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대화

2019.09.27 05:02

김영문 조회 수:10

마지막 대화

 

 

앰뷸런스를 불러 드릴까요? 지금 즉시 입원하셔서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이 상태로 운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나는 윗도리를 집어 들었다.

아니요.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하는지 잘 모르겠소. 여기 올 때도 잘 운전해서 왔는데 가는 데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소. 다른 의사에게 더 진찰을 받아보고 결정하지요.”

이상하게 끓어오르는 적의를 짐짓 감추며 나는 이 젊은 의사 녀석을 뒤로하고 나왔다. 학교 갓 졸업하고 대단한 경험도 없어 보이는 풋내기 의사가 혈액검사 하나만 가지고 뭘 안다고 제멋대로 그런 엄청난 진단을 한다는 말인가.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오자 7월의 찬란한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손쉬운 대로 우회전해서 목적지 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 돌팔이 애송이 의사 녀석의 말이 맞는다면 어쩌지? 가슴속에 검은 먹

구름처럼 뭉클거리며 일어서는 그 음흉한 가능성이 애써서 지워버리려 할수록 더 기분 나쁘게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내 마음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따위 소리를 듣기 전보다 산란했다. 수년 전에 죽은 동창생 녀석도 처음 진단을 받고는 체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몸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애써 질병의 가능성을 거부하다가 결국은 죽고 말지 않았는가. 더구나 진단에서 사망까지의 기간이 4개월도 미처 걸리지 않는 가파른 하강 길이었던 것을 나는 아주 가까운 옆에서 지켜보았다. 거의 삼사 일에 한 번씩 찾아가서 빈말이나마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고 위로하며 친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쾌활한 척 말하고 농담까지 해대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그 질병이 내가 아니라 친구에게 있다는 사실을 실로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었는가. 그런데 나라니. 이번에는 내가 그 죽은 친구와 똑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니.

마흔여덟 살. 빌어먹을. 남보다 더 건강을 챙기고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펄펄 끓듯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나다. 그런데 그 돌팔이 젊은 의사 녀석은 도무지 우연히 한 혈액검사 결과에서 혈소판의 수치가 떨어져 있다는 것 하나만 보고 그 따위 무책임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의사를 고를 때에는 나이 지긋하고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골라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한참을 차를 몰고 정해진 곳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나는 홍콩 익스프레스라고 씌어 있는 중국 음식점에 들러서 박스에 싸주는 음식 몇 가지를 사들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짤그랑거리며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니 텅 빈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일 년 전에 이혼하고 미국의 그 위대한 이혼법에 의해서 아내에게 집과 가재도구를 통째로 내주고 쫓겨나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이것은 꽤 홀가분하고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허전하고 처량한 느낌이었다. 이 아파트 안에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짓눌러왔다.

아파트 방안은 진공처럼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플라스틱 백에 들어있는 중국음식을 식탁에 펼쳐 놓고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서 치익, 마개를 땄다.

이혼한 것이 진짜 잘한 짓이었던가? 진정 다른 길로 화합할 수 없어서 택한 최후의 방법이었던가?

음식에 젓가락을 대기 전에 나는 맥주부터 컵에 거품을 내며 부어서 벌컥 벌컥 들이켰다.

이혼. 그리고 오늘은 질병의 가능성.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탄탄한 회사의 엘리트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순탄하게 잘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갑자기 뜻하지 않은 악재에 가로막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사람 사는 일은 유리그릇 같이 깨지기 쉬워서 어느 한 순간 상상도 못했던 불행이 들이닥쳐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내 인생이 갑자기 그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했다.

맛을 알 수 없는 중국음식을 기계적으로 씹으며 네 개 째의 맥주캔을 땄다. 알코올 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정신이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꽤 많은 세월을 아내라고 부르며 같이 살던 그 여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딸아이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엉뚱하게도 나는 이혼한 아내와 딸아이를 생각했다.

혼자 있는 아파트 방이 오늘은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돌팔이 의사 녀석의 진단 이후 두 달 동안을 나는 망할 놈의 병원이나 의사 간판을 볼 때마다 마치 죄진 사람처럼 가슴 두근거리며 외면하고 지나가면서 살았다. 다른 의사를 찾아가 두 번째 진단을 받아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각종 핑계를 찾아대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받은 두 번째 진단에서도 똑같은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그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나의 가슴을 떨게 만들었다. 아무리 멍텅구리 같은 돌팔이 의사라도 제대로 된 진단을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재수 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슴 밑바닥에 깔린 그 두려움에 나는 내일, 아니면 모레, 하면서 다른 의사 만나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 놈의 질병에 걸리면 몸무게가 줄어든다고 하므로 나는 디지털 저울을 사서 욕실에 놓아두고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내 몸무게를 달아보기 시작했다. 벽에다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고 날자와 시각 그리고 몸무게를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 시작한지 불과 두 달 사이에 나는 놀랍게도 8 파운드의 몸무게를 잃고 있었다. 그 무서운 병마가 내 몸의 8 파운드를 먹어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애송이 돌팔이 의사 놈의 진단이 맞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와들거리고 떨리면서 서늘해졌다.

