으로 도망쳐 버리라고.
내가 그 상자를 여는 걸 못마땅해 한 사람은 오빠뿐이었다. 어쩌면 오빠는 나보다도 더 예리하게 내 운명의 상자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온 온갖 희로애락처럼 내 상자 안에도 그런 것들이 가득했다. 서늘하고 끈적한, 찝찔하고 달큰한, 어둠과 빛이 뒤엉킨 그런 바람이 상자 안에서 불어나왔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온 삶, 오빠가 올케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런지 조금씩 발버둥 쳤다.
“당신 다리는 너무 미끄러워. 잠자다 내 종아리가 당신 허벅지를 스치면 잠결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 뭐야? 우리 오빠 다리는 털이 부슬부슬했는데……. 난 남자들이 다 그런 줄 알았거든.”
“아니 이 여자가? 이제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 놈의 오빠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적한 마음속을 그의 고함소리가 태풍처럼 할퀴고 지나가면, 나는 냉장고를 열고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가슴 속에 불이 붙는 듯한 이상한 절박감에 벌컥벌컥 찬 맥주를 들이켰다. 입가에 흘러내린 맥주거품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는 검은 털이 굽슬굽슬하던 오빠의 긴 다리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 오빠의 그 원시인 같은 다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꼭 그것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오빠는 늘 책을 읽고 있었다. 뭐든 읽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듯 그는 늘 서점을 기웃거려 책을 사 모았다. 오빠가 읽고 난 책은 언제나 내가 읽고 나서 책꽂이 꽂아 놓았고, 뭔가 쓰기를 좋아하는 내 버릇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정반대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TV 문학관’을 방영하는 날이면 그는 졸리움에 연신 하품해대며 내게 중얼거렸다.
“뭐가 어쨌다는 거지? 당신 저 내용 해석 좀 해봐.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가 그렇게 웅얼거릴 때마다 나는, 내가 기어코 상자를 잘못 열고 말았다는 자괴감에 고독해지곤 했다.
“책 좀 읽어라. 읽어! 우리 오빠는 책벌레인데…….”
버릇처럼 내뱉는 내 말을 그는 또 버릇처럼 용납하지 못했다.
“뭐? 또 오빠? 그래! 네 오빠가 뭐가 그리 잘났니? 도대체 내가 네 오빠보다 못난 건 또 뭐야? 응?”
나는 한밤중에 내어지르는 그의 고함소리를 뒤로한 채 어느 때부턴가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 모니터 화면에서 줄줄줄 이어지는 글자들 속엔 언제나 똑같은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내 상자를 잘못 열었어요. 나는 내 상자를 잘못 잡았다구요. 조금 더 기다려 다른 상자를 잡아야했는지, 아니면 아예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차라리 바위에 부딪쳐야했는지도 몰라요. 찢어지고 망가져도 내 가고 싶은 대로 그렇게 말이죠. 아아,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었어요.

“은희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도 저기 차양아래에 가서 점심 한 술 뜨고 오자.”
은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니, 차양아래 돗자리에 앉은 조객들이 일회용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으응. 그래.”
선잠을 깬 듯 어눌한 내 대답을 듣던 은규가 슬며시 나를 바라보았다.
“너네 거기서 사는 건 어때? 살만하니? 매제 사업은 여전하고…….”
은규는 제가 나보다 이틀 먼저 태어난 사촌이라고 세 살이나 위인 내 남편을 늘 매제라 불렀다.
“사업? 뭐 사업이랄 거나 있니? 자기 은행구좌 관리하는 거지 뭐. 사실 그렇게 사는 사람, 미국서는 죄인이야. 거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사는 나라란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살면 되는 거지 뭐.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너희 부부 말야.”
“뭐가?”
나는 은규와 나란히 산비탈을 걸으며 맞은 편 산골짜기에 내린 검은 그늘을 바라보았다. 좁고 길게 내려온 골짜기의 그림자가 가파른 산마루를 더 뾰죽하게 보이게 했다.

“뭐하는 거야? 잠 안자고 또 뭐해? 그 놈의 글 써서 밥이 나오냐? 돈은 다 내 돈 갖다 별짓 다하는 주제에! 돈 한 푼 안 나오는 글이나 쓰는 네가 작가야? 작가냐구? 남편은 매일 밤 홀아비 만들어 놓고 말이야. 어서 이리와. 오늘밤 당신 특히 섹시하게 보이는데!”
