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3 07:25

전생을 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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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목이 높은 잔에 담긴 커피는 조금 진하다. 크림을 듬뿍 넣어 뜨거움이 적당히 가신 커피는 혀 깊숙이에 쌉쌀한 쾌감을 남기며 내 목구멍을 통과한다. 느슨하게 온몸으로 번지는 따뜻함과 슬며시 신경을 당겨오는 카페인의 팽팽함 사이엔 늘 절묘한 쾌락이 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4차원의 경계선을 넘은 듯 혼곤한 평온에 젖어든다.
“이거 너무 비싸! 커피 한 잔에 만원이라니? 너희 젊은 것들은 돈 아까운 줄도 모른단 말이니?”
  순간 내 폭신한 명상을 뚫고 들어오는 이모의 바늘 끝 같은 목소리·······. 나는 미끄럼틀을 탄 듯 쭈르르 3차원의 세계로 다시 밀려나오고 만다.
“뭐? 다 그렇지. 여긴 압구정동이잖아.”
어눌하게 흘러나오는 내 말에 눈꺼풀이 얄프리한 이모의 매력적인 눈에 파르스름한 사나움이 담긴다.
“압구정동 좋아하네. 야! 내가 신혼 땐 여긴 그냥 장보러 오는 곳이었어. 조오기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에 한양쇼핑센터가 딱 하나 서 있었거든. 거기 지하에 당시엔 전국에서 하나뿐인 대형마켓이 있었어. 어쩌자고 여기가 이렇게 이상한 동네가 되었단 말이니.”
이모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을 만난 듯 끌끌 혀를 찬다. 하긴 그렇다. 우린 백화점 지하에서 점심으로 7천 원짜리 돈까스를 먹고 지금 그 옆 건물 일층에서 후식으로 만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서울물정을 잘 모르는 이모가 칵칵거릴 만도 하다.
“뭐 실내장식도 별 것 없구만. 이런 곳에 너희 젊은 것들은 왜 모여든단 말이니?”
이모의 음성에 슬그머니 힘이 빠지고 있다. 커피잔을 들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는 이모는 기특하게도 금세 이 분위기에 적응된 듯 보인다. 마흔 아홉 살의 나이 지긋한 이모는 젊은 아이들이 드나드는 이 카페에 처음 앉았을 때 몹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확히 20분이 지난 지금 이모의 두 다리는 편안하게 포개지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이에 알맞게 살이 붙은 이모의 다리가 푸른 보라색 스커트 아래서 묘하게 꼬인다. 나는 왜 그런지 이모에게 확 달려들어 포개진 두 다리를 해체하고 싶어진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난다. 이모는 이쁘다. 나이 값 못하고 너무 이쁘기 때문에 화가 난다. 왜냐면 나는 모든 것을 통틀어 이모와는 정반대로 생겼기 때문이다. 나이 값을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20대 중후반의 부잣집 아이들이나 드나드는 이 카페에 앉아 태연하게 커피를 즐기는 나는 서른다섯 살이다. 그것도 좋지 않은 모양새에 몹시도 육중한 체중을 지닌······.  나는 이모의 다리께를 바라보다가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내뱉는다.
“심플해 보이는 이 디자인이 얼마나 고급스런 자재로 된 것인지 알아? 벽과 천정 흑백톤의 마감재를 보라구!”
이모의 눈길은 천천히 카페 천장을 휘돌아 벽을 훑어 내리지만 그 눈은 마치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 속에 가득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조금씩 이모의 전신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어디 먼 곳을 헤매고 있는 듯한 몽롱함·······, 그것은 이모 특유의 분위기이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꾸미면 되지 않겠어? 흉내는 내지만 자재는 좀 싼 것을 써야지. 압구정동과 분당사거리는 차이가 있으니까.”
나는 이모의 몽롱한 눈빛에 애써 현실을 투영시키고 말겠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인다.
이모는 곧잘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듯 보인다. 내가 잠시 커피향내에 4차원의 경계를 껌뻑 졸듯 뛰어넘어 본 것과는 좀 다른, 더 길고 휘청대는 방황의 기운이 늘 이모의 전신을 맴돌고 있다. 어쩌면 이모는 일생 내내 꿈만 꾸느라 현실의 땅 위에 단 한 번도 발을 내려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생을 봐드립니다. 아줌마! 전생 보세요!”
갑자기 들려오는 거칠거칠한 목소리에 이모의 분위기를 따라 눈을 가물거리던 나는 퍼뜩 정신이 든다. 어느새 내 옆을 가로막고 선 컴컴함에 언뜻 올려다 본 시야엔 턱 주변의 수염이 그늘처럼 자라난 덥수룩한 남자가 미소를  흘리고 있다. 웃느라 슬쩍 얼굴을 찌그러뜨렸지만 볼 언저리의 팽팽한 피부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나이를 짐작케 한다. 순간 펑퍼짐한 내 복부에서 뜨거운 기운이 총알처럼 입술로 터져 나오고 만다.
“나 아줌마 아니거든요!”
남자는 잠시 빙글빙글 웃기만 하더니 냉큼 시선을 이모에게로 옮긴다.
“그럼 이 미인 아줌마 전생 봐드릴까요?”
사내의 말에 가느다랗게 다듬은 이모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간다. 그 순간에도 묘하게 흐려지는 이모의 눈빛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는 듯 슬쩍 웃음을 머금고 허물어진다. 사내는 그 틈에 슬그머니 이모의 의자 뒤를 돌아 그 옆자리에 털퍼덕 주저앉는다.
“전생을 어떻게 보는데요?”
사내가 카키빛의 넓적한 가죽가방을 어깨에서 벗겨내자 이모가 묻는다. 조금 전 커피 한 잔에 만원씩이나 하느냐고 날카롭게 쏘아댈 때하고는 정반대의 톤이다. 부드럽고 잔잔한 피아니시모로·······.
나는 잠깐 이모가 사내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는다. 그 몽롱한 눈빛과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자유자재하는 말투로 인해 이모의 인생은 내내 꿈과 현실을 들락날락했었다는 걸 기억했으니까.
사내는 한결 여유롭게 해죽 웃으며 이모를 바라본다. 이제 겨우 서른 남짓이나 되었을까. 추파를 던지고 있는 건 이모가 아니라 어쩌면 사내인지도 모른다.
“단지 필로 봅니다. 필!”
“필? 오! 느낌!”
이모는 갑자기 까르르 웃기 시작한다. 가늘고 높게 쏟아진 그 웃음은 카페를 흐르는 뉴에이지 음악에 금세 묻히고 만다. 사내가 부스럭대며 가방 안에서 꺼내 놓은 건 고작 16절 백지 몇 장과 검은 색 수성볼펜 뿐이다. 그는 펜을 들고 마치 인물스케치를 하려는 화가처럼 이모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모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마주하고 있다. 둘은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한동안 그렇게 바라본다. 어쩌면 상대의 눈 안에서 뭔가를 확인하려는 연인들처럼······.
이윽고 남자가 긴 숨을 쉰다. 마치 오래 숨을 멈추고 있던 물속 깊이에서 고개를 내민 듯 검고 두꺼운 사내의 자켓 복부부분이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사내의 날숨에 이모의 앞머리 몇 가닥이 살포시 일어서다 가라앉는다.