 

토요일. 나는 아침 일찍 식사도 하기 전에 집을 나와 차를 몰고 산타 마리아로 향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주말에 산타 마리아의 딸기밭을 다녀왔는데 공기가 청량하고 그렇게 좋더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서 나는 별 계획도 없이 산타 마리아를 가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방속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정신이 산만해서 어떤 것에도 주의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탈출하고 싶었다. 내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진짜일지도 모르는 그 돌팔이 의사 놈의 진단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산타 마리아 시는 내가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약 백육십 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이므로 아무 목적 없이 가기에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나는 운전대를 잡고 가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아파트를 떠났다.

110번 후리웨이를 북향하여 101번으로 갈아타고 가다가 나는 중간의 쏠벵에서 잠시 후리웨이를 내려 가까운 곳에 있는 간이점에서 커피를 한 잔 샀다. 배가 고팠지만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한 손에 커피 컵을 들고 마시면서 나는 또 차를 몰아 산타 마리아 시에 도착한 것이 11시쯤 되었다. 클라크 애비뉴라고 씌어진 출구에서 내려 도심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비켜서 외곽 길로 들어서자 멀리 눈 닿는 곳에 질펀하게 딸기밭이 전개되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창밖에 질펀하게 전개되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딸기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길가에 있는 조그만 멕시칸 타코 음식점 간판을 보고 그 앞으로 들어갔다. 포장되지 않은 흙 밭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삐걱거리는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가 유리 대신 방충망이 쳐져 있는 문짝을 밀었다.

칼리포니아의 진한 햇빛에 새까맣게 그을은 얼굴을 한 멕시칸 주인이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로 맞았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어설프게 미국식이랍시고 닳아빠진 멕시칸과는 다르게 시골사람 특유의 순박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 개에 팔십 센트씩이라고 적혀 있는 고기 타코를 두 개 주문하고 식탁에 앉았다. 운전하는 동안,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기다리는 동안,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만약 그 돌팔이 의사의 엉터리 진단이 맞는다면 나는 삼 개월, 사 개월, 오 개월, 아니면 육 개월?

나는 머리를 저어서 흉한 생각을 내쫓으려고 애썼다.

언뜻 눈을 돌리다가 나는 한쪽 구석에 너무도 조용히 앉아 있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관심을 두지 못했던 노인의 조용한 눈과 마주쳤다. 동양인이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도 눈으로 답례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멕시칸 주인이 그것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코레아노?”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히 이스 코레아노 땀비엔.”

멕시칸 주인이 영어와 히스패닉을 섞어가며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나는 아, 그래요? 하는 눈으로 그 노인을 다시 보았다. 또 그 노인에게서 인자한 미소와 함께 눈인사가 왔다.

나도 그 부드러운 미소에 끌려서 눈인사를 보냈다.

한국 분이십니까?”

노인이 미소했다.

그렇소. 한국에서 온 사람이지요.”

나는 어쩐지 그 노인의 따뜻하고 무언가 현실을 초월한 것 같은 분위기에 끌려 들어갔다.

혹시, 같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노인이 또 미소했다.

물론. 물론 같이 앉아도 되고말고.”

나는 노인에게 가서 목례하고 그 앞 의자에 앉았다.

저는 준이라고 부릅니다. 이준혁입니다.”

그래요. 나는 이름도 없이 그저 여기 묻혀서 살고 있는 노인이지요. 여기 멕시칸 노동자들과 같이 사랑하면서 말입니다.”

멕시칸 주인이 주문했던 타코 두 개를 접시에 담아서 갖다 놓았다.

하나 드시겠습니까?”

노인은 사양했다. 음식냄새를 맡자 나는 그제야 내가 몹시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코 두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료?”

나는 맥주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타코 집에는 맥주가 없었다.

그럼 내 집으로 갈까요? 나는 항상 맥주를 가지고 있지요.”

, 그래요? 집이 가깝습니까?”

내 물음에 노인은 자기는 산보삼아 걸어서 이 집에 와서 주인 호세와 잡담하다가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나는 노인을 옆에 태우고 흙길을 잠깐 운전해서 노인의 집에 도착했다.

아니, 웬 책이 이렇게 많습니까?”