내 손목을 잡아끄는 그의 눈빛이 음흉하다고 생각된 찰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는 얼결에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며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놈의 여편네가? 야! 네가 무슨 거룩한 성녀라도 되냐? 내 참 더러워서……. 됐다! 됐어! 너희 오빠와 함께 그 고상한 피 받은 너는 그렇게 고상하게 살다 죽어라! 골통이 빈 나 같은 놈 싫단 말이지? 네 오빠 같지 않아서……. 야! 겨우 밥술이나 먹고사는 시골서생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너 지금 입고 있는 그 잠옷 누가 사줬어? 네가 빅토리아 시크릿 잠옷 입고 싶다고 해서 내가 사준 거잖아. 그리고 너 속에 입고 있는 그 면 팬티 그거 누가 사다준 거야? 속옷은 한국 것이 질이 좋다고 해서 내가 서울 갔다 오면서 사다준 것 아니야? 네 핸드백, 네 구두 또 너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는 것 좋아하잖아. 내가 그거 다 받아주고 챙겨주었어. 네 오빠가 양말 한 짝이라도 사주었니? 응? 그런데도 매일 오빠타령이야? 더럽다 더러워!”
얼굴이 벌게진 그가 속사포처럼 한 무더기의 말을 터트려 놓을 즈음이면, 나는 그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짧으면 사흘 건너 한 번씩, 좀 길면 일주일에 한 번꼴로 치러지는 내 삶의 진풍경이었다. 그가 방문을 쾅 닫고 침실로 들어가 버리면, 나는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흑흑 흐느끼다가 컴퓨터를 켜놓은 채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잠이 들었다.

“너 글 쓰는 일은 잘 돼? 네가 그냥 평범한 여자로 살리라는 생각은 안했어. 뭔가 너만의 일을 할 거라 생각했지. 어릴 때부터 특별했던 너의 정확한 기억력, 풍부한 감성, 깍쟁이 같았지만 사실은 다정하고 정이 많던 네가 어떤 일을 꼭 할 거라 믿었지. 그러나 우리 집안에 문사가 없어 네가 작가가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어.”
차양 아래 도착하여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은규는 피곤한 듯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솟은 땀을 닦았다.
“작가는 무슨? 음지의 버섯 같은 거지 뭐.”
시큰둥한 내 말에 그가 이마를 문지르던 손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버섯이라니……. 이해가 안가는 말이구나.”
“뿌리도 없이 날아간 홀씨가 낯선 땅에 떨어졌지. 양지에 떨어진 홀씨들은 당연히 말라죽고 어찌어찌 축축한 음지에 떨어진 홀씨 하나가 버섯을 피웠어. 몰골은 별 볼품없이 초라해도 다행히 식용버섯으로 피었지. 참말 다행이야. 겉모습만 화려한 독버섯으로 피었더라면 그냥 여러 사람 해쳤을 텐데……. 내가 초라해도 식용버섯으로 핀 건 다행이었다고.”
“하아! 그러니까 네가 글 쓰는 일이 버섯을 피우는 것과 같단 얘기야?”
뭔가 엉뚱하다는 표정을 짓는 은규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뿌리가 없잖아. 여기에 이렇게 뿌리를 두고 나 홀로 절단 당한 채 떠나간 그 곳에서 내가 자생하는 길은 홀씨식물이 되는 것이었어. 남의 나라 땅에서 내 나라 말로 글 쓰는 일, 당연히 음지의 일이야.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그 나라의 음지인지도 모르지만.”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은규를 보며 나는 더 하고 싶은 다음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나는 밤마다 살그머니 버섯으로 핀단다. 밤마다 요화로 피기를 바라는 그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더니 어느 땐가부터 그 방을 아예 텅 비워버렸지. 사실, 한 사람의 부재는 외롭기는 하더라. 뿌리가…… 뿌리가 없는 곳이었기에. 하지만 난 결정한 거야. 요화로 피기보다는 버섯으로 피겠다고……. 내가 잘한 걸까.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챙겨들고 장지까지 따라온 도우미들이 일회용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날라 왔다. 떡과 돼지고기 편육, 홍어회와 잡채, 생선전까지 푸짐한 접시를 내게 건네는 은규의 손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터져 나오려는 놀라움을 황급히 틀어막아야 했다. 은규의 오른 손 검지가 한 마디가 잘려나간 채, 뭉툭하고 짧은 손가락이 일회용 접시 가장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가 무안해 할까봐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일부러 접시에 코를 박고 먹었다. 봄 햇살 속에 미지근해진 음식들은 입안에서 아무 맛도 만들어 내질 못했다. 비행기 여행의 여독과 장례의 피로함에 내 혀는 무딜 대로 무디어져 있었다. 은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침묵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참 오빠를 묻어놓고 나는 이렇게 먹고 있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나무젓가락으로 돼지고기 편육을 입에 우겨넣던 은규가 피식 웃었다.
“걱정마라. 너 묻어놓고 나도 이렇게 먹을 테니까.”
“어쭈! 나보다 오래 살 자신이 있나보지? 너 그거 알아? 여자들이 더 생존에 강하다는 거…….”