“당신은 전생과 이생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군요.”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모는 잠자코 듣고만 있다.
“전생의 기억은 없지만 그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사실 사람에게 논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습관이란 것이죠. 지난 습관 때문에 당신은 이생을 살아내기가 힘이 들어요.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는 것이죠. 고고함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이 시대에 당신이 지닌 것은 유럽 중세 명문가 마나님의 권위의식이군요.”
큼지막한 글씨로 백지 위에 수성볼펜을 굴리는 사내를 이모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모는 금세 픽 웃어 버린다.
“그럼 내가 전생에 뭐였다는 거죠?”
“말했잖아요. 명문가 마나님이었다고······. 유럽········ 아 프랑스에요. 당신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지체 높은 귀족 부인이었어요.” 가느스름 뜬 사내의 눈을 바라보던 이모는 또다시 까르르 웃기 시작한다. 이번엔 카페음악에 묻히지 않을 만큼 소리가 큰 웃음이다. 커피를 나르던 여종업원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옆을 스쳐간다.
“하긴! 확인할 수도 없는 전생을 아무렇게나 말하면 어때! 내가 당시 황후 마리 앙투와네트와 친분이라도 있었다는 건가요?”
겨우 웃음을 멈춘 이모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바라보며 사내는 정색을 한다.
“무시하지 마세요! 당신은 시를 썼어요. 아마 지금도 그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걸요. 사람의 이생은 결코 전생의 굴레를 다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거든요.”
순간 이모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다. 뭔가 의외라는 공감을 서로의 눈 속에 담고 우리는 살그마니 미소를 짓는다. 사내가 눈앞에 무엇을 보고 있기나 한 듯 허공을 향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다.
“당신은 참 아리따운 여인이었어요. 넓은 장원의 대저택 살롱에 저녁이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당신이 시를 읽는 군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아요. 그들은 흐릿하고 당신만 또렷이 빛나요. 아! 당신은 외롭군요. 외롭기 때문에 빛이 나요. 그리고 갈증이 나요. 벗어날 수 없는 신분, 더 체험할 수 없는 삶의 한계, 그러나 당신은 자연을 공감할 줄 알아요. 하늘과 나무와 강물과 그 모든 것들 안에 당신의 갈구가 스며들어요. 당신은 응답을 기다려요. 하늘과 나무와 강물이 끊임없이 당신을 향해 대답을 하지만 당신은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원해요.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으려는 당신,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으려는 당신······. 당신은 외로워요. 그 외로움이 당신으로 하여금 자꾸 시를 쓰게 해요. 당신은 하늘을 보며 소망했죠. 이담에 다시 태어나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달라고. 이 갈증을 채워달라고·······.”
거기까지 말한 사내가 갑자기 눈을 치뜨더니 이모를 쏘아보며 말을 계속한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뭐죠? 자신이 전생에 원했던 삶 속에서 자꾸만 이건 아니라고 하네요. 자신도 모르게 봉건장원제도 그 귀부인의 품위와 제약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당신이 이렇게 함부로 살 일이 아니라면서. 그래서 이생이 늘 어긋나요. 어긋나······· 쯧쯧·······. 지금은 또 어디를 헤매다 온 거죠?”
빤히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에 이모는 조금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뭐라 말을 하려했지만 사내가 얼른 다음 말을 이어나간다.
“사람들은 이생에 태어남으로서 전생을 잊고 저절로 그 기운도 걷어지죠.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그 기운을 고스란히 갖고 있군요. 기억은 없는데 기운만 얹힌 인생! 전생도 이생도 아니에요. 초자연과 자연사이 경계선이 없군요.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자기는 몰라. 그러니 매사 힘들고 불만이야. 거봐! 당신은 세상에 없는 것을 찾으려 하잖아. 세상을 살려면 세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좀 수도 부리고 참기도 해야 하는데 당신의 초점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그러니 인생이 시끄러워. 어떻게 할 거야? 아직도 남은 날들이 많은데······. 그렇게 마음이 헐벗어서야 어찌 살려고? 눈을 질끈 감고 세상과 타협을 하던지 아니면 세상을 끊어!”
사내는 어느새 반 말투가 되어가고 이모를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은 이미 어딘지 모를 딴 곳을 보고 있다. 그것은 이모도 마찬가지다. 멍하게 나를 향한 이모의 눈은 정말 전생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듯 이상한 기운이 어려 있다.
“파도 같은 인생을 달라고 청했던 건 당신이야. 전생에 말야. 그래놓고 지금은 이제 이건 아니라고 하는군.”
파도 같은 인생? 나는 물끄러미 이모를 본다.
이모는 또 한 번의 파도를 넘어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일까.
잠시 정지되었던 이모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눈 안으로 물기가 번질거린다. 사내는 마치 꿈을 깬 듯 한순간에 시선을 떨어뜨리더니 히죽 웃음을 머금는다.
“만 원만 주세요! 커피 한 잔 값인걸요.”
쓰고 남은 백지와 볼펜을 카키빛 가방에 챙겨 넣는 그가 조금은 겸연쩍은 듯 말한다.
이모가 돈을 꺼내려고 핸드백의 지퍼에 손을 댔지만 나는 얼른 내 지갑을 연다. 미국에서 온지 이틀밖에 안된 이모의 지갑엔 아직 달러뿐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도 좀 봐주세요. 제 전생도······.”
나는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그에게 내민다. 그러나 사내는 내 손에서 만원 한 장만을 뽑아든다.
“아줌마 전생은 여기 이 미인 아줌마한테 봐 달라고 하세요. 어쩜 나보다 나을 걸요.”
그가 또다시 히죽 웃으며 일어서는데 발끈한 내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만다.
“나 아줌마 아니라니까요!”
사내는 실실 웃으며 다시 카키빛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어슬렁어슬렁 멀어진다. 다른 자리로 옮겨가나보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만 출구로 나가버린다.
나는 그가 사라진 유리문을 바라보다 슬쩍 코웃음을 치는데 이모의 얼굴은 아직도 심각하다. 불그무레한 눈으로 멍청한 표정을 짓는 이모는 아직도 전생의 추억에 젖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건 내 기우라는 걸 알고 만다. 금세 톡 쏘는 듯한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얘! 바로 그거다! 상호를 ‘전생카페’로 하는 거야. 요즘 먹혀들어가는 트랜드잖아. 삶의 핑계거리를 찾다 못해 전생을 들먹거리는 참으로 가여운 시대가 아니겠니. 전생은 내가 봐주지. 저 남자처럼 아무렇게나 지껄이면 되지 않겠어.”
이모의 눈에 장난기 같은 것이 어린다. 그러나 타인의 인생을 한번 장난질 해보겠다는 심술이라기에는 조금은 부드럽고 뭔가 슬픈 빛이다.
“하긴 글로 하는 거짓말이나 말로 하는 거짓말이나 비슷하지 않겠어?”
나는 슬그머니 이모가 거짓말쟁이 라는 것을 콕 박아놓는다.
“거짓말? 하지만 그 안에 정말 진실이 있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눈을 내리까는 이모는 왜 그런지 풀이 죽은 표정이다. 나는 그런 이모가 가여워 진다.
