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버린 땅 (중편 소설)
2019.10.23 10:11
신이 버린 땅
(1)
브라질 파라 주 벨렘 시 1996년 4월 10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어쩐지 좋은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장모세 신부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벨렘 비행장 여객출구에서 장모세 신부는 자매결연이 되어 있는 한국의 카톨릭 교계에서 온 김 가브리엘 신부를 맞이하다가 그 뒤를 따라 출구를 나오는 사람을 보고 흠칫했다. 허약해 보이는 몸매에 다소 굽은 허리를 하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나오는 그 사람의 얼굴이 어쩐지 낯설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김 가브리엘 신부가 반갑게 장모세 신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먼 곳에서 하느님 사역하시면서 수고 많습니다. 이번 오지로의 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한국의 카톨릭 교계에서도 이번 여행에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 허리가 구부정한 남자는 김 가브리엘 신부의 뒤에서 얼굴을 숙이고 말없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장모세 신부의 눈에는 어쩐지 자기에게 얼굴을 숨기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김 가브리엘 신부는 또 한 사람 동행해 온 사람을 장모세 신부에게 소개했다.
“여기 이 분은 이번 여행을 현장취재하고 특집기사를 내기 위해서 우리 일행에 동행하고 있는 분입니다. 잡지사 ‘현대인과 종교’의 베테랑 기자이십니다.”
“박광철 기자입니다.”
단단한 체구에 검은 색 배낭을 손에 든 박광철 기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국을 떠난 이런 먼 곳에서 성소를 개척하고 하느님을 섬기면서 교민과 현지인 사이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는 신부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신부님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대로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저희 잡지사에서도 특종기사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모세 신부는 박광철 기자의 인사를 받고 악수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잘못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모세 신부는 가볍게 지나치려 했지만 생각의 뒤를 잡고 일어서는 산란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김 가브리엘 신부가 옆으로 비켜서서 자기 뒤에 숨듯이 서 있는 그 사람을 넌지시 앞으로 밀며 소개했다.
“이 분은 김다름 성도님이십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하신 분인데 이번 여행계획을 듣고 꼭 참가하게 해달라고 너무 집요하게 부탁을 해서 모시고 왔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이런 오지로의 여행은 무리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장모세 신부의 눈이 김다름이라고 소개된 사람에게 멎었지만 김다름은 그저 시선을 내리고 장모세 신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것 같이 보였다.
“김다름이라고요? 아직 세례도 받지 못한 분이 이런 먼 길을 자원하셨군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머리를 숙인 김다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얕은 숨을 자주 쉬고 있었다.
“몸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그런 몸으로 여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40대 중반쯤의 허약해 보이는 김다름은 눈을 내리깐 채 조심스럽게 성호를 긋고 말했다.
“성모 마리아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같이 가게 해 주십시오.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
잠깐 얼굴을 들어서 장모세 신부를 보는 김다름의 눈에서 순간 이상한 광채가 살아서 번쩍 빛났다가 꺼지는 것을 장모세 신부는 놓치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본 장모세 신부는 속으로 흠칫했지만 곧 태연을 가장할 수 있었다.
김다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머리를 숙였다.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이런 언짢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 사람은 누구인가? 잘못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디에선가 본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눈빛으로 미루어 이 사람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안다고 말하지 않을까? 혹시?
“이렇게 먼 곳이 아니고 국내에서도 선교 사업할 곳이 많은데 어쩌자고 여기 까지 오셨습니까? 아직 세례도 받지 않으신 분이 더구나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데 무리가 아닐까 걱정되는군요. 제 생각에는 한국의 가까운 곳을 선택해서 봉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은 건강한 사람이 가기에도 힘겨운 곳입니다.”
김다름은 더욱 머리를 조아리고 땅을 보면서 얕은 숨 사이로 말했다.
“내 생애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성모 마리아님의 길을 따라왔습니다. 아무쪼록 마다하지 말고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
김다름의 간청은 간곡했다.
한국에서 김다름을 인도하고 온 김 가브리엘 신부가 조심스럽게 나서서 장모세 신부에게 말했다.
“이미 그런 조언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도 그 의지를 꺾지 않아서 여기 까지 같이 왔습니다. 같이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힘든 일이 있으면 제가 옆에서 돕겠습니다.”
이 사람을 어디서 봤던가? 장모세 신부는 태연을 가장하며 집요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해도 생각나지 않지만 장모세 신부는 이 사람이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고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것 같은데 어떤 사고라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장모세 신부의 질문에 김다름이 조용히 답했다.
“젊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가슴과 복부에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죽지 않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다름 성도님은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올해 마흔네 살입니다.”
김다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나기는 했는데 그 후 오늘 까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통증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자살해 버릴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도 성모 마리아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고 믿음이 육신의 통증을 가라앉힌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내 생명의 마지막을 불살라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되어 신부님이 하시는 사역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코 마다하지 말아주십시오. 건강하지 못한 몸이지만 성모 마리아님이 옳은 길을 찾아 인도하고 내게 모자라는 힘을 보태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다름의 의지는 강했다.
장모세 신부는 그 의지에 다소 눌리는 느낌을 받으며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모 마리아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김다름은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고 성호를 그었다.
“세 분을 제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오늘 밤과 내일은 충분히 쉬시고 모레 새벽에 출발합니다. 저희 성소에서 파송된 성도가 사역하고 있는 곳은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라고 불리우는 오지입니다. 문명과 동떨어지고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땅에서 그래도 뭔가를 일구고 가꾸려 애쓰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제도 절망적이었고 오늘도 또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 곧 하늘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틀림없이 들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2)
장모세 신부의 숙소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마치자 장모세 신부는 목적지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Eldorado Dos Carajas) 에 대해서 잠시 설명했다.
브라질의 광활한 대륙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포르투갈 왕의 칙령에 의해서 충성을 맹세한 극소수의 귀족들에게 분할 하사되어 전체 인구의 3 퍼센트에 불과한 최상류층의 귀족이 국가 전체의 약 70 퍼센트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런 귀족들은 하류빈민층의 농민들에게 불모지로 이주하여 땅을 개간하면 그 땅을 소유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하여 척박한 땅으로 이주시킨 후 그런 땅이 실제로 경작 가능한 토지로 개간되면 약속을 파기하고 경작된 땅을 압류 처분해버린다. 농민들이 퇴거명령을 거부하고 땅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항쟁하면 경찰력과 사립 경호대를 동원하여 무참한 폭력으로 생활 근거지를 파괴하고 개간된 땅에서 몰아내 버린다. 이런 악랄한 착취의 가장 처참한 오지중의 하나가 파라 주이고 그 주의 작은 마을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다.