“그래. 그럼 나 묻어놓고 네가 신나게 먹던가.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긴 하다. 하긴 이 험한 세상에서 남자들은 더 쉬이 무너지지. 은철 형님처럼…….”
말을 해놓고 나니 미안한지 은규는 잠시 먹기에만 열중했다. 식사를 마친 조객들이 등 뒤에서 하나 둘 차양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창 봉분을 다지고 있는 산소를 뒤로하고 앉아, 맞은 편 산자락을 바라보는 은규와 내 뒤로 잠시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우두커니 빛을 등진 어두운 앞산을 바라보았다.
“저 산이 우리 집 마당에서 보이는 진악산인가? 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진악산 정기가 다 쏟아진다고 하셨는데……. 산의 정기 받고 자랐으면 좀 오래나 살 것이지. 왜 그리 일찍 가버린 거야. 뭐가 급해서…….”
“그러게. 하긴 형님 성격이 원래 좀 급하긴 하셨다. 뭐든 속성으로 치러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으니……. 하늘나라도 남 앞질러 가고 싶으셨던 거야. 와병 중이란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내 기분을 맞추려고 우스개 소리처럼 말을 쏟던 은규가 슬며시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음식이 절반이나 남은 접시를 돗자리 위로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은규야! 우린 모두 망가지고 있는 걸까? 너도 나도 말야. 그리고 오빠는 망가지고 망가지다 결국 떠나신 걸까? 나는 멀리 날아가 음지식물이 되고 너는……. 저기…… 네…… 손, 손가락…….”
나는 기어이 은규의 잘려나간 손가락을 언급하고 말았다. 은규는 음식접시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등 뒤에선 또 문중 노인네와 지관이 입씨름을 하는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그쪽으로 갈 양으로 은규와 나는 먹다 남은 음식 접시를 그대로 둔 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4

“아니 윗대에 모신 분들보다 봉분을 더 크게 만들면 어쩔껴? 이건 안 되는 일이여. 뗏장을 입히기 전에 좀 깎어내야 혀."
점심 자리에서 소주를 한 잔 걸친 듯 얼굴이 벌게진 문중노인네가 주름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아참! 어르신 다 알아서 한다니까 그러십니다.”
술기가 올라 있기는 지관도 마찬가지였다. 불콰한 얼굴에 애써 노기를 가라앉히는 그의 눈썹께가 실룩거리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산소를 두른 대리석 문양도 윗분들보다 너무 화려한디 봉분까지 올리면 윗분을 모독하는 거여. 깎어, 깎어 내리란 말여.”
문중 노인네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지관 앞에 버티고 서서 뒷짐을 졌다. 삽을 들고 일을 하던 일꾼 하나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연장을 던져놓고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홱 벗어 던졌다. 흙이 묻은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물며 그늘로 걸어가는 일꾼은 뜻밖에도 은발의 노인이었다. 연배가 악을 쓰는 노인네나 지관이나 다 비슷해 보였다. 그가 일손을 놓자 다른 일꾼들도 모두 그를 따라 하기라도 하듯 수건을 벗어던지고 그늘로 갔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노인들이었다.
“어쩐지 일손이 더디더라니…….”
홀로 중얼거린 말에 은규가 대꾸를 했다.
“지금 시골에 이런 일을 할 젊은이가 어디 있기나 해야지. 다 도시로 떠났어. 우리가 옛날에 떠났듯이……. 이제 노인들만 남았어. 이게 현재 우리나라 실정이야.”
“그렇구나.”
“힘든 일은 모두가 안 하려고 해. 인건비는 비싸고……. 나처럼 지방의 영세제조업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쓰기도 용이하지 않더구나. 사장인 내가 직접 기계조작을 할 수밖에. 이 손가락…… 기계에 잘렸어. 내가 하는 환풍기 제조공장,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편이지. 그런데 그 환풍기 날개를 잘라내고 남은 알루미늄 조각들이 좀 아까웠던 거야. 다듬어 팔면 돈이 되겠다 싶어 내가 직접 하다가……. 아차, 한 순간이더라. 금방 팔딱거리며 잘려나간 손가락이 기계 귀퉁이에 끼어 찾을 수가 있어야지. 금방 찾기만 했어도 봉합수술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 오늘 너를 이렇게 놀라게 하지 않아도 됐는데 말야.”