밖에서 보기에 초라한 목조 건물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서 집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놀라서 물었다. 한쪽 벽 전체가 책장이었고 그 곳에는 책들이 넘쳐나게 꽂혀 있었다.

, , 그저 내 취미가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혼자 사는 노인네가 뭐 할 게 있나요?”

노인은 나를 식탁에 앉으라고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내왔다.

날씨가 몹시 더웠을 뿐더러 나의 기분은 파괴적이어서 빨리 취해서 누구인가와 아무 말이나 마구 지껄여대고 싶었던 참이었으므로 나는 단숨에 맥주 깡통 하나를 비워버리고 두 번째 깡통을 땄다.

맥주 맛이 정말 좋습니다.”

노인과 눈이 부딪치자 나는 다소 겸연쩍어 말했다.

젊은 양반은 어디서 오셨소?”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요.”

, 컴퓨터 일을 하고 있군요.”

영감님은 여기서 혼자 사십니까?”

나는 방안을 휘이 둘러보며 물었다.

. 혼자서 살지요. 책도 읽고 별 쓰잘 데 없는 글도 좀 쓰면서 살고 있지요.”

외롭지 않으십니까?”

외로우냐고요? 당연히 외롭지요.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외로운 거니까요. 그러나 혼자 살면서 외로운 것은 여럿이 모여서 살면서 외로운 것보다는 훨씬 견디기가 쉽지요. 편하기도 하고요.”

나는 잠시 생각하며 노인의 말을 되씹었다.

저도 최근에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외롭다는 말에 대해서 좀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나는 말해 버리고 말았다.

노인도 맥주를 조금씩 마셨다. 나는 왠지 이 노인과 말을 많이 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빨리 마시고 있는 맥주가 나를 그만큼 빨리 취하게 만들고 있었다.

영감님, 나 많이 취해서 운전할 수 없게 되면 여기서 자고 가도 됩니까?”

노인이 웃었다.

, , 자고 가도 문제는 없지요. 그런데 가슴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기에 처음 만난 사람과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또 자고 가겠다고 합니까?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지요?”

나는 아무 말 안하고 맥주를 또 한 깡통 다 비웠다. 점점 오르는 취기에 혼돈스러워지는 머리를 바로 잡으려 애쓰며 말했다.

글쎄, 영감님, 내가 몇 살인지 아십니까? 마흔여덟 살 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인생의 황금기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살면서 내 인생을 구축하고 만년을 위해서 맹렬히 준비하면서 살아야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두 달 전에 말이지요,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겠습니까? 애송이 젊은 돌팔이 의사가 나에게 암이 있다고 진단했지 뭡니까. 웃기는 자식. 이렇게 건강하고 아무 증상도 없는데 암이라니요. 요새 의사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무책임한 소리를 잘도 지껄이거든요. 도무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함부로 해댄다는 말입니다.”

내가 횡설수설해대는 동안 노인은 이따금 자기 잔의 맥주를 입에 갖다 대고 조금씩 마시면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말을 마치고 한참 취기어린 침묵을 지키자 물었다.

다른 의사를 찾아서 다른 의견을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아픈 데를 찔린 것처럼 흠칫했다.

아무런 증상도 없고 병도 없는데 왜 시간 허비하면서 다른 의사를 찾아봅니까? 병이 있으면 우선 본인이 먼저 자각증세를 느끼게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런 증상도 없고 느낌도 없는데 왜 또 다른 의사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까?”

나는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면서 나는 점점 내가 하는 말을 믿게 되고 있었다. 내 몸은 건강하고 아무 질병도 없다는 것을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확신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아무 말 안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이 노인이 입을 열어서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질병이 있을 경우에는 본인이 먼저 알게 될 터인데 그런 자각증상이 없다면 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그런 말을 해주기를 원했다. 물론 요새 의사들 하는 말 신빙성 있게 들을 게 없습니다, 더구나 경험 없는 신출내기 돌팔이 의사의 진단에는 오진이 하도 많아서 큰일이지요, 이런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침묵하던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의사를 찾지 않는 것은 그 의사에게서도 같은 진단을 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은 아닌지요?”

, 하고 숨을 들이쉬며 나는 경련했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이 노인은 거리낌 없이 입으로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해 버린다는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그 젊은 의사 놈에게 느꼈던 적의를 이 노인에게도 느끼기 시작했다.

뭐요? 당신은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겁니까?”

아니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지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런 불행한 일을 당해보지 못하면서 당신은 그렇게 오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다는 겁니까?”

노인의 눈빛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두렵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럴수록 빨리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말하기 쉽군요. 노인께서는 지금 내 마음을 나만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본인만큼 그렇게 깊이 느끼고 걱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옆에서 조언이나 위로의 말을 해줄 수는 있는 것 아닐까요? 내 고통을 다른 사람이 나만큼 아파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말을 나누다 보면 마음에 다소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지요.”