엄마는 이 사고뭉치 이모를 끔찍이 사랑했다. 한번쯤은 가출을 했었다는 이모, 누군가에게 납치도 당했었다는 이모,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모, 사랑스럽지만 표독스럽기도 하다는 이모, 명랑한 분위기를 갖고도 사람을 더없이 슬프게 한다는 이모·······. 내가 어릴 때부터 이모는 집안의 전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이모의 역사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모와 내가 절친했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려 이모에게 그런 것들을 묻는 확인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친척들은 이모를 무지 사랑하거나 그 반대로 무지 우습게보기도 한다. 가도 가도 순결한 여인, 아니면 가도 가도 사고뭉치라면서.
사실 이모가 순결하다는 말엔 좀 무리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이모는 두 번 결혼했고 두 번 다 실패했다. 이모는 지금 막 그 두 번째를 실패하고 돌아온 것 같으니까.
이모의 직업은 작가다. 작가란 이 시대에 이성에 밀린 감성의 토사물이 만들어낸 이름일 뿐이라며 엊저녁 엉엉 울던 이모는 내 손에 끌려 이 카페까지 오며 몹시도 피곤해 했다. 비행기에서 내내 마신 와인이 깨기도 전 내가 어느 못 견딜 날에나 마셔볼 양으로 마련해둔 와인 한 병을 혼자 다 삼켜버렸으니까.
“왜 왔냐니까. 왜? 이모!”
갑자기 쳐들어온 이모에게 다그쳐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엄마가 떠나기 전 유언처럼 했던 말을 나는 늘 기억하고 있다. 혹 네 이모가 돌아오거든 돌봐 주라고. 남긴 유산 중에 절반은 이모의 몫이란 걸 잊지 말라고.
문화센터의 온갖 강의를 몇 년 째 섭렵하던 나는 이제 노처녀 백수살이가 슬슬 지겨워져 카페를 하나 열어보려던 참이었다. 주책 같은 친척 노인네들은 날보고 인물이 이모의 반만 따라갔어도 노처녀 신세는 면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을 대놓고 한다. 어찌 그리 반반하던 네 엄마를 닮지도 못했느냐고. 나는 이제 그런 말에 마음 상해하기에도 지쳤다. 학벌과 재산이 있어도 인물이 박색이면 처녀로 늙어죽고 만다는 걸 알게 된 건 서른 살이 넘을 무렵이었다. 명품관을 누비며 샤넬 화장품과 루이비똥 핸드백으로 치장을 하고 턱을 치켜들었던 건 그래도 엄마가 살아 있던 때였다. 덜커덕 내게 맡겨진 많지도 작지도 않은 엄마의 유산, 그 관리가 내 손에 들어 왔을 땐 함부로 쇼핑 같은 건 할 수도 없을 만큼 슬픈 철이 들어 있었다.
진작에 미국에 가 소식도 없던 이모를 나는 여태 기다리고 있던 걸까. 오자마자 술을 퍼마시는 이모였지만 왜 그런지 포근한 엄마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엄마를 닮은 이목구비, 그러나 이모는 엄마보다 훨씬 이쁘다. 엄마에게는 절대 없던 요기와 끈기가 이모에게는 아우라처럼 맴돌고 있다. 엄마는 이모가 그 요기와 끈기 때문에 돈도 안 되는 글을 쓴다고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이모가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벌써 친구들에게 우리 이모는 작가라고 자랑을 하고 다녔으니까.
철이 들면서 이모가 무명작가라는 걸 알았다. 무명이란 유명에 비해 얼마나 힘이 없고 어둡고 쓸모없는지를 차츰 알게 되었다. 미모의 무명작가를 아내로 얻은 첫 번째 이모부는 내가 기억하는 한 멋쟁이남자였다. 아름다운 이모에게 끊임없이 값비싼 것들을 사주며 어르던 그는 어느 날 이모를 버렸다. 지금처럼 짐을 싸들고 어린 조카의 방으로 쳐들어왔던 젊은 이모는 자신이 그를 버렸다며 엄마 앞에서 의기양양 했다.
이모는 나와 같은 방을 쓰며 밤마다 뭔가를 자꾸 써냈다. 하지만 이모가 나갈 때 들고 갔던 커다란 가방 속 원고뭉치는 그 무게 그대로 이모의 어깨에 매인 채 돌아왔고, 이모는 세상이 자꾸만 자신을 토해 낸다고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모가 이 거지같은 세상의 토사물이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분명 세상의 추함과 미함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내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함이 미함이고 미함이 추함인 세상이란 걸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까.
이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결코 자신을 토해내지 않을 새로운 세상을 찾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잘은 모르지만 이모가 가출을 할 무렵인지 납치를 당할 무렵인지 목숨처럼 사랑했다던 그 첫사랑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모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병을 앓던 엄마가 끝내 죽고 말았어도 오지 않던 이모·······. 지금 엄마가 땅 속에서 절반은 흙이 되어 버렸을 시점에 불현듯 돌아온 이모는 엊그제 내내 술만 마셨다. 그리곤 말했다. 자신이 사랑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하지만 나는 이모가 그를 버리고 왔다는 걸 금방 눈치 챘다. 언젠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사랑해서 힘들다고, 너무 몰입되어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했던 이모였다. 아마도 이모는 사랑의 열정에 넉 아웃되어 그를 버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곤 버림 당한 사람처럼 눈물도 나지 않는 울음을 밤새 꺼이꺼이 울었다.
하룻밤은 술을 마시고 다음날은 울기만 하다가 카페 인테리어를 보러가자는 내 말에 덜썩 따라나선 이모는 오늘 이 카페에 앉아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다가 안개처럼 흐려지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어느 것이 이모의 정체인지를 모른다. 정말 이모는 전생과 이생을 뒤섞어 사는 걸까.
“가자! 전생카페로 하든 말든······.”
이모가 테이블 위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사내가 이모의 전생을 끄적인 것이다. 엉덩이에 짓눌려 있던 이모의 푸른 보라 스커트가 풀썩 일어서고 날씬한 허리가 내 눈 앞을 가린다. 나는 갑자기 일어서기가 싫다. 저 여인과 견주어질 내 몸매가 슬그머니 저주스럽다. 내가 무거운 체중을 기우뚱 일으키자 얼른 이모의 손이 내 팔을 잡는다. 순간 얄팍한 이모의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내 피부로 스며들어 온다. 나는 왜 그런지 기분이 노곤해 진다. 조금은 빛이 바랜 듯한 이모의 앙상한 손에 코를 묻고 나도 한번쯤 엉엉 울어보고 싶다. 나도 나에게서 토해져 이모의 사고뭉치 운명 속으로 한번쯤 잠겨보고 싶어진다.
이모는 어젯밤 꺼이꺼이 울기만 하다가 이 나이까지 키스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이모가 부럽다는 말에 울음을 그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짓말 말라며 울던 얼굴에 비죽이 웃음까지 띠던 이모·······.