“저희 성소의 현지인 성도 김 안토니오와 미겔 데 헤수스 (Migiuel de Jesus) 가 4개월 전에 파송되어 이 농민들과 같이 생활하고 기도하고 하느님을 전도하면서 힘을 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미겔 성도가 전갈하기를 다른 지역에서 온 많은 농민들이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로 집결하고 있는 것이 뭔가 불안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불안한 사태가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대지주와 소작농민의 갈등이야 어디에나 있는 것이겠지만 이곳의 상황은 그 상태가 처참하고 그 착취의 행태가 극심합니다. 끊임없이 폭동이 일어나고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개간된 땅에서 농민들을 내쫓기 위해서 돈과 힘이 있는 대지주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농민들을 위협하고 위해를 가합니다.”
설명하면서 장모세 신부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졌다.
“여기 벨렘 시의 교구에 이미 품신을 넣어 이 농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경작된 땅의 소유권을 이관해 주고 그들이 경작하는 땅에 오래도록 정착해서 살도록 정부에 호소해 달라고 강력히 청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관계자 쪽에서는 아직 아무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파송 나온 세 사람은 저녁식사가 끝나자 긴 비행기 여행으로 힘이 들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여기서 엘도라도 마을 까지는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걸립니다. 제게 큰 화물 밴이 있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부터 차량정비를 하겠습니다. 낡은 차가 되어서 중간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희사 받은 입던 옷과 신발, 식료품등 그 농민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뒷마당에 있으니 더러 정리해서 실을 준비를 해주십시오. 모레 새벽에 출발하면 저녁쯤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안전하게 보살펴주시리라 믿습니다.”
장모세 신부는 설명을 끝내고 기도한 후 세 사람을 며칠 기거할 방으로 안내했다.
“불편하다 마십시오. 맨땅 위에 담요 한 장 깔고 자는 사람도 허다하게 많습니다. 따뜻한 식사를 하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는 곳에서 몸을 누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람들에게 죄스럽게 생각하고 또 하느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
브라질 파라 주 벨렘 시. 1996년 4월 11일
장모세 신부는 새벽이 되자 잠들어 있는 세 사람을 차례로 흔들어 깨웠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 관광여행으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어나서 할 일이 많습니다.”
세 사람은 서둘러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친 후 장모세 신부가 시키는 대로 집 뒤쪽에 허름하게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캔버스 천으로 덮어 천정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갔다.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두 저희 교인들이 친지나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희사 받아 구해놓은 물건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대단한 물건이 아니겠지만 우리가 가는 곳의 농부들에게는 아주 요긴한 물건들입니다. 잘 정리해서 가지고 갈 준비를 해주십시오. 전기로 써야 하는 제품은 빼놓으십시오. 그곳은 전기가 없는 곳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장모세 신부는 집 마당에 세워놓았던 꽤 큼직한 밴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먼 여행을 하기 전에 엔진 점검을 하고 가스탱크를 채우겠다며 쿨렁 쿨렁 소리를 내는 밴을 몰고 나갔다.
셋은 주로 입던 옷과 신발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무더기 속에서 일했다.
“가브리엘 신부님, 장모세 신부님은 어떤 인연으로 이 벨렘시에 와서 성소사역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여기 오기 전에 몇 군데 문의해 보았는데 아무도 확실하게 모르더군요.”
박광철 기자의 질문에 김 가브리엘 신부는 옷가지를 정리하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몇 군데 문의해 보았는데 신부님이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고 성소를 세웠는지 아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 분의 과거의 업적이나 언제 어떻게 신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장모세 신부님의 세례받기 전 본명을 아십니까?”
“그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장모세 신부님의 신상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제 위에 계신 신부님이셔서 직접 여쭤보기도 어렵고요.”
김다름은 묵묵히 일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김 가브리엘 신부가 입을 다물고 일만 하고 있는 김다름을 걱정스러운 듯 곁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성도님, 괜찮으십니까?”
김다름은 정리하고 있던 옷더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네.”
잠시 더 무슨 말이 있기를 기다리던 박광철 기자가 궁금증을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듣기로 세례도 받기 전이라는데 믿음이 두터우신 모양이지요? 이런 버려진 곳 까지 자진해서 따라오셨으니 말입니다.”
김다름이 잠시 일하던 손을 멈추었다.
“할 일이 있습니다. 제 생명이 다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기를 꼭 와야 했습니다.”
“궁금하군요. 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꼭 여기서 해야 하는 일인가요? 이 브라질의 오지에서 말입니다.”
김다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놀리며 옷가지를 정리했다.
잠시 답을 기다리던 박광철 기자와 김 가브리엘 신부는 궁금증을 담은 눈을 마주친 후 입을 다물었다.
(4)
브라질 파라 주 벨렘시 4월 12일
새벽 5시.
장모세 신부가 운전하고 김 가브리엘 신부가 옆에 타고 박광철 기자와 김다름 성도는 뒷좌석에 자리 잡은 후 구호품을 잔뜩 실은 트럭은 파라 주의 수도 벨렘시를 떠나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로 출발했다.
“이제부터 한 열 시간 정도 가게 됩니다. 중간에 마라바 시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잠시 쉰 후에 갑니다.”
일행이 탄 차는 벨렘 시를 벗어나서 국도 PA-150으로 들어서서 쿨렁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헤드라이트 불에 의지하고 한 시간쯤 달리자 날이 희끄무레 밝아왔다.
장모세 신부는 운전하면서 끊임없이 브라질 농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극소수 상류층 소유가 되어서 이곳에는 실지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자기 땅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소작인이 되어 귀족의 땅에 곡식을 심고 소출이 나면 많은 부분을 그 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땅에 발을 디뎌 보지도 않은 땅 주인 귀족에게 바쳐야 합니다. 브라질의 고질적인 문제로 이런 농부를 포르투갈 말로 ‘쎔 테하 (Sem Terra)'라고 부릅니다. 땅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농부들은 시간이 정지된 곳에서 문명의 혜택 없이 원시적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척박한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고 삽니다. 불모지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잡초를 뽑아버리는 중노동을 하고 드디어 농작물의 파란 싻이 돋아나고 조금씩 더 개간이 되어 곡식을 심고 소출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땅의 법적 주인인 귀족이 보낸 경찰이 이 농부들을 생활의 터전에서 몰아내고 땅을 몰수해 버립니다. 한 번 더 다른 불모지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개간한다면 이번에는 진짜 틀림없이 소유권을 주겠다고 지키지 않을 달콤한 약속을 합니다. 법과 권력 앞에서 무기력한 농부들은 그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다른 불모지로 이주하여 또 한 번의 천형을 받은 것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농부들을 만나러 가는 겁니다. 이 농부들에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알리고 우리가 정부에 끊임없이 이 부조리에 항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하는 것입니다.”