나는 내 동창생이 병고에 시달릴 때 찾아가 위로해주던 나를 생각했다. 그 때 내가 했던 역할을 이 노인이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빨리 수영해서 나오라고 소리 질러대는 꼴인데 그래도 정신적 도움이 되겠다는 말이지? 나는 이 노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정점을 향해서 치달리다가 갑자기 무너져 내려야하는 절망감이 나를 파괴적으로 만들었고 그 분노를 나는 이 노인에게 쏟아 붓고 싶었다.

영감님은 성인군자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군요. 진정 남의 불행을 옆에서 말하기는 쉽다는 것을 나는 지금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난파해서 침몰하고 있는 배를 당신은 육지에서 구경하고 있는 셈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당신은 위엄을 갖추고 침착할 수 있지만 침몰하고 있는 배에 타고 있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내가 추하게 보이는가요? 허둥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가련해 보이는 모양이지요? 불쌍하지요? 맞아요. 나는 무섭습니다. 다른 의사에게 가서 진단받는 것이 두렵습니다. 병마의 진단이 또 한 번 확인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요? 당신은 내 처지가 되면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까? 나같이 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도 그렇게 의연하게 침착할 수 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살만큼 사셨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아직도 젊은 나이라는 말입니다. 억울하다는 말입니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내 앞길에 할 일이, 내가 세워놓았던 인생계획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다 놓고 가야한다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맥주 또 있습니까? 하나 더 주세요. 젊은 나이에 죽어야하는 가련한 사람에 대한 동정의 증표로 맥주 하나 더 주십시오.”

나는 횡설수설했다. 나는 저주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에게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그것이 이 망할 놈의 노인이어도 되고 나에게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진단을 내려준 그놈의 새파란 돌팔이 의사여도 되고 다른 어느 누구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왔다.

나는 거칠게 맥주 캔을 땄다. 그리고 꿀꺽거리며 반쯤 들이켰다.

젊은 친구, 이제 운전하기는 틀린 모양이니 여기서 자고 가기로 하고 천천히 드시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고요? 그 돌팔이 의사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던데요. 이러다가 내가 여기서 고꾸라져서 죽어버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시체를 치워야하는 번거로움을 어떻게 하지요? 시체 치우는 값으로 수표를 하나 써놓고 갈까요?”

나는 이 노인네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젊은 친구, 죽을 때 까지는 죽은 게 아니지요.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우리는 살아있는 겁니다. 시작이 중요한 것처럼 마지막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 없소?”

뭐라고? 마지막도 중요하다고? 나는 캔 속의 나머지 맥주를 다 들이켰다.

마지막이 중요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마지막을 아직 보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나는 아직 마흔여덟 살 입니다. 나는 당신처럼 늙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나는 당신처럼 다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맥주 하나 더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맥주 값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 안하고 맥주를 또 하나 꺼내놓았다.

나는 이제 정신없이 취해가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 빌어먹을. 될 대로 되란 말이다.

그나저나 영감님, 웬 맥주가 이렇게 많이 있습니까? 영감님은 알코올 중독인가요?”
나는 새 캔에서 또 맥주를 꿀꺽거리면서 마셨다. 딸꾹질이 나왔다. 영감은 나를 말리지 않았다.

아니, 나는 별로 마시지 않지만 여기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일 끝나면 이따금 들려서 잡담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다 가곤하지요. 하루 종일 적적하다가 이들이 와서 북적대면 다시 생기가 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맥주를 준비해놓고 있지요.”

나는 점점 정신을 잃어가며 영감의 목소리가 먼 곳의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본 벽에 여자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누구지요?”

영감이 내 시선을 따라 벽의 사진을 보고 쓸쓸히 미소했다.

내 아내의 젊었을 때 사진이지요.”

지금은?”

지금이요? 글쎄요, 알 수 없군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던지, 아니면....”

희미해지던 정신이 영감의 말에 활짝 되돌아왔다.

아니,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다니요? 이혼이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영감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혼? 이혼했지요. 우리가 젊었던 시대에는 이혼이라는 말이 실감이 안 가던 시절이었는데 이혼하고 말았지요. , , 젊은 시절의 우둔함이라니.”

영감의 공허한 웃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젊은 시절의 우둔함.

나하고 맞지 않는 여자와 잘못 결혼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요. 사실 그것이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습니다. 내가 교수로 있던 대학교의 젊고 예쁜 제자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 제자가 내 곁에 있으면 이 세상이 온통 내 것이 될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빠졌던 겁니다. 나는 이혼한 내 아내에게 큰 죄를 지은 겁니다.”