나는 그저 한숨만 쉬었을 뿐이다. 울던 이모는 잠이 들고 나는 거울을 보았다. 벙긋이 열린 이모의 창백한 입술과 거울 속에 앙다물려진 내 붉은 입술을 번갈아 보다가 나는 이모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살포시 입술을 포개어 보았다. 각질이 일어선 터실한 촉감········, 이모는 몹시 피곤한 것이다. 여독과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길게 내뿜는 이모의 날숨이 와인 향에 뒤섞인 채 미지근하게 내 입술을 간지럽혔다. 내가 가보지 못한 느낌의 세계를 수없이 기억하고 있는 이 여인의 입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혀끝을 세워 이모의 입술 속으로 돌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모는 잠결에도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밀어내 버렸다. 순간 나는 앙다물려 버리는 이모의 창백한 입술과 미지의 정욕에 대해 벙긋 벌어진 거울 속 내 붉은 입술 사이에서 음탕함과 순결함을 다시 보았다. 어쩌면 내가 음녀인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이모는 어떤 의미로든 순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녀와 성녀가 물리적이 아닌 다만 인식의 경계라면 이모가 가도 가도 순결한 여인이라는 어느 친척의 궤변을 인정하고 싶어졌다.
나는 순결한 이모의 손을 잡고 카페를 나온다. 가을바람은 차고 이모의 듬성듬성한 니트 가디건 사이로 바람이 스며드는 것이 보인다. 이모가 몸을 웅크린다. 가엾은 여인······. 나는 이모의 손을 놓고 어깨를 감싸준다. 내 팔 안에 몸을 기댄 채 휘청휘청 보도블럭 위를 걷는 이모의 얼굴로 살포시 가을 햇살이 내려앉는다. 이모의 양미간에 골이 패인다. 찬바람에 일어서는 솜털 밑으로 얇게 분을 펴 바른 이모의 결진 피부가 보인다. 이모는 늙고 있다. 아름다운 이모가 늙어간다는 것에 나는 갑자기 슬픔이 느껴진다. 두 번째 이모부가 정말 이모를 버린 걸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천둥치듯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야! 내가 버렸어! 사랑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할 수가 없더라.”
내 생각 속을 느닷없이 울려오는 이모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란다. 이모는 남의 속을 투시하는 능력을 가진 걸까.
“식지 않는 사랑이란 사람의 생애를 통째로 삼켜버린단다. 나는 쉬고 싶어.”
나직이 말하는 이모의 입에서 가느다란 입김이 새어나온다. 가을이 겨울의 문을 열어놓았다. 늘 흐릿한 서울의 하늘은 가을날에도 가끔 겨울의 차가움을 부른다. 지하철 입구가 가까워 졌을 때 이모는 냉큼 걸어 들어갈 생각을 않고 갑자기 길가 간판들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머····· 머리가 아파! 얘야! 약국········· 진통제·······”
엊그제저녁 과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매연의 거리에 이모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왜냐면 사람들 사이를 걷는 이모는 뭔가 달라 보인다. 무릎에 걸린 푸른 보라 면 세무 스커트에 보헤미안처럼 걸쳐 입은 구멍 숭숭한 털실 가디건은 들쑥날쑥한 밑단이 엉덩이 선까지 내려와 있다. 살색 스타킹에 뒷꿈치가 패인 검은 단화를 신은 이모의 모습은 이 패션의 거리에서 좀 튄다. 좋게 말하면 이국적이지만 사실은 촌스럽다.
나는 이모의 몸과 마음이 서울거리에 적응될 때까지 그 응석을 얼마나 받아줘야 할지 한숨을 쉬며 이모의 손을 끌고 몇 걸음 못미처에 있는 약국으로 들어간다.
“생리가 가까운데요. 머리가 아파요.”
턱이 샐쭉한 젊은 남자약사 앞에서 이모는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나는 잠시 아차 한다. 이모도 생리를 한다는 걸 깜박했다. 10여 만에 만난 이모를 병석에 누워 40대에도 생리마저 끊겨버렸던 엄마처럼 생각했던 것 내 잘못이다. 이모는 내 안의 혼돈이다. 기대고 싶기도 하고 보살펴 주기도해야 하는 묘한 존재. 나도 머리가 아파온다. 이모와 나는 똑같은 약을 한 알씩 삼키고 약국을 나온다. 우리는 앞으로 차츰 비슷한 날에 생리를 하게 될 것이다. 전에 이모가 첫 번째 이모부와 헤어져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동안 우리는 생체리듬이 점점 같아졌다.
이제 오랜 세월 만에 다시 같은 방을 쓰게 될 순결한 여인과 순결하지 않은 여인은 옛날처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서로의 여자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리듬으로 인하여········.
“가자! 얼른 분당사거리로·······”
이모는 아이처럼 내 팔에 매달리며 분당 사거리 내 원룸으로 가자고 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며 이모는 뭔가를 생각해 낸 듯 잠시 걸음을 멈춘다.
“너 기억하는지 몰라. 옛날에 우리 집에 다니던 그 파출부 아줌마, 분당 살았어. 분당 아줌마라고 불렀었지.”
나는 어렴풋이 광대뼈가 심하게 불거졌던 중년여인을 기억해 낸다.
“그래! 그때 분당은 서울 외곽 빈민동네였지. 그런데 지금은 중산층 주거지가 되었구나. 그 아줌마 어디 살까. 보고 싶다.”
이모는 회한에 서린 한숨을 훅 내쉬며 다시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이모부와  살 때였다. 그 광대뼈 아줌마가 이모 집을 드나들던 때는·······. 나는 문득 첫 번째 이모부가 궁금해진다. 이렇게 돌아온 이모가 사랑에 겨워 사랑을 버리고 왔다고 했듯, 첫 번째 이모부도 이모를 사랑하기가 너무 힘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나는 아직껏 사랑을 안 해보길 참 잘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버리고 싶을 만큼 지독하고 지겨운 사랑을 한번만이라도 해보고 싶다.
쿨렁쿨렁 흔들리는 지하철에 섰는데 눈물이 난다. 기어이 아래 눈꺼풀을 넘고 마는 뜨거운 물기를 나는 얼른 손등으로 닦아낸다. 눈가를 스치는 손가락 사이로 자리에 앉은 이모의 얼굴이 내려다보인다. 이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이 든 것 같다. 아니다. 이모도 울고 있다. 눈을 내리깐 조용한 표정, 그 볼 위에 물기가 어려 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분당 사거리에 ‘전생카페’가 생겼다. 다섯 개의 검고 동그란 테이블에 하얀 나무의자가 네 개씩 놓이고 안쪽 구석엔 2인용 소파세트가 있다. 검은 우단으로 커버된 그 소파는 이모가 전생을 보는 자리다. 벽과 천정이 절반씩 흰색과 검은 색으로 엇갈리는 건 압구정동 인테리어를 흉내 낸 것이다. 나는 바리스타와 계산원을 겸한다. 종이컵에 담아주는 커피는 압구정동의 반값이 안 되는 4천원으로 셀프서비스이고 나는 앞치마를 입은 채 늘 계산대 안에 있다. 처음 얼마간은 나를 도와 커피도 뽑고 손님이 나가고 난 뒤 테이블도 닦던 이모는 점점 검은 우단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이모의 옷차림도 변해갔다. 덜룩덜룩한 무늬의 통이 넓은 웃옷에 어깨에 닿을 듯 치렁거리는 귀걸이, 가끔은 옷과 같은 색깔의 터번을 머리에 두르기도 한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해 보겠다던 이모는 점점 전생놀이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손님들도 장난삼아 이모 앞에 만원 한 장을 놓더니 겨울이 깊어지면서 표정이 심각해져 갔다.