은규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나 한 마디가 잘려나간 오른쪽 검지를 감싼 그의 왼손이 살며시 떨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붉은 흙더미로 솟아오른 오빠의 안식처를 바라보았다. 그 앞에서 지관과 노인네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좀 전 보다는 조금 비켜간 햇살이 그들 사이로 부서져 내리고, 위쪽 언덕 부모님의 산소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백일홍 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힌 것이 보였다. 새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나뭇가지 사이로 재빠르게 날아올랐다. 봄을 찾아온 제비인지 아니면 산새인지 구별하지도 못하게 빠른 속도였다. 백일홍 가지가 떨고 있었다. 벌어진 가지 사이로, 아침보다 좀 푸르러진 듯한 봄 산등성이에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괜찮아. 은규야! 나 놀라지 않았어. 그냥, 마음이 아파서……. 하긴 나도 그래. 뭔가 나의 한 부분을 세상에 상납하고 사는 기분이야. 돌아오는 대가도 없이. 밤새 그늘에서 글을 쓰지. 그건 실제의 그늘이기도 하고 상징적인 그늘이기도 해. 아침이면 거기에 버섯이 하나 돋아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먹음직한 버섯 말야. 그것을 작은 세상에 내보내지. 하긴 그 세상이란 것이 또 다른 그늘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민신문에 내가 쓴 글이 버섯으로 피어나고 사람들은 냉큼 그것을 따먹어. 그들은 배가 고프거든. 대부분 영혼의 배가 주려있어. 누가 그러더구나. 이민사회 사람들 다 정상이 아니라고. 어딘가는 다 정신이 나간 허전한 사람들 같다고 말야. 하긴 그래. 본국의 빠른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주류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어. 그 틈새에 낀 사람들은 내가 밤새 피워낸 버섯을 냉큼 따 한 순간에 먹어버리지. 어떤 사람들은 그 버섯 보기보다 맛이 괜찮군 하기도 하지만, 혹자는 뭐 맛이 이따위냐고도 하겠지. 그래도 말야. 내게는 기쁨이 있어. 그게 뭔지 아니? 먹힘의 기쁨이랄까. 나를 내어주는 기쁨 말야. 그래, 은규 너도 네 나름대로 너의 한 부분을 세상에 상납한 것이야. 제물처럼……. 신은 인류의 제물이었다는 예수의 피에 버금하는 어떤 다른 피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건 아닐까. 작게 크게 누구에게든 말야.”
길게 이어져 나온 내 말에 은규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떨리던 그의 왼손이 아직도 오른쪽 검지를 감싼 채 이제는 고요히 정지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이고! 우릴 이렇게 내깔려 둘껴? 저 양반들 입씨름 언제 끝날지 모르는디 우리도 그만 손 놓고 내려 갈라요.”
일꾼 중 한 노인이 난감하게 선 올케를 바라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잖아도 일그러졌던 올케의 얼굴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아휴! 아자씨들! 정말 죄송해유. 잠시만 기다려 줘유. 내 일당은 잘 쳐 드릴테니께. 점심도 시원찮게 드신 것들 같은디 자장면이라도 시켜드릴께유. 야! 민아! 석아! 거 핸드폰 좀 쳐라. 요 아래 큰 거리에 중국집 있잖여. 자장면이랑 탕수육이랑 좀 넉넉히 시켜라.”
올케의 고함소리에 양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던 민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는! 누가 이 산중턱까지 자장면을 배달해요?”
“배달료 따로 쳐준다고 하면 된다. 올라오는 길이 험하지도 않은데 뭘. 어서 전화해 봐.”
민이는 하는 수 없이 핸드폰 홀더를 펴고 번호를 눌렀다. 뜻밖에도 중국집에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달을 해주겠노라고 했다. 아마도 적지 않은 매상을 놓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올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거봐!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여. 야! 석아! 저 아래 점심 먹던 데 내려가서 소주 남은 것 있으면 모두 갖고 와라. 느 아버지 모셔주는 이 아자씨들 소홀이 대접하면 안 된다.”
석이는 조금은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비탈을 내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 은철이 형님 그래도 아들 둘은 잘 남겼구나.”
"그래. 뭔가 남기고 떠나야 하는 것, 그건 인간의 의무 아니야? 오빠는 이제 가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아이들이 저만큼 자랐으니 자신은 더 남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다 그런가 봐. 이름을 남기거나 자식을 남기거나 자기 흔적을 남기려 해. 어쩌면 말야. 내가 사는 곳 거기 사람들은 그 흔적에 대해 더 집착하는 것도 같아. 왜냐면 대부분은 뿌리가 없는 이민 1세대거든. 잘 먹고 잘 살아도 뭔가 근거 없는 삶에 대해 흔들리고 불안한 사람들……. 그래서 대부분 목소리가 크지. 자기 존재성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 어디서든 자기를 확인하려 하지. 나서고 떠들고……. 그건 이민사회에 비일비재한 일이야.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익명이니까. 근거의 익명이란 말이지. 사실 자기 이름을 한국말로, 영어로 내세워도 그들에겐 늘 뿌리의 익명성이 외로움을 주지. 나 그거 지금 깨달은 것 같아. 여기 고향 땅에 내 뿌리를 아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서 있기만 해도 왜 마음이 이리 포근해 지는 걸까? 집 마당에서 보이던 저 앞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져.”