영감의 얼굴이 쓸쓸하게 자조했다.

여자의 지위가 오늘 같지 않던 시절인데 이혼 안하겠다고 울면서 매달리던 것을 왜 그렇게 미워하면서 내팽개쳤는지 알 길이 없군요. 오늘도 그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 아픕니다.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또 그 값어치도 없는 내 자존심 때문에 다시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리석음의 연속이었지요.”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나는 이 영감의 말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나도 이혼했는데. 이혼한 내 아내와 딸을 생각했다. 진정 이혼밖에 다른 해결책이 없었던 것인가? 지금, 병마가 나의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늘 나는 이혼한 내 아내와 딸이 내 옆에 있기를 더욱 갈구하고 있었다.

나하고 맞는 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나하고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고 같이 맞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노인네는 내 처지를 알고 내가 들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래서 이혼하고 나서는 그 분을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까?”

노인은 오래 동안 혼자 살아온 사람의 외로움이 젖은 눈으로 초점 없이 창밖의 무한히 펼쳐진 딸기밭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보지 않았지요. 처음에는. 그러다 나중에는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보고 싶었지만 찾아볼 용기가 없어서 보지 못했지요. 찾아가서 손 붙잡고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 받아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지요. 그 우스꽝스러운 자존심이라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술기운에 가쁜 숨결을 가다듬으며 노인의 말을 새겨들으려고 애썼다. 이것은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내 마음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나는 그 착한 내 아내였던 여자의 일생을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돌이킬 수 있었던 기회마저도 그 자존심 때문에 흘려버리고 말았지요.”

노인은 깊은 고뇌가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학문에 전념한답시고 유학 왔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요. 이제 이렇게 외진 곳에서 숨듯이 혼자 살면서 나에게 남아 있는 내 인생의 한은 없지만 그 여자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아프군요.”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찾아보면 안 될까요? 나는 말하고 싶었지만 정신이 혼미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안았다.

내가 혼자 살다보니까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할 말 안할 말 다하면서 말이 많아지는 모양이요. 젊은이, 자 여기 누워서 좀 자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노인은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부축하여 쏘파에 눕혔다.

아니다. 나는 이 노인이 했던 잘못을 답습할 수 없다. 내일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면 나는 내 아내에게 전화하겠다.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왜 이혼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혼하게 되었을까? 딸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노인이 했던 것처럼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티지 않겠다. 그리고 내 몸에 암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하겠다. 아무래도 가장 걱정해줄 사람은 아내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내는 분명히 나에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운동 열심히 하고 펄펄 끓듯이 살고 있는 당신이 암이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뛸 것이다. 아내는 분명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경험도 없는 애송이 돌팔이 의사 놈이 무얼 안다고 그따위 진단을 내놓느냐고 나를 위해서 화내줄 것이 틀림없다. 아내는 내편이다. 아내는 내가 가장 어렵고 외로울 때 내편에 서줄 것이다. 나는 아내의 품으로 다시 가고 싶다. 나는 아내의 품에서 이 죽음의 두려움을 잊고 위로받고 싶다. 아내는 나를 이 두려움에서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이혼하고 말았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리해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떨고 속으로 울며 횡설수설하다가 가물가물 정신을 잃어갔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 먼 곳에서 여럿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농장 일꾼들이 딸기밭에서 돌아오고 있군요. 대개는 멕시코에서 온 노동자들인데 착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해도 낙천적으로 항상 노래하면서 즐겁게 사는군요. 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쓰면서 같이 즐거워지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노인의 말소리가 멀어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노인을 만난 첫날을 파괴적인 기분으로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노인의 집 소파에서 자고 온 다음 이틀 동안을 나는 한없이 자지러지게 기침을 해댔다. 힘이 없어서 더 이상 기침을 할 수 없어 허억, 허억, 괴상한 소리가 간신히 목구멍 밖으로 나오도록 기침을 해대며 나는 와들와들 떨었다. 그 돌팔이 의사 녀석이 생각났다. 돌팔이 의사도 제대로 된 진단을 할 때가 이따금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 걸음도 부들거리며 떨렸다.

끝장이다. 이제 끝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말이다. 나는 남 속이고 내 이득을 취한 적도 없다. 남에게 몹쓸 짓을 한 기억도 없다.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교회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간 셈이다. 더 자주 갈 수도 있었겠지만 돈에 민감한 그 담임목사가 보기 싫어서 자주 못 갔지 내 탓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불행이 오는가 말이다.