첫눈도 아직 내리지 않은 날인데 찬바람이 깊어졌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카페가 좀 한가해진 무렵 이모는 겨우 검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커피를 뽑고 있는 내게로 온다.
“막 뽑은 걸로 한 잔 주라.”
길게 숨을 내뿜은 이모는 몹시 힘들어 보인다. 아침에 공들여 두들긴 파운데이션이 미간 사이에 골지고 눈가가 그늘져 있다. 나는 특별히 이모를 위해 일회용 종이컵이 아닌 푸른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내민다.
“근데 그렇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제까지 이모가 봐 주었던 전생들 말야. 솔직히 나는 불안해.”
이모는 대답대신 씩 웃기만 한다. 홀짝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이모는 커피 판매대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괸다. 저절로 꺾어지는 허리에 뒤로 빠진 엉덩이가 살짝 천정으로 들린다. 탄탄한 청바지에 적당히 조여든 이모의 둔부는 사이좋게 나란한 동그라미 두 개 같다. 오늘따라 짧게 입은 붉은 실크 블라우스 밑자락이 위로 치켜지며 이모의 허릿살이 드러난다. 노리끼한 피부는 창문으로 스며든 여릿한 햇빛에 기름을 칠한 듯 반드르 윤기가 난다. 나는 폭 60센티미터 커피 판매대를 뛰어 넘어 갑자기 이모의 허릿살에 손을 대고 싶어진다. 절대로 사고 싶진 않지만 탐나는 밍크 목도리를 단지 한번 쓰다듬고 싶듯이.
이모의 잔등으로 빛이 흐른다. 붉은 실크가 잠시 햇빛 속에 하얗게 바래지며 그 빛깔을 잃는다. 그늘에 잠긴 블라우스의 가슴부분은 그 색감이 더 붉다.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는 이모의 눈 속이 또 텅 비어온다. 늘 눈을 뜨고도 정신을 잃는 이모의 낮꿈을 깨우고 싶어 나는 말을 건다.
“이모! 미국은 어땠어?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거지?”
이모가 부스스 나를 돌아본다. 잠시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의아한 눈길을 하던 이모는 곧 웃어버린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차례나 미국방문을 시도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았던 기억으로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른다. 통장에 잔뜩 든 잔고를 보여주어도 미혼에 무직인 나는 번번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거절당했다. 갑자기 미국이란 나라가 미워진다.
“좋은 땅이었다. 꼭 좋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푸우 입김을 내뿜듯 허심하게 중얼대며 이모는 조금 쓸쓸한 웃음을 띤다.
“그 넓은 땅에서 우물 안 개구리들 황소 흉내 내다 배가 터지는 일이 많았지. 저마다 왕이라고 말이다. 그냥 그쯤 알거라. 거긴 그런 곳이라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흘려놓고 이모는 머그잔을 든 채 검은 우단소파에 가 앉는다. 나는 계산대를 나와 쪼르르 이모를 따라간다. 이모 맞은 편 자리에 앉은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탁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놓는다.
“이모! 나도 전생 봐주세요.”
이모는 그냥 끄르륵 웃어버린다.
“네가 스스로 보렴. 정말 이 세상이 못 견뎌지면 자신의 전생이 보인단다.”
“그럼 이모가 손님들에게 봐주는 전생이 엉터리가 아니었단 말야? 작가적 기질로 막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고?”
치뜨는 내 눈길에 이모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흔들린다. 카페를 연 지난 한달 여 동안 이모는 변했다. 사랑스럽던 얼굴은 때로 귀기가 서린 듯 섬뜩한 표정을 짓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얘야! 나는 그 우물 안에서 한 마리 개구리 되어 그 개구리들과 살고 싶었다. 그런데 개구리도 아무도 되는 것이 아니었더라. 그것이 외로웠어.”
“무슨 얘기야? 미국?”
“그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선 이모와 내 뇌세포에 저장된 기억에 차이가 있다. 이모는 친미를 교육받은 세대지만 나는 때때로 일어나는 서울 복판의 시위대로부터 반미를 세뇌 당했다. 친미사상으로 떠났던 이모는 10년 만에 더 외로운 모습으로 돌아왔고 미국을 미워하는 나는 아직 한 번도 갈 수 없던 그 나라에 대한 요상한 선망을 안고 있다.
“그들은 넓디넓은 호수 곁에 힘들여 우물을 팠지. 너무 망망하여 살 수 없던 때문인지도 몰라. 매일 우물만큼의 하늘만 보고 우물만큼의 물속에서 개구리들은 사이좋게 노래를 한다. 때로 잘 맞지 않는 개구리 화음을 맞추기 위해 콘닥터가 필요했어. 이를테면 리더가 말야. 그 중 몇 마리 개구리가 리더가 되겠다고 황소흉내를 내며 배를 부풀렸어. 개구리들은 비슷한 목소리끼리 모여 패를 나누고······. 나와 음을 맞출 개구리가 없었어. 외로움에 하늘을 봤지. 내가 왜 이 우물에 갇혀 있는지. 우물 너머로 폴짝 뛰어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너무 위험한 일이었어. 외로움 때문에 내 다리가 조금씩 자라났어. 나는 내 다리로 우물을 빠져나왔단다.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중얼중얼 이어지는 이모의 말을 나는 사실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개구리가 어쨌다는 건가. 나는 쉽게 유럽여행은 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가보지 못한 심통으로 이모에게 쏘아 부친다.
“남들은 거기 못가서 난리인데 이모부를 사랑하는 그 마음만으로는 그곳을 견딜 수가 없었단 말야? 이모는 사랑을 찾아 간 것 아니었어?”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어. 나를 먼저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랑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야.”
단호히 울려오는 이모의 목소리에 나는 약간 움찔한다. 눈꺼풀을 내리깐 이모의 표정이  정물처럼 굳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존재와 존재 사이를 흐르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기를 모르면 남도 보이지 않는단다. 내 실수는 나보다 타인에 더 몰입했던 것이야. 그래서 지금은 나에게 충실하기 위해 돌아온 거야.”
이모는 커피를 다 마셔버린 빈 머그잔을 탁자에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왜 그런지 안절부절 한다. 잠시 동작을 멈춘 이모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얘야! 담배 없니? 한 개비만 주라.”
내가 담배를 핀다는 걸 이모가 벌써 눈치 채고 있으리라 짐작하긴 했었다. 방종한 듯 보여도 한쪽에 완고성을 지닌 이모는 가끔 내 몸에서 풍기는 연기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계산대 밑에 넣어둔 내 핸드백에서 담배 갑과 라이터를 꺼내들고 온다. 이모가 창문을 열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밀려드는 찬바람에 실내가 서늘해진다. 점심시간 후의 한 시간쯤은 단 한명의 손님도 없는 날이 많다. 인근 상가와 사무실 직원들이 제 자리에 돌아가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이모는 담배를 피워 문다. 아주 가끔은 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싶다고 말하던 이모는 뻐끔 담배를 핀다. 힘껏 빨아들인 그 연기가 겨우 이모의 입안을 돌아 금방 뱉어지고 있다. 나는 더 깊숙이 무엇인가를 빨아들이고 싶다. 담배 갑을 만지작거리며 끽연에 대한 욕구를 애써 참는 나는 침을 꼴깍 삼켜본다. 왜 그런지 이모가 보는 앞에서는 담배를 입에 물 수가 없다. 엄마와 이모와 이 집안 인척들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규범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 존재였다.
