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이야기를 들으러
2006.05.07 21:44
지리산의 이야기를 들으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조내화
노고단이 하늘을 가리고 우뚝 서있다. 턱 버티고 선 모양새가 꼭 무슨 말인지 하고 싶은 가 보다.
구례를 떠나 노고단으로 가는 버스는 힘겨운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위허위 지리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흔일곱 구비를 돌아가는 차창 밖은 이미 짙푸른 녹음에서부터 연두색 숲을 이루고 있었다. 30도를 넘을 정도로 여름 흉내를 내던 날씨는 성삼재에서 태도가 돌변하더니 사나운 겨울바람을 일으키며 손님을 맞았다. 아직 노고단 정상은 겨울의 찌꺼기를 벗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산 벚꽃이 자리 잡아 잠자는 지리산을 깨우는 듯했다.
잘 닦여진 지리산 일주도로를 따라 걸었다. 속도를 높여 걷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계곡의 물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고 있다. 걷는 속도를 조절하자 이내 몸도 풀렸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멈춰 섰다. 저 멀리 화엄사에서 출발한 푸르름은 고운 봄 햇살을 타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여 산의 정상 부근까지 뻗어 있었다. 조금씩 변했을 자연의 색깔은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변하곤 했을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똑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왔으며 변하고 있다고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노고단 산장으로 가려고 지름길로 들어섰다. 잘 닦여진 도로를 벗어나자 큰 돌을 깐 지리산 본래의 길이 나타났다. 걷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그래도 본래의 지리산을 만난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일제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했다는 피서용 별장 밑을 지나면서 새까맣게 변해버린 기둥을 보니 힘들게 살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고통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벽안의 신부들을 가마에 태우고 오르내렸을 사람들과, 이곳을 무대로 이루어진 빨치산 전투에 참여했던 조상들이나, 그 빨치산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버린 그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무어라 외쳤을까? 노고단의 울창한 산림들을 그들은 휴양지나 은거지로 이용하면서 자연의 혜택을 누렸건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은 모두 불태워지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노고단 산장을 거쳐 키 작은 관목 숲을 지나 노고단 고개에 이르렀다. 남쪽엔 노고단 정상을 지키는 방송탑과 그곳을 찾는 탐방로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커다란 돌탑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있었다.
노고단은 원래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받들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노고단이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지내던 ‘신단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단’이 합쳐진 이름이다. 민속신앙인 성모사상이 조국의 안위와 연계된 표현이리라. 이곳 노고단은 신라 화랑도의 심신수련장이요 무예를 닦던 도장이었던 것이다.
반야봉을 향해 숲길로 들어서자 부드러운 흙으로 조성된 산길이 나타났다. 진달래와 산 벚꽃이 남아 있는 산허리에는 봄이 아직 땅에서부터 10센티미터까지만 왔나 보다. 숲 가장자리에 만발한 야생화와 아직 솜털을 가득 뒤집어쓰고 슬며시 얼굴을 내민 새싹들이 새로 태어날 지리산의 생명을 말해주는 듯했다. 몇 백 년을 살았을 듯한 노목이 이젠 더 버틸 수 없다는 듯 그 뱃속을 다 드러낸 채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늙은 노목의 가슴에는 온통 이끼가 담겨져 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돌무덤이 하나 보였다. 무덤 앞의 초라한 나무판은 이곳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구든 함부로 산을 대하지 말라는 지리산의 엄한 경고였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스쳐 지나간다. 편안하게 걷는 그들의 모습이 지리산의 품만큼이나 넉넉해 보였다. 무엇이 바쁜지 앞만 보고 달리듯 하는 내 모습에서는 앞으로 얼마의 세월이 더 흘러야 저런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돼지평전에 닿았다. 돼지평전이란 이곳 노고단에 지천인 원추리 뿌리를 캐먹으려고 멧돼지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가엔 패인 길을 보호하려고 나무로 얽어 만든 보호대가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으로 다니지 않고 그 옆의 흙길을 고집한다. 길가에서 힘들게 자란 키 작은 주목이 등산객들의 발길에 차이고 밟혀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이 깊은 산중에서 태어났건만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죽어 가고 있다.
