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와 법"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 제 4 회
2019.09.30 09:04
법치국가와 법
법을 만드는 사람과 그 법의 구멍 뚫린 부분을 찾아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마치 세균과 항생제의 싸움과 흡사하다. 고도의 항생제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세균은 더 교묘히 면역성을 길러내서 항생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열거해서 법을 만들어도 선의를 가지고 그 법을 지키고자하는 의도가 없을 때에는 법을 만든 원래의 목적이 퇴색하게 된다. 법은 도덕의 최소치를 규정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이 최소치마저도 지키지 않고 비켜가려고 하는 사회에 도덕과 윤리규범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법이 많다는 것은 그 법의 통치를 받는 국민의 도덕심과 윤리관이 희박하다는 증거다. 법이 없어도 스스로를 규제하여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을 영위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그렇게 많은 강제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회는 그들을 강제적으로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부패한 사회에 법률이 창궐한다. (로마의 역사학자 코넬리우스 타키투스 95AD)’
미국에서는 원체 많은 법을 만들다 보니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른 개정보수가 힘들어졌다. 서부개척 시대에 교통수단으로 꼭 필요했던 말의 중요성이 없어진 오늘도 법에는 말 도둑을 교수형으로 죽여 버린다고 씌어져있다. 각종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서부 개척시대가 지나갔지만 오늘도 법은 일반시민이 살상용 총기를 소지할 수 있게 되어있다.
골목길에 스피드 범프가 많다면 그것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운전 개념이 약하다는 증거다. 담장이 높고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두꺼운 동네는 도둑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높아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외부의 강압이 없어도 바른길을 택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질을 높이고 법을 줄이는 것이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는 많은 법을 만드는 데에 급급하고 인간의 질을 높이는 교육에 게으르다.
버몬트 주에서 실제로 이런 법 해석의 맹점을 이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9년 5월 14일에 42명의 홀딱 벗은 전신나체 자전거족이 거리를 질주했는데 경찰은 아무도 체포할 수 없었다. 버몬트 주 법에 의하면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행위를 하는 것은 (Disrobing in public)' 불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자전거족은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공공장소로 나오기 이전에 이미 옷을 벗는 행위를 하고 나체가 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경찰은 이들을 체포할 수 없었다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치가들이 선거유세를 할 때 유명가수의 노래를 자기 선거유세에 허가 없이 무단사용하자 도무지 정치가들이나 거짓과 위선이 날뛰는 정치판에 썩 우호적이지 않은 음악계의 예술인들이 핏대를 내면서 내 노래를 너희들 더러운 정치판에 사용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이에 정치판에서는 대뜸 인기가수들의 노래를 정치활동에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법이 진짜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우리 보통사람을 옥조이는 이 법이라는 것이 만드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서 이렇게 엿가락처럼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법은 매춘부와 같아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데리고 놀며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사람 저 사람 함량미달의 머저리들이 모두 정치판에 들어가서 한 자리 해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2019년 9월 30일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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