내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은규가 잘려나간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내게로 눈을 들었다. 그의 눈이 젖어 있었다.
“가엾은 것! 뿌리를 잘랐다는 네 말에 내 잘린 손가락이 무색해 지는 구나.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잘렸는데 싶어서 말야. 너는 네 근거를 잘라내고 이방의 나라 음지에 앉아 버섯으로 피어 매일 세상에 먹히는데, 내 손마디 하나 잘라 바치고 내가 이렇게 온전히 살 수 있다면 너보다 내 삶이 편안한 것 같아 좀 미안하구나.”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뭐지? 네 손가락을 잘라 바친 대가, 날마다 내가 버섯을 피워 바치는 대가 말야.”
나도 모르게 불거져 나온 음성에 은규가 웃었다.
“네가 말했잖아. 먹힘의 기쁨이라고……. 피동의 기쁨 말야. 그 기쁨의 감지는 나보다 네가 더 감이 빠른 것 같은데 뭐. 난 네 말을 듣다가 여기서 문득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울컥한 것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빠의 초상을 치러내야 하는 장례일정의 긴장감 속에 꾹꾹 눌려 있던 슬픔이 이제야 터지려하는 지도 몰랐다.

“힘들면 언제고 돌아와. 내가 너 밥 한 끼 못 먹여주겠냐. 그 녀석 또 성질부리고 그러면 이리로 와. 오빠랑 책이나 보며 살자꾸나.”
오빠는 병석에 누웠다면서도 전화를 통해 그렇게 말했다. 가만가만한 오빠의 목소리 속에 먼 옛날의 아스라한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빠 가슴의 북소리…….
나는 언젠가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잠이 드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니까 내가 몸이 자라 더 이상 오빠 가슴에 엎어져 잠이 들 수 없게 됐을 때 부터였을까. 뭔가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있어야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늘 그런 내 버릇을 타박했다. 도대체 시끄러워 잠이 들 수가 없다고, 제발 음악을 꺼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 나는 소형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웠다. 또 시작이냐며 고함을 치던 그는 으레 방문을 쾅 닫아 버리고, 방안에서 웅얼대는 그의 불평소리가 흐르는 음악 사이로 들려왔다.

“그래서 넌 어떻게 된 거야? 네 남편하고는?”
은규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물었다.
“왜? 내가 혼자되었음 근사한 홀아비라도 소개시켜 주려고?”
농지거리처럼 말했지만 가슴 한가운데가 아파왔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누르며 눈을 들자 민이와 석이가 위 언덕 제 조부모님 무덤가에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은규의 토막 난 손가락을 잡았다. 잘려나간 마디 끝에 둥글게 살이 차오른 짧은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미끄러졌다. 나는 손을 다시 펴 은규의 오른 손 전체를 꽉 잡았다.
“우리 저기 올라가 보자. 오늘 오빠 모신다고 부모님께는 인사도 못 드렸네.”
은규는 내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뿌리친 채 따라왔다. 옆으로 난 비탈길을 올라 잘 정돈된 부모님 산소 앞에 이르렀다. 가까이서 보니 백일홍 꽃들이 하나 둘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민이와 석이가 제 할아버지의 비석 앞에 섰다가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고모! 기억하지? 여기에 할아버지가 우리들 이름 다 새긴 것…….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비문을 써놓고 가셨잖아. 그러니까 고모부 이름까지 있는데…… 고모 그 이름 파내고 싶어?”
이제 스물두 살 석이가 장난을 치듯 빙글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막 아비를 잃은 것이 어찌 내게 농을 걸 수 있는지 싶었지만, 우리 삶 안엔 슬픔과 즐거움의 자리가 늘 한 순간에 준비돼 있는 것도 같았다. 석이는 모처럼 만난 내가 반갑고 좋은 모양이었다.
“뭘 파내? 역사를 왜곡시키면 안 되는 거야. 항상 거기에서 더 큰 문제가 생기거든.”
팔짱을 끼고 선 민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나는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조카가 자랑스러워 가슴에 기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맞아. 그건 민이 말이 맞다. 아픈 과거도 다 우리의 일부란다. 오늘의 이 삶을 있게 한……. 우린 때로 잘못된 과거에 대해 상을 주어야해. 그것을 통해 오늘의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면 말야.”
설교조의 내 말투에 아이들이 둘 다 소롯한 웃음을 머금었다. 내 말이 그럴듯하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우습다는 표현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흘러간 세월 속에 광택이 잦아든 아버지의 비석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봉사의인 김성곤, 재물과 정신을 사회에 환원한 환원가. 본관은 경주 김 씨로 슬하에 은철 은희 남매를 두었으며, 은철은 밀양 박 순영를 맞아 민이, 석이를 두었고, 은희는 김해 김…….
