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등단제도 이대로 둘 것인가?
칼럼/동아줄 김태수
큰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오히려 충격은 이러한 사실을 처음 알았던 작년 이맘때였다. <문예지 사줘야 당선 확정 … ‘등단 헌금’ 내라? / 전국 문예지 313종 … 본지 실태조사 “일부 그런 관행 있다” > 중앙일보 기사 표제어다
등단 장사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는 기사가 떴다. 별로 반갑지 않은 기사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문학인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회 일반 분야에서도 그렇고 그런 관계에 있는 곳이 많겠지만, 그래도 좀 씁쓸하다. 개인 이메일을 통해서 이 기사 내용을 글 벗 지인들에게 보냈다. 우리 자신을 반성해보자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지나고 나면 그래 진즉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건데 하고 거든다. 대통령의 통치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수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용했어도 꿀 먹은 벙어리모양으로 있다가 나중에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장본인도 오래된 관행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통치자금이었으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한마디 하면 그만이다. 통치행위였다니까.
300여 개가 넘는 문예지가 한국 문단에 범람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간되는 문예지는 모두 313종. 2000년 104종에 비해 3배 늘었다고 한다. 언뜻 ‘문예지 부흥기’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한국 내 문예지 대부분이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가들에게 문예지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근근이 유지해가는 실정이라고 신문기사는 전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매년 선정해 지원해주는 우수문예지 약 40개를 제외하면 85% 이상의 문예지가 문예지를 일정 부수 이상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등단 비용 없이 등단할 수 있는 문예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대다수 문예지가 이렇게 등단장사를 하고 있는데도 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관행으로 묵인해야 하는가? 정말 개선책은 없는가?
등단을 전제로 한 문예지 강매도 문제지만, 등단 추천과 사례비 명목의 헌금도 도마 위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저명 원로 문인이 추천하면 공모를 통하지 않고도 직행으로 등단이 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친절하게도 그럴싸하게 심사평까지 써주신다. 그런데 이러한 추천 등단 및 심사 사례비 관행은 당사자 들끼리만 서로 묵계 적으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어서 공론화되지는 않는다. 이를 자세히 폭로하며 각성을 촉구하는 내부자의 양심선언도 없다. 그냥 눈감고 모른척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예지 운영이 신인상이라는 등단제도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간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 알량한 등단을 해보고 싶은 명예욕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신인상 공모할 때 학력과 경력, 나이를 참조해서 앞으로 계속 문예지 운영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인가? 가 또 다른 심사 기준이 되었다. 좋은 말로 문학 활동이지 사실 문학 활동을 빙자한 돈 거둬들이기와 다를 바가 아니다. 자금줄 확보가 급한 것이다. 신인상 공모할 때 학력, 경력, 나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에 비해 상금을 주는 곳은 작품 수준이 안되면 당선작을 안 내면 그만이고 또 당선작을 뽑더라도 개성과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작품을 중심으로 할 것이다. 그래서 등단을 하려거든 현상 공모전을 통한 입상이 떳떳하다. 그런데 이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쉽게 돈을 내가면서도 등단하려 한다.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인정받기” 만성질환이다.
나도 그랬다. 약 1년간 시나브로 습작 시를 10여편 썼는데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쓰고 있는지를 검증받고 싶었다. 마침 연말이 되어가는 무렵이라서 신춘문예 응모 기간이었다. 10여 군데 신춘문예 그리고 두 군데 문예지에 응모했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한 문학사로부터 1차 합격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신인상 당선작과 심사평이 실린 문예지는 친지들에게 나눠주려면 30권 정도는 필요할 것이고, 또 그 구매 금액은 문학사 운영을 위해 긴요하게 쓰이게 됨을 이해하고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30권에 30만 원인데 기꺼이 그 금액을 지급하고 등단의 명예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시인이 되었다. 늘 떠있던 달도 유난히 더 밝아 보였다.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당선작이 실린 책을 자랑스럽게 친지 들에게 돌렸다.
등단했으니 이제는 함부로 글을 써서 함량 미달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문학이론과 시 창작론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기 시작했다. 당선작이나 좋은 작품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예지가 250여 개나 있는 것을 알았고 또 문예지마다 등급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신인상 제도는 문예지 운영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거기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그 영광스럽던 시인이 갑자기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이 아닌 미주 한인 문인단체에서 실시하는 상금 걸린 신인상을 받으며 재등단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운 좋게 당선된 곳이 미주문학이고 재미수필이다.