박광철 기자가 유심히 듣다가 물었다.
“농부들은 그저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하고만 있는 겁니까?”
“아니지요. 여러 번 폭동이 일어나고 사상자도 무수히 발생했습니다. 이런 땅 없는 농부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도 여럿 생겨서 항쟁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김 안토니오 성도의 말로는 바로 지금도 많은 농민들이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마을을 지나가는 국도 위로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농민들이 또 다른 항쟁을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귀기울여주는 상류층의 땅 소유주나 정치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박광철 기자가 말했다.
“권력 있는 상류층과 정치가의 횡포는 한국이나 여기나 그 행태가 똑같군요.”
“하느님이 하강해서 인간세상을 통치하지 않는 이상 이 욕심 많고 부조리한 인간 무리에게서 균형과 합리성을 찾기는 힘든 노릇입니다.”
장모세 신부의 목소리 밑바닥에는 분노가 녹아 있었다.
“모두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최선을 찾으면서 살아야지요.”
성품이 온순한 김 가브리엘 신부가 말했다.
김다름은 그저 침묵하며 의자 등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래된 트럭은 털털거리면서도 용케 큰 문제없이 마라바 시로 들어섰다. 첫 번 째 보이는 주유소로 들어선 장모세 신부는 펌프 앞에 트럭을 세웠다. 주유소 건물 앞에는 총을 든 군복 차림의 전투경찰관 두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웬 경찰관이 서 있나? 장모세 신부가 중얼거리며 기름 값을 현금으로 챙겨들고 트럭에서 내렸다. 돈을 내기 위해서 주유소 건물로 들어가다 경찰관의 저지를 받고 잠시 말을 나눈 후 들어갔다 나왔다.
김 가브리엘 신부가 얼른 내려서 주유를 거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또 농부들의 폭동이 일어날 모양입니다. 보초를 서라고 명령받았다고 합니다.”
주유하고 마라바 시를 떠나서 잠시 가자 이번에는 경찰 차량이 길을 막고 검문하고 있었다.
“신부님 조심하십시오. 엘 도라도 도스 카라하스에서 폭동의 조짐이 있습니다.”
경찰 지휘관이 신분확인을 끝내고 길을 열어주며 친절히 말했다.
마침내 늦은 오후가 되어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에 도착하자 파송 나와 있던 김 안토니오성도와 미겔 데 헤수스 성도를 앞세우고 그 뒤로 이 초라한 마을의 농부들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 나왔다. 농부들은 누더기 차림이었지만 얼굴은 환하고 모두 웃고 즐겁게 장모세 신부 일행을 환대했다.
장모세 신부는 자기 막사로 지정해준 나지막한 목조 움막 앞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허리 높이의 긴 십자가를 땅에 박아 세워놓았다.
그날 저녁 기도와 식사가 끝나고 가지고 온 옷가지와 신발 등 구호품을 트럭에서 내리자 분위기는 잔치 집 같이 되어 이 가난한 마을의 주민들은 오랜만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주민들이 구호품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물끄러미 보던 장모세 신부가 김 안토니오 성도에게 물었다.
“오면서 보니까 경찰병력이 검문을 하던데 무슨 나쁜 조짐이 보이던가요?”
“글쎄요, 아직은 아무런 통보가 없었지만 저희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경찰관이 여러 명 와서 아무 말하지 않고 이 마을을 둘러보고 갔습니다.”
장모세 신부는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아무 걱정 하지 말기로 합시다.”
말하고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는 장모세 신부의 눈에 김다름이 들어왔다.
김다름은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의 팔에 안긴 대여섯 살의 작은 여자아이에게 구호품으로 가지고 온 빨간색 신발을 찾아 신켜주고 있었다. 철없는 아이는 어머니의 팔 안에서 마냥 즐거워 생글거리고 웃었다. 성도 미겔 데 헤수스가 옆에서 같이 웃으며 아이가 신발 신는 것을 거들었다.
신발은 아이의 발보다 컸지만 그래도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김다름은 신발 끈을 조여서 큰 신발을 아이의 발에 맞추려 애썼다.
장모세 신부는 그런 김다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일어나서 다가갔다.
“김다름 성도님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지요?”
장모세 신부가 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김다름이 흠칫 놀라며 장모세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그 놀란 얼굴을 본 장모세 신부가 순간 긴장했다. 틀림없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장모세 신부는 짐짓 감정을 감추고 아이에게 서투른 포르투갈 말로 물었다.
“이름이 뭐지? 꾸알 에오 수 노미?”
아이는 더러움에 얼룩진 얼굴에 수줍음을 담고 고개를 꼬며 대답했다.
“이사벨라.”
장모세 신부는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미소를 보여주며 돌아섰다. 마치 김다름이 거기 있는 것을 잊은 듯 행동했지만 마음은 산란했다.
김다름이 아이의 신발 끈을 마저 매어주고 일어나서 아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들릴듯 말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도 이런 아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돌아서던 장모세 신부가 멈칫 서서 김다름을 보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
김다름은 외면하고 조용히 말했다.
“아니,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5)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4월 13일
아침 예배가 끝나고 식사가 배식된 후 어제의 축제 분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가난하다는 사실이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박광철 기자는 가지고 다니는 랩탑에 한국의 ‘현대인과 종교‘ 잡지사에 송고할 기사를 계속 입력했다. 건전지를 아끼면서 미리 종이에 원고를 써서 교정한 후 전원을 넣고 입력이 끝나면 얼른 전원을 껐다.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는 지역으로 나가면 한꺼번에 송신할 예정이었다.
오전 11시. 경찰관 네 명이 포장 안 된 흙길을 뒤뚱거리며 달려온 차에서 내려 족장을 찾아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서류 한 장을 던져놓고 갔다.
족장이 미겔 데 헤수스에게 보이고 설명을 들은 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 안토니오 성도에게 뛰듯이 다가와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읽어본 김 안토니오 성도의 얼굴이 똑같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일이지요?”
장모세 신부가 심상찮은 느낌을 목소리에 담고 물었다.
“퇴거 명령서입니다.”
김 안토니오 성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족장이 얼굴근육을 부들부들 떨며 다가와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성도 미겔 데 헤수스가 족장이 하는 말을 영어로 통역했다.
“여기서 3년 동안을 고생하면서 터를 닦았는데 이 땅을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 살만하게 땅을 일구어 놓았고 이제 이곳은 자기들의 고향이며 자기들의 땅이라고 합니다.”
흥분한 농부들을 가라앉히며 장모세 신부는 포르투갈 말로 되어 있는 퇴거 명령서를 받아서 미겔 데 헤수스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읽었다. 이미 여러 번 보아왔던 대로 땅의 소유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허가 없이 무단거주하고 있는 침입자들에게 즉시 퇴거를 명령한다고 씌어져 있었다.