나는 비석 읽기를 그만 두었다. 결국 강물에 떠내려 와 내 앞에 머물던 그 삶의 상자를 덥석 집어든 건 내 잘못이었다. 그것은 더 흘러가 다른 곳으로 가야했는지도 몰랐다. 겁도 없이 열어버린 그 상자 안에선 늘 불협화음의 고성의 흘러나왔고 뼈가 시린 찬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외형에 화려하게 박혔던 보석들도 세월 속에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탄탄하던 모양새가 헐거워진 것은 물론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상자를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운명의 강은 세월 속에 이끼가 낀 채 내 앞을 흐르고 있었고, 낡아버린 상자를 그 안에 놓아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놓여난 상자는 조금씩, 조금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어서들 내려와유. 자장면 도착했어유.”
올케가 고함을 쳤다. 정말 언덕 아래엔 두 명의 배달원이 철가방에서 음식 접시를 쉼 없이 꺼내놓고 있었다.
“참 산소에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다니…….”
점심 후 돌아간 조객들을 빼고, 그곳에 남았던 사람들이 모두 음식접시 근처로 우르르 몰렸다. 오빠는 무거운 흙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나는 그 옆에서 자장면을 후르륵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앉은 자리로 그늘이 밀려들었다. 해의 위치가 바뀌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늘에 잠겼던 건너편 산봉우리로 반짝 볕이 몰려가는 게 보였다. 등덜미로 조금씩 한기가 느껴져 왔다.
“얼른들 드시고 일을 끝내야지요. 이러다 해 지겠어요.”
자장면을 막 삼킨 내가 한 마디 하자, 곁에서 탕수육을 우물거리던 지관이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니 이 댁 따님 같은디 윗 분 따님이여? 아랫 분 따님이여?”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당연히 윗 분 따님이겄지유.”
“그려? 통 못 보던 사람이라……. 내 이 집안을 드나든 지가 꽤 되는디 말여.”
“아 미국 산다고 안합니까. 저 건너 멀리 미국 말이여.”
“그런 소리 들은 것도 같고……. 사실 멀리 있으면 자식도 형제도 아니여. 가까이 사는 사람이 최고란 말여.”
“그렇지. 피가 뭔 소용이랴. 가까이서 자주 보는 사람이 형제보다 더 가까운 법이여.”
지관과 일꾼들은 저희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나를 흘끔거렸다. 알고 보니 나는 여기서도 익명이었다. 오랫동안 부재했던 현실 속에 내 존재는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장면을 감아올리던 젓가락을 멈췄다. 갑자기 가슴 속이 고적해져 왔다.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자장면을 먹던 은규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5

올케의 계획은 맞아 떨어졌다. 새참으로 시킨 중국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이 지관과 문중 노인네는 갑자기 의견이 맞아 들어갔고, 소주를 한 잔씩 걸치고 나더니 형제처럼 다정해 지기까지 했다. 조금씩은 다 술기가 오른 노인 인부들이 삽을 들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일손은 더디기만 했다. 남은 일은 그만 맡겨놓고 산을 내려가자해도 막무가내인 올케 때문에 은규와 나는 그 산중턱 둔덕에 앉아 멀거니 건너편 산을 바라다보았다. 우리가 앉은 자리엔 그늘이 깊어가고 앞산 꼭대기에 걸쳐 있던 햇빛도 산 너머로 점점 내려앉기 시작했다. 은규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아까부터 자꾸만 내 옆얼굴을 바라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모른 척 해버렸다. 모처럼 만난 사촌과 지난 일을 소근 대기엔 여긴 너무 슬픈 장소였다. 그러나 은규는 기어이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은희야! 그 윤모 형 있잖아. 구윤모, 내 외사촌형 말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자락에 걸쳐 있던 햇빛이 조금 더 사위자 등덜미로 오소소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윤모 형 이름까지 잊은 건 아니겠지?”
은규는 정색을 하고 물었으나 나는 그만 히죽 웃고 말았다.
“이름이야 어찌 잊겠니? 너도 인정하는 내 영민한 기억력 속에서…….”
은규가 뭔가 안심한 듯 긴 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윤모 형 여기와 있어.”
“그래?”
태연한 대꾸로 더 말할 여지를 주지 않는 내가 답답했던지 은규는 잠시 말을 끊었다.