나는 회사에 전화해서 건강상의 이유로 며칠 쉬어야하겠다고 말해놓고 아파트에서 칩거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는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 죽는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러운 내 모습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지 잘 생각하고 잘 준비해야 한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입고 다니던 옷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꽤 많은 돈을 들여서 샀던 맞춤양복 두 벌은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보던 책들은? 내 오만 잡동사니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 랩탚은? 거금을 들여서 장만했던 내 골프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모든 내가 소유하고 있었거나 나하고 관계되는 것들이 다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내가 죽고 없어지기 전에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경우를 닥쳤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했다.

나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많은 종류의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몇 번이나 전화를 들어 숫자판에서 아내의 번호를 누르다가 내려놓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아무리 준비하려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더구나 아내가 차가운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뛰었다. 이혼하자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그칠 때는 언제고 왜 또 전화했지요? 아내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빈정거리는 어조를 담고 그렇게 쏘아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가슴이 졸아들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 조금 생기던 용기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 나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다. 나는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나는 혼자 있기 싫다. 나는 두렵다. 나는 떨리도록 두렵다.

휘청거리며 일어나서 나는 주섬주섬 옷을 찾아 아무렇게나 걸쳤다.

부수수한 머리 그대로 나는 밖으로 나와 아파트 문을 잠갔다. 차를 몰고 길로 나가자 여름 땡볕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나는 가까운 리커스토어에 들려서 맥주 36캔 들이 박스를 두 개 사서 트렁크에 실었다.

썬 글라스를 꺼내 쓰고 다시 차를 몰아 110번 프리웨이로 들어섰다. 그리고 또 101번 도로로 갈아탔다.

토요일인데도 프리웨이에는 무수히 많은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속에는 아직 죽음이 예정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한 치라도 먼저 가려고 악다구니 쓰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 상태 속에서 운전하여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맥주 박스 두 개를 꺼내 들고 집 입구로 가서 나무 계단 위에 내려놓았다. 계단을 올라서서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또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역시 응답이 없었다.

노인은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길 잃은 아이처럼 어찌할까 망설이며 문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내려와 나무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왜 이 노인을 만나고 싶어 하고 또 왜 여기 까지 와서 이 노인을 기다리고 있어야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며 날아갔다. 질펀하게 펼쳐진 딸기밭 너머로 커다란 해가 마지막 빨간 빛을 뿌리며 가라앉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전에 그린 보리밭 위로 까마귀 날아가는 그림이 생각났다. 지금도 그렇게 내 눈앞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며 날아갔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흙 밭길에 주인 없는 개가 지나가다가 서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흥미 없다는 듯 얼굴을 돌리고는 서두를 것 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멀어져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그저 똑같았다. 내가 생명을 재촉당하고 있다는 이 준엄한 사실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고 아무와도 관계없는 일이었다. 내가 당한 이 비극은 이 세상의 누구에게도 또 아무것 에도 충격을 주거나 파문을 일으킬 수 없는 무력하고 미약한 사실일 뿐이었다. 살아서 꼼지락거리면서 그렇게 자기 이득 챙기느라고 발버둥치는 무수히 많은 인간 동물중 하나가 없어져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흔적도 남길 수 없는 하찮은 일일 뿐이었다.

소외되었다는 배신감에 이상스럽게 괴로워하며 계단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사이에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나는 노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

아니, 젊은 양반, 언제부터 여기서 이러고 앉아있었소?”

나는 정신 나간 바보처럼 멀거니 노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노인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는 데에 이상하도록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소 쑥스러워서 외면하며 말했다.

영감님, 또 왔습니다. 더 말씀 듣고 싶어서 왔지요. 오늘도 여기서 자고 가려고 맥주를 많이 사왔습니다. 빚도 갚을 겸해서요.”

, , 뜻밖의 일이요. 그러나 잘 왔소. 나도 누구하고건 말을 나누고 싶었었는데 아주 잘 왔소. 오늘은 그럼 나도 마시고 한 번 같이 취해볼까요?”

힘들여서 계단을 올라선 노인이 짤그랑거리며 열쇠로 문을 따고 열었다.

나는 그 열쇠 짤그랑 소리를 들으며 이 노인의 외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잘 왔소. 하마터면 또 보지 못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노인이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아니, 왜요? 어디를 가십니까?”

이 집을 처분하고 아주 먼 곳으로 가야될 것 같소. 아주 먼 곳으로 말이요.”

어디로 가실 건데요?”

먼 곳으로 가야지요. 미리 다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 우리 또 술이나 한 잔씩 하십시다.”
그날 밤 우리는 새벽이 될 때 까지 마시고 취하고 말을 했다. 살아서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축제인 것처럼 나는 앞도 없고 뒤도 없는 소리를 마구 지껄여댔다.