장모세 신부는 눈을 감았다. 이것은 처음 당하는 불상사가 아니었다. 이미 몇 번씩 이런 사건을 보아왔고 또 그 때마다 농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청원서를 보냈다. 불쌍한 땅 없는 농민들은 거세게 저항하지만 종국에는 소위 현대적인 법에 의한 명령에 굴복해야 하고 일정기간의 허망한 항쟁 후에는 몇 사람의 희생자를 낸 후 결국 퇴거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 우리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장모세 신부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6)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4월 14일
족장이 퇴거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자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울부짖고 남자들은 분노에 떨었다. 이곳은 자기 고향이며 자기 땅이며 모두 이 땅을 떠날 수 없다고 소리 질렀다.
아침 일찍 경찰관들이 쇄도해 들어왔다. 이번에는 스무 명도 넘는 인원이었고 전투복 차림에 총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장모세 신부는 전율했다. 얼마나 눈에 익고 머리에 인각된 똑같은 모습인가. 16년의 시간이 지워버릴 수 없는 그 처참한 기억. 하느님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하고 잊게 해 주십시오.
경찰관들은 위협적인 자세로 힘을 시위하며 즉시 퇴거하지 않으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쩌지요?”
족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 안토니오 성도와 장모세 신부에게 매달렸다.
십여 명의 젊은 농부가 손에 갈쿠리와 마체테 칼을 들고 달려왔다. 그 투박한 얼굴에는 모두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기는 우리 고향이고 우리 땅입니다.”
족장이 이들을 달래서 간신히 돌려보내고 또 물었다.
“어쩌지요?”
아무도 답이 없었다. 장모세 신부는 족장에게 모두를 진정시키라고 말했다.
장모세 신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지기로 되어 있는 항쟁이다. 16년 전 한국에서도 그랬고 그 항쟁의 목적과 양상은 다르지만 지금 다른 나라에서 그 때와 똑같이 패배하기로 운명 지어진 항쟁이 또 시작되고 있다.
장모세 신부는 감았던 눈을 뜨고 김 가브리엘 신부와 김 안토니오 성도에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곧 수단을 꺼내 입으십시오. 이제부터 우리가 여기를 떠날 때 까지 항상 입고 생활하십시오.”
신앙심이 강한 브라질 사람들이기에 카톨릭 신부가 검은 신부복 수단을 입고 농부들과 기거하고 있으면 행동을 자제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었다.
장모세 신부는 농부들이 마련해준 움막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 가지고 온 수단을 꺼내 입었다. 움막을 나오기 전에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짤막하게 기도하고 성호를 그었다. 마리아님의 가호가 있기를.
움막을 나오니 먼데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잠시 멈춰 서서 함성이 나는 곳에 눈을 주고 귀를 기울였다. 국도 PA-150.
미겔 데 헤수스가 장모세 신부에게 다가왔다.
“농부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벨렘으로 간다고 합니다.”
“벨렘으로.”
장모세 신부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누질러지고 압제당해서 그 한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게 된다. 사회의 상층구조에 속한 사람은 이런 폭발을 원치 않고 하층에서 핍박당하며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폭발하고 싶어 한다. 끊임없이 변화가 오기를 원한다. 어떤 변화건 오늘보다는 나을 것이니까.
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벨렘으로 가도 무지개는 없다. 아무리 피를 토하며 부르짖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 인간세상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싸우지만 가난한 사람의 권리는 끊임없이 침해당할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핍박하는 쪽에 서본 적이 있다.
“예정대로 아침 미사를 합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는 대로 종려나무 밑으로 모이라고 하십시오.”
장모세 신부는 침착한 목소리로 김 안토니오 성도에게 말했다. 그리고 장모세 신부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이제 나는 압제하고 있는 사람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압제자의 하수인이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속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게 이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용기와 능력을 주십시오.
아침 미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불안 속에서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
“하느님은 용기 있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난관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절망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장모세 신부의 영어로 된 설교를 성도 미겔 데 헤수스가 포르투갈 말로 바꿔서 농부들에게 전했다.
설교 중에 갑자기 도로에서부터 한 무더기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농부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들이닥쳤다.
“물을 좀 주십시오. 물을 주십시오. 미 데 아구아. 미 데 아구아 포르 화보르.”
다급하게 외치던 그들은 세 명의 검은 수단을 입은 신부를 보자 얼른 반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다. 그중 한 사람이 장모세 신부에게 와서 두 손을 가슴에 모두고 예를 갖춘 후 말했다. 미겔 데 헤수스가 통역해서 장모세 신부에게 전했다.
“저희는 지금 벨렘 시로 갑니다. 쓸모없는 땅을 피와 땀을 쏟아 농지로 바꿔 소출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으면 소위 대지주라는 사람들이 무력으로 저희를 추방해버립니다. 이미 두 번을 당했는데 더 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피땀 흘려 개간한 내 땅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만약 죽어야 한다면 우리 땅에서 죽겠습니다.”
장모세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농부들이 가지고 온 물통을 모두 가득 채워주라고 지시했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남기고 농부들은 물통을 들고 국도 위의 시위군중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박광쳘 기자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는 장모세신부의 얼굴은 어두웠다. 벨렘에서 15년을 살면서 장모세 신부는 이런 농부들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를 토하며 외치다가 법을 등에 업은 사람들 총에 맞아 죽거나 분노를 삼키며 울다가 또 다른 불모지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모두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하면서 장모세 신부는 곁눈으로 박광철 기자의 다소 싸늘해진 시선을 의식했다.
“기도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지요?”
박광철 기자의 목소리에 배어 있는 힐난을 장모세 신부는 모른척하고 돌아섰다.
(7)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4월 15일
국도 PA-150 위에서는 밤새도록 웅성거리며 무수히 많은 농민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 스며들어 미처 터지지 않은 분노는 그 주위의 공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퇴거명령서를 받은 마을 사람들은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관들을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처형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렸지만 그들은 하루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국도 선상에 집결하고 있는 거대한 분노의 덩어리가 그들을 더 바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폭탄을 가슴에 안고 도화선에 불이 붙어 타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 듯 위태로운 불안감이 마을 전체를 하루 종일 뒤덮고 있었지만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마을에는 퇴거명령을 집행하기 위한 경찰관이 들이닥치지 않았고 국도 위에서는 벨렘으로 가기 위해서 집결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농민들이 그들을 저지하고 있는 전투경찰관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정작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8)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4월 16일
새벽에 눈을 뜬 장모세 신부는 마치 마른 장작개비 같이 뻣뻣하고 통증이 있는 관절을 애써 움직여보면서 허리를 구부려 움막에서 나왔다. 사위는 조용했다. 아마존 정글의 곤충들이 우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을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국도 주변을 온통 뒤덮으며 집결해 있는 농부들도 잠들어 조용했다. 곤충소리에 섞여 이따금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다 멈추곤 했다.