한국에서 등단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문인이 굳이 재등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이 말이므로 좋은 글을 쓰면 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든 이름없는 지방대학교를 졸업했든 다 같은 학사다. 더 좋은 학교에서 더 원하는 공부, 더 많은 친구, 더 좋은 정보가 필요하면 원하는 학교에 편입학하여 졸업하면 된다. 재등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작품을 평가하는 심사 기준은 어떤 형대로든 필요하다. 기준이 바로 서야 한다.
< 신인문학상도 등단을 위한 ‘통과의례’가 되다 보니 통과의 ‘법칙’이나 ‘공식’을 잘 가르쳐주는 몇몇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가 인기를 누리고, 그 학과의 교수들이 등단 제도의 심사위원을 자주 맡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등단 문학작품에서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통탄이 터져 나온다>는 한기호의 ‘책동네 이야기’에서 읽은 내용이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문학 수업을 받아 등단해도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고, 기본적인 문장 구조와 맞춤법이 엉망인 일반 문학 애호가가 등단헌금? 대가로 쉽게 등단하는 현재의 제도를 두고만 볼 것인가?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은 “지역에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지속될 수 있다면 이러한 관행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신문 기사는 전한다. 오죽하면 이러한 발언을 했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대표적인 한국문인단체의 수장으로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등단제도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없으면 문학인이 증가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많은 문학 애호가가 오늘도 인터넷을 통해서 종이 활자 없이도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얼마든지 동호인들끼리 맘만 먹으면 동인지를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주문 제작하여 발표할 수 있다. 문제는 등단이라는 제도이다. 누구나 등단의 명예를 원하기 때문인데 이를 인정해주는 문예지를 통해서 문학활동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한국문협 같은 거대 문인단체에서부터 개혁의지를 갖추고 지리멸렬한 문예지를 통한 등단 인정을 안 하면 그만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심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것도 사실 심판기능인 사법부가 역할을 잘 못했기 때문이었다. 함량 미달의 대량 작가 양산도 심사기준을 강화하면 해결될 수 있다. 먼저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문예지의 신인상(등단) 심사를 맡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심사위원 위촉은 전문적인 문학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인으로 구성하고 그 자격 요건을(기준) 충족하는 사람으로 구성하되 등급을 정해서 경력과 일정 기간의 심사활동을 평가하여 승급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태권도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조그마한 지방의 경기는 도나 시 단위의 태권도 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판 위원이 활동하고 이를 공정하게 하려고 배심원, 주심, 부심을 두어 세부 규칙에 따라 운영한다.
심판은 국기원에서 교육하고 심사하여 합격하면 처음 3급 심판원 자격증을 준다. 차츰 심판 경력이 쌓이면서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합격하면 승급한다. 1-3급 그리고 국제 심판도 있다. 국제 심판은 국제대회 심판을 주로 담당한다. 선수는 참가 신청비를 낸다. 그래야 상패 제작비, 심판 활동비, 장소 대여비 등 대회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
문학상 공모전도 이와같이 하면 안될까? 운동경기와 문학은 그 차원이 다르고, 예술성을 어떻게 운동경기와 비교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르다. 그러나 둘 다 그 심사기준은 공정성이 생명이며 좋은 선수를 선발하듯 좋은 작품을 선발한다는 측면에서 그 속성은 같다. 이를 합리적으로 문학의 특성을 살려 제도화해보자는 것이다. 공모전 응모자로부터 참가 신청비를 받아야 운영 경비로 충당할 수 있다. 한꺼번에 시행하기 어려우면 우선 신인문학상부터 단계적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시행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진흥기금도 새로운 제도 개선에 맞춰 지급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한국문협은 정부에 건의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정부와 문인단체가 함께하면 안될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문인협회 자체적으로도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개선 의지 없이는 현재 안고 있는 한국 등단제도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나중에 후배들이 왜 그때 등단제도 문제점을 내버려두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때는 현실적으로 제도 개선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등단헌금이 그나마 한국문학 발전에 공헌했다고 옹색하게 대답할 것인가?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문예지 운영을 위한 관행이었다고.
