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
2019.10.23 09:58
글 쓰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
글 쓰는 것을 그저 취미 정도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끊임없는 탐구이며 많은 시간과 정력과 고통이 투자되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아마 그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 하얀 스크린에 단어를 나열해놓고 그 뒤가 풀리지 않아 밤새 씨름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이것을 놓을 수가 없으니 이 무슨 해괴한 노릇인가. 되는 소리건 안 되는 소리건 마음을 불태우며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머리를 휘저으며 신음소리 내고 울기 까지 하면서 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다음 날 읽어보고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어젯밤에는 명작이라고 생각했던 그 글을 몽땅 지워버린다. 도무지 마음에 드는 글을 써내지 못하는 내 한계성에 고통스러워한다.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드디어 빛나는 글이 창작되어 그 마지막 장에 마침표를 찍는 환희를 맛보리라고 근거 없는 확신을 하면서 말이다.
좋은 글은 고통 속에서 창출된다. 진주는 조개의 상처 난 살 속에서 만들어진다. 괴로워하고 번민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불행과 걱정거리에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고통스러워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이건 죽을 때 까지 가는 병이다. 이 병을 당신도 가지고 있고 당신도 남모르게 숨죽이고 혼자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당신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불행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By Pat Conroy
무관심보다 더 큰 모욕은 없다. 앞으로는 우리끼리라도 서로의 작품에 더 관심을 보이고 의견교환하고 잘한다고 등 두들겨주는 기회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만나서 작품토론도 하고 서로의 생활경험을 교환해서 창조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하는 글 쓰는 작업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쓴 글을 남이 혹평한다고 움츠러들 필요 없다. 그것은 다만 그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혹평 받은 그 작품을 당신의 대표적 업적이라고 평가하는 다른 의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당신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견해다. 다른 모든 의견은 다만 당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참조사항일 뿐이다. 슬기로운 작가는 다른 사람의 비판을 경청하고 반추하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가릴 줄 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지 않고 읽는 사람이 읽고 싶은 대로 쓰려고 애쓴다. 나 혼자서 감흥에 빠져 흥겨운 소리 내봤자 들어줄 사람 없다면 청중 없는 빈 강당에서 노래 부르기다. 현대인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참을성이 없다. 모두 자기가 하는 소리를 남이 들어주기 기대하지만 남이 하는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와 관계없고 들어서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없는 말을 듣겠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내 글을 읽게 만들려면 내 목소리만 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목소리를 내서 내 글을 읽도록 유인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희랍 신화의 요부 사이렌처럼 매혹적인 목소리를 내서 독자를 유혹하고 도취시켜 몽롱하게 만들고 죽여주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뿅 가게 만들고 싶다는 말이다.
우리 열심히 하고 또 해보자. 암흑의 동굴 마지막 끝에는 틀림없이 빛이 있다고 믿자.
김영문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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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전 이사장님의 쩌렁쩌렁 목소리가 들립니다.
옳으신 의미의 글 잘 읽고 갑니다.
허리는 좀 나으셨는지요.
저도 오락가락 허리통증이 하지만 이를 다물고 견딥니다.
지금의 인생은 한번 이라서요. 최미자문우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