장모세 신부는 물을 조금 부어 얼굴을 닦았다. 허리를 펴고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면서 조용히 잠든 마을을 둘러보았다. 우연히 만들어진 인연이지만 장모세 신부는 이 마을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여 일하면서 속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했다.
천천히 걸어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오니 박광철 기자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힘드시지요?”
장모세 신부의 물음에 박광철 기자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어려울 것이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쉽지가 않군요.”
“이 농민들은 이런 오지에서 문명의 혜택 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 엄청나게 거대한 대륙에서 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그마한 땅 한 조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든 희망인지 알 수가 없군요.”
장모세 신부의 말에 박광철 기자가 가난에 찌든 마을과 사람들을 둘러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찌르듯 말했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을까요?”
장모세 신부는 대답 없이 자기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 등 뒤에 대고 박광철 기자가 한 마디 더 했다.
“우리는 그저 기도만 하면서 기다리는 겁니까?”
이제 국도 위에 집결된 농민의 수는 천 명을 넘는 것 같았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경찰차량이 벨렘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장모세 신부는 집결하고 있는 농민의 숫자로 미루어 이 사태가 지금 까지 보아온 것 보다 심각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불안 속에서 아침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지만 그래도 시한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퇴거명령을 집행하기 위한 경찰관이 들이닥치지도 않았고 국도를 막고 농성상태로 들어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농민들도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에 농민대표와 경찰 사이에 계속 교섭이 오가고 있는 모양인지 이따금 농민들의 소음이 잦아들어 희망적인 결과를 기대하게 만들곤 했다.
오후가 되자 마을의 족장이 장모세 신부를 찾아왔다. 미겔 데 헤수스를 가운데 통역으로 놓고 족장이 말했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쫓겨나기 보다는 우리도 저 사람들과 합류해서 땅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벨렘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장모세 신부가 놀라서 말렸다.
“안됩니다. 벨렘에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 있지요?”
이 물음에 장모세 신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데도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앞으로 들어줄 사람이 생기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없습니다.”
미겔 데 헤수스를 통해서 이 말을 들은 족장은 한참 말없이 생각하다가 분노가 깔린 절망적인 눈으로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실까요?”
(9)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4월 17일
며칠 동안의 불편한 생활에 몹시 피곤했던 장모세 신부는 다소 늦은 시각에 눈을 떴다.
PA-150 국도 위의 농민들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아침부터 큰소리로 시위하며 국도의 통행을 막고 거칠게 시위하기 시작했다. 저지하고 있던 전투경찰대도 거칠어져서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태 속에서 이따금 무력 마찰이 일어났다.
움막으로 들어간 장모세 신부는 소중히 접어서 한쪽에 밀어놓았던 신부복 수단을 집어들었다. 접은 신부복 가운데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무심코 집어 들고 본 장모세 신부는 악, 소리 지르며 경악했다.
이 사진이!
장모세 신부의 벌어진 입이 숨을 훅 들이쉬고 멈췄다.
종이 속에는 흑백으로 사본을 뜬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흐트러진 전투복의 공수대원이 대검이 꽂힌 소총을 들고 민가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두 남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희미하게 배경으로 깔려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듯 잠시 꼼짝 안하고 사진을 뚫어지게 보던 장모세 신부의 손이 부들부들 떨다가 와락 종이를 구겨 주먹 속에 넣었다.
김다름. 김다름이다. 어디선가 분명히 본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어쩔까 망설이던 장모세 신부는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시간을 들이며 수단을 단정하게 입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다시 생각했다. 아니, 김다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면 누가? 박광철 기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특종기사를 쓰기 위해서 이 선교여행에 합류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장모세 신부의 머릿속은 산란했다. 갑자기 그는 쫓기는 도망자가 되어 있었다. 도망쳐서 브라질 까지 왔지만 여기 까지 쫓아왔다면 이제 더 도망갈 곳은 없다.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부딪쳐서 해결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장모세 신부는 검은 신부복을 단정히 입고 움막에서 나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천천히 걸어 마을을 둘러보던 장모세 신부의 눈에 박광철 기자가 들어왔다. 장모세 신부가 다가가자 박광철 기자가 인사했다. 아침인사가 끝나자 박광철 기자가 말했다.
“인터넷도 전기도 없어서 송고가 늦어지고 있지만 본사에 보고할 기사가 많습니다. 여기서 저는 종교의 위대한 힘 뒤에는 숨겨진 허약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장모세 신부는 박광철 기자의 태도에서 어제와 다른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 마음에 있는 믿음이 강하다면 종교의 위대한 힘만 보이게 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 허약함을 느끼게 되겠지요.”
“글쎄요. 하느님은 진정으로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까? 하느님은 진정으로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속으로 누질러진 분노감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박광철 기자가 항의하듯 말했다.
장모세 신부는 대답 없이 조용히 걸어서 그의 곁을 떠났다.
박광철 기자는 아니다. 박광철 기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장모세 신부는 눈으로 김다름을 찾으며 걸었다. 마침내 혼자서 피곤하여 나무 등걸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김다름을 발견했다. 가슴의 상처가 고통스러운지 두 손으로 가슴을 안고 얕은 숨을 자주 쉬고 있었다.
장모세 신부가 가까이 가자 김다름이 눈을 떴다. 장모세 신부를 보는 그 눈에 순간 무서운 광채가 번득했다가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속으로 섬뜩한 전율을 느끼며 장모세 신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옆 몇 발자국 떨어진 맨 땅에 앉았다.
김다름이다. 그것은 김다름이다. 장모세 신부는 가슴 안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확신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분명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침묵했다. 그 무거운 침묵과 김다름의 얕은 숨소리 속에 서로를 향한 거역할 수 없는 적의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 침묵의 끝에 김다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경국 중사.”
조용하지만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김다름의 목소리에 장모세 신부는 긴장했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예측한 일이었다.
장경국 중사라는 호칭을 듣는 순간 장모세 신부에게서는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신부복 속에 숨어 있던 야성이 머리를 들었다.
“어떻게 나를 찾았지?”
“찾을 필요가 없었어.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
허약하고 볼품없기만 하던 김다름이 갑작스럽게 거인이 되어 장모세 신부를 압박해왔다.
국도 위에서 농부들의 함성이 왈칵 커졌다. 경찰차의 확성기가 위협적인 고함을 질러댔다.
“대한민국의 군인단체는 위대하더군. 강간범 살인자를 카톨릭 성직자로 둔갑시켜서 선교 사업한다고 출국시키고 말이야. 사건의 근처에 놔두면 언론과 국민이 너무 시끄럽게 굴 테니까 행방불명시켜 버렸더군.”