영감님, 산다는 것은 참 우습군요. 이렇게 갈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그리고 이런 부당하고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흔 살이 넘도록 거뜬하게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오십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버려야 한다니 말입니다. 하기야 두 살, 세 살에 죽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그 때 그런 어린 나이에 의식이 채 발달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것이 도리어 더 나은 길이 아니었을까요? 영감님은 여든이 넘도록 거뜬히 살고 있으니 내 이 마음속에 들어있는 억울함을 모를 겁니다. 내 이 분노를 읽어낼 수 없겠지요. 그렇게 오래 살면서 영감님은 해낸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지요? 나는 앞으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영감님처럼 오래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나는 단연 단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질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서 이 세상에 기여보비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치 내 몸의 질병이 이 노인 때문인 것처럼 술 취해서 마구 저주했다. 마구 내뱉었다. 그러면서 나는 진짜 내가 오래 살 수만 있다면 나 개인의 이득을 떠나서 사회에 헌신하고 타인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선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처럼 내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서 살고 내 개인의 이득만 계산하면서 사는 저질 인간 동물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와 더 높은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결심했다.

그렇게 저주하면서 떠들었는데도 속세를 떠나 초탈한 것처럼 보이는 이 노인은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자기 몸의 질병이 아니니까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노인이 더욱 미워졌다. 똑같은 질병을 이 노인이 가지고 있고 이제 불과 얼마 안 되는 짧고 한정된 시간 안에 숨쉬기를 멈추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노인이 과연 저렇게 초탈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죽어서 없어진 후에도 이 노인은 건강하게 숨을 쉬면서 오래 동안 살아있겠지. 거뜬히 5, 10, 아니 15년 정도는 또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얼마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노릇인가. 젊은 내가 먼저 가야하고 살만큼 산 이 노인은 더 길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과연 누구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냐.

빌어먹을. 다 싫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싫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손닿는 곳의 모든 것을 때려 부쉈다. 머리 위의 천정이 휭휭 돌고 온몸의 힘이 풀려 나는 소파 위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노인의 따뜻한 손이 나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진정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아내밖에 없소. 더 늦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하시오.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 않소. 아내에게 전화해서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고 한마디만하면 됩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못하고 일생을 후회하면서 살아왔지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는 내 귀에 노인의 목소리가 하소연하듯 들렸다.

멀어져가는 내 눈 속에 들어온 노인의 얼굴이 처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이였을까? 거의 20년을 같이 산 나의 아내에게 전화 한 통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전화 속의 아내는 아무 말 없었다. 잠시 있다가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내 대신에 울먹이는 딸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빠, 나뻐. 아빠. 아주 나뻐.

그날 저녁 나는 마치 낯선 집처럼 느껴지는 아내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이혼하기 전과 같은 차를 타고 있었으므로 머리위의 버튼을 누르면 차고 문이 열리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문을 열어준 딸아이의 눈이 젖어 있는 것을 나는 아픈 가슴으로 보았다.

아빠!”

잘 있었니?”
물어보는 나의 품으로 딸아이는 아무 말 없이 달려들어 안겨왔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딸아이의 여린 몸에서 오는 가냘픈 느낌이 나의 가슴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말했다. 아무리해도 왜 이혼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혼자 나가서 사는 생활이 너무 메마르고 적적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사실도 말했다. 내 폐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는데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마지막에 했다. 아내와 딸아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그 노인에게 감사해야 했다.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용서를 빌고 이렇게 내 고향 같은 아내와 딸과 우리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넣어주었던 노인에게 감사해야 했다. 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노인의 말이 새삼 생각났다. 노인의 말대로 나는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곳이, 내 아내가, 내 딸이, 그리고 우리가 같이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던 이 집이 내 고향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그 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내와 딸아이와 의논한 후 아파트에 있던 몇 가지 초라한 내 사물을 싸들고 두 달 치 계약위반 벌금을 낸 후 마치 패잔병이 승리한 장군 밑에 투항하듯 다시 아내와 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몹시 풀죽어 어색해하는 나를 보호하듯 그 둘은 나를 조심스럽게 보살펴주었다. 아내는 내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알뜰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그로부터 몇 주 동안을 나는 아내와 딸의 손에 나를 맡기고 저능아처럼 그 둘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지냈다. 내가 예상하고 또 바랐던 대로 아내는 펄쩍 뛰면서 제 이, 제 삼의 검진을 받아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연 내 편을 들어주었다. 딸아이도 학교에 사정을 말하고 결석계를 냈다. 영어가 서툰 아내 대신에 맹렬히 인터넷을 뒤져서 좋은 의사를 찾아 상담하고 방문 약속을 하면서 놀랄 정도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는 어린아이인줄만 알았던 딸이 이제 보니 성숙한 성인이 되었다고 놀라워했다.

암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제가 다른 검사를 처방해보기는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전연 암에 관계되는 증세가 없군요.”