윤모…… 구윤모……. 어찌 잊을 수 있는 이름이랴. 그러나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우리 고향의 촉망받던 수재 구윤모, 깡마른 몸 때문에 중간을 웃도는 그리 크지 않은 키였는데도 그는 훨씬 커보였다. 각진 턱에 얇은 입술, 그래서 더 곧게 서 보이던 콧날과 가느다란 눈에 숯이 많지 않던 눈썹, 이마는 지나치게 넓고 두 귀는 양 볼로 바싹 달라붙은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구윤모가 영리하기는 해도 참으로 박복한 관상이라고 했다. 그는 은규 어머니인 내 숙모의 친정 조카였다. 그 박복한 관상 탓인지 윤모는 아버지와 위로 둘 있던 형제를 병으로 다 잃고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윤모의 어머니는 똑똑한 아들 하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별별 일을 다 했고, 때론 우리 집에 등록금을 빌리러 온 적도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울대학에 수석 입학한 윤모는 고향의 자랑거리였기에 아버지는 윤모의 등록금을 두 번씩이나 공으로 대주었다.
윤모는 두 살 위였지만, 우린 셋이서 잘 어울려 다녔다. 은규와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서 만날 때면 각자 자전거를 타고 강가로 나갔다. 겨울방학엔 우리 집 사랑방에 앉아 밤새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속에 발을 넣고 셋이 떠들어대다가, 벽을 가운데 두고 반원을 그리고 누워 그대로 잠이 드는 날도 많았다.
광주항쟁이 일어났던 그 다음, 다음해 늦겨울이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입대를 앞두고 있던 윤모의 송별파티를 열기 위해 나는 어머니가 담가놓은 머루주 한 병을 책꽂이 뒤에 숨겨 놓았다. 적당히 달구어진 아랫목에 내가 여고시절 수예시간에 만든 쪽 이불이 깔리고, 방 한 쪽엔 과자 봉투와 잘 익은 귤 한 쟁반이 윤모와 은규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저녁이 되어 먼저 도착한 사람은 윤모였다. 그는 조금은 초조한 표정으로 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입대를 앞둔 사람 특유의 표정이겠거니 하며 나는 그에게 아랫목 자리를 권했다. 봄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바깥은 바람이 차가웠다. 윤모의 귀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어물어물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며 내 옆에 앉는 그에게서 바람 냄새가 났다. 솔가지를 태운 연기냄새인 것도 같고, 여릿한 담뱃진 내 인 것도 같은, 차가운 체취가 내게로 훅 날아 왔다. 불쑥 이불 속으로 밀어 넣은 그의 발꿈치가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덱스 바지를 입은 내 종아리를 스쳤다. 얼결에 앉은걸음으로 어색하게 물러나 앉은 우리는 한동안 멀뚱멀뚱 천정만 바라보았다. 창밖에선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바람이 우우 울음소리를 냈다.
“은규는 도대체 왜 이리 안 오지?”
늘 침묵을 참을 수 없어하는 내가 먼저 투덜거렸다.
“그러게.”
그는 짧게 응수하며 위로 향했던 시선을 바닥으로 처박았을 뿐이었다. 얼마간 그렇게 있던 우리는 은규를 기다리다 못해 슬슬 쟁반에 담아 놓은 귤껍질을 벗기기 시작했고, 부스럭거리며 과자봉지를 열었다. 찝찔한 과자와 귤 조각을 번갈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윤모와 나는 차츰 갈증을 느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책꽂이 뒤에 숨겨 놓았던 머루주병을 꺼냈다. 꼭 한 잔씩만 따라 마시다보면 분명 은규가 도착할 거라며, 그와 나는 검붉은 술을 유리잔에 따라 서로 부딪쳤다.
“오빠의 입대를 위하여!”
“은희, 은규의 건승을 위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흘려 넣은 머루주 한 잔은 술에 약한 윤모의 얼굴을 발갛게 달구어 놓았고 나도 핑그르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뭘 건승하라는 거지? 그러니까 뭘 이겨내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시비를 붙듯 윤모에게 물었다. 그의 가느다란 눈이 도수 높은 뿔테 안경 속에서 웃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싸울 것 투성이다. 나는 이렇게 떠난다만 혈기 넘치는 김 씨 집안 자손들이 이 어려운 시대에 일어설까 두렵노라. 1년 반 전 저 빛고을에서 숨겨졌던 일들이 슬금슬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 알아? 김성곤 선생을 닮아 의협심 강한 너희들이 가만히 있을까? 내 그것이 두렵노라.”
윤모는 자연스레 머루주 한 잔을 자작으로 따라 마셨다.
“그래, 나도 그런 얘기 듣기는 들었어. 그러나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어. 그거 혹 간첩이 퍼뜨린 유언비어 아닐까.”
윤모는 이미 비워낸 내 잔에도 머루주를 채우며 킥킥 웃었다.