강간범. 살인자. 장모세 신부의 검은 수단 속에서 터질 듯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 그 때 나는 앞뒤를 재지 못하는 젊은 나이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장중사가 아니야. 나를 장중사라고 부르지 마라.”
장모세 신부가 나즉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다름은 더욱 가파진 숨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증오감을 다스리려 애쓰며 한참을 침묵했다. 그 침묵의 끝에 감았던 눈을 떠서 허공을 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개과천선해서 강간범 살인범의 과거를 잊고 지금은 하느님의 사제로 속죄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싶겠지. 문제는 내 아내가 네게 강간당하고 자살했다는 사실이 지워지지 않고 그냥 남아 있다는 것이야. 장중사 너는 간접살인을 한 거야. 그것을 목격하고 달려들어 말리려던 나를 너는 대검으로 찔렀어. 그 상처가 내 가슴에 그냥 남아 있어. 그 때 그 저주받을 네 만행을 목격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숨 쉬면서도 아직도 살아서 네 앞에 있다는 이 준엄한 사실을 네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 없어. 알겠어?”
말을 마치면서 얼굴을 돌려 장모세를 쏘아보는 김다름의 눈에서 다시 한 번 잔인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한국에서 멀리 떠난 이 아마존의 오지에서 나를 죽여 버리면 모든 것이 지워져 버릴 수도 있겠지. 그러면 박광철 기자는 그야말로 특종기사를 쓰고 출세하게 될 거야. 그러면 장중사 너는 강간범에 이번에는 직접살인 까지 저지르게 될 테니까 꽤 긴 세월을 감옥소에서 지내야 되지 않을까? 아니면 이번에는 가짜 목사가 되어 선교 명목으로 아프리카쯤으로 또 잠적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를 브라질로 보냈던 그 위대한 군인 고위층은 이미 무너지고 없어. 정의가 이기고 있는 셈이야. 설혹 아직도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이제는 쓸모없어진 하급 군인 따위는 소모품쯤으로 처리해서 그들 명세서에서 떨어내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일이 끝나고 나면 하수인은 항상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허약하고 얌전하게만 보이던 김다름이 지금은 복수의 화신이었다.
“장중사, 네 총검에 찔려 쓰러져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의식을 잃지 않았어. 나는 몸부림치면서 반항하는 내 아내를 네가 때리고 옷을 찢고 올라타서 강간하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었어. 그 후 아내가 자살했을 때 나도 죽었다. 나는 지금 또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지금 까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다만 너를 만나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어. 다른 모든 삶의 목적은 그 때 사라지고 말았어.”
장모세 신부는 침묵했다.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을 짐짓 신부복으로 덮어 감추고 눈을 감았다. 하느님, 돌이킬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잊게 해주십시오. 모든 것을 용서받게 해주십시오. 나는 이제 하느님의 종입니다.
“나는 이제 장중사가 아니다. 장중사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 온지 이미 오래 되었다.”
김다름의 얼굴에 희미하게 조소가 감돌았다.
“네가 무엇으로 변신했건 나에게는 관계없는 일이야. 너는 나에게 언제나 장중사야. 너는 강간범 장경국 중사야.”
김다름의 나지막한 어조의 밑에는 뼈저린 증오가 깔려 있었다.
“김다름이라고 했나? 이제 나를 만났는데 그 할 일이 뭐지? 나를 죽여서 원수를 갚겠다는 것인가?”
김다름은 침묵했다.
국도 위에서는 경찰차에서 확성기로 떠드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격앙된 농민들의 고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그 소음 속에서 장모세 신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 실탄이 지급되는 순간 나는 미쳐버렸어. 착검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저주받은 악몽이 시작된 거야. 나는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고 있다. 내가 한 짓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
국도 위에서 농민들이 폭발할 듯 내지르는 함성과 관계없이 김다름과 장모세 사이에는 말과 말 사이에 이어지는 팽팽하게 당겨진 침묵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를 죽이고 싶겠지. 이제 나를 만났으니 나를 죽이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군.”
장모세 신부의 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 하느님 앞에서 속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곁으로 가 모든 것을 잊고 싶다. 그 때 그 악몽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 수 없다.”
김다름의 싸늘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장중사, 네가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나의 고통을 보상해줄 수는 없어. 네가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내 아내를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해줄 수 없어. 서둘지 않아도 돼. 내가 너를 죽이기 전에 네가 나를 죽일 수도 있어. 너는 나보다 힘이 센데다 특수훈련을 받은 직업군인이었으니까. 더구나 너는 그날 나를 대검으로 찔러서 거의 죽게 만들기도 했으니까.”
장모세는 시선을 땅으로 떨어트리고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동물적 만용으로 설치던 젊은 나이는 가고 없고 김다름 앞에서 장모세는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들어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초췌한 노인이었다.
잠시 떨며 침묵하던 장모세가 입을 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날 이후 상급부대의 도움으로 도피생활을 하면서 오늘 까지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나는 지금 속죄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신부야.”
김다름의 눈이 또 한 번 분노에 떨며 번쩍 빛을 발했다.
“뭐라고? 인생을 다시 배워? 신부?”
감정을 삼키고 김다름은 가슴의 고통을 참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인생을 다시 배운다고? 아직도 그따위 소리를 하고 있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고 거친 숨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김다름은 잠시 침묵했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기 보다는 가짜 신부라도 그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지. 그러나 변신을 하는 것은 좋지만 일단 장중사 시절의 빚을 갚고 변신해야 하지 않을까?”
가까이 오던 박광철 기자가 멈칫 서서 들었다. 그러나 팽팽하게 긴장한 그 둘은 국도 위에서 들리는 분노의 함성에 묻힌 박광철 기자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박광철 기자는 조심하며 나무 뒤로 다가가 숨어서 귀를 기울였다.
“내 아내가 자살한 후 16년 동안 네 이름을 잊고 산 적이 단 하루도 없었어. 네가 어디 있는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살아왔어.”
김다름의 눈에서 비통한 눈물이 번져 나왔다.
“네가 한 더러운 만행은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지워졌어. 그 사진도 단 하루만 신문에 실리고 보도 관제되고 말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서 까지 지울 수는 없었어. 네가 도망쳐 한국을 떠날 때 나는 네 대검에 찔린 상처 때문에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 병원에서 보낸 시간만 다섯 달이야.”
국도 위 농민들의 함성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경찰차의 확성기도 깨지는 소리를 내며 맞받았다.
“장경국 중사. 모진 마음으로 너를 찾아다닐 때는 너를 만나면 찢어죽이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너를 보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자살한 내 아내가 만족스러워 할 복수가 될지 모르겠어. 네가 아주 오랫동안 살면서 더러운 과거를 잊지 않고 괴로워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수도 있겠지. 네게 괴로워할 정도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야.”