“자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린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돼. 아무 것도 아닌 채 떠나고 마는 거지. 우린 모두가 다 무엇인가로 의미지어 여기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모가 창가에서 담배를 손에 든 채 또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이모의 말들을 알아듣기 싫어진다. 존재가 어떻고 의미가 어떻다는 건가. 아 지금은 이모의 저 긴 숨을 따라 나도 깊고 진한 숨을 쉬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도 손은 내 욕구를 거부한다. 인식이 욕구를 거부하고 있다. 나는 공연히 빈 숨을 길게 내뿜어 본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운, 정말 그건 태운 것에 불과했다. 피웠다는 보다는·······. 이모가 추운 듯 양팔로 어깨를 감싸며 창문을 닫고 돌아선다. 담배를 피우기 전보다 부쩍 쓸쓸함이 배인 이모의 표정 위로 유리창에 부딪친 햇살이 깨어진다. 이모는 그 조각난 햇살들 틈으로 배시시 웃음을 머금는다.
“이상한 건 전생을 봐주기 시작하자 정말 전생이 보이는 것 아니. 모든 것엔 인과가 있어. 네 모습, 목소리 그 말투 그런 것들을 갖게 된 것엔 반드시 이유가 있어. 언젠가 너 스스로 알게 될 거야.”
다시 검은 우단의자로 돌아와 앉는 이모의 모습 위로 아주 짧은 순간 어떤 것이 겹쳐온다. 은은한 녹빛 그림자 같은······.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아주 밝고 투명한 그러나 조금은 슬픈 기운이 이모의 얼굴을 스쳐가는 것만 같다. 저것은 이모의 아우라일까.

나의 원룸에서 이모는 잠이 들었다. 삼단요 위에 모로 누운 이모는 낮게 코를 곤다. 앞이 둥그렇게 파인 하늘색 잠옷자락이 벌어진 틈으로 이모의 가슴 골짜기가 보인다. 나는 살그마니 내 손가락을 그 골짜기로 밀어 넣어 본다. 손가락 끝에 닿아오는 따뜻함과 부드러움. 이모의 가슴은 실크처럼 연하다. 나는 또 죽은 엄마를 생각한다. 포근했던 엄마의 품······, 어디선가 분 냄새에 섞인 엄마의 체취가 풍겨오는 것만 같다. 내가 몇 살 때였던지 멸치를 볶다 돌아선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의 목 언저리에서 풍기던 향긋함, 앞섶엔 멸치볶음의 고소함과 비릿함이 배어 있었다. 엄마의 향기 위에 나는 첫 번째 이모부를, 만난 적이 없는 두 번째 이모부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이모의 몸 위에 새겨진 남성의 흔적을 더듬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모가 몸을 뒤척인다. 나는 얼른 손을 빼고 물러나 앉는다.
싱글인 내 침대를 없애고 이모와 같이 잘 수 있는 넓은 침대를 사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던 이모는 석 달이 가깝도록 내 침대 밑에 삼단요를 깔고 잠이 든다. 나는 어쩌면 이모가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파도를 넘어와 잠시 내 곁에서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파도를 타고 떠날 것 같은 예감·······. 그것이 이모의 운명인 것처럼.
나는 구석에 놓여있는 이모의 자주빛 트렁크로 다가간다. 지퍼가 열린 뚜껑을 들추고 헝클어진 옷가지들을 뒤적거려 본다. 이모는 내가 비워준 서랍장에 자기 옷을 정리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트렁크 안에서 무심히 휘휘 돌던 내 손가락에 걸려나온 이모의 속옷은 너무 낡았다. 원래 분홍색이었던 듯 했지만 너무 빨아 거의 허옇게 바랜 이모의 팬티, 나는 내 서랍을 채운 사치스런 속옷들을 생각한다. 27만원이나 주고 산 수입품 속옷세트, 엄마의 산소를 다녀오던 어느 오후 백화점에 들러 신용카드를 죽 긋고는 조금은 후회를 했던 것이다. 보랏빛 자수가 놓인 그 아름다운 속옷을 혼자서 몇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뿐 보여줄 사람이 없다. 나는 한숨을 쉰다.
이모의 낡은 팬티를 도로 트렁크에 넣으며 다시 그 안을 휘저어 본다. 옷이 겹쳐 놓인 사이에서 작은 원통형의 딱딱한 것이 감촉된다. 내 손가락은 꺼내보기도 전에 그것이 약병이라는 걸 금방 알아낸다. 내 예상은 맞았다. 뭔가 이모 주위를 맴돌고 있는 불안한 기운에 한번쯤 이모의 트렁크를 뒤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유로든 이모마저 엄마처럼 잃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약병 위엔 sleep Aids라고 쓰여 있다. 노오란 투병 플라스틱 병 속에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쌀알보다 조금 큰 약 알들이 내가 병을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몰린다. 나는 뚜껑을 열어 그 약들을 손바닥에 쏟아놓고 하나 둘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윙윙대는 바람소리가 창밖을 지나간다. 어느새 겨울이 깊었다. 내 침대머리에 켜놓은 촉수 낮은 불빛이 옆으로 누운 이모의 귓불을 비춘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이 약을 몇 알이나 먹어야 아주 떠날 수 있는 걸까. 바람이 유리창을 흔든다. 내일아침은 부쩍 기온이 내려 갈 것이다. 그런 날엔 그냥 카페에 죽치고 앉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또 그만큼 이모의 전생수입이 오를 것이다. 아홉 열 열하나·······. 냉냉한 바람에 조금씩 움찔거리는 카페의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뽑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한번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여기 분당사거리를 맴도는 그들은 대부분 생을 그리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를 묻는다. 너무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을 잊어가고 너무 낮은 곳 어둠에 시달리면 생각의 기능조차 약화 될테니까. 열둘 열셋 열넷········. 전생카페를 연 것은 정말 잘 했다. 어떻게든 이모를 붙잡아 할텐데·······. 떠나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약은 꼭 50알이다. 약병에 귀가 딱 맞는 50알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모가 이 약을 아직 한 알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이모는 어느 땐가 이 약들을 한꺼번에 먹기 위해 지니고 있는 걸까. 나는 내 손바닥에 수북한 약 알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이모를 본다. 이모는 어느새 방향을 바꿔 등을 돌리고 잠이 들었다.
카페를 연 두 달 사이 이모의 전생보기는 조금씩 입소문이 났고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말미에 이모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커피를 파느라 이모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는지 듣지 못했지만 이모와 마주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엔 깊은 그 무엇이 서려 있다. 혹 이모는 전생보다 지금 자기 자신을 찾으라고 말했던 건 아닐까. 자기에게 충실하지 않으면 이생에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내게 말했듯이.
나는 수면제를 도로 약병에 담아 뚜껑을 꼭 눌러 닫는다. 원래대로 이모의 옷들 사이에 약병을 끼워 넣고 트렁크를 닫는다. 잠시 멍하게 앉은 내 귀로 이모의 깊은 숨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존재와 존재 사이를 흐르는 유일한 존재라고······· 자기를 모르면 남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이모는 타인을 더 알려했던 것을 후회하며 돌아왔다고········.
