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익스클루시브 (조선일보 칼럼 '김영문의 응접실' 101419)
2019.10.23 09:48
익스클루시브 (Exclusive)
우리 인간에게는 이상하게도 내가 일반대중하고는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또 과시하고자하는 본능이 있다. 일반대중보다는 내가 드높고 존귀하며 따라서 나는 일반대중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논리를 신봉하고자 하는 본능이다. 이런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끼리끼리 각종 배타적인 클럽과 도당을 만들어서 서로 멸시하고 분쟁한다. 그들은 타 집단을 멸시하고 배타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이 자기가 소속된 특수하게 높은 집단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일요일 아침마다 공원에서 모여 운동하는 클럽이 있어서 참가한 적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나가보니 공원 한쪽에 한국교회가 현수막을 걸어놓고 야외예배를 보러오는 모양이었다. 마침 눈에 익은 사람이 있어서 가서 반갑게 인사했다. 내 인사를 받기는커녕 이 사람은 대뜸 거룩한 소리를 내질렀다. 이 공원은 자기 교회에서 정식으로 예약을 하고 들어온 곳이니 조금 있으면 운동하는 사람들 다 쫓겨나게 될 테니 그전에 미리 나가라는 것이다. 이 무식한 배타적 신도는 그렇게 다른 집단을 물리치는 것이 자기가 소속된 집단에 충성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표본이다. 나는 말씀하신 대로 미리 나가겠다고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대답하고 안 나갔다.
거의 모든 대학에는 남학생 우애모임 (Fraternity) 또는 여학생 우애모임 (Sorority) 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모임의 회원이 되면 특수신분이 생겼다고 믿고 우월성을 과시한다. 이런 모임에 신입생이 들어가려면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거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셔야 하는 입회의식을 치러야 한다. 그런 입회의식을 통과하고 나면 그에 부수해서 따라오는 엘리트 의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존멤버 내지는 선배가 그렇게 때리고 술을 먹이는 의식을 강요하다가 신참자가 진짜 까무러치거나 죽어서 구타죄 또는 살인죄로 나머지 일생을 범죄기록을 달고 살아야하는 용감한 선배 멍텅구리들이 이따금 나온다. 그래도 이 배타적 모임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기승을 떤다. 왜냐하면 우월하고 특별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 정도의 두뇌를 가진 보통 인간의 보통스럽지 않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이 특별성을 선호하는 특별하지 못한 인간들의 특별한 성향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 ‘Exclusive Club’ 이라고 간판 붙여놓으면 입회비 너끈히 받아도 익스클루시브하지 못한 보통사람들이 더 달려들어서 회원이 되려고 한다. 보통사람이 못 들어가는 특수계층의 골프클럽이라고 하면 엄청난 회원권을 빚을 내서라도 지불하고 들어가고 싶어 한다. 한국의 미 8군 장교클럽에 들어가서 스테이크 한 조각 얻어먹고 나올 수 있거나 외국인전용도박장 출입허가증을 소지한 사람은 큰 얼굴로 거드럭거리면서 그 특권을 만방에 과시한다. 관공서등의 창구에 모든 사람 줄 서 있는데 아는 사람 있다고 사무실로 막바로 들어가서 일 보고 나와 보란 듯이 거룩한 얼굴로 팔자걸음하고 걸어가는 짱구도 있다.
요새는 책 내기가 쉬워져서 그런지 자서전을 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별 대단치 않게 살아온 사람도 돈 좀 벌고 나면 인생을 침소봉대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구술하고 대필시켜 장정본을 만들고 금박으로 이름을 인쇄해서 출판한다. 그렇게 한다고 그 인생이 더 빛나게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치졸한 허영심이 금박 이름을 앞세우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
과시할만한 특권 없지만 혹시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애쓰며 겸손한 자세로 사는 당신이야말로 진정 익스클루시브한 영웅이다.
(2019년 10월 15일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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