칼럼/동아줄 김태수
큰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오히려 충격은 이러한 사실을 처음 알았던 작년 이맘때였다. <문예지 사줘야 당선 확정 … ‘등단 헌금’ 내라? / 전국 문예지 313종 … 본지 실태조사 “일부 그런 관행 있다” > 중앙일보 기사 표제어다
등단 장사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는 기사가 떴다. 별로 반갑지 않은 기사지만 어쩌랴? 이게 현실인 것을. 문학인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회 일반 분야에서도 그렇고 그런 관계에 있는 곳이 많겠지만, 그래도 좀 씁쓸하다. 개인 이메일을 통해서 이 기사 내용을 글 벗 지인들에게 보냈다. 우리 자신을 반성해보자는 의미에서다.
우리는 지나고 나면 그래 진즉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건데 하고 거든다. 대통령의 통치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수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용했어도 꿀 먹은 벙어리모양으로 있다가 나중에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장본인도 오래된 관행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통치자금이었으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한마디 하면 그만이다. 통치행위였다니까.
300여 개가 넘는 문예지가 한국 문단에 범람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간되는 문예지는 모두 313종. 2000년 104종에 비해 3배 늘었다고 한다. 언뜻 ‘문예지 부흥기’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한국 내 문예지 대부분이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가들에게 문예지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근근이 유지해가는 실정이라고 신문기사는 전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매년 선정해 지원해주는 우수문예지 약 40개를 제외하면 85% 이상의 문예지가 문예지를 일정 부수 이상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등단 비용 없이 등단할 수 있는 문예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대다수 문예지가 이렇게 등단장사를 하고 있는데도 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관행으로 묵인해야 하는가? 정말 개선책은 없는가?
등단을 전제로 한 문예지 강매도 문제지만, 등단 추천과 사례비 명목의 헌금도 도마 위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저명 원로 문인이 추천하면 공모를 통하지 않고도 직행으로 등단이 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친절하게도 그럴싸하게 심사평까지 써주신다. 그런데 이러한 추천 등단 및 심사 사례비 관행은 당사자 들끼리만 서로 묵계 적으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어서 공론화되지는 않는다. 이를 자세히 폭로하며 각성을 촉구하는 내부자의 양심선언도 없다. 그냥 눈감고 모른척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예지 운영이 신인상이라는 등단제도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간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 알량한 등단을 해보고 싶은 명예욕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신인상 공모할 때 학력과 경력, 나이를 참조해서 앞으로 계속 문예지 운영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인가? 가 또 다른 심사 기준이 되었다. 좋은 말로 문학 활동이지 사실 문학 활동을 빙자한 돈 거둬들이기와 다를 바가 아니다. 자금줄 확보가 급한 것이다. 신인상 공모할 때 학력, 경력, 나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에 비해 상금을 주는 곳은 작품 수준이 안되면 당선작을 안 내면 그만이고 또 당선작을 뽑더라도 개성과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작품을 중심으로 할 것이다. 그래서 등단을 하려거든 현상 공모전을 통한 입상이 떳떳하다. 그런데 이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쉽게 돈을 내가면서도 등단하려 한다.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인정받기” 만성질환이다.
나도 그랬다. 약 1년간 시나브로 습작 시를 10여편 썼는데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쓰고 있는지를 검증받고 싶었다. 마침 연말이 되어가는 무렵이라서 신춘문예 응모 기간이었다. 10여 군데 신춘문예 그리고 두 군데 문예지에 응모했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한 문학사로부터 1차 합격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신인상 당선작과 심사평이 실린 문예지는 친지들에게 나눠주려면 30권 정도는 필요할 것이고, 또 그 구매 금액은 문학사 운영을 위해 긴요하게 쓰이게 됨을 이해하고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30권에 30만 원인데 기꺼이 그 금액을 지급하고 등단의 명예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시인이 되었다. 늘 떠있던 달도 유난히 더 밝아 보였다.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당선작이 실린 책을 자랑스럽게 친지 들에게 돌렸다.
등단했으니 이제는 함부로 글을 써서 함량 미달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문학이론과 시 창작론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기 시작했다. 당선작이나 좋은 작품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예지가 250여 개나 있는 것을 알았고 또 문예지마다 등급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신인상 제도는 문예지 운영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거기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그 영광스럽던 시인이 갑자기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이 아닌 미주 한인 문인단체에서 실시하는 상금 걸린 신인상을 받으며 재등단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운 좋게 당선된 곳이 미주문학이고 재미수필이다.
