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진실로 알자 /白野 최광호

2008.04.14 14:40

박경숙 조회 수:714 추천:105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 물론 제 잘난 멋에 살아가니깐 자신의 귀중한 존재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이란 머나먼 노정에서 다만 자신의 귀중한 존재만 알고 살면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진정 이 참다운 인생으로 살아가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진실로 알고 솔직하게 현실을 대하여야 한다. 하물며 여럿이 어울려 사는 우리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타인 먼저 자기가 다치게 된다.


나도 지금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 자신을 아주 모르고 살고 있다. 때론 조용히 자기 자신을 검토도 해보고 이런 것은 틀리고 이것은 맞으니 다음에 계속 잘해보자고 삶의 방침을 야무지게 세웠다가도 또 세상살이에 나가면 모든 것을 까마아득히 잊어먹고 만다.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일을 저지를 때가 많다. 이런 것들은 다 너무나 자기의 잘난 존재만 익숙하고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데서 빚어진 것들이다.


우리 한번 삶의 현장을 돌이켜 보기로 하자. 이런 일들은 대체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한테서 많이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노가다를 다니는 나는 매일과 같이 아침 일찍 반장님의 차를 타고 출근한다. 그 시간이면 또 다른 차들도 민물처럼 밀려들어 빼곡히 몰 킬 때가 있는데 그때면 차량들은 서로 막혀  밀착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순간을 보고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아는가를 알 수가 있다. 갑자기의 우리 차 앞을 가로질러 들러 선 차를 보고 반장님이 대노했다.


“아따, 저 xx새끼를 봐라? 남의 차 앞을 가로 막아야? 야, 이 x같은 새끼.”


반장님의 고래고래 퍼붓는 쌍스러운 욕설에 저쪽 상대방 차 운전자가 들은 모양이다. 그 차 운전자도 우리 쪽에 대고 욕설 포를 갈긴다.


“야 xx놈아, 뭐라고? 네 에미 x.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아따 저 눔이 아주 뒤질 라고 환장을 했구 마이. 나가 싸게 싸게 나가 확 없애 불라”


반장님이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을 옆에 있던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겨우 말렸다. 보다싶이 여기서 우리 반장님이 조금만 한 발작 뒤로 물러서 준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반장님이 순간에 자기 자신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평시에 늘 상냥하고 그렇게 따뜻하던 반장님이신데도 말이다. 갑자기 중국의 공자님의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자기를 억제하고 예의 맞게 행동하라-


얼마나 함의가 깊은 인간윤리인가. 이 말씀을 볼 때 옛 고대문화에서도 인간의 문명을 강조한 듯싶다. 인간의 문명은 제일 먼저 자기를 진실로 알고 솔직한데 온다. 양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 이런 윤리적 교육은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알게 하고 솔직함으로 문명을 맞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언젠가 한국 모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고향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중국에서 한국에 들어 온지가 이젠 거의 삼년이 다 되어가건만 여기저기 회사를 옮기다보니 별로 돈도 못 벌었다 한다. 인간성이 좋고 성격이 활달한데다 일도 아주 잘 한다. 다만 그 못 된 황소고집에다 성질머리 때문에 자꾸 사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 좋다가도 일단 성질을 부린다하면 아주 천둥을 울린다. 하여 처음엔 그 친구와 다들 좋다가도 얼마 못가 그 못 된 성질머리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곤 하였다.


우리는 오래간만의 만남이라 간이음식점에 가서 소주를 나누었다. 권 거니 작거니 하면서 술 한 병을 굽 낸 뒤다. 친구가 또 불평을 토했다.


“여보게 광호, 나 아마 이 회사를 또 때려 부셔야겠네. 영 맞지를 않아.”


“또 무슨 일이 있었나?”고 나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 한번 만났을 때 새로 옮긴 회사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이제야 진정 좋은 회사를 만났다고 좋아했던 친구가 아니던가?


“아 말도 말게. 다 개새끼들만 모였다니깐. 이 한국 사람들은 다들 너무나 잘 난체 한단 말이야.”


친구는 씩씩거리면서 뭔가가 아주 크게 못 마땅해 했다.


“또 왜 그러나? 자네 혹시 또 <폭팔>한 것 아니야?”


“아 글쎄, 내가 생산량을 더 증가시키려고 나대로 했는데 과장이란 눔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어찌나 잘라매는지 참다못해 나도 모르게 한방 갈겼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누군 자기보다 못한가.”


친구는 그냥 제가 옳다고 우긴다. 보매 이 친구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제만 옳다고 우기는 편견주의 자다.


“여보게 만식이, 자네 한번 자기 자신을 잘 생각해 볼 수 없겠나? 자기 잘 못을 찾고 나서 다른 사람을 탓할게 아니가?”


나는 친구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사는 이 “불쌍한 존재”를 다시  한번 안타까이 바라보았다. 참 답답하기만 한 친구이다. 한 식경 말없이 가만히 친구의 말만 듣다가 문뜩 이솝의 우화가 떠올라 나는 친구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보게 만식이, 내 자네에게 우화 한편 들려 줄 가? 한번 들어보게. 어느 날, 까마귀가 동쪽나라에서 서쪽나라로 이사를 가게 되었네. 이때 마당에서 먹이를 쪼아 먹던 수탉이 이사를 가는 까마귀한테 알은 체를 했지.


<여보게 친구, 어디로 가나?>


까마귀는 가련하게 수탉을 바라보면서 울먹거리며 겨우 대답을 했네


<동쪽나라 사람들이 글쎄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미칠 듯이 비난을 해대기에 지금 막 서쪽나라로 이사를 가는 길이네.>


이 말을 들은 수탉은 몹시 안 된 까마귀의 가련한 신세를 바라보면서 약간 잠자코 있더니 한마디 충고를 던졌지.


“여보게 친구,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내보기엔 이사를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왜냐하면 나는 자네가 그 목소리를 고치기전에는 동쪽나라 가던 서쪽나라 가던 매 한가지라고 생각 되네.>


여보 게 만식이, 이 우화에서 무엇인가 느끼게 된 게 없나? 내가 보기에도 자네도 다른 회사를 옮길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우선 자네 그 황소고집과 성질을 고치게. 사람은 진실로 자기를 알아야 하네. 자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잘 못도 모르게 되어 있는 거야. 한번 잘 생각해보게.“


친구는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은 소식이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이 친구도 하루빨리 자기 자신을 진실로 알고 자기 잘 못을 깨달으면서 솔직하게 현실을 대해주기를 바란다. 아니 우리 이 친구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진실로 자신을 알고 바른 아름다운 자세로 현대문명을 맞이하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2007 년 2 월 21 일

2007 년 3월호 월간 "문학바탕"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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