국도 위의 농민의 수가 더욱 불어나고 그 고함소리도 하늘을 뜷을 듯 커졌다.
미겔 데 헤수스 성도를 앞세우고 족장과 마을 농부 몇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뒤따라 뛰어온 김 안토니오 성도가 숨차게 말했다.
“신부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저 시위농부들과 합세하겠답니다.”
족장과 농부들이 분노한 얼굴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미겔 데 헤수스 성도가 통역했다.
“더 이상 앉아서 당하지 않겠답니다. 신부님이 허락 안 해도 저 농부들과 같이 벨렘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농부 한 사람이 서둘러 뛰어와서 미겔 데 헤수스에게 소리 질렀다. 미겔이 장모세 신부에게 영어로 말했다.
“신부님, 버스 두 대가 와서 군복을 입은 경찰관들을 내려놓았답니다. 모두 총을 들고 있답니다. 사태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복. 총.
김다름의 눈을 피하며 떨리는 손을 감추고 얼굴을 떨구고 있던 장모세 신부가 눈을 들었다. 한참 침묵하던 그 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군복. 총.
마침내 장모세 신부는 결의에 불붙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시다. 모두 벨렘으로 갑시다. 나도 같이 갑니다.”
성도 미겔 데 헤수스가 놀라서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
“뭐라고요?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여기 남아 있게 하십시오. 여기 남아서 농사지을 땅을 달라고 계속 청원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장모세 신부는 국도 위에서 점점 커지는 시위농부의 분노에 찬 함성을 잠시 듣다가 하늘을 우러르며 성호를 그었다.
“이 버려진 땅에 평화는 없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농민들은 침해당하고 유린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청원하고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의로운 자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벨렘으로 갑니다.”
흥분한 미겔 데 헤수스 성도가 폴투갈 말로 통역하자 마을 농민들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동조했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다름에게 박광철 기자가 다가가서 흥분감을 감추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장모세 신부님이 군인이었습니까? 어쩐지 그분의 신상에 대해서 가톨릭 교계에서는 전연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16년 전.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16년 전이면 1980년, 그럼 광주 민주화 운동 때와 관계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나중에 좀 더 알려주십시오. 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마을 농민들은 흥분하여 부산하게 벨렘으로 갈 준비를 했다.
김 안토니오 성도가 불안에 떨며 장모세 신부를 말렸다.
“안됩니다. 신부님,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벨렘으로 가도 정부에서 땅을 주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여기서 진정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장모세 신부의 눈에는 이미 분노의 핏발이 돋고 마음은 결의되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벨렘으로 가도 땅을 주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끊임없이 귀기울여줄 사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우리 농민들에게 땅을 주어서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도록 허가해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기로 합니다.”
국도 위에서 커지는 함성이 마을사람들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여기 남을 사람은 남으십시오. 의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그 길을 가고 싶은 사람만 같이 가면 됩니다. 기도하십시다.”
미겔 데 헤수스의 통역에 의지하며 장모세 신부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죄악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정의의 단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 우리가 오늘 가야하는 이 길에 하느님의 힘이 역사해서 힘써 일하는 이 모든 농부들이 마침내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조각의 땅을 얻어 하느님의 품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미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국도 PA-150에서 총성이 쏟아졌다. 농민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고 순식간에 국도는 아수라장의 도가니가 되었다.
오후 4시
총탄을 피한 농민들이 장모세 신부가 있는 마을로 물밀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마을이 갑자기 비명소리에 파묻히며 전쟁터처럼 되었다.
불을 뿜는 눈으로 이것을 본 장모세 신부가 자기 막사 앞에 꽂혀있던 십자가를 뽑아들고 쏟아져 들어오는 농민들을 헤치고 역류하며 국도로 뛰어갔다. 긴 수단이 발에 걸려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멈춰! 쏘지 마라! 파레! 나오 아띠레! ”
비명처럼 외마디 소리를 질러대는 장모세 신부의 뒤를 박광철 기자가 계속 사진을 찍어대며 따라갔다. 그 뒤를 김 가브리엘 신부와 김 안토니오 성도가 따르고 마을 사람들이 뒤따랐다.
총성이 계속 울렸다.
장모세 신부가 국도 위로 올라서면서 본 것은 길 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서넛 농부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움직임이 없었다.
총성이 그치지 않았다. 군복을 입은 집단은 총을 가지지 않은 농민들을 향해서 무차별 발포를 하고 있었다.
장모세 신부의 눈에 핏발이 돋았다. 군복의 무리를 보며 온몸의 피가 모두 머리 위로 솟구쳐 올라가 터질 것 같았다.
“멈춰! 쏘지 마라! 파레! 나오 아띠레!”
십자가를 높이 들고 국도 위로 올라서면서 장모세 신부는 계속 소리 질렀다.
군복. 총. 총성.
장모세의 눈은 표독스럽게 변해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그때의 그 분노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분노가 그들에게도 있었겠지.
장모세 신부는 십자가를 높이 들고 총알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의 가운데로 올라섰다.
“쏘지 마라! 쏘지 마라! 하느님의 명령이다! 쏘지 마라! 나오 아띠레! 나오 아띠레! 에사 에아 오르뎀 데 듀스! 나오 아띠레!”
바닥에 엎드려 총알을 피하며 계속 사진을 찍어대던 박광철 기자가 장모세 신부의 수단 옷자락을 잡으며 외쳤다.
“신부님, 위험합니다. 나가지 마십시오.”
헐떡거리며 뒤좇아 온 김 안토니오 성도와 미겔 데 헤수스가 박광철 기자와 합세하여 장모세 신부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놔라.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나는 두렵지 않다.”
이들은 경찰인가 군인인가? 총을 쏘고 있는 집단에 다가가며 표독스럽게 변한 눈으로 살피던 장모세는 그 집단의 군복에 소속부대를 알리는 견장이나 명찰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계획된 집단학살이다. 누구의 명령인가?
분노한 장모세 신부는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십자가를 높이 치켜들었다. 총알이 난무하는 국도를 가로지르며 장모세 신부는 똑바로 몸을 세우고 타오르는 눈으로 군복의 무리를 쏘아보며 행군하듯 걸어갔다.
“하느님의 명령이다! 쏘지 마라! 에사 에아 오르뎀 데 듀스! 나오 아띠레!”
총탄의 빗속에서 갑자기 장모세 신부가 중심을 잃고 비틀했다. 십자가를 치켜든 손에 힘을 주려 애쓰며 털썩 국도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을 본 군복의 무리가 급히 사격을 중지했다. 그와 동시에 아우성치던 농민들의 함성도 뚝 멎고 지옥 같던 국도 위는 갑자기 진공처럼 조용해졌다. 그 진공 속에 총을 맞고 국도 위에 쓰러진 농민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왈칵 커졌다.