한국에서 등단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문인이 굳이 재등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이 말이므로 좋은 글을 쓰면 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든 이름없는 지방대학교를 졸업했든 다 같은 학사다. 더 좋은 학교에서 더 원하는 공부, 더 많은 친구, 더 좋은 정보가 필요하면 원하는 학교에 편입학하여 졸업하면 된다. 재등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작품을 평가하는 심사 기준은 어떤 형대로든 필요하다. 기준이 바로 서야 한다.
< 신인문학상도 등단을 위한 ‘통과의례’가 되다 보니 통과의 ‘법칙’이나 ‘공식’을 잘 가르쳐주는 몇몇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가 인기를 누리고, 그 학과의 교수들이 등단 제도의 심사위원을 자주 맡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등단 문학작품에서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통탄이 터져 나온다>는 한기호의 ‘책동네 이야기’에서 읽은 내용이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문학 수업을 받아 등단해도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고, 기본적인 문장 구조와 맞춤법이 엉망인 일반 문학 애호가가 등단헌금? 대가로 쉽게 등단하는 현재의 제도를 두고만 볼 것인가?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은 “지역에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지속될 수 있다면 이러한 관행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신문 기사는 전한다. 오죽하면 이러한 발언을 했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대표적인 한국문인단체의 수장으로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등단제도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없으면 문학인이 증가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많은 문학 애호가가 오늘도 인터넷을 통해서 종이 활자 없이도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얼마든지 동호인들끼리 맘만 먹으면 동인지를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주문 제작하여 발표할 수 있다. 문제는 등단이라는 제도이다. 누구나 등단의 명예를 원하기 때문인데 이를 인정해주는 문예지를 통해서 문학활동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한국문협 같은 거대 문인단체에서부터 개혁의지를 갖추고 지리멸렬한 문예지를 통한 등단 인정을 안 하면 그만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심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것도 사실 심판기능인 사법부가 역할을 잘 못했기 때문이었다. 함량 미달의 대량 작가 양산도 심사기준을 강화하면 해결될 수 있다. 먼저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문예지의 신인상(등단) 심사를 맡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심사위원 위촉은 전문적인 문학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인으로 구성하고 그 자격 요건을(기준) 충족하는 사람으로 구성하되 등급을 정해서 경력과 일정 기간의 심사활동을 평가하여 승급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태권도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조그마한 지방의 경기는 도나 시 단위의 태권도 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판 위원이 활동하고 이를 공정하게 하려고 배심원, 주심, 부심을 두어 세부 규칙에 따라 운영한다.
심판은 국기원에서 교육하고 심사하여 합격하면 처음 3급 심판원 자격증을 준다. 차츰 심판 경력이 쌓이면서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합격하면 승급한다. 1-3급 그리고 국제 심판도 있다. 국제 심판은 국제대회 심판을 주로 담당한다. 선수는 참가 신청비를 낸다. 그래야 상패 제작비, 심판 활동비, 장소 대여비 등 대회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
문학상 공모전도 이와같이 하면 안될까? 운동경기와 문학은 그 차원이 다르고, 예술성을 어떻게 운동경기와 비교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르다. 그러나 둘 다 그 심사기준은 공정성이 생명이며 좋은 선수를 선발하듯 좋은 작품을 선발한다는 측면에서 그 속성은 같다. 이를 합리적으로 문학의 특성을 살려 제도화해보자는 것이다. 공모전 응모자로부터 참가 신청비를 받아야 운영 경비로 충당할 수 있다. 한꺼번에 시행하기 어려우면 우선 신인문학상부터 단계적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시행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진흥기금도 새로운 제도 개선에 맞춰 지급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한국문협은 정부에 건의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정부와 문인단체가 함께하면 안될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문인협회 자체적으로도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개선 의지 없이는 현재 안고 있는 한국 등단제도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나중에 후배들이 왜 그때 등단제도 문제점을 내버려두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때는 현실적으로 제도 개선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등단헌금이 그나마 한국문학 발전에 공헌했다고 옹색하게 대답할 것인가?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문예지 운영을 위한 관행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