이모의 숨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나는 모든 것이 희미하다. 내가 누구인지 남이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다. 성에가 낀 유리창에 막힌 듯 희뿌연 모든 것에 대해 그저 나는 추위를 느낀다. 확연히 알기 위해선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할 뿐, 그것은 생을 깨뜨리는, 어쩌면 이모의 저 수면제 한 병을 다 삼켜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 안으로 어떤 혼돈이 밀려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움켜진 가슴에서부터 밀려나온 눈물이 찔끔 눈꺼풀을 넘는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어떤 한계점으로 밀려와 버린 것만 같다. 어쩌면 이모의 출현으로 인하여·······.

카페 밖 공기는 아직도 코를 맵싸하게 할 만큼 차가웠지만 여자들은 벌써 봄옷들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거의 검정색 톤 일색이던 거리의 사람들이 조금씩 화사해지고 있다. 검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이모가 흥 웃는다. 몸에 체감되는 온도보다는 흘러온 시간에 맞게 옷들을 입는다고, 서울 사람들은 그렇다고·········.
이모는 스스로 서울사람이 되길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서울로 돌아오고 서도······. 이모는 말했다. 땅으로 사람 편을 가르지 말라고 무엇으로도 가르지 말라고 다만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만을 구별하라고, 자신은 우주의 시민이라고······.
나는 아직도 이모의 말을 알아듣기 싫다. 이모는 자꾸 누워 쉬려는 생각의 더듬이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려 한다면 나는 자꾸 일어서려는 그 더듬이들은 일부러 눕히고 짓밟고 싶다. 조금씩 이모가 힘겨워진다. 내 생활과 완전한 합류도 안하면서 내 공간을 차지한 이모, 전생카페의 주인은 엄연히 나인데 손님들은 이모를 주인 대접한다. 이모의 노련한 나이와 그 미모와 말주변은 손님들로 하여금 나를 미련하고 나이든 종업원쯤으로 여기게 한다.
나는 차츰 이모를 고발하고 싶어진다. 한평생 꿈과 현실 사이를 줄 당기기하며 우리 엄마를 걱정시키던 이모를, 지금은 나를 걱정시키는 이모를 누구에겐가 고발하고 싶다.
봄이 피어나면서 카페엔 손님이 줄었다. 커피는 생각과 어울리고 생각은 봄 보다는 겨울하고 훨씬 어울린다. 겨우내 이모의 전생입담에 위로받던 심심한 사람들도 어디론가 소풍을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모는 잠시 눈을 붙이겠다며 원룸으로 들어갔고 창밖은 화사한 햇살이 난무하다. 헤이즐럿 커피가 똑똑 떨어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길게 커피 향을 흡입해 본다. 폐부 깊숙이 향기가 몰려오는 만큼 웬일인지 나의 심통주머니도 부풀어 오른다.
나는 계단대 밑 핸드백에서 수첩과 핸드폰을 꺼내들고 이모의 검은 우단 의자로 가 앉는다. 겨울의 시작에서 봄이 오기까지 단 몇 달 이모의 체중을 견디어낸 우단의자의 등받이는 벌써 허옇게 닳아있다. 질감이 강한 폴리에스텔로 커버할 걸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며 털썩 앉아버리려던 나는 엉덩이가 닿는 아랫부분보다 등받이의 천이 더 닳아 있는 것에 잠시 의혹을 느낀다. 역시 이모는 허공에 중심을 둔 사람일까. 땅으로 떨어져 내리지 않기 위해 뭔가 안간힘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다가온다.
나는 이모의 의자에 앉아 수첩을 펼친다.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수첩 장을 이리저리 넘기다 끝내 첫 번째 이모부의 전화번호를 발견한다. 냉큼 핸드폰을 열고 그 숫자들을 차례로 누른다. 신호음 끝에 그가 대답을 하리라는 기대는 우선 접기로 했다.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므로. 다만 나는 오늘의 무료함과 삶에 대한 심통을 견딜 수 없어할 뿐이다.
그러나 거기 그가 있었다. 그의 사무적인 대답과 내 조심스런 질문이 몇 번 오고간 뒤에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확인 작업을 끝내고 얼마간의 반가움으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네가 그리 컸느냐고 대견해하던 그는 아니 네가 이제 그리 나이 먹었느냐며 낮아진 목소리에 연민을 담는다. 나는 이모가 돌아왔음을 알린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길 잊지 않는다. 그가 지금 어떤 아늑한 삶을 꾸리고 있다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불안정 속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는 이모의 삶과 지금은 안정되었을 지도 모르는 그의 삶을 다 깨뜨려 버리고 싶다. 나는 내 생의 심심함을 견딜 수가 없다.
그는 조만간 한번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이모를 만나고 싶은 눈치가 확연한데도 당장 달려오겠다고 하지 않는 것이 나는 조금 섭섭하다. 또 다른 파도에 휩쓸려 나를 떠나기 전 이모를 어서 그에게 보여주고 싶다. 원색의 원초성은 어디에도 없는, 이리저리 뒤섞여 무슨 색인지도 모르는 간색을 이룬 이모의 묘한 분위기를, 조금은 시들한 그 나이 먹은 여인을 그에게 보여주어 혹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모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을 깨뜨려 주고 싶다. 서로 놀라고 어색해하고 실망하고 어두워지는 그 표정들을 살피며 나는 속으로 마구 웃고 싶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바라보듯. 그리고 당신들 보다는 나에게 아직 생을 개조할 시간이 더 많다는 걸 인식하며 한번쯤 안도의 숨을 쉬고 싶다.
이모는 낮에 원룸으로 들어간 후 내가 카페를 닫는 밤 11시까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카페 문을 잠그고 컴컴한 길을 걸어 내 숙소로 향한다. 한결 포근해진 밤기운이 슬며시 내 표피를 핥다 불쑥 몸속 깊이로 스며든다. 어디론가 가고픈 충동이 인다. 형체모를 정념의 충동······.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으로 흥건히 고여 든다. 어서 이모가 웅크려 누웠을 내 원룸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걸음을 크게 떼며 골목길로 들어선다. 원룸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선 좁은 길, 택시 한 대가 쏜살 같이 내 곁을 스쳐간다. 얼결에 한쪽으로 비켜서는 내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나도 살 가치가 있는 귀한 생명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든다. 삶을 누비다 내 앞까지 밀려온 이모를 거두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는······. 나는 걸음을 되걸어 골목입구 포장마차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산다. 그것을 오물거리며 불룩해질 이모의 볼과 기름기로 반드르 해질 그 입술을 상상하며.
음식이 든 따끈한 비닐봉지가 품에 안긴 채 내 숨을 따라 할딱인다. 따뜻함이 가시기 전에 이모의 입속에 이것을 넣어주고 싶다. 조금 더 걸음을 빨리한다. 내 원룸 앞에 이르러 도어 타치키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삐리릭 잠금쇠가 열리고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생각지 않았던 어둠이 방안을 채우고 있다. 이모가 잠이 든 모양이라고 급히 불을 켰지만 이모는 없다. 좁고 적요한 공간에 뭔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냉큼 다가온다.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음식봉지를 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만다. 내 침대 아래 늘 펴져있던 이모의 잠자리 삼단요가 얌전히 개켜진 채 한쪽 벽에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할 이모의 자주색 트렁크가 보이질 않는다. 나는 떨어뜨려진 음식봉지처럼 철퍼덕 주저앉아 버린다.