“신부님!”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김 안토니오 성도와 김 가브리엘 신부가 허겁지겁 뛰어나가 장모세 신부를 부축했다.
가슴을 움켜쥔 장모세 신부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가슴을 꿰뚫은 총탄은 치명적이었다.
“십자가를.... 잡으십시오.”
김 안토니오 성도가 장모세 신부의 손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었다.
길 건너 군복무리 쪽에서 성난 명령이 터져 나왔다.
“사격! 계속 쏴라, 이 새끼들! 아띠라! 콘띠누에 아띠란도 수스 메르다스!”
다시 산발적으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신부는 장모세 신부를 부축하여 국도 아래로 내려왔다. 신부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총소리가 다시 요란해졌다.
박광철 기자가 마을사람들이 가져온 담요를 흙바닥에 깔고 장모세 신부를 눕혔다.
김가브리엘 신부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계속 기도를 중얼거리고 성호를 그어대고 있었다.
김 안토니오 성도는 십자가를 땅에 박아 세우고 자기 움막에 있는 비상 의료함을 가져오기 위해서 서둘러 뛰어갔다. 눕혀진 장모세 신부의 가슴에서 꾸역꾸역 피가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신부복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김다름.”
생명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장모세 신부가 힘없는 목소리로 불렀다.
“가짜 신부로 시작했지만 나는 진짜 신부만큼 하느님의 명을 따라서 살았다.”
김다름의 차가운 눈이 조금치의 감정도 담지 않고 장모세 신부를 내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피 흐르는 가슴을 움켜쥔 장모세 신부의 눈은 고통 속에서도 침착했고 또 현실을 넘어 평온하게까지 보였다. 흘러 쏟아지는 피와 함께 생명은 장모세 신부의 몸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다름, 내 손을 잡아라. 나를, 용서,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가?”
장모세 신부가 내민 피 묻은 손을 김다름은 잡지 않았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고 계속 차갑게 장모세 신부를 지켜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박광철 기자의 눈이 다급하게 김다름을 살폈다.
김다름을 보던 장모세 신부의 눈이 마지막으로 경련하다가 감겼다. 내밀었던 손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김 안토니오 성도가 허겁지겁 응급 의료함을 들고 뛰어와서 장모세 신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급히 의료함을 열었다.
“죽었습니다.”
보고 있던 김다름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도 PA-150 위에서는 총성이 계속되고 농부들의 비명소리가 허공을 찔러대고 있었다.
김 안토니오 성도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성호를 그었다.
“신부님, 일어나십시오. 신부님, 하느님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김다름이 조용히 일어나서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 사람은 신부가 아닙니다.”
놀라서 쳐다보는 두 성직자와 김광철 기자의 눈을 뒤에 두고 김다름은 통증에 시달리는 가슴을 두 팔로 안고 돌아섰다. 가쁜 숨을 쉬며 허탈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총성과 농부들의 아비규환은 이미 김다름의 귀에서 차단되어 들리지 않았다.
끝났어. 모든 것은 이렇게 끝나버리고 말았군. 마치 별 큰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어.
장모세 신부의 시신을 뒤에 두고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걸어 나가던 김다름의 눈에 좀 떨어진 흙바닥에 벗겨져 팽개쳐져 있는 조그만 빨간 신발 한 짝이 들어왔다.
(10)
대한민국 서울 2012년 5월
그로부터 또 다른 16년이 지나갔다.
박광철 기자가 김다름을 마지막 본 것은 그 때, 그러니까 그 16년 전 끔찍한 사건을 치루고 장모세 신부의 시신을 벨렘에 묻고 브라질을 떠나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북적거리는 승객들 사이에서 부산하게 짐을 챙기느라고 깜빡 잊고 있던 사이에 김다름은 아무 말 없이 어디론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그 이후 박광철 기자는 김다름을 찾아서 장모세 신부로 변신했던 장경국 중사와 그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더 듣고 기사를 완료하고 싶어서 알만한 곳은 모두 수소문했지만 장경국 중사에 대해서나 김다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부상당하여 입원했던 사람의 명단을 병원마다 돌아다니며 모두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김다름이라는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장경국 중사에 대한 대한민국 육군의 복무기록은 삭제되어 있었고 카톨릭 교계에서는 장모세 신부가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신부가 된 사람인지 전연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광철 기자가 브라질에서 송고했던 장모세 신부의 브라질에서의 봉사와 종교 활동에 대한 기사는 특종으로 계속 ‘현대인과 종교’ 잡지에 수록되었는데 신부로 변신하기 전의 장경국 중사와 김다름의 아내 강간사건을 흥분해서 폭로했던 기사는 단 한 줄도 인쇄되어 나오지 않았다. 박광철 기자의 화산 같은 분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아무의 주의도 끌지 못하면서 마치 근거 없는 야담인 것처럼 흐지부지 사그라져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기자가 너무 정의감이 강하고 의협심만 내세워 일한다면 생명이 길지 못해.”
편집장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던 날 박광철 기자는 사표를 내고 ‘현대인과 종교’ 잡지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 후 후리랜서가 되어 다른 여러 잡지에 기사를 쓰면서도 박광철 기자는 브라질의 땅 없는 농민 학살사건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엘도라도 도스 카라하스 농민학살 사건 이후 16년이 흐르면서 미해결 상태로 침묵 속에 묻혀 정의를 찾지 못하던 이 사건을 브라질 정부는 마침내 암흑 속에서 끄집어내어 재판정에 세웠다.
2012년 5월 7일. 파라 주의 재판정은 155명의 무장경찰을 이끌고 두 대의 버스로 현장에 도착하여 사격명령을 내리고 19명의 농부를 학살했던 주범 판토하 대령에게 228년 형을 선고했다. 그의 부하 올리베이라 소령은 같은 죄목으로 158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토하 대령은 학살을 끝내고 현장을 떠나면서 ‘임무완료’ ‘아무도 본 사람 없음’ 하고 상부에 보고까지 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때나 어느 정권이나 항상 그렇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농민들의 항거를 막으라는 원천적 명령을 내렸고 판토하 대령의 임무완료 보고를 받았던 파라 주정부 수뇌의 관리들은 단 한 명도 기소당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받은 것은 그 명령을 수행했던 하수인들뿐이었다.
박광철 기자는 자기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브라질의 재판결과가 실린 인터넷 기사를 읽던 눈을 돌려 물끄러미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벽과 천정이 만나는 한쪽 모퉁이에 몸통이 크고 검은 거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그물을 치고 있었다.
(김영문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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