두 번째 찾은 의사는 엑스레이 필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혈액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낮아서 그런 진단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글쎄요, 혈소판 수치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도 낮을 수가 있습니다. 꼭 악성종양만이 그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내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의사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분명히 암이 내 몸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하고 묻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검사결과를 본 제 소견으로는 악성종양의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다른 특별한 질병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군요.”

확실합니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글쎄요, 병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까? , , 첫 번째 진단 때문에 너무 긴장하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혈소판 수치 하나만 가지고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진료실에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와 딸이 동시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긴장된 눈으로 나를 보며 닥아왔다.

아빠, 뭐래?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나는 혼돈상태에서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바보가 된 것처럼 멍하게 서 있다가 말했다.

, 암이 아니래.”

딸아이는 아, 소리를 지르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가느다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 뒤에서 긴장해서 나를 보고 있던 아내의 얼굴이 경련하고 그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고 또 두 뺨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초점을 잃고 현실감이 없는 눈으로 그런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딸아이의 눈물이 내 셔츠를 적시고 뜨겁게 내 피부에 와 닿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두 명의 다른 의사에게서 정밀 검사 처방전을 받아 두 개의 다른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검사는 보험회사에서 그 비용을 감당해주지 않겠다고 해서 내 저축구좌에 얼마간 들어있던 돈을 몽땅 뽑아내어 충당해야했다.

나는 모든 검사에서 두 번째 의사의 진단대로 악성종양이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지 않다는 재확인을 받았다. 마지막 검사결과를 가지고 내게 암 종양이 없다는 자상한 설명을 해준 의사의 사무실을 나올 때 나는 이상하게도 허탈한 기분이었다. 물론 뛸 듯이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또 다른 감정이 안개처럼 불투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런 죄도 없고 전연 타인인 노인에게 그렇게 저주하듯 쏟아 부었던 그 근거 없는 분노를 나는 다시 주워 담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노인을 다시 찾아가서 만나야했다. 나는 그 노인에게 쏟아 부었던 근거 없는 저주를 사과해야했다.

하나의 시련은 더 큰 행복이 오기위한 준비라고 했다. 그리고 밤이 와서 어두워지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라지 않는가.

내 몸에 있다고 걱정했던 그 무서운 병마는 우리 셋을 다시는 떨어질 수 없도록 결속시킨 후 물러났다. 나는 다시 건강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생활을 다시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불행이었지만 이제는 짤그랑거리는 열쇠소리를 내며 나 혼자 사는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나와 내 아내를 다시 합법적인 아내와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 한 번 써야하는 변호사 비용을 생각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듯 아침에 집을 나서서 마지막 방문길에 올랐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런 의무도 없으면서 내 저주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던 그 노인을 만나서 사죄해야했다. 어째서 그런 무모하고 근거 없는 행패를 부렸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 보았던 노인의 그 처연한 얼굴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노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내고 사과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당황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한참을 차안에서 망설이다가 나는 결심하고 내려서 집으로 갔다. 문에는 이상하게도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웬일일까? 생각하며 문을 조심스럽게 흔들어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닫힌 창문을 통해서 안을 엿보려했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노인이 어디 먼 곳으로 떠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혹시 이사를 가지 않았는가 생각했다.

잠시 서 있다가 나는 이 노인을 처음 만났던 그 멕시칸 타코집으로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차를 노인의 집 앞에 세워둔 채 걸어서 타코집으로 갔다.

순박해 보이는 그 멕시칸은 노인에 대해서 물어보는 내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투른 영어로 되물었다.

모르고 있었나요? 그 분은 폐암이 있어서 여기서 요양하고 있었지요. 한 달쯤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나는 입속으로 외치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노인이!

나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주스런 말을 내뱉아도 아무 말 없이 받아주던 노인. 세상을 떠난 듯 초연했던 모습. 그리고 술에 젖어 멀어지는 정신 속에 마지막 보았던 그 처연한 얼굴.

나는 그렇게 못된 말을 지껄이고 행패를 부렸는데 이제 그 용서를 빌 상대마저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뛰는 가슴을 짐짓 누르며 돌아서서 타코집을 나왔다. 내 등 뒤에 대고 타코집 주인이 말했다.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 유언하신대로 우리가 천국에 갈수 있도록 잘 환송해드렸지요.”

나는 타코집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다시 천천히 걸어서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전에 했던 것처럼 집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다.

노인이 말했었지. 아주 먼 곳으로 가야될 것 같소. 아주 먼 곳으로 말이요.

눈앞에 질펀하게 딸기밭이 뻗어 있었다. 그 위를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 까악, 소리 내며 날아서 멀어져갔다.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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