이건 예기치 못한 이모의 배반이다. 아니, 아니다. 이모는 늘 어디론가 떠날 사람처럼 서성였다. 어쩌면 이모는 내가 며칠 후 이모의 생애에 찔러 넣을 첫째 이모부와의 해후, 그 심통을 벌써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결코 노처녀 조카의 심심한 장난질에 자기 생을 더 이상은 붉으락푸르락 안하겠다며 떠나기를 서둘렀는지.
축축하게 흐릿해지는 내 시야로 침대머리에 펼쳐진 종이 한 장이 들어온다. 나는 두어 걸음을 엉금엉금 기어 그 종이를 나꿔 챈다. 역시 이모가 남긴 편지다.

나 정말 전생을 찾으러 떠난다.
어떤 기운이 자꾸 나를 불러 견딜 수가 없구나.
다행히 2년 전 파리관광을 할 때 알아두었던
유학생 가이더와 연락이 되어 그동안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내가 가서 무엇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거기가면 안정과 편안함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우리 카페이름을 바꾸자꾸나.
전생이 아닌 ‘이생’으로 말이다.
결코 갈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에 목을 매는
나를 고치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사랑하는 조카야! 그동안 너의 짐이 되었던 것, 미안하구나.
그리고 고맙다.   -이모-

이모의 달필은 백지 위에 정갈하게 박혀있고 나는 이모가 그것을 갑자기 쓰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을 한다. 자꾸 눈물이 난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코를 킁킁거린다. 아직 남은 이모의 체취를 맡으려는 듯이. 방안을 떠도는, 이모가 흘리고 간 그 무엇이 나를 간지럽힌다. 못 견딜 느낌, 나는 바닥에 벌러덩 눕고 만다. 몇 번 몸을 뒤척이며 방향을 바꿔 눕던 나는 레이스 장식이 늘어진 침대 밑 귀퉁이에서 조그맣고 하얀 플라스틱 물체를 본다. 언젠가 떨어뜨리고 찾지 못했던 화장품 샘플 뚜껑일거라 생각하면서도 얼른 팔을 뻗어 그것을 잡아당겨 본다. 하얀 뚜껑을 따라 노오란 몸통을 드러내는 그것은 이모의 수면제 약병이다.
조금 안도의 숨을 쉰다. 이모가 결코 허튼 짓은 하지 않으리라는······. 두어 번 긴 숨을 쉬던 나는 갑자기 정체불명의 욕구에 시달린다.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약병의 뚜껑을 열고 그것을 거꾸로 든다. 파르스름한 약 알들이 쪼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나는 지난번처럼 약 알들을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약 알을 세다말고 골목입구에서 사온 순대와 떡볶이 봉지를 펼친다. 봉지 안에 든 나무젓가락을 쪼개 냉큼 순대와 떡볶이를 하나씩 입안에 넣는다. 넷 다섯 여섯 일곱········ 냉장고에 가 생수병을 꺼낸다. 두어 모금 들이킨 생수병을 옆에 세워놓고 다시 약 알을 센다.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 둘·······. 떡볶이와 순대를 하나씩 입에 넣는다. 물을 마신다. 약 알을 센다. 열셋 열넷 열다섯·······
떡볶이, 순대, 물, 약 알 세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약이 50알 그대로라는 것을 안다.    이모는 실수로 이 약병을 떨어뜨리고 간 것일까. 혹 내게 주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갑자기 콩을 주어먹듯 바닥의 약 알들을 한 알씩 입에 넣는다. 하나 둘 셋 넷·······. 또 약 알을 세기 시작한다. 마흔 둘 마흔 셋 마흔 넷········. 입안에 약 알이 가득 찬다. 나머지 여섯 알을 마저 입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온다. 나도 모르게 약 알들을 뱉어내려다 입을 앙다물고 얼른 생수병을 집어 든다. 그리곤 입에 든 것을 물과 함께 삼켜 버린다. 한꺼번에 목구멍을 통과하기엔 조금 부담스럽던 부피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벌러덩 바닥에 눕는다. 인조마루바닥에 부딪친 내 체중의 울림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생수병이 넘어진다. 도르르 두어 번 굴러간 병에서 똑똑 물이 떨어진다. 천천히 바닥을 흐르는 물이 푸르스름한 여섯 개의 약 알들을 적시기 시작한다. 저것들은 다 삼켜야 하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온몸이 노곤해 온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채 아직도 김이 나는 검은 비닐봉지가 보인다. 붉은 떡볶이와 검은 순대가 나란히 누워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나는 나도 그렇게 볼품없이 식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니 식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주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봄이 짙어졌다. 나는 원룸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화사한 봄꽃향기 대신 골목길 전봇대 앞에 놓인 음식물수거 쓰레기통에서 퀴퀴한 냄새가 창을 타고 넘어온다. 이것이 도시의 봄이라는 걸 새삼 절감한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25호 글씨로 타이핑한 파일을 프린트하기 위해 마우스로 인쇄를 클릭한다. 명령을 접수한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프린터에 그것을 전달하기까지는 약간의 틈이 있다. 우리들의 대뇌와 소뇌 사이에도 틈이 있는 것처럼. 멍하게 허공을 응시한 내 눈은 어느새 이모를 닮아있다. 봄이 시작되어 지금 짙어지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나는 이모를 닮는 법을 터득했다.
카페가 이틀째 닫혀 있는 것을 알게 된 아빠가 내 원룸의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고 했다. 엄마를 잊고 재혼을 한 아빠가 그래도 아주 내 곁을 떠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사가 말했다고 했다. 다행히 치사량에 조금 못 미쳐 목숨을 건졌다고·······. 아빠는 원룸 바닥에 늘러 붙은 푸르스름한 약 여섯 알이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는 미국산 수면제라는 걸 알아내고 이모를 욕했다. 겨우 돌아와 조카에게 가르쳐 주고 간 것이 이거냐고.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모는 정말 중요한 것을 내게 가르쳐 주고 갔다는 것을.
나는 허공에 난무하는 그 어떤 무수한 기운들을 포착하기 위해 눈을 멍하게 뜨고 마음을 여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좁은 길을 넓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모가 탔던 이생의 파도는 내 전생의 파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기스럽고도 순결한 이모는 내 전생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전생에서 소망했던 것은 어쩌면 재미없도록 잔잔한,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그런 생이었으리라. 정말 그렇게 거듭거듭 태어나는 업보를 지닌 것이 사람이라면·······.
나는 이제 이모의 검은 우단의자에 앉아 무슨 말인가를 할 자신이 생겼다. 이모가 사라진 카페에서 과연 손님들이 내게 전생을 물어올지 그것이 의문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우단의자에 앉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모가 두고 간 치렁거리는 귀걸이를 걸어보고 얼룩덜룩한 터번을 머리에 써본다.
프린터에서 트륵트륵 두 장의 종이가 인쇄되어 나온다. 카페 유리문에 붙여놓을 첫 장엔 ‘바리스타 구함’, 그리고 검은 우단소파가 있는 벽면에 붙여놓을 두 번째 장엔 ‘전생을 봐드립니다.’ 라고 찍혀있다.(*)


                     2006[미주문학] 겨울호 - 2011년 발간 소설집 [빛나는 눈물]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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