“순진한 그대여! 이 세상은 그대 같은 사람들이 희롱당하기 좋은 곳이다. 가난한 나는 비극의 진실을 믿지만 부유한 자들은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것을 믿어버리면 자신들의 부유함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같은 빈자는 비극을 믿어버리는 것이 훨씬 후련한 쾌감을 던져준다. 그거 아나? 혁명가는 모두가 가난한 자들이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의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너는, 오늘 여기서 내가 인정하는 진실을 적어도 유언비어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린 동지가 아니냐? 시대적 동지, 고향의 동지들…….”
벌써 취한 듯 쏟아내는 윤모의 말투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그는 두 번째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밤이 더 이슥해진 듯 담장 밖 길을 지나는 사람들 발길이 뚝 끊기고, 바람소리만 더 크게 들려왔다.
“도대체 은규는 왜 안 오는 거지?”
나는 무릎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섰다. 젖혀진 이불 속에서, 구겨진 윤모의 바지 끝에 칼처럼 날카로운 그의 두 발이 엑스자로 포개져 있었다. 윤모는 이불이 들춰지자 갑자기 균형을 잃었다는 듯 그만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기다려! 오겠지 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려던 나는 문을 가로막고 누워버린 윤모 때문에 주춤 그 자리에 섰다. 하긴 이제껏 은규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은 없었다. 나는 도로 이불 속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하마터면 이불자락에 걸려 엎어질 뻔한 머루주 잔을 윤모가 내게 건네주었다. 어느새 그의 잔엔 세 번째 술이 따라져 있었다.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윤모 오빠의 무사고 군 생활을 위하여!”
“웃기네! 너희들이나 사고치지 말아라!”
우리는 술을 입속에 물고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제발 울퉁불퉁 사고치지 말고 군 생활 잘하고 돌아와. 혼자 계신 오빠 어머니 생각해서 말야.”
“너희나 공연히 데모부대에 휩쓸리지 말아라. 명동성당 근처에 얼씬대다가 객기로 합류해 버리지 말고 할려면 제대로 하란 말야. 똑바른 가치관을 갖고! 알았지? 뚜렷한 이유와 명분을 갖고 덤비는 건 사고가 아니지. 하지만 말야. 너희 같은 부르주아파들은 날 뛰어 봐도 대부분은 객기야.”
“자 그럼 객기의 자손들을 위하여!”
나는 어느새 취해버린 것처럼 실실 웃으며 윤모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윤모가 내 빈 잔에 또다시 머루주를 따랐다. 웃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이, 웬일인지 볼품없는 안경 속에서 더 길게 찢어진 채 굳어져갔다. 창틈으로 밀려들어온 바람에 창을 가린 두꺼운 커튼이 조금 흔들렸다. 어둠이 깊어지자 바람이 더 거세어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햇머루를 설탕에 재어 2년을 묵혀놓은 머루주는 발효가 잘 되어 있었다. 혀끝에 달큰한 그 맛은 순식간에 머릿속을 온통 뒤섞어 놓는 듯 했다.
몸이 나른하여 긴 숨을 내쉬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 세상에 아무도 없는 듯 귀가 멍멍해왔다. 바람도 멈춘 것 같았고, 어둠마저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했다. 윤모가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안의 낡은 형광등이 푸른빛을 냈지만, 나는 마치 사방에서 조여든 창밖의 어둠에 갇힌 사람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의 네모진 턱이 살짝 아래로 숙여지고 가느다란 눈을 치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평소 박복한 관상이라는 어머니의 말과는 달리 몹시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스웨터를 입은 그의 목덜미에서 솔가지를 태우는 듯한 연기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왜 그런지 그 냄새에 자꾸만 끌리고 있었다.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이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 캔디의 흔적 박경숙 2009.01.23 485
49 아름다운 인연 박경숙 2008.01.10 709
48 전생을 봐드립니다. 박경숙 2007.01.13 1559
47 접속 박경숙 2006.12.29 620
46 장닭 한 마리가 박경숙 2006.07.06 631
45 돌아오지 않는 친구 박경숙 2006.09.02 1462
44 가로질러 가다가 2 박경숙 2006.05.16 838
43 만남에 관하여 3 박경숙 2006.04.24 885
» 오빠를 묻다. 박경숙 2006.04.14 570
41 어머니 박경숙 2006.05.12 675
40 그 밤의 파티 박경숙 2005.09.07 560
39 방 한칸(1) 박경숙 2005.09.04 406
38 방 한칸(2) 박경숙 2005.09.04 919
37 체리 향기 옆에서 4 박경숙 2005.07.14 854
36 사촌 박경숙 2005.07.06 656
35 사랑의 바이러스 박경숙 2005.07.03 504
34 탄생 박경숙 2005.06.29 430
33 가수와 작가 박경숙 2005.06.26 719
32 아내의 가슴 박경숙 2005.06.24 835
31 미미 박경숙 2005.06.23 5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1
전체:
104,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