반야봉이 점점 가까워진다. 반야봉은 그 모양이 여성의 둔부를 닮았다하고 지리산 낙조는 지리8경 가운데 하나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노고단의 일몰을 세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니 그 일몰을 가슴속에 깊이 담아두었나 보다.
반야봉에는 천신의 딸인 마고할멈이 지리산에서 도를 닦던 도사 반야를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더욱 불도를 닦고자 이곳으로 온 반야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숨을 거두자 후세 사람들이 반야가 불도를 닦던 이곳을 반야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상나무와 잣나무 숲길에서 젊은 부부를 만났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들은 길가에 예쁘게 핀 들꽃을 보며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새 생명의 힘찬 고동이 그 젊은 부부에게서 느껴지는 듯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그들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오직 나 혼자뿐이다. 보이는 건 숲과 흰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하늘뿐이고, 훈훈한 바람과 서늘한 바람만이 간간히 교대로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바람이 불자 가늘게 떨리는 댓잎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었다. 지리산에 내가 있고 내 맘속에는 지리산이 들어있다.
임걸령 삼거리를 지났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초적 ‘임걸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다녔다는 전설을 지닌 그는 이 지리산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임걸령 샘터에서 짐을 풀었다. 가방도 벗고 신발도 벗었다. 바위를 의지하고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피아골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여유롭게 내려다 본 골짜기에선 몇 년 전에 보았던 피보다 더 붉은 단풍이 연상되었다. 피아간에 흘린 피가 붉어서 붙여졌다는 그 이름이 피아골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그 붉은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져 버린 듯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섰다. 오늘 지리산에선 많은 것들을 만났다. 이것들은 지금 나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한다고 꾸짖지는 않을까? 그렇다! 지리산은 그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오랜 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겉모습이야 인간들이 상처를 내겠지만 그 깊은 속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이여, 네가 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우리 후손들에게도 꼭 전해주지 않겠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조내화
노고단이 하늘을 가리고 우뚝 서있다. 턱 버티고 선 모양새가 꼭 무슨 말인지 하고 싶은 가 보다.
구례를 떠나 노고단으로 가는 버스는 힘겨운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위허위 지리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흔일곱 구비를 돌아가는 차창 밖은 이미 짙푸른 녹음에서부터 연두색 숲을 이루고 있었다. 30도를 넘을 정도로 여름 흉내를 내던 날씨는 성삼재에서 태도가 돌변하더니 사나운 겨울바람을 일으키며 손님을 맞았다. 아직 노고단 정상은 겨울의 찌꺼기를 벗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산 벚꽃이 자리 잡아 잠자는 지리산을 깨우는 듯했다.
잘 닦여진 지리산 일주도로를 따라 걸었다. 속도를 높여 걷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계곡의 물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고 있다. 걷는 속도를 조절하자 이내 몸도 풀렸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멈춰 섰다. 저 멀리 화엄사에서 출발한 푸르름은 고운 봄 햇살을 타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여 산의 정상 부근까지 뻗어 있었다. 조금씩 변했을 자연의 색깔은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변하곤 했을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똑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왔으며 변하고 있다고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노고단 산장으로 가려고 지름길로 들어섰다. 잘 닦여진 도로를 벗어나자 큰 돌을 깐 지리산 본래의 길이 나타났다. 걷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그래도 본래의 지리산을 만난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일제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했다는 피서용 별장 밑을 지나면서 새까맣게 변해버린 기둥을 보니 힘들게 살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고통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벽안의 신부들을 가마에 태우고 오르내렸을 사람들과, 이곳을 무대로 이루어진 빨치산 전투에 참여했던 조상들이나, 그 빨치산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버린 그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무어라 외쳤을까? 노고단의 울창한 산림들을 그들은 휴양지나 은거지로 이용하면서 자연의 혜택을 누렸건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은 모두 불태워지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노고단 산장을 거쳐 키 작은 관목 숲을 지나 노고단 고개에 이르렀다. 남쪽엔 노고단 정상을 지키는 방송탑과 그곳을 찾는 탐방로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커다란 돌탑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있었다.
노고단은 원래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받들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노고단이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지내던 ‘신단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단’이 합쳐진 이름이다. 민속신앙인 성모사상이 조국의 안위와 연계된 표현이리라. 이곳 노고단은 신라 화랑도의 심신수련장이요 무예를 닦던 도장이었던 것이다.
반야봉을 향해 숲길로 들어서자 부드러운 흙으로 조성된 산길이 나타났다. 진달래와 산 벚꽃이 남아 있는 산허리에는 봄이 아직 땅에서부터 10센티미터까지만 왔나 보다. 숲 가장자리에 만발한 야생화와 아직 솜털을 가득 뒤집어쓰고 슬며시 얼굴을 내민 새싹들이 새로 태어날 지리산의 생명을 말해주는 듯했다. 몇 백 년을 살았을 듯한 노목이 이젠 더 버틸 수 없다는 듯 그 뱃속을 다 드러낸 채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늙은 노목의 가슴에는 온통 이끼가 담겨져 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돌무덤이 하나 보였다. 무덤 앞의 초라한 나무판은 이곳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구든 함부로 산을 대하지 말라는 지리산의 엄한 경고였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스쳐 지나간다. 편안하게 걷는 그들의 모습이 지리산의 품만큼이나 넉넉해 보였다. 무엇이 바쁜지 앞만 보고 달리듯 하는 내 모습에서는 앞으로 얼마의 세월이 더 흘러야 저런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돼지평전에 닿았다. 돼지평전이란 이곳 노고단에 지천인 원추리 뿌리를 캐먹으려고 멧돼지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가엔 패인 길을 보호하려고 나무로 얽어 만든 보호대가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으로 다니지 않고 그 옆의 흙길을 고집한다. 길가에서 힘들게 자란 키 작은 주목이 등산객들의 발길에 차이고 밟혀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이 깊은 산중에서 태어났건만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죽어 가고 있다.
반야봉이 점점 가까워진다. 반야봉은 그 모양이 여성의 둔부를 닮았다하고 지리산 낙조는 지리8경 가운데 하나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노고단의 일몰을 세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니 그 일몰을 가슴속에 깊이 담아두었나 보다.
반야봉에는 천신의 딸인 마고할멈이 지리산에서 도를 닦던 도사 반야를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더욱 불도를 닦고자 이곳으로 온 반야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숨을 거두자 후세 사람들이 반야가 불도를 닦던 이곳을 반야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상나무와 잣나무 숲길에서 젊은 부부를 만났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들은 길가에 예쁘게 핀 들꽃을 보며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새 생명의 힘찬 고동이 그 젊은 부부에게서 느껴지는 듯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그들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오직 나 혼자뿐이다. 보이는 건 숲과 흰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하늘뿐이고, 훈훈한 바람과 서늘한 바람만이 간간히 교대로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바람이 불자 가늘게 떨리는 댓잎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었다. 지리산에 내가 있고 내 맘속에는 지리산이 들어있다.
임걸령 삼거리를 지났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초적 ‘임걸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다녔다는 전설을 지닌 그는 이 지리산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임걸령 샘터에서 짐을 풀었다. 가방도 벗고 신발도 벗었다. 바위를 의지하고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피아골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여유롭게 내려다 본 골짜기에선 몇 년 전에 보았던 피보다 더 붉은 단풍이 연상되었다. 피아간에 흘린 피가 붉어서 붙여졌다는 그 이름이 피아골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그 붉은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져 버린 듯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섰다. 오늘 지리산에선 많은 것들을 만났다. 이것들은 지금 나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한다고 꾸짖지는 않을까? 그렇다! 지리산은 그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오랜 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겉모습이야 인간들이 상처를 내겠지만 그 깊은 속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이여, 네가 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우리 후손들에게도 꼭 전해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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